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어두운 새해 맞는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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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 어두운 새해 맞는 유럽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2. 27.

2015년 유럽은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를 경험했다. 한 해가 시작되는 지난 1월 파리의 샤를르 에브도 테러가 발생했고, 그리스에서 등장한 시리자 극좌 정권은 새로운 유로위기를 촉발했다. 이어 시리아를 비롯해 중동과 아프리카로부터 거대한 난민의 행렬이 유럽으로 향하면서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과 같은 참혹한 인도주의적 비극과 난민에 대한 유럽의 분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리고 11월에 파리 시민학살테러는 프랑스의 비상사태와 유럽의 중동공격 확대라는 태풍을 몰고 왔다.

그리스로 인한 유로위기는 유럽통합의 가장 대표적 성과인 단일화폐에 대한 위협이었다.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위기가 유로 생존의 위기였다면 올해는 그리스가 유로와 계속 함께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제한적인 문제였다. 그리스 국민은 1월의 총선과 7월의 국민투표에서 모두 시리자에 승리를 안기면서 긴축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력하게 표명했다. 하지만 유럽이 강요하는 긴축 정책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시리자의 치프라스 총리는 9월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면서 긴축 반대의 기수가 긴축정책의 사령관으로 등장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유럽의 난민유입은 올 들어 그 규모가 대폭 증가하면서 유럽 사회를 강력하게 압박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도덕적 세력을 자부해 온 유럽이 과연 난민 수용이라는 기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정체성의 위기였다. 올해 유럽에는 작년에 비해 3~4배에 달하는 1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들어왔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한동안 관대한 수용 의지를 밝혔지만 이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난민유입을 막기 위해 1980년대 이후 철폐되었던 국경 검문검색을 다시 시작하였다. ‘국경 없는 유럽’이라는 거대한 통합의 성과가 힘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유럽연합(EU)의 난민 대응_경향DB


이슬람 테러세력의 반복된 유럽 공격으로 민주주의의 대표주자 프랑스가 변하고 있다. 시위의 도시 파리에서 시위는 금지됐고,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에서 이슬람 혐오범죄가 급증하는 추세다. 자유·평등·박애의 나라에서 치러진 12월 지방선거에서 제1당은 차별과 증오의 극우 민족전선이다. 그 후 프랑스 사회당 정권은 테러 관련 이중 국적자의 프랑스 국적을 박탈하겠다는 민족전선의 정책을 받아들여 추진 중이다. 같은 중도 좌파 르몽드지마저 이 정책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공화주의 전통의 부정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은 하나의 화폐라는 성과를 지키는 데 간신히 성공했지만 ‘국경 없는 유럽’과 민주주의 전통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새해에도 유럽이라는 공통의 집에 대한 도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유럽연합 잔류의 선택을 놓고 영국이 국민투표를 벌인다. 영국이 만일 유럽에서 탈퇴한다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의 빅4를 형성하는 자동차에서 바퀴 하나가 빠지는 모습이 될 것이다. 난민과 테러 문제에서 모두 핵심적인 터키와의 관계도 유럽에는 새해의 고민거리다. 터키는 지속적으로 유럽의 문을 두들겨 왔지만 유럽연합은 형식적으로 가입협상을 시작해 놓고 실질적으로는 다양한 핑계로 협상의 타결을 미뤄왔다. 물론 인구 7700만의 이슬람 국가 터키의 규모는 유럽에 큰 부담이고 유럽이 수용을 고민하는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이젠 어떤 방식으로든 답을 내놓아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끝으로 유럽은 유로존의 외형을 보존하는 데 성공했지만 하나의 화폐로 성장 동력을 이끌어내는 데는 여전히 미흡하다. 이 같은 저성장이 초래하는 높은 실업과 사회문제가 지속되면 극단적 민족주의 및 포퓰리즘 정치세력의 부상이 유럽을 더욱 심각한 분열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중동과 아프리카의 계속되는 정치 불안으로 난민의 행렬이 줄어들 기미도 없다. 이래저래 유럽의 내우외환은 새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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