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간 ‘위안부 타결’ 평가하지만 불씨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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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 한·일 간 ‘위안부 타결’ 평가하지만 불씨도 많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2. 28.

한국과 일본이 어제 외교장관회담을 열어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전격 합의했다. 3개 항의 합의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책임을 공식 인정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피해 할머니 지원 사업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이다. 이는 아베 신조 정권의 기존 태도에 비춰볼 때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아베 총리는 “일본 총리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발표했다.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사죄와 반성의 뜻을 나타낸 것은 처음이다.

이번 합의로 한·일 양국은 24년 만에 최대 외교 현안을 해결하는 전기를 맞았다. 위안부 문제는 1991년 피해 할머니 3명이 일본 최고재판소에 일본 정부를 제소함으로써 양국 외교 현안으로 떠올랐다. 피해 할머니들이 고령으로 올해만 벌써 9명이 별세하는 등 무엇보다 시간을 다투는 사안의 성격상 뒤늦었지만 타결을 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는 그간 악화일로였던 한·일관계가 정상화의 계기를 찾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양국이 위안부 문제로 갈등하며 국민여론 악화 등 측량하기 힘든 외교적 대가를 치른 점을 고려하면 중대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과거 일본이 제시한 이른바 ‘사사에안’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사에안은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자를 개별 방문해 사죄를 표명하고, 일본 총리 서한으로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일본 외무상이 일본 정부 책임을 통감한다고 공식 발표하고, 총리가 공식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것이어서 책임의 급과 수위가 더 높고 크다. 피해자 보상도 일본 정부 예산에 의한 의료비 지원 등 인도적 조치에 국한한 사사에안과 달리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금’ 등이 포함됐다. 관계 악화를 초래한 외교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양국의 고민이 이런 전략적 유연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기시다 일본 외무상이 28일 서울 외교부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_서성일 기자



그러나 이번 합의는 이 같은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불씨들을 안고 있다. 최대 쟁점인 일본의 법적 책임 문제의 경우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서로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겼다. 모호한 합의문 탓에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에 개입한 책임을 인정했다고 해석할 수도, 일본군 일각의 일탈일 뿐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일본 측 입장과 개인 청구권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한국 정부의 엇갈린 입장을 교통정리하지도 못했다. 민감한 쟁점을 해결하지 않은 채 ‘회색지대’에 두면서 분쟁 소지를 남긴 것이다. 예컨대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일본은 이번 합의를 들어 “책임이 없다”고 대응할 게 뻔하다. 이 경우 합의는 곧바로 실효성 논란에 휩싸일 게 분명하다. 피해 할머니들은 “피해자들과 국민의 바람을 철저히 배신한 외교적 담합”이라며 강력 반대했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법적 배상을 요구해온 할머니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위안부 문제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입장이 거의 배제된 것은 결정적인 흠결이다. 먼저 당사자들의 의견을 물어 종합한 뒤 그것을 기초로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정부 간 합의를 한 뒤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방식이었다. 당사자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 간 협상이고 보안상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정부가 애초 의견수렴과 설득을 병행해야 했다. 사실 아베 정권이 지금까지 계속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를 훼손하는 언행을 하다 갑자기 합의했다는 의외성 때문에 할머니들로서는 아베 정권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 이전 문제도 정부가 “관련 단체와 협의해 (철거를) 추진한다”고 밝힌 데 대해 반발이 일고 있다. 야당도 합의에 반대하고 있어 새로운 갈등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 면에서 기시다 외무상이 일본 기자들 앞에서 “(소녀상이) 이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딴소리한 것은 규탄받을 일이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과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 한일청구권협정 해석 문제, 국민 여론, 양국관계 등 서로 충돌하는 사안들이 얽힌 대표적인 ‘복잡계’다.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더라도 모두 만족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제 활은 시위를 떠났다. 지금 와서 합의를 철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최선을 다해 피해 할머니들과 국민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최대 관건은 향후 일본의 행보이다. 한국인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본래 취지에 의거해 합의 사항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진정성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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