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올해 초 남과 북의 지도자는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남북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먼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북남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한다”며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통일의 기반 구축을 위해 민간차원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대화와 협력의 통로를 만들어 나가자”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남북공동으로 광복 70주년 기념행사를 열자는 제의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북대화 재개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새누리당 집권 이후 악화된 남북관계가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지속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상대가 양보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는 상태가 계속되는 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만일 광복 70주년을 아무 일 없이 흘려보낸다면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남과 북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때가 아니다. 뭐라도 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_ AP연합


마침 작은 계기가 생겼다. 세계적인 여성 평화 운동가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휴전선에 설치된 비무장지대(DMZ)를 횡단하는 구상을 추진 중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어제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인 5월24일 한반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한반도 여성 평화 걷기’ 행사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이 행사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2명을 포함한 10여개국 30여명이 참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5월24일은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에 맞서 대북 제재 조치를 내린 지 5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른바 5·24조치 5주년 되는 날 한반도 여성 평화 걷기 행사가 펼쳐진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의미가 대화와 평화가 제재와 압박, 대결을 덮는 상징성의 차원을 넘어 남북관계 변화를 촉진하는 실천성을 담보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 당국이 각각 이 행사를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남북 당국간 접촉을 통해 남북이 함께 지원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건 남북대화를 시작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먼저 나서서 이 기회를 적극 살려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네오콘(신보수주의)적인 지도자들에게 이끌린 일본은 지금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커다란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경무장(輕武裝)과 통상국가(通商國家)를 기치로 ‘부국(富國)’이면서도 ‘강병(强兵)’에 억제적이던 전후 일본의 안전보장과 국가의 형태가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부국강병’에의 길을 앞장서서 밀고 나가는 것은 전쟁 이전의 군부나 군벌이 아니다. 군대와는 관련이 없는, 원래는 ‘제복조(制服組·자위대 간부)’를 통제하도록 돼 있는 ‘신사복조’인 정치가들이며, 그리고 외무성을 시작으로 하는 고급관료 엘리트들이다.

한국의 현대사가 군부로부터 국민의 주권을 빼앗아 문민 통제를 정착시키는, ‘피 흘리는 민주화의 역사’였다고 한다면, 일본은 반대로 문민관료나 문민정치가가 문민 통제를 지렛대로 민주화에 역행하는 군사화의 깃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만이 아니다. 특정비밀보호법의 제정이나 국가안전보장국의 설치, 무기수출 3원칙의 재검토, 군사원조에 연결되는 공적개발원조(ODA)의 재검토 등 지금은 ‘점(点)’으로 연결되고 있는 몇 개의 중요한 시책이나 기관의 설치, 원칙의 재검토를 ‘선(線)’으로, 한층 더 나아가 ‘면(面)’으로까지 넓혀 보면 거기서 떠오르는 것은 분명하게 제국주의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나라의 모습이다.

향후 방위성을 국방성으로 ‘승격’시켜 천황주권이나 국민의 국방의무 등을 포함시킨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면 일본은 과거의 ‘대일본제국’에 다가가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시대착오 또는 격세유전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태를 일본 국민의 대부분이 열렬하게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아베 정권과 민의의 간극, 그 대립은 깊어질 뿐이다. 그러나 ‘군부독재’가 아닌 ‘내각독재’에 브레이크를 거는 세력은 점점 더 왜소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월 24일 도쿄 영빈관에서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ㅣ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의 새로운 ‘부국강병’으로의 전환 배경에는 세계적 규모의 지정학적인 권력이동(파워 시프트)을 새로운 제국주의 시대의 도래로 보는 세계 인식이 있음이 틀림없다. 특히 그 진원지가 되고 있는 중국의 눈부신 대두나 일본의 경쟁력을 위협할 수도 있는 한국 경제의 약진 등 일본을 둘러싸고 있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인 권력 이동은 일본의 존재감 자체를 강하게 저하시키고 있다.

이러한 권력의 이동 속에서 동아시아는 한·중·일 3국의 제휴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원만하게 통합해 가는 동아시아공동체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제국주의적인 패권 분쟁으로 돌진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힘의 각축 게임에 큰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것이 미국이다. 이라크전쟁, 아프간전쟁으로 깊은 상처를 입고, 리먼 쇼크 등으로 경제적인 우월을 상실하고 있는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위신조차 위협 받고, 더욱이 우크라이나나 중동에서는 압도적인 지도력에 그늘이 생기고 있다. 쇠퇴하는 초강대국 미국이,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에 대한 균형추(카운터 밸런스)로서의 카드로 선택한 것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지하는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용인을 환영하는 오바마 정권의 전략은 한국으로 하여금 강한 반발과 불안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제안보’는 중국에, ‘국가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이러한 동아시아의 신제국주의적인 각축 속에서 이율배반적인 입장에 빠져들고 있다. 중국과 미국에 각각 다리 한쪽씩을 걸치고 있는 상황에서, 미·일안보를 방패로 정치·군사 대국으로의 방향전환을 하고 있는 일본을 어떻게 견제하면 좋을 것인가. 게다가 북한의 위협과 대치하는 한국으로선 일본과의 제휴는 피할 수 없다. 분명히 제국주의적인 대립 구도 속에서 한국은 어디에 다리를 두고 어떻게 그 존립을 유지해 갈 것인가, 큰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수와 혁신의 대립을 넘은 ‘보수·혁신 공존의 정치세력’을 결집하고 남북 관계를 극적으로 진전시키는 것이 불가결하다. 중국이나 미국, 일본이나 러시아와 같은 제국주의적인 국가의 패권분쟁 속에서 중규모인 분단국가 한국은 국내의 대립을 해소해 ‘분단’이라고 하는 구조적인 제약에 묶이지 않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이 안된다면, 한국은 더욱더 제국주의적인 대립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존립 그 자체가 위험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한국은 해방 후 지금까지 없던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학교 총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세월호 침몰사고의 후유증은, 마치 권투에서의 ‘보디 블로(상대의 배나 가슴을 때리는 것)’처럼 한국 사회 구석구석까지 여러 가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뛰어넘을 만큼 심각하다.

이미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한국은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젊은이를 중심으로 급속히 저하돼 있었으며, 동시에 젊은 층에 있어서는 격차, 빈곤, 극심한 경쟁, 비정규노동 문제 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사회가 돼 있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선진국 또는 경제대국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한국은 젊은이, 노인, 여성, 어린이,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결코 따스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극히 냉혹한 사회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가 났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미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이었다. 천진난만한 청춘들이, 탐욕스러운 선박회사와 그 실질적인 오너, 더욱이 무책임한 선원, 해상경비 관련 담당자, 무능함을 드러낸 당국과 청와대, 한층 더 선정적인 상업주의로 내달리는 언론 등 요컨대 한국 사회를 유지해온 유형무형의 크고 작은 시스템과 그것을 떠받쳐온 권력자와 엘리트들의 태만과 부정에 희생된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이런 생각이, 영상매체를 통해 전해진 구출극을 지켜본 수많은 국민들의 머리에 남아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미 국민들 속에 오래 남아있을 허탈감이, 사고를 계기로 한꺼번에 밀려오고 그것은 동시에 자책과 분노의 감정으로 변해 겉으로 드러나기에 이른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스스로에게 자문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피눈물 날 정도로 억척스러운 노력을 통해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많은 것을 잃은 것은 아닌가’라고. 달성감과 상실감의 이율배반적인 감정의 흔들림 속에서 사고의 비극은 눈앞에 닥친 지방선거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비극의 원인규명이나 조사, 시스템과 의식의 발본적인 점검의 기회를 잃은 채로 여야 사이의 정치적 줄다리기의 재료가 돼버린 것 같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이번 사고를 전후로 해서 한국 및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격렬하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안보와 무역이라는 측면에서 각각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중요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미묘하게 변화하고, ‘중·러의 접근’과 ‘미·일동맹’의 대립, 일본의 군사대국화로의 변화 등 미·중·러·일이라는 4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의 ‘키잡이’는 더욱더 어려워지는 국제정세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리스크’는 여전히 한국을 무겁게 누르고 있고, 한국은 ‘존속’이라는 면에서 극히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난감한 외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세월호 사고에 따른 국내문제 해결을 위해 향후에도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소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분명히 지금까지의 정치시스템과 관행으로는 한국이 안고 있는 안팎의 난국을 극복하기 어렵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 행진


한국은 지금 여야의 격돌형 정치로부터 권력의 핵심에 보수와 혁신이 동시에 존재하는 보혁공존형 정치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86년 3월 프랑스의 총선거 이후 당시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은 선거로 승리한 공화국연합의 자크 시라크 대표를 총리로 지명해 행정권의 이중상태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난국을 극복했다. 역사적인 배경이나 정황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같은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한국에서 그러한 보혁공존형 정권의 탄생은 결코 꿈만은 아닐 것이다.

하물며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도 맡고 있는 대국이다. 그 대국이 국내의 분열이나 정치적 자원의 소진을 피하고 프랑스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의 격변에 대응하기 위해 보혁공존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4개의 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분단국가 한국이라면 더욱더 보혁공존형 정치로의 전환을 도모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및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안전보장의 환경이 격변해 미·소 냉전과는 다른 형태의 4대국 간 격렬한 헤게모니 분쟁이 동북아시아, 특히 한반도를 무대로 전개되고 있는 현재, 여야가 서로 양보하고 상호 기본적인 정책강령의 일치점을 보다 넓혀 한국과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의 확보를 향해서 새로운 정치적 결정과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 학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동상이몽(同床異夢)’은 중국 남송시대 유학자 진량(陳亮)의 ‘여주원회서(與朱元晦書)’의 한 구절에서 따온 사자성어이다. ‘잠자리는 같은데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이 이야기는 어떤 뛰어난 정치가가 있더라도 각각의 입장이 다르다면 침상을 함께한다고 해도 서로 다른 꿈을 꾸고 만다는 것이 아닐까.

이 중국의 고사를 바탕으로 말을 하자면, 동아시아의 주요 나라인 한·중·일 3개국은 말할 것도 없이, 아시아에서의 ‘리밸런스’를 주창하는 미국까지 포함한 동아시아는 바야흐로 동상이몽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동아시아 순방은 동아시아라고 하는 공통의 지정학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여러 나라들이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먼저 미·일관계이다. 변칙적인 국빈대우로 오바마 대통령을 초대한 아베 정권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중국과 영유권을 다투는 도서들에 대해서도 미·일안보조약이 적용된다는 것을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공언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정권의 요청에 응하는 자세를 보였다. 안보 또는 안전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아베 정권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측에서 보면 안보조약이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분쟁지역에 미친다고 해도 실제로 중·일 간의 무력 충돌이 일어났을 경우 미군이 자동적으로 참전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오바마 정권은 중·일의 무력 충돌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 또 거기에 말려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한 오바마 정권의 본심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공동기자 회견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의지도 전략도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필두로 한 동아시아의 중대 문제에 대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분명히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대중국 관계의 기본방침과 전략에 ‘어긋남’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해금(解禁)’하는데 발을 디디는 것을 환영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고, 이는 일본의 군사 및 안전보장이라는 측면에서의 ‘대국화(大國化)’에 ‘고(Go)’ 사인을 내고 있다는 점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일본과 한국 및 중국과의 간극이나 대립을 보다 깊게 하게 함으로써 일본을 동아시아 안전보장의 초석으로 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한·중의 불협화음을 보다 키울지도 모른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이 국빈대우로 일본을 방문했는데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일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양국이 생각하고 있는 것의 차이만 부각시켰다.

