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헌재도 외면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당한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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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헌재도 외면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당한 보상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2. 23.

헌법재판소가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들이 일본 정부 및 기업에 대하여 일체의 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한일청구권협정 2조1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또 강제동원에 따른 미수금 피해자에게 1엔당 고작 2000원으로 환산한 지원금만을 지급하도록 한 국외강제동원자 지원법에 대해서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일본 측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할 권리도, 정부로부터 합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도 모두 외면당한 셈이다.

헌재가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각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배경은 일면 이해할 수 있다. 한일청구권협정은 1965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체결된 후 논란이 제기되면서도 50년의 세월 속에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질서로 자리 잡았다. 헌재로서는 한일청구권협정에 위헌 판정을 내릴 경우 엄청난 외교적 파장이 초래될 게 뻔한 상황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법하다. 그렇다고 피해자들의 대일민간청구권 행사를 전면적으로 제한한 한일청구권협정에 합헌 결정을 하는 것도 국민정서상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헌재는 ‘한일청구권협정은 미수금 지원금 지급 결정 처분의 근거조항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회피함으로써 어려움을 빠져나간 셈이다.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기본권의 최후 보루인 헌재의 소명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나아가 강제동원 희생자와 유족 등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노무제공 등의 대가로 받을 미수금을 1945년 기준으로 1엔당 2000원으로 환산한 것에 대해서까지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권리행사가 전면 제한된 희생자와 유족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지원금은 그 고통을 치유하는 데 합당한 수준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1945년에 비해 단순물가상승률만 9만3000배에 달하는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1944년 8월 강제징용됐다가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린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에게 고작 27만원을 지급한 것을 국가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헌법 30조는 국민이 타인의 범죄행위로 피해를 받은 경우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애당초 잘못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국민의 재산권 행사를 봉쇄한 원죄가 있는 국가가 일제의 범죄행위로부터 노역을 착취당한 국민의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외면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수긍하기 어렵다. 정부는 헌재 결정으로 징용피해자에 대한 보상문제가 일단락됐다고 자위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제대로 된 피해보상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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