[사설]한·일 국교 정상화 50년, 이대로 넘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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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한·일 국교 정상화 50년, 이대로 넘길 수 없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6. 21.

오늘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지만 양국이 50주년을 자축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반세기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정부 차원의 갈등을 넘어 시민사회 영역에서까지 서로 감정적 대립을 하는 양상으로 악화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여러 개의 여론조사에서는 호감도·신뢰도 등 어떤 기준으로도 양국 시민들의 상대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낮다. 한·일 신시대를 선언했던 김대중 정부 이래 최악이라고도 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협력과제가 쌓인 양국의 이 같은 갈등 심화 현상은 사실 낯선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마땅하다.

50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고개를 드는 이 양국 간 불화는 50년 전 국교 정상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사실 1965년 한·일 간 청구권 협정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당시 권위주의 체제로서 가난한 약소국이었던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과거사 사죄를 받아내지도 못했고,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보장받지도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 조선인 강제 징용 문제도 배제되었다. 개발자금이 급했던 한국 정부는 그걸 따질 여유가 없었고, 그래서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균형적인 국교 정상화는 양국 간 진정한 화해를 토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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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도 그런 과거의 한계가 50년이 지난 오늘 양국 정상이 마주 앉아 대화도 못하는 현실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한·일은 이 협정의 토대 위에 벌써 50년의 관계를 축적해왔다. 화해하고 협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물론 한·일관계의 진전이 멈춘 배경에는 일본의 책임이 크다. 일본은 탈냉전, 일본의 경제력 약화, 중국의 부상이라는 안팎의 변화에 직면해 보통국가를 추구하며 성찰하는 자세를 버렸다. 도모미 자민당 정조회장이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A급 전범을 처벌했던 1946년 도쿄 재판에 대한 당내 검증 기구를 두겠다고 발표한 것은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전후 체제 탈피를 내세우는 아베 신조 정권의 이런 불길한 행보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어디로 끌고 갈지 걱정스럽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 현인회의 대표단 접견에서 가와무라 다케오 전 관방장관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베 정권을 방치하거나 불필요하게 자극, 퇴행적 태도를 부추기는 일을 삼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정부가 그동안 아베 총리를 자꾸 밀쳐내려 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정부는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사실상 양국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를 정상회담이라는 단기 목표와 연계할 경우 정상회담도 어렵고, 위안부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는 당장 며칠, 몇주 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상회담과 위안부 문제의 실질적 분리가 필요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어제 처음으로 도쿄를 방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과 회담을 했다. 외교부 장관이 그동안 도쿄를 가지 않았다는 건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늦었지만 50주년은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도 좀 더 노력할 여지가 있다. 두 사람이 오늘 만나지는 못한다 해도 각자 상대국 대사관을 찾아 새로운 50년의 발전을 다짐하는 기회를 갖기 바란다. 그런 의례는 관계가 좋을 때 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불편할 때도 필요한 것이다. 아니, 어느 때보다 관계 개선의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될 이때야말로 절실하게 요구되는 외교적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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