그러면 한·미관계는 어떨까.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은 타이밍이 좋다고 할 수 없다. 엄청난 해난사고로 젊은 생명이 희생되면서 한국이 ‘상을 당한’ 상황이 된 것과 함께 정권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확대되는 가운데 열린 정상회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종군위안부’ 희생자와 관련해 ‘무서운 인권침해’이며 진상 규명이 필요함과 동시에 일본 정부와 국민이 조치를 취하도록 측면에서 못을 박기에 이르렀다.

이런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 측을 깊이 고려한 배려였지만, 그러나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함으로써 균형을 잡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으로 한·일관계가 바로 현저하게 좋아질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의 대응 부실로 국민의 빈축을 산 박근혜 정권은 대일관계에서 타협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 더욱더 곤란하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중국 관계를 둘러싼 한·미 간의 미묘한 온도차는 박 정권의 미·중에 대한 밸런스 외교에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틀림없다.

미 대통령의 한·일 순방에서 보이지 않는 주역이 중국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울에 있어도, 도쿄에 있어도 오바마 대통령의 시선은 베이징에 쏠려 있었을 터이다.

대중국 관계에 대한 입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서울과 도쿄 발언에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중국 봉쇄’가 아니라 오히려 중국의 ‘평화적인’ 대두와 동아시아에의 관여를 재촉하는 자세를 나타냈다. 우크라이나 정세가 긴박도를 높여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이의 군사적인 충돌까지 염려되는 가운데 중국의 존재가 더욱더 커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냉전은 완전히 과거의 것이 되고, 세계는 ‘글로벌 플랫(global flat)화’가 진행된다고 예측되었음에도 미국 일극지배의 종언 이후의 동아시아는 혼돈이 심화되고 각국이 동상이몽의 꿈을 꾸면서 동시에 대립하고 연대하는 복잡한 정황으로 향하고 있다.

그 안에서 과연 국민의 신뢰와 정통성이라는 점에서 현저하게 상처를 입은 박 정권은 이런 안팎의 난처한 정황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정권의 근간이 추궁당하고 있다.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 학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지난 칼럼===== > 강상중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제국주의 시대?  (0) 2014.07.07
보혁 공존형 정치로  (0) 2014.06.04
동아시아의 동상이몽  (0) 2014.05.01
신냉전의 여파  (0) 2014.03.25
‘야누스’ 일본을 대처하는 방법  (0) 2013.12.30
대일정책의 전환  (0) 2013.12.02
Posted by KHross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결정한 크림자치공화국 국민투표 결과로, 러시아와 미국·유럽과의 심각한 대립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 정권이 크림공화국의 러시아 합병을 결정한데 이어 추가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크림과 비슷한 현상이 도미노처럼 일어나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균열이 새로운 냉전으로 발전할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냉전 붕괴 후의 국제질서가, 다시 새로운 냉전의 얼음 속에 갇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신냉전으로 향할지 모를 국제관계의 변화가 한반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우선 미·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가 심각해지면 러시아는 필연적으로 활로를 동아시아에서 찾으려 할 것이다. 북한의 핵시설을 압박하는 6자회담 회원국에 한국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러시아가 아시아 회귀를 강화하면,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자임하면서 대두하는 중국을 겨냥한 ‘재균형 정책’을 내걸어온 미국과의 지정학적 대립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냉전이 동아시아까지 불똥이 튀면서 양자의 파워게임이 치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미국에도 러시아에도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해지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를 목표로 해온 중국은, 동시에 러시아와의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있어, 세 대국의 파워게임은 보다 복잡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러시아는 미국과 대립하는 북한에 보다 접근할 가능성이 있고, 또 북한 문제를 중시하는 중국에 러시아가 다가설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중국은 러시아 카드를 지렛대로 미국에 보다 유연한 대북정책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해군 초계함 흐멜니츠키함에 러시아국기 게양하는 러시아군 (출처 :AP연합뉴스)


더 복잡한 것은, 러시아가 북한에 접근할 경우 북한이 중국의 견제에 맞서 러시아 카드를 들고 나올 경우다. 장성택 숙청에서 드러나듯, 북·중 관계는 우호관계가 아니라 뿌리 깊은 불신과 긴장을 품고 있었음이 분명해졌다. 과거 김일성이 중·소 대립의 틈을 교묘히 극복했던 것처럼 김정은도 중·러와 미국간의 대립에서 활로를 찾아낼 수도 있다. 신냉전이 현실화된다면 북한이 보다 선택지를 넓히는 결과가 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적 내셔널리즘의 움직임은, 한국·중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경계심을 가져오게 됐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포함해 헌법을 개정하고 미국의 군사적인 역할 분담에 응하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 한편, 아베 정권은 오바마 정부와 역사인식 및 근린제국과의 태도에서 미묘한 차이와 대립을 보이면서 러시아 푸틴 정권에 접근을 모색하고 있고, 이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이전보다 훨씬 민감해져 있다고 생각된다. 본래 아베 정권의 러시아 접근 목적은 북방영토(쿠릴열도) 문제에서 공적을 남기는 것과 동시에 중국에 대한 견제력을 강화하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단순화하면 아베 외교의 기축은, 대중국 견제 또는 그 파워를 줄이는 봉쇄정책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푸틴 정권에 대한 접근은, 신냉전적인 지정학적 대립으로 말미암아 일본에 매우 리스크가 큰 선택이 되고 있다.

만약, 대러시아 제재를 둘러싸고 미국·유럽과의 보조가 맞지 않을 경우 아베 정권은 대미 동맹관계에서 궁지에 빠지게 될 수 있고, 미국에게 중국의 존재가 보다 중시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도 있어서인지, 아베 정권은 북한과의 비공식적인 루트를 활발하게 해 일본 국민의 큰 관심사인 납치문제 해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납치문제가 일본의 비원(悲願)이라고 해도 북한과의 관계회복을 향한 움직임이, 중국과 한국에 대한 간접적 견제를 의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렇듯 신냉전의 여파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 파문을 던지고 있고,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헤이그를 방문했다. 신냉전의 새로운 구도를 읽는 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한국은 중국과 대립해온 일본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식으로 미·중과 친선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은 미·러 대립의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미국에도 중국에도 지금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것 아닐까. 이를 위해 한국은 북한과 원칙에 기초한 적극적인 교류와 긴장완화를 꾀하고, 주변 대국의 개입 여지가 없는 남북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헤이그에 이어 방문하는 베를린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독트린을 제시하게 될 것인가, 주목하고 싶다.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지난 칼럼===== > 강상중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혁 공존형 정치로  (0) 2014.06.04
동아시아의 동상이몽  (0) 2014.05.01
신냉전의 여파  (0) 2014.03.25
‘야누스’ 일본을 대처하는 방법  (0) 2013.12.30
대일정책의 전환  (0) 2013.12.02
일본은 동아시아의 영국인가  (0) 2013.11.04
Posted by KHross

각기 앞과 뒤를 보고 있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문과 모든 일의 시작을 지배하는 두 얼굴의 신을 고대 로마에서는 야누스라고 불렀다. 현재 일본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이 야누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력(戰力)의 포기를 강조하는 평화헌법을 보유한 일본,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계 유수의 통상(通常)전력을 과시하는 일본, 어느 쪽이 일본의 진짜 얼굴인가. 또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과하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내세운 일본. 하지만 현직 총리 스스로 그 선언과 담화를 부정하고, 침략의 정의에 대해 애매한 견해를 거리낌 없이 공언하는 일본.


이런 야누스 같은 일본의 태도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오키나와현 나고(名護)시 헤노코(邊野古)기지의 매립신청 승인이라는, 이 역시 퇴행적인 얼굴과 전향적인 얼굴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연내에 이뤄질 것이라는 점은 예상됐던 일이다. 또 내각 중추에서 참배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반발은 예상범위 내의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다만 미국의 반응이 우려사항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야스쿠니를 참배한 고이즈미 전 총리는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과시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묵인했다. 대테러전쟁도 포함해 일본을 끌어안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그런 개인적 신뢰관계로 묶여있지 않고, 미국 내에서 아베 총리를 ‘극우’ 또는 ‘역사수정주의’라고 의문시하는 움직임도 있다. 


일본대사관,야스쿠니 신사참배 규탄 회견(출처 : 경향DB)


이런 미국의 우려와 관련해 제공된 ‘희생’이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의 매립신청에 대한 오키나와 지사의 승인 발언이다. 이 발언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같은 날 있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매립 승인은 미국에 대한 메시지이고, 또 야스쿠니 참배는 국내적으로는 헤노코의 매립 승인이라는 빅뉴스를 상쇄하고, 그 쇼크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겨냥한 것이 된다. 대외적으로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오키나와 기지라는 희생을 제공하고 또 국내적으로는 참배에 대한 국민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간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오키나와 기지문제 해결의 전도를 제시한다. 이런 국내외에 걸친 야누스적인 대응이, 아베 내각이 노리는 바였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베 내각의 노림은 반드시 성공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실망했다’라는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물론 헤노코의 매립신청 승인에 입각한 미·일 방위당국 수장의 전화협의도 급거 중지하겠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도 아베 총리의 참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유럽도 일본에 ‘신중한 외교’를 요구하면서 일본의 대외적 고립이 두드러지게 됐다.


아베 총리의 지금까지의 언동과 정치적 구상에는 분명히 어떤 체제에 대한 강한 반감이 읽힌다. 그것은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단죄한 도쿄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으로 대표되는 역사관을 매장해버리고 싶은 강한 바람이다. 


