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안부 합의에 설득되지 않는 시민과 정부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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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 위안부 합의에 설득되지 않는 시민과 정부의 책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2. 29.

한국과 일본 간 ‘위안부 합의’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피해 할머니들은 물론 야당과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그 수위도 높다. 국제 갈등이 정부와 국민 간 갈등으로 변질되는 기미가 보인다. 애초 외교협상으로 풀기 어려운 사안을 연내 타결 목표에 매달려 서두르다가 본질을 놓친 정부가 자승자박한 결과다.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본질이다. 정부는 거꾸로 행동했다. 피해 할머니들과 소통하며 최선의 방안을 마련해 협상하지 않고, 먼저 일본과 협상해 도출한 방안을 납득하라고 할머니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국민 뜻을 무시한 채 소통 없이 강행해온 일방적 국정운영의 병폐가 국제 협상에서도 어김없이 표출된 것이다. 정부가 피해자와 시민사회가 수용 불가능한 합의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일본에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과 피해자의 뜻을 충분히 대변하지 않는 정부가 그렇게 할 권리는 없다. 국제 협상에서 이토록 확실하고 분명하게 외국의 요구를 수용해주는 사례도 드물다.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의 법적 책임을 끌어내지 못했으므로 배신이자 담합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국가 간 관계는 어디까지나 국민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외교협상이 국민의 행복과 이익을 제한하고 희생시켜야 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향후 일본의 일탈적 행보 하나하나도 합의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벌써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엔”이라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의 발언이 국민감정을 들쑤시고 있다. 정부가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문구를 합의문에 명시한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소녀상은 민간이 설립한 것으로 정부가 이전 문제에 간여할 수 없는 것을 일본의 요구에 밀려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건 한국인의 자존심을 굽히고, 심각한 인권 침해와 유린의 기억을 지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협상 하루 전만 해도 절대 타협대상이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전격 합의해준 윤병세 외교장관에게 피해자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협상은 피해자인 한국이 가해자 일본에 당당히 요구하는 지위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한국이 더 양보하는 결과가 나왔다. 왜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정부는 국민적 의구심을 풀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 합의문에는 국민이 이를 납득할 만한 내용이 없다. 한·일 및 한·미 관계 발전과 동북아 안정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말로는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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