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메리카노] 뉴욕, 전통의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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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지난 시리즈

[카페 아메리카노] 뉴욕, 전통의 불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0. 11.



영어 표현 가운데 ‘historical underbrush’ 라는 말이 있다. 언더브러쉬(underbrush) 는 큰 나무 밑에서 자라는 관목이나 덤불을 말한다. 이 정도 크기의 관목은 보기에 좋을 수 있지만 그 수풀을 헤쳐 걸어 나가는 것은 그냥 걷는 것 보다는 성가신 일이 된다.

이 말 앞에 '역사적인'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 그 말의 의미는 "우리들이 나아가는 길에 역사가 (혹은 전통이)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 된다. 역사는 보기에 아름다울 수 있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역사가 걸림돌이나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역사 혹은 전통은 부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역사와 전통의 영향력

역사적 전통이라는 말이 한국과 미국 가운데 어느 나라에 더 어울릴까. 우리들이야 당연히 미국 보다는 한국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만년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미국의 경우가 전통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전통이 오늘에 주는 영향력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그렇다.

예를 들어 보면 이 점을 인정하기가 쉽다.
먼저 정치의 예를 들어보자. 한국의 정치적 전통이 오늘의 정치 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의 크기가 얼마나 지대하다고 생각하는가? 정치 문화에서 우리는 과거를 얼마나 닮아가려 하는가?

물론 과거의 부정적인 정치 문화를 벗어나려고 애쓰는 부분은 많이 있는데, 이런 부정적인 문화를 우리가 전통이라고 아껴야 할 이유는 없으니 이 부분은 빼고 생각하자. 정치 문화에 있어 전통의 긍정적 영향력을 미국을 중심으로 보면 우리의 경우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최근에 자유주의적 정치사상에 대항하여 많이 논의되고 있는 공화주의적 정치사상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구분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 사상의 뿌리를 고대 로마적 전통에서 찾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건국 당시의 공화주의에서 찾으려는 부류이다. 후자의 입장을 택하는 많은 학자들은 미국의 전통에서 나타난 고유한 미국적 정치 이해를 추구하고 이것이 오늘에 갖는 의미를 찾으려 한다. 여기에 견줄 우리의 정치적 전통은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서울의 오래된 빌딩은 몇 년이나 된 것일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가 70년이 넘는 3층 목조건물이다. 물론 그 사이에 여러 곳을 리모델링했지만, 건물 자체는 그런 나이를 먹었고 미국식의 불편함은 피할 수 없다. 집주인은 지은 지가 50년이 채 되지 않은 집보다 튼실한 점에서나 공간의 규모 등에서 더 좋다고 자랑을 했다.

지금 서울에서 이렇게 오래된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물론 고궁들이나 사적지가 될 만한 오랜 건물들이 있지만 그런 건물들이 일반 주거지는 아니다. 그런 곳이 몇몇 있기는 하지만 하루아침에 밀려버리기도 하고 곧 재건축을 통해 없어질 건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일반 주거지에 있어서도 미국의 전통은 한국의 전통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비교는 부당하다고 항의할 이유를 우리는 곧 떠올리게 된다. 우리의 전통이 보잘 것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전통이 외부의 폭력적 힘과 내부의 전쟁에 의해 단절되었기 때문이라고. 바로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기 전에 한 가지 점을 되돌려 생각해 보자. 이 글의 첫머리에서 나는 역사의 부정적 기능을 표현하는 말을 소개했었다. 만일 역사에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전통의 영향력이 크다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전통을 무조건 바람직한 것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어떤 점에서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더 영향력을 가진 전통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애써 반박하려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뉴욕과 맨해튼

나는 미국 여행을 그리 많이 해 본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내가 속한 숭실대학교에서 연구년을 허락받아 뉴욕시에 거주하고 있다

나는 뉴욕시에 살고 있지만 맨해튼에 살고 있지는 않다. 뉴욕시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맨해튼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뉴욕시는 모두 다섯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원래 보로(borough)라고 불렸던 맨해튼, 브롱스, 퀸즈, 브루클린, 퀸즈, 스테이튼 아일랜드가 1898년에 하나의 시로 통합되어 정치적으로 독립했던 탓이다.
 