평화에 대한 죄, 인도주의에 대한 죄로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와 침략의 역사를 단죄한 도쿄재판은 식민지 지배의 참화와 그 책임을 명백히 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우며, 여러 문제점을 남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도쿄재판은 뉘른베르크 재판과 함께 전후 평화적인 국제질서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전후 일본의 국제사회로의 복귀도, 이 도쿄재판을 전제로 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처음으로 가능해졌던 것이다. 다만, 한국도 중화인민공화국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당사자는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냉전과 함께 미국이 일본에 대해 온정적으로 재건을 꾀했고, 6·25동란과 함께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에 서게 됐다. 동아시아에서 ‘동·서 독일과 같은’ 운명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 일본이 아베 총리 하에서 도쿄재판사관에 도전하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수정주의적으로 왜곡하고, 동시에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보다 강한 나라를 지향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반발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의 야누스적인 대응은 한국과 미국 간에 온도차를 유발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미·일 간의 방위·외교당국자 간 회담인 2+2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미국 측의 긍정적인 반응과 한국의 강한 우려는 대일관계에 대한 양국간 온도의 다름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번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서 명백해진 것은 미국이 지금 이상으로 아베 총리의 정치적 스탠스를 동아시아의 안정을 해치는 불안정 요인으로 보게 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은 단지 국내의 반일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아베 정권에 대한 국제여론을 똑똑히 주시하고, 특히 미국 내의 여론과 동시에 일본 시민사회와 미디어, 평화운동에 적극적인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단순한 반일 내셔널리즘은 오히려 아베 정권을 도와주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강상중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번역 | 서의동 도쿄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지난 칼럼===== > 강상중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아시아의 동상이몽  (0) 2014.05.01
신냉전의 여파  (0) 2014.03.25
‘야누스’ 일본을 대처하는 방법  (0) 2013.12.30
대일정책의 전환  (0) 2013.12.02
일본은 동아시아의 영국인가  (0) 2013.11.04
6자회담과 남북관계  (0) 2013.10.03
Posted by KHross

일본에서 출생해 재일 한국인 2세로 살아온 60여년간 요즘처럼 일본의 변화에 형언하기 어려운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평화롭고, 풍요롭고, 온화하고, 타인에게 친절한 마음이 넘치는 일본인들과 아름다운 자연. 그런 일본의 표층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섬뜩한 표정의 일본이 기분 나쁘게 그 민낯을 드러낸 듯한 인상이 불식되지 않는다.

과거에 지금과 비슷한 표정을 드러낸 순간이 있었다. 1989년 초, 돌연 백주 도쿄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희미한 빛속으로 사라진 채, 주변 일대가 (쇼와) 천황의 상(喪)을 치르는 광경을 봤을 때다.

그것은 괴이한 광경이었다. 그것은, 내가 수십년간 알지 못했던 일본의 모습이었다. 거기에는 다름 아닌 전전(戰前)의 일본, 식민지의 한반도를 유린했던 제국 일본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평화헌법하에서 최소한의 자위권에 한정된 ‘자위대’를 보유하면서도 군국주의와 내셔널리즘 등 불길한 과거의 유산과 절연한, 자유롭고 풍요한 일본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또 다른 일본의 모습에 섬칫 놀라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은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로부터 사반세기,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급격한 변화에 1980년대와 흡사한,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한 불안과 두려움이 더해가고 있다. 아베 정권의 발족 이래 일본은 확실히 국가주의적인 레짐(체제)으로 급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 인권, 언론·출판·집회의 자유와 평화주의 등 전후 일본의 레짐을 지탱해온 근본적인 지주가 지금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고 있다.

국가가 시민생활의 모세혈관에까지 눈을 번뜩이고, 국가의 감시와 개입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까지 미칠 수 있는 통제사회로 일본이 변화하려는 것이다. 그 수단이 되는 것이 ‘특정비밀보호법’이다.

외교·안보뿐 아니라 치안과 테러 등 사회의 구석구석에 걸친 정보를 광범위하게 비밀로 지정해 누설과 취득, 실행되지 않은 모의와 교사도 포함해 엄벌을 부과하는 ‘보호법’은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고압적인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이 보호법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전쟁 발동의 결정과 지휘권을 한손에 장악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법과 집단적 자위권의 발동 용인을 인정한 국가안전보장기본법이다. 이들 법안이 제정되면 사실상 헌법 개정에 맞먹는 레짐 체인지가 실현되고, 평화헌법의 전문 및 전력의 불보유 등을 정한 제9조는 거죽만 남게 된다. 게다가 일본의 무력부대가 국경을 넘어 전투행위를 하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일본의 이른바 ‘포스트 전후국가’를 향한 중대한 변화의 타이밍에 있다. 중국의 대두에 따른 세계적 규모의 ‘파워 시프트’, 미국의 패권적 위력의 후퇴, 역사·영토를 둘러싼 대립, 북한에 의한 핵·미사일 위협 등이 보다 심각해지는 가운데 일본이 무력행사가 가능한 ‘보통국가’로의 변모를 완수하려는 것이다.

 

어색 한. 일 정상 (경향DB)

이런 일본의 변모를 미국은 환영하는 한편, 한국과 중국엔 위기감이 심화되고 있다. 안전보장 면에서 미국에 의존하되, 다른 한편으로 무역과 북한 견제 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은 대일관계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간 박근혜 대통령은 식민지배 희생자에 대한 아베 총리의 언동, 각료·여당 간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이유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기피해왔으나 그 배경에는 역사문제와 영토문제뿐 아니라 앞서 언급한 일본의 변화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한·일관계의 불화와 갈등에 미국은 중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서방매체들도 그 추이에 전례없는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중에는 우익적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에 대해 ‘역사수정주의’적인 견해를 취하는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도 많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박 대통령이 완고한 태도에서 벗어나 한·일 정상회담에 응하는 것이 한·일 양국에 이익이 된다는 논조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 더 이상의 한·일관계 악화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물론 호주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까지 우려 사항이 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전후체제 탈피’에 이의를 제기하는 야당과 시민세력, 일반 국민의 눈에도 한·일 정상회담을 계속 회피하는 박 대통령의 자세가 ‘반일’적으로 비쳐지고 있으며, 박 대통령에 대한 위화감과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여론과 일본 국내의 변화를 감안하면 박 대통령의 방일 및 정상회담 개최의 시기가 무르익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박 대통령이 직접 일본에 와서 아베 총리에게 해야 할 주장을 하고, 일본의 보통 시민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일본 국내의 변화에도, 한국에도 보다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이 주도하는 일본의 변화에 한국은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 일본 정상과의 관계를 그저 차단하고만 있어서는 사태의 타개를 바랄 수 없다.

대일정책을 전환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된다. 박 대통령이 직접 일본의 양식있는 국민과 시민과 대화하고 호소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보다 바람직한 성과를 거두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미국 국가안보국(NSA)에 의한 대규모 감시와 도청, 스파이 활동이 밝혀지면서 세계적으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독일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가 도청됐을 가능성이 부상하면서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유럽 국가들 간에 균열이 깊어지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뿐 아니라 세계 30여개국 이상의 지도자가 도청 대상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미국 국가안보국의 표적에 한국의 정상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 국가안보국은 또 특히 중국과 북한 등 잠재적 적국 및 위협이 되는 나라들에 초점을 맞추어 방대한 정보를 수집해온 것으로 보인다. 


독일 시민 미국 도. 감청 항의 시위 (출처 :AP연합)



유럽의 경우 이 같은 미 국가안보국의 활동이 영국의 정부통신본부(GCHQ)와 연계되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암호해독과 정보수집을 관리하는 유럽 최대의 첩보기관인 정부통신본부는 최대의 전자 스파이망인 ‘에셜론(Echelon)’의 이용에서도 협력관계에 있어 첩보활동과 정보수집에서 미국과 영국은 상당히 깊은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동아시아로 눈을 돌려보자.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2011년 미국 국가안보국이 일본 정부에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연결하는 전화 및 인터넷상의 데이터를 도청하도록 요구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은 이 지역의 여러 나라들을 연결하는 광해저 케이블의 중계지점에 위치해 있고, 중국과 북한 나아가 한국 등에 관한 정보 수집이란 점에서 일본의 협력이 불가결하다고 미국 국가안보국은 판단해왔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법적인 제약과 도청에 필요한 인력부족 등을 들어 미국의 요구를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은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앞서 미·일 간의 방위·외무 당국자 간 협의(2+2)에 의해 미·일 방위협력 지침, 즉 가이드라인의 개정방침이 합의됐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미국이 환영하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등 미·일 간의 군사·안보상의 협력관계는 보다 포괄적으로 되어갈 뿐 아니라 심화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이에 부응하듯 일본 국내에서는 외교·방위·테러·첩보 분야에 관한 특정비밀보호법안이 각료회의에서 결정돼 여당이 상하 양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에서 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명백히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안전보장·방위·외교전략의 초석으로 위치지워지면서 미·일동맹은 새로운 차원으로 향하려 하고 있다. 이는 대중견제를 염두에 둔 동맹관계의 구축이고, 또 세계의 전략지역과 분쟁지역에 일본이 미국과 함께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태세가 준비돼 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같은 미·일 일체화와 함께 도청과 정보수집 면에서의 연계 강화를 꾀하기 위해 일본이 동아시아 각국을 연결하는 해저케이블에서 방대한 데이터 통신을 도청해 이를 미국 국가안보국과 공유할 가능성이 점차 커져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영국과 마찬가지 역할을 수행하게 됨을 뜻한다. 


다만, 일본은 요원 1만명 이상의 정부통신본부와 같은 대규모 첩보기관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향후 아베 정권하에서 일본판 NSC(국가안전보장회의) 구상이 부상하고 있고, 그와 병행해 첩보·인텔리전스 관련조직이 정비돼 군사·첩보·방위법 등을 갖춘 영국형 국가로 바뀌어 갈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명백히 일본은 첩보·인텔리전스의 면에서도 미국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영국에 근접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영국’이라고 할 일본의 새로운 자리매김을 한국은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 것인가. 대미관계, 대중관계 특히 대북한관계를 주시하면서 일본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는 포괄적이고 튼튼한 외교·안보 지침과 청사진이 필요할 것이다.


