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몇 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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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몇 가지 생각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12. 10.

더글러스 러미스 | 정치학자, 오키나와 거주



“전쟁은 지옥이다.” - 윌리엄 데쿰세 셔먼


“날이 저물고 어두워지는 하늘은

 지상의 모든 생명에게 하루의 고달픈 일을 놓고 쉬라 하는데

 나홀로 마치 전쟁 같은 길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 단테, <신곡> 지옥편 2곡


내가 미 해병대에 근무할 때 “전쟁은 지옥”이라는 셔먼 장군의 경구가 종종 인용되는 걸 봤다. 그것은 장교들의 상투적 표현들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이었다. 마치 “나는 진짜 전쟁이 어떤지 알아”라고 뽐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들이 이 말을 할 때 셔먼과 마찬가지로 반전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 지옥, 즉 끔찍한 공포라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을 반전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으로 오해한다.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셔먼처럼 닳고닳은 전사에게, 전쟁이 끔찍한 공포라는 말은 경구들 중 하나를 되풀이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전쟁은 지옥”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셔먼이 미국 남북전쟁 후 사관생도들에게 그 얘기를 했을 때 그것은 우선 전쟁에 대한 사춘기적 환상을 버리라는 뜻이었다. 자주 인용되는 그의 또 다른 말은 애틀랜타 시장이 도시를 태우는 계획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한 답장에 있는 말이다.


“전쟁에 대해 당신은 나보다 더 혹독한 용어로 정의할 수 없다. 전쟁은 잔인함이다. 그보다 더 세련되게 말할 수 없다.”


이 도시 파괴에 대해 셔먼을 탓할 게 아니라 전쟁을 탓하라는 뜻이다.


(경향신문DB)


하지만 “전쟁은 지옥”이라는 말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전쟁이 지옥이라는 말은 모든 윤리가 무의미해지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지옥의 의미는 그런 게 아니다. 단테가 말하는 지옥의 의미를 따르자면 지옥은 죄 지은 사람들이 정당하게 처벌받는 곳이다. 지옥은 도덕의 적용이 유예되는 곳이 아니라 죄 지은 사람이 최악의 적을 만나는 곳이다. 벌을 주는 이가 악마일 수는 있지만 그들이 가하는 벌은 모두 신의 뜻에 따라 응당한 것이다. 셔먼이 전쟁을 지옥과 동일시했을 때, 그는 자신을 적들에게 응당한 벌을 주는 존재로 여겼다.


“내 조국과 전쟁을 벌인 사람은 누구나 저주와 욕을 달게 받아야 한다.”

그들은 고통을 겪을 만하고 셔먼 자신이 바로 복수자로서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것이다.

“농부가 자신의 목화와 집, 가족, 그 자신까지 잃고 싶다면 그러라고 하라. 하지만 옥수수는 안된다.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옥은 세 가지 점에서 전쟁보다 더 나쁘다. 우선, 죄 지은 사람들이 전투에서 반격할 기회가 없다. 지옥에는 전투가 아예 없으니까. 둘째, 그들은 신의 권능으로 벌을 받기 때문에 그 처벌이 부당하다며 자위할 수도 없다. 끝으로, 그들은 죽음으로써 궁극적인 평화를 얻을 수도 없다. 단테가 말했듯 지옥은 희망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전쟁이 지옥보다 더 나쁠 수 있는 길이 적어도 두 가지 있다. 우선, 전쟁은 지옥이 건드리지 않는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전쟁은 비전투원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뿐만 아니라,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이 꼭 죄 지은 사람이라는 법도 없다. 그들은 그저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논리는 전쟁의 참혹함이, 잘 운영되는 지옥의 기준으로 격상될 수 있도록 규칙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둘째, 형언할 수 없는 전쟁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통을 주는 사람들도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전쟁이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정의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해서 전쟁이 이 평범한 사람들을 지옥의 악마처럼 행동하게 만드는지 그 본질적 수수께끼는 여전히 남는다.


이론가와 법률가들은 정의로운 전쟁의 규칙을 두 단계로 나눈다. ‘전쟁에 이를 때까지의 정의(jus ad bellum)’와 ‘전쟁 중의 정의(jus in bello)’다. 지옥의 경우, 전쟁에 이를 때까지의 정의가 그야말로 완벽하기 때문에 전쟁 중의 정의는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지옥들에서 폭력이 행사되는 인간적인 한계란 게 없다.


이 점이 바로 셔먼이 지옥에서 개념을 빌려와 전쟁에 적용하고자 했던 원칙이다. 자신이 표방하는 정의는 분명하고, 고로 자신은 애틀랜타 시를 전소시켜도 정의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전쟁이 지옥과 같다면, 그것은 곧 정의로운 전쟁이 지옥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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