브롱스는 맨해튼 위에 위치하고 있고 스테이튼 아일랜드는 맨해튼 남서쪽에 위치한 섬이며 브루클린과 퀸즈는 맨해튼의 남동쪽으로 길게 있는 섬의 왼쪽 부분에 해당한다. 이 섬의 오른쪽 부분은 롱아일랜드이며 행정구역으로는 뉴욕 주에 속한다. 뉴욕 주의 다른 부분은 브롱스의 북서부로 해서 거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누워있다. 이 직사각형의 왼쪽 끝에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맨해튼의 왼쪽에 허드슨 강을 건너 바로 마주보고 있는 곳은 뉴저지이며 이것은 또 다른 하나의 주이다.

그래도 우리가 뉴욕시에 간다고 하면 다들 맨해튼으로 간다고 생각을 한다. 내가 뉴욕시로 간다고 친구들에게 말했으니 아마 많은 사람들은 내가 맨해튼에 살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후배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은 곳은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플러싱 지역이며이는 퀸즈에 속하는 곳이다.

내가 연구를 위해 정한 학교는 맨해튼에 있는 뉴스쿨이기 때문에 주중에는 거의 매일 맨해튼으로 출근한다. 주말에는 맨해튼 구경을 위해 또 맨해튼으로 나간다. 그러고 보면 매일 맨해튼으로 출근을 하는 꼴이 된다. 물론 빨래방에서 밀린 빨래를 몇 시간 동안 해야 하거나 늦잠을 자버리거나 해서 집에 종일 머무는 날들도 꽤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국으로 연결되는 기차역 중심지인 그랜드 센트럴에 있는 지하철 통로의 모습벽과 천정을 예술적으로 장식했다. 7년 전에 왔을 때는 파이프가 노출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학교에 가려면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중간에 한 번 갈아타면 목적지인 유니온 스퀘어에 도착한다. 집 도어에서 학교 도어까지 도어 투 도어로 약 한 시간이 걸린다. 이곳의 지하철과 지하철 역사를 지나다보면 서울이 절로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의 환경은 서울처럼 깨끗하고 쾌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에서도 쾌적하지 않은 곳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맨해튼의 역들처럼 거칠고 험악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랜드 센트럴 지하철 승장장의 모습. 거친 형태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승강장 머리위로 철골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곳에는 온갖 파이프들이 천정 부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레일 주위에는 쓰레기들이 널려 있으며 지하철의 방송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한국 같으면 승무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할 만한 일 즉 기차의 연착이나 예고치 않은 운행 중지 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그저 제 갈 길로 찾아 간다는 점이다. "승무원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중죄에 해당됨"이라는 경고가 곳곳에 붙어 있다.

뉴욕의 지하철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1908년이다. 퀸즈에서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7번 노선은 1915년에 처음 운행이 되었다. 지하철의 안전을 위해 그 동안 수차례 개보수 공사를 했는데 그 흔적이 도처에 나타난다.


유니온 스퀘어 지하 연결통로를 확장하면서 과거의 분리벽 일부를 그대로 두었다. 얼핏 보면 공사를 하다 만 것처럼 보이는데 주위의 보호 철물이 보존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보존된 벽체에 남은 14라는 숫자는 유니온 스퀘어가 14가 역임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리라.