京郷新聞コラム

日本は東アジアの英国か


 NSA(米国家安全保障局)による大規模な監視や盗聴、スパイ活動が素っ破抜かれ、世界的な波紋を広げつつある。とくに、ドイツのメルケル首相の携帯通話が盗聴されていた可能性が浮上し、大西洋を挟んで、米国とEU諸国とのミゾは深まるばかりだ。一部報道によれば、メルケル独首相だけでなく、世界の三〇数以上の国々の指導者が盗聴の対象リストに上がっていたと言われ、NSAの標的に韓国の首脳も含まれていたと見るべきである。またNSAはとりわけ、中国や北韓といった潜在的な敵国や脅威となる国々にターゲットを絞って膨大な情報を収集していると考えられる。


 ヨーロッパの場合、こうしたNSAの活動が、英国のGCHQ(政府通信本部)と連携しながら進められていることは公然の秘密となっている。実際、暗号解読や情報収集を管轄するヨーロッパ最大規模の諜報機関GCHQは、最大の電子スパイ網であるエシュロンの利用でも姉妹関係にあり、諜報活動と情報収集の面で、米国と英国はかなり深い関係にあると見るべきだ。


 ここで東アジアに目を向けると、日本の共同通信によれば、2011年、NSAは、日本政府にアジア・太平洋地域を繋ぐ電話やインターネット上のデータを盗聴するよう働きかけていたことが判明している。日本は、この地域の様々な国々を繋ぐ光ファイバーの海底ケーブルの中継地点に位置しており、中国や北韓、さらには韓国などに関する情報の収集の点で、NSAには日本の協力が欠かせないと思われたに違いない。しかし、この時点では、日本は法的な制約や盗聴に必要な人員の不足などから、米国の要求を撥ね付けたと言われている。


 だが、現在の安倍政権になり、事態は大きく変わりつつあるように見える。すでに先の米日間の防衛・外務担当者による会議、いわゆる2プラス2によって、米日間の防衛協力のための指針、いわゆるガイドラインの改定が合意をみ、日本の集団的自衛権行使に向けて米国側が歓迎するというメッセードを出し、米日間の軍事・安全保障上の協力関係はより包括的になり、深化しつつある。そしてあたかもこれと対応するように、日本国内では外交・防衛・テロ・諜報の分野に関する特定秘密保護協定の法案が閣議決定され、与党が上下両院で多数を占める臨時国会で可決される見込みである。


 明らかに日本は、アジア・太平洋国家を自認する米国の安全保障・防衛・外交戦略の礎石(コーナーストーン)に位置づけられ、米日同盟は新しい次元へと向かおうとしているのである。それは、対中シフトを睨んだ同盟関係の構築であり、また世界の戦略的な地域や紛争地域に、日本が米国とともに軍事的に介入できる態勢が準備されつつあることを示している。こうした米日一体化とともに、盗聴や情報収集の面での連携強化をはかるため、日本が、東アジア諸国を繋ぐ海底ケーブルから膨大なデータ通信を傍受し、それをNSAと共有し合う可能性はますます大きくなりつつあるように思える。それは、日本が東アジアで英国と同じような役割を果たすことになることを意味している。


 ただし、日本には一万人以上の要員を擁するGCHQのような大規模な諜報機関を抱えてはいない。しかし、今後、安倍政権のもとで日本版NSC(国家安全保障会議)構想が浮上し、さらにそれと平行して諜報・インテリジエンス関連の組織が整備され、英国型の軍事・諜報・防諜法などを備えた国家へと変わっていく可能性も考えられる。明らかに日本は、諜報・インテリジエンスの面でも、米国と特別な関係にある英国に近づきつつあるのだ。


 こうした東アジアの英国とも言うべき日本の新たな位置づけを、韓国はどのように見たらいいのか。対米関係、対中関係さらに対北関係を見据えつつ、日本の変化にっかりと向き合う包括的かつ骨太の外交・安保の指針と青写真が必要とされている。


<번역 | 서의동 도쿄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올해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 평화를 위한 다국간 협의의 틀인 6자회담이 시작된 지 10년이 된다. 이를 기념해 9월18일 베이징에서 중국 외교부 주최로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제목은 ‘회고와 전망-6자회담 10주년’이었으나 새로운 성과는 보이지 않은 채 폐회했다. 돌이켜보면 6자회담은 북한의 ‘벼랑 끝 전략’에 휘둘리며 전진과 후퇴, ‘폐점휴업’으로 치달았다.

6자회담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대북정책에 따라 크게 요동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화정책 시기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강경책 시기 별로 6자회담에 대한 대응은 상당한 차이를 보여왔다. 6자회담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남북관계의 진전과 밀접·불가분하게 연동해온 것이다.

그런데 10년간 남북관계를 돌이켜보면 결국, 남북관계는 한국 내 ‘남남대립’의 함수이고, 이를 농도짙게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역주의와 당파적인 인맥, 식민지 지배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 개발주의적 성장과 경제민주화 등 한국사회의 중층적인 균열과 그를 둘러싼 격한 대립이 한국의 대북정책을 제약해온 것이다.

사회적 갈등과 대립에 관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지역·계층·세대 등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의 강도와 수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터키에 다음 가는 비화해적인 사회이다.

이처럼 사회통합이 결코 원활하지 않고, 남남대립이 격렬함을 더해가는 한국에서 일관되고 중장기적인 남북관계의 긴장완화와 남북화해, 공존과 통일의 전망을 기대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비화해적인 항쟁과 대립이 되풀이되면서 입법기관은 마비상태가 되고 무당파층은 점점 정치적 무관심에 경도되는,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현재화되고 있고, 그것이 정치적 자원과 에너지를 내향적으로 소비해버리는 결과가 되고 있다. 이런 격렬한 남남대립에 휘둘려온 한국이 6자회담에서 북한 핵포기와 한반도의 비핵화, 더 나아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의 메커니즘 구축 문제에서 이니셔티브를 발휘하는 것은 극히 곤란하다.'

 

이렇게 보는 한 6자회담의 전망은 결코 밝지 않아 보인다. 실제 일본에서는 6자회담 무용론이 뿌리 깊고, 그에 대응해 국방군 구상과 집단적자위권의 해금, 미·일동맹 강화, 더 나아가 적기지 선제공격론 등이 거론되는 상황이 됐다.

일본의 방위력 강화와 내셔널리즘 대두가 영토·역사문제와 맞물리면서 한국에서 강한 ‘일본 알레르기’가 생겨나고 있는 것도 주지하는 대로다. 한국은, 북한과 대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일본의 변모에도 대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남남대립은 수습은커녕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다. 그것이 6자회담에서 한국의 이니셔티브를 깎아 먹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참고가 되는 것은 구서독이다. 사회민주당(SPD)과 기독교민주연합(CDU)의 2대 정당 대연립을 거친 구서독은 대동독정책에서 정권교체에 의한 변동성을 억제하고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매우 일관된 대동독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특히 빌리 브란트 총리에 의한 ‘동방정책’은 얄타체제에 따른 유럽 분열 해소와 동서독 분단 해소를 연계시켜 구서독의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발휘한 예로 기억에도 새롭다. 물론 식민지 지배의 역사와 내전의 상흔, 개발독재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 등 한국과 구서독을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분단국가의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라는 의미에서 구서독의 경험은 시사적이다.

때마침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관리하는 국제적인 협의틀이 형성되고 이란이 핵무기 개발포기 신호를 보내는 등 중동에서 다국간 협의에 의한 평화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는 것은 6자회담의 본격적인 재개를 향한 순풍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이러한 국제환경의 호전에 따라 남북관계뿐 아니라 6자회담에 적극 대응해 이를 당사국으로서 리드해나갈 정도의 이니셔티브를 적극적으로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 ‘남남대립’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핵보유는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군사적인 해결의 선택도 있을 수 없다고 하면 다시 6자회담으로 되돌아가는 것 외에 길은 없을 것이다. 그 길은 험하고 앞으로도 파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다국간 협의의 틀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가 달성된다면 휴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의 체결이 가능해지고, 북·미 정상화와 북·일 정상화에 의한 납치문제 해결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 평화 메커니즘이 구축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다국간안전협력 기구가 성립할 수도 있다.

이렇듯 국제환경이 정비되면 북한은 점진적인 민주화로 갈 것인지, 루마니아 같은 파멸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의 행로가 보이게 되지 않을까. 영토·역사문제를 둘러싼 한·일 및 중·일 간의 헛된 대립이 심각해지는 것을 억제하고 새로운 평화와 안정, 협력의 틀을 만드는 데도 6자회담은 키를 쥐고 있음에 틀림없다.

 

<번역 | 서의동 도쿄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독일 남부 뮌헨의 서북쪽에 있는 과거 나치 강제수용소인 다하우의 벽에 헌화한 뒤, 고개를 떨군 채 묵도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모습은 많은 한국인의 마음을 울렸다. 메르켈 총리의 ‘다하우 메시지’에 대해 국내 총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곤 하지만 획기적인 의미가 있음은 분명하다. 메르켈 총리의 ‘다하우 메시지’와 기념연설은 독일이 앞으로도 독일의 역사, 20세기의 역사의 두렵고, 부끄러운 죄에 진정으로 마주할 것임을 국내외에 분명히 한 것이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나치 수용소 헌화 묵념 (AP연합)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아무래도 독일과 비교해보고 싶어지는 것은 틀림없다. 며칠전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아베총리의 추도사를 보는 한, 그 메시지는 메르켈 총리와는 역방향이라고 밖에 말할 방법이 없다. 과거의 일본 군국주의와 식민지주의에 의한 처참한 희생을 강요당한 근린국가들에 대한 언급도 없고, 오직 자국 국민에 대해서만 호소하려는 아베 총리의 말에는 과거의 죄를 가능한 한 극소화해 장래 젊은 세대의 의식에서 지워버리려는 저의가 들여다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3일 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있는 ‘정한론(한국정벌론)’ 주창자 요시다 쇼인을 기리는 ‘쇼인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하기 _ 교도연합뉴스


아베총리가 일본의 과거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희생에 대해 언급한 ‘무라야마 담화’의 수정을 공언하고, 침략의 정의에 대해 애매한 답변을 되풀이함과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 담화’에 대해서도 수정할 생각을 밝힌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환경정비를 진척시키고, 일본의 방위력의 보다 적극적인 장비의 확충및 운용, 자위대의 국방군으로의 격상, 헌법개정을 향한 터다지기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웃나라 한국이 일본의 변화에 민감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의 동향을 그저 우경화와 군국주의 부활이라고 묶어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일본이 과거 시대로 ‘격세유전’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국제적인 환경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일본 국민 다수가 디플레이션 탈출을 아베 정권에 기대하지만 아베 총리의 숙원인 ‘전후레짐(체제)’ 탈피를 반드시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변화가 전후 일본의 형태를 크게 바꾸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전후레짐’이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의 전후레짐은 한마디로 대외적으로는 미·일 안보, 국내적으로는 자민당의 장기정권을 가능케 한, 55년체제를 의미한다. 전후레짐은 이 두개의 시스템으로부터 성립한 것이다. 이 경우 일본의 아시아와 세계체제에서의 위치는 미국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정치적으로는 약체화됐지만 경제적으로는 지역대국으로 부활하는 일본’이라는 비전이다. 전후 요시다(吉田) 정권이래 자민당의 보수본류는 미국의 이같은 전후일본 구상을 받아들여 전적으로 경제력에 특화해 국가적인 에너지를 집중시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야말로 55년체제가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조건이고, 일본 국민 다수가 군사적·정치적인 ‘거세’의 증거로 평화헌법을 수용함과 동시에 전수방위형 자위대의 존재와 미·일 안보동맹화를 인정해온 것도 경제성장과 그 국민적 배분구조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 붕괴와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 중국·한국의 경제적 대두, 일본의 경쟁력 저하및 만성적인 디플레하의 성장둔화및 격차확대 등 전후레짐은 한계에 달하면서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이런 곤경에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가 결정타를 가하듯 일본열도를 덮쳤다. 아베 정권은 이런 일본안팎을 둘러싼 격변속에서, 흡사 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가 총력전 당시 추진했던 ‘국가개조’를 방불케 하듯 대담한 양적완화와 재정지출에 의한 경제개혁을 추진했고, 전후레짐의 헌법=체제 자체의 개혁을 단행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


이런 국내의 움직임은 대외적으로 보면 일본이 군사적·정치적인 칩거상태에서 벗어나 정치·군사적으로 보다 강한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과 표리일체가 된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국가개조는 미국의 전략적인 의사를 무시하고는 실현될 수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이 지나친 ‘역사수정주의’적인 경향으로 달려가거나 한국·중국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견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의 변화를 묵인하고,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대두라는 ‘파워시프트’에 군사적·정치적으로 일본을 관여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감시선 센카쿠 영해 진입 (경향DB)


확실히 중국의 동아시아 해양진출은 이 지역에서서의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에 위협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에서의 필리핀·베트남과의 영토분쟁과 동중국해서의 일본과의 심각한 영토분쟁 등 중국이 핵심적이익으로 간주하는 해양지역에서 중국은 함포외교에 가까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항하려 하듯 아베정권은 아세안(ASEAN)중에서 베트남·필리핀을 지원하는 동시에 집단적자위권을 시야에 넣으며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심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베 정권에 있어서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보다 커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이 중국견제를 위한 동아시아적 협력의 일각을 짊어지는 것은 중국대두에 의한 파워시프트를 극복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가장 영향력이 크고,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이자 지정학적으로도 가까운 중국에 대항해 한국이 일본과 대열을 짓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한국 안보가 기댈 곳인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가 험악해질 경우 한국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며 한국은 극히 복잡한 대국간 지정학적인 파워게임의 한복판을 헤엄쳐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북한리스크’를 극소화시키기 위해 북한의 핵폐기와 남북공존에 미국·중국의 적극적인 간여를 유도하는 동시에 아세안 국가중에서도 중·일 대립에 중립적인 나라들과 협력을 심화시키고, 또 영토문제를 둘러싼 중국·베트남, 중국·필리핀간 대립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는 아베 정권 뿐 아니라, 일본국내의 시민사회와 자치단체, 평화주의 세력과 협력을 전개해야 한다. 한국은 내부 다툼으로 나날을 보낼 여유가 없다.


<번역 | 서의동 도쿄특파원>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지난 21일 실시된 일본의 참의원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 여당·자민당의 압승과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대패로 끝났다. 여자정신대(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문제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일본유신회는 부진을 면치 못했고, 반(反)자민당의 목소리를 끌어모은 공산당이 두 자릿수 의석수를 확보하는 약진을 이루면서 정치지형의 분극(分極)화가 선명해졌다. 즉, 민주당과 여타 도시형 정당이 기세를 발휘하지 못하고, 중간층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온건한 리버럴 정당이 몰락하면서 한쪽 끝에 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있고, 다른쪽 끝에 공산당이 포진하는 형세가 됐다. 


(경향DB)


본래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 정치개혁의 슬로건은 무엇보다 양대정당제에 의한 안정된 정권교체와 정치쇄신이었다. 수년 전 민주당 정권의 탄생으로 일본에도 새로운 정치시스템이 정착하고 유럽·미국형의 안정적인 정치교체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자민당이 복권했고, 아베 정권이 탄생해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향후 3년은 선거가 없는 장기정권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양대정당제와 정반대의 결과가 된 것이다. 자민당이 걸리버 같은 거대정당으로 군림하고 그외 정당이 릴리퍼트(소인국)처럼 옹기종기 법석대는 정당지도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민주당 정권의 탄생으로 잠시 하야한 뒤 해체에 가까운 당 개혁을 부르짖던 자민당이었으나, 그 정책과 이념의 알맹이는 과거 보수정당의 유연함마저 팽개치고 극히 복고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이데올로기 정당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자민당이 국민정당으로서 일본 유권자를 끌어당겨온 힘의 원천에는 가급적 우익적인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정당 내부에 균일하지 않은 파벌이 동거하는 파벌연합체 형식을 취하는 것에 의해 안팎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던 유연함이 있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역사 바로잡기’뿐 아니라 헌법개정, 안전보장정책 재검토와 함께 중국에 대한 대결자세를 선명히 하고 있고, 한국에도 식민지 지배의 역사적 평가와 여자정신대 문제 등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수정주의적’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매파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무엇보다 근린 아시아국가들의 반발을 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한 태도를 시사하며 중국·한국의 우려를 일부러 유발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아베 정권의 체질과 정책, 지향하는 바는 단순한 ‘전전(戰前)회귀’는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아베노믹스와 환태평양경제협정(TPP) 참가를 추진하고 있어 과거 ‘아시아판 먼로주의’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네오콘)와는 역사적 배경과 문맥이 상당히 다르다고는 하지만, 아베 정권 내부에 신보수주의적인 면과 신자유주의적인 면이 혼연일체로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개방과 규제완화의 기수라는 점에서 명백히 신자유주의적인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폐쇄적인 내셔널리즘과 애국심의 고무, 군사력에의 쏠림이라는 점에서는 신보수주의적인 성격이 농후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만,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을 거뒀다고 해도 집단적 자위권과 자위대의 국방군 격상, 헌법 개정 등 아베 정권의 신보수주의적인 정책이 지지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가 자민당 지지로 연결됐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 특징적인 것은 투표율이 52%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수 가까운 유권자가 적극적, 소극적인 기권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그중 다수가 아마도 ‘무당파층’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정당정치와 민주주의가 상당히 병들어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유권자 전체의 4분의 1의 득표수를 획득한 정당이 제1당이 되고, 정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중의원과 참의원의 ‘네지레(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기 다른 정당이 다수당인 상태)’를 해소했고, 중·참 양원에서 여당이 제출한 법안의 통과를 꾀할 수 있는 확고한 다수파를 형성하게 됐다. 게다가 향후 3년간은 선거를 치르지 않는 장기정권의 가능성조차 높아졌다. 


그렇다면 향후 아베 정권이 여론의 지지를 배경으로 한국·중국에 매파적인 외교자세로 임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 시금석의 하나가 오는 8월15일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가능성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로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것은 알려진 대로지만 아베 총리가 같은 일을 되풀이할까, 어떨까?


또 아베 총리가 공식·비공식을 불문하고 참배를 피한다고 해도 당 간부와 유력 각료가 집단 참배에 나선다면 한국·중국의 반발은 피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8월 중순까지는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전망할 수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다만, 이런 현안뿐 아니라 향후 수 년간 아베 정권이 본격적인 개헌작업에 착수하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밀어붙일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명백히 전후 일본의 정치, 국가체제와 사회의 존재방식을 크게 바꾸게 될 것임은 틀림없다. 한국이 그러한 일본과 앞으로도 이웃나라로 마주해야 한다면, 일본에 대한 접근을 새삼 근저부터 재검토할 시기가 오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를 위해 한·미 관계 및 한·중 관계의 안정을 꾀하면서 북한과도 튼튼한 안보 위에 시시비비의 관계개선을 추진해 한국이 관계국들과 전방위적으로 안정된 외교관계를 구축하면서 일본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적어도 예전 같은 내밀하고 유착된 한·일관계는 청산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일본의 참의원 선거 결과는 이런 점을 말해주고 있다.


<번역 | 서의동 도쿄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남북장관급 회담을 둘러싼 실무협의가 난항을 보이고 있는 듯한 흐름이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남북간에 전운이 감돌던 것을 생각하면 북한의 대화노선으로의 전환은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환영해야 할 일이다. 이번의 전환도 ‘벼랑끝 작전’으로 위기를 극대화한 뒤 조건투쟁으로 전환하는 상투전략일지 모르겠지만, 위기의 압력지수는 확실히 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왜 북한은 대결자세에서 대화노선으로 표변한 것일까. 그 노림이 무엇이며 어떤 배경이 있을까. 한국내에서는 북한의 진의와 배경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강경자세에서 대화자세로의 전환과 관련해 북한 지도부내에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가. 내부사정을 알수는 없겠지만, 그 배경에 중국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갓 출범한 시진핑 체제로서는 북한의 세번째 핵실험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었을 뿐 아니라 동북아 안정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인 것 같다. 중국 동북부에 인접한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의 안전보장을 위기에 빠뜨림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움직임에 탄력을 불어넣는 모멘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은 미국과 보조를 맞춰 북한에 금융제재를 발동하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중국은 특사로 방문한 최룡해 조선인민군총정치국장를 통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중국의 생각을 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메시지를 미국에 전하는 중개역할을 할 것임을 북한의 최고권력자에게 전하려 했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교섭의 재개가 필요요건으로 인식됐던 것 아닐까. 북한의 대화제의는 서울을 향한 것이되, 워싱턴을 의식했던 것이다. 


북한 군인들이 3차 핵실험 성공 축하집회 (연합뉴스)


현재 남북 실무자협의의 의제는 개성공단의 조업재개와 금강산관광 재개, 남북이산가족 재회 등이지만 2000년 6월15일의 남북정상회담에 의한 남북공동선언을 축하하는 행사를 둘러싸고 견해차가 있는 듯 하다.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부정하고 ‘기브앤 테이크’라는 비즈니스적 관계를 구축하려 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남북관계는 가장 위험한 관계로 후퇴했고 정부간의 교류도 끊겼다. 박근혜 정부는 궤도수정을 꾀해 북한에 대화와 교류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휴전협정이래 최악의 상황에 빠졌고 전쟁 가능성조차 우려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북교류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폐쇄돼 한국측 요원철수 사태로 전개되면서 남북관계는 2000년 6월15일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버렸다. 북한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남북공동성언 13주년에 집착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김대중및 노무현 정부의 유화정책을 계승할지를 가늠해보려는 의미가 있음에 틀림없다. 


한국 여당, 보수매체와 여론에서는‘햇볕정책’을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양보정책이고, 한국의 지원이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실험에 유용돼 위협을 키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일 것이다. 하지만 남북간 체제경젱은 이미 승패가 분명하다. 북한은 빈사상태의 ‘환자’이고, 만신창이의 국가사회주의 최빈국이다. 북한은 체제안정과 존속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핵포기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말하자면 체제보장이 명확하다면 비핵화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보장조치는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 체제외에 다른 것이 없다.