유니온 스퀘어 역에는 모두 7개의 노선이 지나간다. 일단 지하철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면 유니온 스퀘어 역 지하 연결통로로 나오게 된다. 그 통로는 지상의 유니온 스퀘어만큼이나 크다. 유니온 스퀘어 외곽으로 출구들이 나와 있으니 말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이곳 지하철을 타고 다닌지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이곳 지하철에 내려서 지하 연결통로를 지나 뉴스쿨 가까운 쪽 출구로 찾아 나가는 데 성공한 적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전통과 역사의 모습

왜 맨해튼의 지하철은 이렇게 생겼을까?
모든 것을 맨해튼답게 깔끔하게 바꾸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맨해튼의 지하철의 역사가 거기에 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자체도 전통의 한 모습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보존을 한단다. 믿거나 말거나. 나도 그저 들은 말이다. 최근에 인기 여가수 마돈나가 뉴욕의 지하철을 탔다고 해서 전통 있는 뉴욕 지하철이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지는 않는다.

유니온 스퀘어 지하 연결통로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돈을 받는 통도 몸도 모두 황금색칠이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집이 70년이 넘었다고 해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한국에서 살 던 곳보다 더 편하지는 않다. 편리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생활습관 탓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이곳에서 오래된 미국식 집의 불편함을 즐거워해야 할 일은 없는 것이다. 물론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집에서 살 수도 있겠지만 내 재정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유니온 스퀘어 광장에는 링컨과 워싱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런 동상은 맨해튼의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센트럴 파크에도, 심지어 브로드웨이 공연장들이 운집한 타임 스퀘어에도 있다.

동상을 세우는 이유는 역사를 기념하고 전통을 계승하려는 취지에서이다. 동상으로 세워지는 인물은 본받으려는 인물일 것이다. 전통의 자랑스러운 측면에 대한 것이다.

또 맨해튼의 동서로 나 있는 길에서 높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 사방으로 가득 펼쳐진 엄청난 수의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이곳에 세운 자본주의의 역사의 전통의 거대함이 새삼스럽다.

하지만 맨해튼의 백년 넘은 건물들의 아름다움은 그 뒷골목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여행 가이드를 보면 맨해튼 중심지라도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뒷골목에는 가지 말라고 한다.

마이클 샌델과 전통의 불편

한국의 서점에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몇 달째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미국에서도 이 책은 널리 팔리고 있다. 9월 26일자 뉴욕타임즈의 북리뷰 섹션에서는 샌델의 책 광고와 함께 11월 7일에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컴퓨터 영상 강의를 진행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마이클 샌델이 한국을 방문했던 2005년에는 그가 그렇게 유명하질 않았다. 그때도 그의 강의는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그의 강연회 장소가 붐비지는 않았다. 당시에 있었던 네 차례 연속강의의 마지막은 전북대학교에서 있었다. 그리고 강연이 끝난 뒤 우리는 전주의 한옥체험관에서 하루를 지냈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2005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전주 한옥체험관에서 일박을 한 뒤 필자와 함께 찍은 사진

침대가 없이 온돌방에서, 그리고 샤워시설도 서양식이 아닌 곳에서 몸을 씻으며 그의 큰 아들 아론과 함께 밤을 보낸 뒤 그가 우리와 나눈 대화에서 나온 표현이 '공동체적 불편(communitarian inconvenience)'이라는 말이었다. 샌델은 공동체주의자로 일반적으로 소개되었고, 그가 머문 곳은 한국의 공동체적 모습을 을 고스란히 담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전통의 불편(inconvenience from tradition)'이라는 말로 바뀌어 졌다.

전통이 좋지만 그것으로 살기에는 불편한 일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이번 미국 방문을 시작하여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아직 채 한 달도 되질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와 내 가족이 느낀 미국의 공동체적 불편, 혹은 전통의 불편은 이 글의 제목으로 그 표현을 사용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살면서 생각하고 또 고민할 부분은 바로 이러한 전통과 연관이 되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살아오면서 쌓은 것, 즉 그들의 삶으로 응축된 것이 내게 들려줄 말이 무엇인지를 찾는 작업인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건 불편한 것이건 말이다. 이것이 내가 뉴스쿨을 방문 학교로 그리고 뉴욕시를 주거지로 선택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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