2003년 북한에 지원한 쌀을 살펴보고 있는 남북경제협력추진위 김광림 재경부 차관 (경향DB)


북한은 평화협정 체제에 의한 체제보장의 실마리를 붙잡기 위해 북·미 양자교섭을 요구해왔고 오바마 정권을 교섭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도발을 되풀이해온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정권은 중동지역의 혼란에서 눈을 떼기 어려워 동북아시아에 적극 간여하지 않았다. 오바마 정권은 동북아의 현상유지를 희망해왔고, 북한문제에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발휘하는 대신 6자협의는 중국, 남북교류는 한국에 각각 역할을 분담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세번째 핵실험으로 오바마 정권도 간여정책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그것이 미·중 정상회담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이 북한에 어떤 접근을 할 것인가가 미국의 대북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고, 한국의 대북정책 방향에 따라 긴장이 높아지거나 완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는 선택은 있을 수 없고, 대화와 교섭만이 남아있다. 게다가 북한은 붕괴를 두려워하는 빈사상태의 환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고, 체제붕괴와 군사충돌을 피하면서 상호침투를 꾀해 공존과 교류를 깊고 넓게 가져가는 선택밖에 없다. 즉, 김대중 대통령이 깔아둔 궤도를 밟아가며 긴장완화를 추진하는 것외엔 방법이 없다. 북한의 노림을 신중하게 가늠하면서 대화와 교류의 채널을 넓혀가지 않으면 안된다.


송별오찬에서 환담을 나누는 김정일, 김대중 양측 정상 (경향DB)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결정됐고 중국에서는 새 공산당 집행부가 탄생했고, 일본에서는 총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전이 대단원을 맞이하고 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일본 총선의 움직임이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 집권 3년에 대한 평가를 넘어 정계재편이라는 격진(激震)의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년 전의 정권교체는 자민당의 ‘55년체제’에 종지부를 찍었고, 낡은 정치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본이 시작되리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그 상징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민주당은 항쟁과 대립이 반복되면서 통치능력을 상실한 채 해산·총선거로 몰리게 된 것이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반중시위 (경향신문DB)



민주당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사어(死語)’가 됐고, 노다 정권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협정(TPP) 참가를 앞당기려는 태도만이 눈에 띌 뿐이다. 노다 정권은 외견상 TPP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병행해 추진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협정에 쏠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특히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일·중간 대립이 이런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내 주요 언론 중에서는 중국을 잠재적 위협이나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이런 중국관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반중’ 움직임을 배경으로 중국 봉쇄에 가까운 전략을 취하려는 것이 현재 자민당 주류파벌이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재는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무라야마 담화’ 및 ‘고노 담화’ 취소를 시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중·일관계는 물론 한·일관계도 회복불가능한 대립에 빠질 것이다. 게다가 중국과의 적대관계를 부추기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지사와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 등 제3세력이 총선 후 캐스팅보트를 쥘 경우 한·일관계는 해방 이후 가장 심각한 대립에 직면할지 모른다.


일본의 ‘우경화’라 불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사견으로는 전후 보수세력 중 기시 노부스케(安信介) 전 총리 중심의 ‘한국·대만 로비스트’ 인맥에서 발원한 것으로 보인다. 구만주국에서 ‘그림자 총리’로 통했고, 전후 A급 전범으로 스가모 형무소에 수용됐다가 냉전격화로 정계에 복귀, 55년체제 구축의 일원이 된 기시의 파벌은 중·일 국교회복을 달성한 다나카(田中)파와 항쟁을 거듭하면서도 주류파가 되지 못했다. 사정이 바뀐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의 탄생부터였다. 고이즈미 정권 이래 기시파는 자민당의 주류가 됐고, 그로부터 아베 정권이 탄생하게 됐다.


아베 정권은 기시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중국과 북한에 강경태도를 관철하려 했다. 영토문제를 계기로 중·일관계가 옴짝달싹 못할 정도의 대립에 빠진 현재 제2차 아베정권이 출범할 경우 대만 로비스트의 ‘중국봉쇄’라는 오랜 꿈을 향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될지 모른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시하라가 과거 세이란카이(靑嵐會)를 중심으로 한 대만 로비스트 집단의 유력 멤버였으며 정치신조도 기시를 이어받았다는 점이다. 아베 총재는 혈연상 기시의 후손이고, 이시하라는 기시파의 인맥과 사상을 이어받았다. 또 하시모토 시장은 인맥상으론 기시파와 무관하되 정치이념과 정서는 기시파를 격세유전해 물려받았다. 일본 우경화 리더들이 과거 한국·대만 로비스트와 깊이 연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일 안보의 존재이유는 한반도와 대만해협의 유사시에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 이후 남북관계는 교류가 깊어졌고,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일·대만 관계 악화로, 중국과 대만간의 협력관계는 보다 깊어졌다. 즉 현재 한국과 대만은 과거 로비스트들이 그려오던 한국과 대만이 더이상 아닌 것이다. 한국·대만과의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을 봉쇄하려는 냉전적 정책으로는 미국의존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잃어가는 일본이 미국에도 매력적인 파트너가 아닐 것임은 틀림없다. 미국과의 교섭력을 상실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점차 지반침하 상태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애국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대만 로비스트의 영향력은 커져가고, 일본은 ‘아시아의 고아’가 될지 모를 난관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독도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긴장으로 치닫고 있고,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로 중국과 일본 간 대립도 점차 격화되고 있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공동체구상조차 부상하고 있는데도, 동북아시아 지역은 마치 영토 내셔널리즘 시대로 역행한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은 러시아와의 북방영토(쿠릴열도) 문제도 끌어안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 문제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 식민지 지배의 전후처리를 둘러싼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은 명백하다. 얄타회담으로부터 도쿄재판,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이르는 전후처리 과정은 동시에 전후 냉전체제의 고착화와 병행해 진행됐고 여기엔 미국의 대아시아 냉전전략이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일, 중·일 간 영토분쟁의 숨은 당사자는 미국이다. 


중국인들이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역사적으로 보면 구 소련의 대일전쟁 참가와 만주·한반도 북부에 대한 극동소비에트군의 침공, 중국 내 국민당과 공산당 간 내전 및 ‘붉은 중국’의 탄생, 그에 연동해 이뤄진 북한에 의한 남침과 내전, 남북의 분단 고착화 등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이 공산세력의 위협에 노출됨에 따라 미국의 대일 점령정책은 ‘징벌적인’ 대일정책에서 경제부흥지원으로 크게 변화했다. 미국의 ‘관대한’ 대일 지원정책은 유럽의 전후부흥을 위한 마셜플랜처럼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남북한의 내전이 일본에 공전의 특수를 안겨주었고 결과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마셜플랜’이 돼버린 것이다. 


이렇듯 일본은 미국의 핵 및 안보조약의 바탕 위에서 군사·정치적으로는 거세됐지만 경제적으로는 지역대국으로 소생했다. 전후일본의 역사는 요약하면 이처럼 일본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큰 틀 안에서, 통절한 ‘전쟁체험’과 그 국민적 기억을 기반으로 자민당 보수정권의 헤게모니하에서, 평화헌법을 원칙으로 삼아 경제성장에 매진해온 역사다. 


그것은 국민주권과 평화주의, 자유와 인권의 측면에서 보자면 전후 민주주의의 정착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짧은 기간의 예외를 제외하곤 자민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을 중심으로 정권이 운영돼온, 사실상 일당지배에 의한 정당정치 시대이기도 했다. 국가의 하부구조라는 면에서 본다면 관료제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기구가 집권정당과 유착하면서 경제시스템을 운영하는 개발주의적 국가체제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구도하에서 일본경제 시스템은 포디즘적인 생산체제를 통해 발군의 경쟁력을 발휘하고,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이라는 부동의 지위를 획득하게 됐다. 노동진영에서 보자면 그 역사는 경제대국의 메가스트럭처(초거대건물) 속에 기업노동조합의 형태로 편입된 종속적인 네오코포라티즘의 시대였다. 정부·자본(재계)·노동의 3자로 이뤄진 네오코포라티즘은 어디까지나 노동 측에 불리해 세력을 2분의 1 또는 3분의 1로 약화시킨 협조체제였다. 


정부나 자본에 대한 노동 측의 약체성은 동시에 시민사회의 상대적인 약함과 관련돼 있었다. 확실히 전후 일찌감치 시민과 시민운동이 목소리를 냈고, 안보투쟁과 베트남 반전투쟁, 지역운동과 반공해운동 등에서 시민의 활동이 꾸준히 전개됐다. 하지만 전후 일본에서 시민사회가 광범위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90년대 한신·아와지대지진의 경험에서부터였다. 시민사회라는 사적영역이 국가에 저항하는 공적영역과 연계해 가는 역사적인 체험이 빈약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일본의 전후민주주의란 이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의 아말감(융합체)으로부터 성립된 것이다. 


이것은 때로는 상승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때로는 내부적인 알력도 만들어내지만, 전체적으로 체제의 순조로운 존속이 보장돼왔다. 그렇지만 냉전붕괴 이후 특히 1980년대 말부터 20년간 그 아말감이 녹아내려 ‘유동화하는 근대’ 속에 놓이면서 혼미가 깊어졌다. 그것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던 바로 그 무렵 일본은 미증유의 자연재해와 원전사고를 당했고, 이웃나라인 한국·중국과 영토를 둘러싸고 심각한 대립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내부적인 구조변용과 대외위기가 증폭되면서 일본에서는 시민사회에 대한 위로부터의 개입과 통제가 강화되는 징후가 커지고 있다. 방위·안보정책도 소극적인 수준에서 확대지향 쪽으로 이행하면서 정치와 안전보장 면에서의 제약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요컨대 탈(脫) 전후민주주의로 향한 기세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집권여당 민주당 대표선거, 제1야당 자민당의 총재선거에 등장한 면면과 ‘제3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일본유신회 등을 본다면 익찬(翼贊)적인 보수대연합의 움직임, 신보수주의(네오콘)의 대두가 현저해지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탈 전후민주주의의 움직임을 가속화시키게 되면, 식민지배와 역사문제를 둘러싼 한국과의 갈등과 대립은 더 깊어질지도 모른다. 일본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이명박 대통령의 돌연한 독도방문이 국내외에 파문을 키우고 있다.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의 독단적인 ‘정치적 쇼’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여서, 외교통상부와 외교관료, 주일 한국대사관은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은 물론 해외 어느 나라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특히 일본은 소비세 증세법안을 둘러싼 정국혼란 와중에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이 전혀 뜻밖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한국 내에서도 독도방문은 대통령 개인의 결단으로 강행되면서 국민이 허를 찔렸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대해 중장기적인 전략적 고려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일본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출처: 경향DB)



취임 때부터 일본에 대해 ‘햇볕정책’을 취해온 이 대통령은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편한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으로 일본의 대한 직접투자가 늘어나고 대일 무역역조도 개선의 조짐이 나타났다. 북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태도는 일본에서는 오히려 좋게 평가되어 북한에 대한 대응에 한·일 간 협력이 보다 강고해질 것으로 여겨져왔다. 


게다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대립격화와 함께 대중국 견제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서 자리잡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일 밀월도 상호간 전략적인 의도가 어긋나면서 점차 불화로 변질되었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역사인식과 ‘일본군 위안부’ 등의 문제에 대한 국내의 대일 요구를 억눌러가면서 대일 접근을 꾀했던 만큼 일본의 양보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허사였다. 그런 점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이 교토(京都) 한·일 정상회담이었다. 회담에서 일본의 외무성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은 위안부 문제에 인도적인 퍼포먼스조차 실행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명백히 했다. 일본에 유화적이었던 대통령으로서는 ‘저자세 외교’라는 평가만이 남게 되었다. 


본래 구(舊)체제 중심에 있는 자민당과의 협력없이 소비세 증세를 비롯한 여러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노다 정권에게 위안부 문제를 놓고 한국과 타협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영토와 역사 문제에 강경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파벌그룹을 안고 있는 데다 냉전시대 한·일 유착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자민당의 반발을 생각하면 노다 정권은 한·일협약 재검토로 이어질지 모를 타협에 나설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전략적 결단을 기대해온 이명박 정부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다 정권도 이명박 정부의 대중외교를 잘못 읽었다. 중국의 군사적 대두와 해군력 증강, 영토대립 등에서 일본은 한국이 보다 일본의 입장에 접근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일 간 군사정보의 포괄적인 보호협정을 체결하는 움직임에도 속도를 냈다. 하지만 협정이 체결 직전 취소되었다. 


경제적인 연계와 안전보장 관점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의 연계를 심화시켜 중국 견제로 나서려고는 하지 않았다. 대중 견제 차원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에 착안한 일본은 미·일 안보를 기축으로 하면서도 한국을 대중 견제의 유력한 수단으로 위치짓고, 안전보장 전략에 한국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좌절되고만 것이다. 


이 같은 한·일 간 전략적인 구상의 엇갈림이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이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진 정권을 지탱해 보려고 독도방문을 강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충격으로 원전사고 문제를 안고 있는 데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대립, 북방영토(쿠릴열도)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와 오스프리 배치 문제에서 미국과의 불협화음으로 고심하는 노다 정권에 독도문제로 한국과 균열이 깊어진다면 일본의 외교, 안전보장은 꽉 막힌 상태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9월 중 대표 및 총재선거를 앞두고 있는 민주당과 자민당의 당내 사정과 연내 총선거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한국에 강경 수단을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이 독도방문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이상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독도방문이라는 ‘후미에’(踏繪·사상검열 수단)가 부과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한·일관계가 험악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사태를 보다 복잡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은 일본 국내에서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에 ‘총리가 방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다. 그럴 경우 중·일관계는 험악해지지 않을 수 없고, 한·중·일 3개국의 협력이 흐트러질 뿐 아니라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의 기운이 높아지면서 예측불허의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사태까지 감안하면서 독도방문 카드를 꺼낸 것인가. 한국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고, 이 이상 풍파를 몰고 오는 것은 오히려 한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바람직한 것은 한·일 양국이 영토문제를 수단으로 삼아 국내 정국을 유리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정치역학을 되도록 약하게 만들어, 동아시아라는 광역권의 형성을 향한 한·일 협력의 구체적인 여정을 세우고 착실히 실행해 가는 것이다. 양국의 집권세력과 언론들은 영토 내셔널리즘의 유혹에 지면 안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kan@iii.u-tokyo.ac.jp


 

지난해 3월11일 동일본에 몰아친 대지진과 원전사고로부터 1년 몇 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일본 민주당 정권은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에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으로 교체되었고, 여러 변화가 잇따르면서 일본 정치의 일탈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자민·공명당과 3당 합의에 의한 소비세 증세법안 타결과 오이(大飯) 원전 재가동 결정 움직임 등 노다 정권은 ‘결단하는 정치’를 내걸며 막무가내로 질주하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집권 여당인 민주당 안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를 중심으로 하는 파벌이 탈당했고, 민주당에 잔류한 하토야마(鳩山)파 등으로부터 공공연히 노다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경향신문DB)


이제는 정권교체 당시의 기대와 고양감은 시들었고, 민주당은 분열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민은 급속히 민주당 정권으로부터 떠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과 유권자가 제1야당인 자민당 지지로 돌아갔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일본의 국민 다수는 전후(戰後) 구체제의 중심이던 자민당에도, 정권 교체를 실현한 민주당에도 옐로카드를 들이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은 여당에도 야당에도 자신의 한 표를 의탁할 수 없게 됐다. 요컨대 일본의 유권자들은 얼터너티브(대안세력)를 잃었고, 정당정치 자체에 대한 실망감과 혐오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다 정권은 야당의 주장과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으로 정권 연명을 꾀하고 있다. 탈당사태로 참의원 내 제1당의 지위가 위태롭게 된 민주당에 있어 자민당과의 협력은 정권의 생명줄이 되려 하고 있다. 


이렇듯 일본 정치에서는 어포지션(야당·반대세력)이 기껏해야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사실상 민주·자민·공명 3당 합의에 의한 익찬(翼贊·보수연합)적인 정치 운영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총선거 시기를 늦추고 9월 예정인 민주당 대표선거에서 재선돼 임기 만료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싶은 노다 정권은 자민당에 환영받을 만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중국·대만과 갈등 중인 센카쿠(尖閣)열도의 국유화,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 발언 등이 그것이다. 


또 원전사고를 계기로 개정된 원자력기본법 부칙에 민주·자민·공명 3당 합의로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문구가 추가돼 국내외의 강한 우려와 반발도 불러일으켰다. 한국 언론에서도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을 것이다. 


이 같은 노다 정권의 움직임은 한국 언론과 여론으로서는 일본 ‘우경화’의 진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일본 내셔널리즘의 대두’라는 쪽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단선적이다. 


왜냐하면 ‘우경화’가 전후 장기간에 걸친 자민당 중심의 ‘55년 체제’하에서 봉인되어 온, ‘일본의 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소 욕망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면, 이 욕망은 일본 국내에서만으로는 완결될 수 없고, 미국과의 일체화를 통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의 일본’은 ‘미국의 일본’과 병행해 진전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여기에 전후 일본의 보수 내셔널리즘의 ‘패러사이트(기생)적 성격’이 담겨 있다.


실제 한국에서 보자면 우경화로 간주되기 쉬운 노다 정권의 발언과 움직임은 미국과 보다 긴밀한 일체화를 추진하는 움직임과 연동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발언과 ‘미망인 제조기’로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군 신형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의 오키나와 배치 강행 등은 ‘미국의 일본’을 추진하는 정지작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은 명백히 베이징의 정책적인 판단 착오, 실수에 기인한 것이다. 중국은 주변 해역의 영토문제에 강경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미국과 호주, 아세안(ASEAN) 국가들을 끌어들인 대중 대항체제 형성을 자초했다. 


노다 정권도 표면적으로는 대중국 포위망 형성을 부정하긴 하지만 ‘미국의 일본’을 심화시키고, 미·중 이극지배를 견제하면서 일본의 안전보장·국제 정치상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대외적인 ‘미국의 일본’화의 진전과 대내적인 ‘일본의 일본’화의 진전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으며, 그렇게 되는 한 전전(戰前)의 역사처럼 일본 단독으로 ‘일본의 아시아’를 추구하는 팽창적인 정책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일본’과 ‘일본의 일본’의 동시진행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일본 정치에서 새로운 움직임은 없는 것일까. 분명히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 총리 관저를 포위하는 대규모의 반원전 시위와 오스프리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 시위,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반대 시위 등 정당정치에서 갈 곳 잃은 시민과 주민들의 의사는 직접적인 시위행동이라는 형태로 일본 이곳저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반원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일본인들 (경향신문DB)


이 움직임은 종래의 좌익과 노조, 활동가들의 운동과는 질이 다르고, 오히려 그들과 결별한 형태로 참여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가두시위에 참가하는 시민이 적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이런 일본의 복잡한 움직임을 똑똑히 지켜보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심화할 것인가는 연말 대통령 선거로 등장할 새로운 한국의 지도자에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이다.


왜냐하면 일본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때 지금까지의 역사가 시사하는 것처럼,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강상중|도쿄대 대학원 교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이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으로부터 물려받은 환태평양경제협정(TPP) 참가교섭이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비관세장벽’을 철폐하라는 압박을 받는 등 난제가 이어지고 있다. 노다 총리는 멕시코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TPP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본래 TPP 참가교섭은 통상·무역정책 등에서 한국 등에 뒤처져 있는 일본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묘안으로 여겨져 왔다. 또 일본이 사실상 미국과의 경제연계협정이 되는 TPP에 참가하는 것은 가맹교섭국인 호주와 베트남과 함께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다국 간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돼 왔다.

한편으로 TPP 참가교섭 표명은 한·중·일 3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교섭을 진전시키는 지렛대가 됨과 동시에 3국 간 FTA 교섭을 진행시키는 것에 의해 TPP에서 유리한 참가조건을 이끌어내려는 목표도 있었다. 확실히 이런 목표대로 FTA 타결을 향해 연내에 교섭을 개시하자는 데 3국은 합의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의 FTA 체결에 신중하면서도 중국과의 양자 교섭에는 전향적으로 나서며 조기 타결을 꾀하고 있다.

 

일본 미야기현 농부들이 환태평양경제협정(TPP) 반대 집회에 참가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내가 보기에 한국은 ‘일본이 TPP 참가교섭에 과감히 나서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한국 쪽에서 본다면 TPP 참가교섭에 일본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외교교섭상의 일종의 책략 같은 것이고, 국내적으로는 TPP 참가교섭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한 조건이 정비돼 있지 않은 것으로 비쳐지는 것 아닐까. 다시 말해 FTA 참가교섭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 일본이 그보다 훨씬 장벽이 높은 TPP 참가교섭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불가능할 것으로 한국은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소비세 증세와 사회보장 개혁을 둘러싸고 국내 정국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이 분열되면서 정국이 정계재편 국면으로 직진할 것이라는 예상도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다.

FTA의 경우도 한국이 그랬듯, 체결까지 가려면 국내의 비판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거버넌스(통치구조)가 불가결하다. 하물며 TPP라면 한국에서 발생한 것 같은 분쟁 이상의 혼란이 예상돼 예전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반대투쟁에 버금갈 만한 반대운동이 벌어질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경우 내각이 한두 개 무너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이런 수라장을 견뎌낼 만한 거버넌스를 갖춘 정권 만들기가 가능할 것인가.

소비세 증세의 타결을 둘러싸고 정계의 유동화와 재편이 이뤄지고 여기에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가 이뤄진다면 정치 불안정화는 불가피하다. 이 경우 국내에 안정된 정권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분쟁의 씨앗이 될 TPP 참가교섭을 추진하는 모양이 된다. 그러다 결국 타이밍을 놓치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TPP도 한·중·일 FTA도 진척이 없는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결과로 끝나버리게 될지 모른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그렇다면 일본으로서는 우선 한·중·일 FTA 체결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으로서도 일본의 결정을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바라볼 때 일본 정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파악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 이유는 정권들이 단명에 그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권의 황망스러운 교체극에 일본 국민도 질려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일본 단명 정권의 괴이함이 두드러져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 중국과 마찰을 일으키면서도 국내에서는 압도적인 인기를 토대로 상당히 장기간 지속된 고이즈미(小泉) 정권 이후 아베(安部), 후쿠다(福田), 아소(麻生), 그리고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 하토야마(鳩山)와 간(菅) 등 불과 수년 만에 다섯 정권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지금의 노다(野田) 정권도 지지율 혼미와 당내 혼란 때문에 언제 국회 해산과 총선거라는 국면에 들어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정도로 일본 정치가 불안하다면 역사 현안, 외교, 안보, 무역과 통상 문제 해결 등과 관련해 과연 일본 정부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한국으로서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적어도 중장기적으로 국가 간 대화와 협력, 국가전략에 기반한 문제 해결 노력 등을 기대할 수 없게 됐음에 틀림없다. 결국 정치 주도의 외교와 교섭, 새로운 차원의 한·일관계 구축 등에 결단력 있는 대응이 불가능하다면 정치의 공백과 부작위(不作爲)를 관료정치가 보충하는 수밖에 없다.

관료정치가 과거 조약과 협정의 일언일구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면 한일협약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체결 당시에는 논의되지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와 역사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정치적 결단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당직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l 출처:경향 DB

게다가 일본에서는 ‘세제와 사회보장 일체개혁’과 소비세 증세, 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 ‘1표의 격차’를 둘러싼 시정조치(선거구 조정 문제), 오키나와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설 문제 등 여당과 야당 사이뿐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균열이 발생해 거의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문제 해결이 계속 보류되고 있다.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는 노다 정권은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의 ‘네지레’(상·하원에서 각기 다른 당이 다수당인 상태)도 있어 최대 야당인 자민당에 접근하면서 동시에 여당인 민주당 내부 융화를 꾀하는 양동작전을 펴고 있지만, 타개의 길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이런 정권의 딜레마를 싸늘한 시선으로 보는 국민들 사이에선 정당정치 자체에 대한 원망과 한탄마저 자라고 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 정치’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정치’가 지속되면서 의회는 정당 간 흥정과 잡담장으로 변했고, 국민은 그 저급한 소극을 봐야 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일찍이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라고 일컬어지던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도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다당병립의 소수여당 정권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은 나치스의 독재정치로 대체됐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덤을 판’ 이들 중에서 헌법학, 정치학에 중대한 역할을 한 학자 칼 슈미트는 아주 적절하게도 의회민주주의를 ‘잡담 기관’이라고 야유했다. 민주적인 결단은 뒤로 미루고 당리당략에 빠진 우유부단한 의회정치를 비꼰 말이다.

일본의 경우, 1929년 월가 대공황에서 파급된 쇼와(昭和)공황의 위기 속에서 민정당과 정우회라는 양대 정당제가 기능부전에 빠지면서 군부가 대두했고, 마침내 정당정치에 기초한 의회정치는 ‘쇼와유신’의 파쇼적인 열광 속에 매몰돼 갔다. 확실히 현재의 일본 정치를 1930년대와 비교하는 것은 비약임에 틀림없다. 역사는 꼭 닮은꼴로 되풀이되는 것도 아니며 안이한 역사 유추는 금물이다. 다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정치,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 정치라는 점에서 현재와 1930년대 사이에 공통점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전후 민주주의가 정착한 일본에서 옛날처럼 ‘혁신막료’ 같은 청년장교들이 등장하는 무대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기성정당과 다른 ‘제3세력’으로서 오사카시(市)와 오사카부(府)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정당이 구체제(앙시앙 레짐)의 타파를 내걸고 국민적인 큰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이하게도 이번에도 ‘유신’이 슬로건인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정치를 바꿔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정치, 국민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강력한 ‘결단주의’의 거버넌스이다. 이런 움직임이 과연 기성 정당정치에 얼마만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또 ‘제3세력’과 기성세력 간의 융합이 얼마나 진전될 것인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일본 정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돼온 이른바 ‘전후 민주주의’와 다른 ‘포스트 전후 민주주의’를 모색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움직임이 한·일관계와 역사 문제, ‘일본군 위안부’와 영토 문제 등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강상중 |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

동일본을 습격한 미증유의 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을 앞두고 있다. 일본의 매스컴들이 대재난에 의한 피해상을 전하고 있고, 원전사고에 관한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도 제출됐다. 전후(戰後)의 일본을 뒤흔들고, 스리마일, 체르노빌과 함께 일약 후쿠시마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된 ‘동일본대지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려고 한다.

한반도에서 보자면 적어도 근대 이후 100년 이상 일본은 마치 태양을 향해 날갯짓하는 이카루스처럼 융성과 번영으로 가득한 역사를 걸어온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일본의 근대사가 빛나면 빛날수록 인접한 한반도 역사는 종속과 굴욕으로 채워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가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든 밀랍 날개로 크레타섬을 탈출하다 너무 높이 날아오른 나머지 햇볕에 밀랍이 녹아 바다로 추락하듯 일본도 1945년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다시 일본은 제2의 이카루스처럼 비상해 왕성한 경제대국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다시 일본은 태양열 대신 원자력의 열로 국토를 방사능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일찍이 군사도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공멸의 악몽을 예감하도록 했다고 하면 후쿠시마라는 일본 중추의 주변부에 설치된 원자력발전소의 파괴는 인류 에너지에 대한 사고방식을 근본부터 바꿀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그런 일본을 한국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국토가 분단됐지만 일본을 추격할 정도로 산업국가로 성장한 한국으로서는 제2의 추락이 불가피할지 모를 일본에 대한 시선이 복잡하지 않을까. 식민지지배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는 일본, 세계시장에서 항상 반발짝 앞서온 강력한 라이벌로서의 일본. 그런 일본이 미증유의 곤경에 처해 있으니 그 시선은 이중적이 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조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면서도 비참한 재해에 대해 동정과 공감을 하게 되는, 그런 심경 아닐까.

다만, 확실한 것은 후쿠시마는 일본만의 후쿠시마로 머물지 않고 경우에 따라 한국의 후쿠시마가 될 수도 있다. 20기가 넘는 원전이 있는 한국에서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이런 점을 깨달은 이들이 한국에서 녹색당을 출범시킨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녹색당 당원들 수명 만료 핵발전소 폐쇄법안 발표 기자회견 I 출처:경향DB

녹색당이라면 독일에서의 탈원전 운동이 떠오른다. 1980년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카르스르에에서 결성된 녹색당의 30년에 걸친 활동은 독일 내에서 원자력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대규모 사회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이데올로기 논쟁의 양태를 띠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였다. 체르노빌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 남부지역이 오염됐고, 원전사고에 불안이 확산됐다. 유효한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정보 은폐 등을 되풀이한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증폭됐다.

독일은 낭만주의와 자연회귀의 전통이 있어 근대 이후에도 생태에 대한 관심이 넓게 정착돼 있었다. 이는 다만, ‘피와 대지’라는 인종주의적 슬로건으로 되면서 배타적인 차별의식을 조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좌우 다양한 세력이 망라된 녹색당 내에서의 논쟁 과정에서는 이런 편협한 의식이 사라졌고, 녹색당 활동은 사회운동 확산을 지속시키는 힘이 됐다. 이런 배경하에서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확산됐고 독일 사회민주당(SPD)도 탈원전으로 방향을 바꿨다. 녹색당은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끄는 사회민주당과 연립정권을 세우고 탈원전과 자연에너지 개발, 생태학에 관한 국민적 계몽 등의 환경정책 전반에 책임을 맡게 됐다.

이윽고 2000년 연립정권은 전력회사와 ‘탈원자력합의’를 도출하고 2년 뒤 원전폐지의 법적근거가 된 원자력법 개정안을 시행하게 됐다. 탈원전 법제화 및 시행을 늦춘 중도우파 연립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2022년까지 원전을 폐지하기로 방침전환을 선언했다. 메르켈의 ‘개종(改宗)’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의회선거에서의 녹색당 약진이다. 독일에서 보수적이지만 가장 부유한 주가 후쿠시마를 계기로 탈원전의 의지를 명확히 표시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독일은 탈원전으로 향하는 ‘루비콘강’을 건너게 됐다. 자연에너지 개발을 바탕으로, 중규모 첨단기술 네트워크를 통한 지산지소(地産地消)형 에너지와 산업으로 성립된 지역사회가 분권방식으로 연결되는 사회. 이것이 독일이 지향하는 탈원전사회의 미래다. 게다가 독일은 인접국가로부터 전력을 자유롭게 수입해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는 체제를 정비하는 등 에너지 공동조성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이런 독일의 대응은 한국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 큰 참고가 될 것이다. 원전사고 이후에도 탈원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본을 대신해 한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독일의 역할을 물려받아야 한다. 한국 녹색당의 향배를 지켜보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강상중 |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

그리스 위기가 유럽 금융위기의 방아쇠가 되고, 이것이 중국 경제성장 둔화로 연결되고, 또 한국과 일본의 불황을 유발하고, 또…. 이런 부(負)의 사슬이 세계 동시 불황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임금 및 연금 삭감, 공공요금 인상과 의료비 삭감 등 초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으며 국가파탄의 고비를 맞고 있다.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질 경우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디폴트의 연쇄반응이 멈추지 않으면서 유로화의 파탄과 유럽연합(EU) 소멸로 최악의 경우 ‘보스니아식 내전’과 같은 상황이 초래되지 않으리라 단언하기도 어렵다. 나는 그리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지켜보며 일종의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 악재로 주가지수 50포인트가 빠진 2일 오후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주가와 외환 지수를 주시하고 있다. I 출처:경향DB


2002년 가을 NHK TV 프로그램의 자문역으로 국가파탄에 빠진 아르헨티나를 취재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한 달가량 머물 때였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들른 미국 공항은 2001년 9월11일 발생한 동시다발 테러로 사실상 임전태세를 방불케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대테러전쟁은 아랑곳없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연명할 것인가로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아르헨티나의 파탄 원인은 1991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이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1달러=1페소의 달러 페그 고정환율제에 합의한 데 있었다. 1980년대의 만성 인플레이션 상태를 벗어나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결과는 페소화 급등에 따른 버블 경제였다. 허구의 풍요함은 10년 만에 끝났고, 국가파탄에 빠지게 됐다. 예금 봉쇄, 외자 철수, 생필품의 품귀, 맹렬한 인플레이션 등 파탄의 영향은 사회를 뿌리째 붕괴시킬 기세였다. 게다가 가스, 수도, 전기, 통신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라이프라인 상당 부분이 ‘민영화’돼 요금을 낼 수 없는 가구가 속출했다. 물과 몇 줌 안되는 밀가루로 허기를 견디던 중산계급 가정주부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건 완만히 진행되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이다.”

확실히 ‘완만한 제노사이드’는 글로벌 경제의 희생자에게 닥친 비참한 상황을 표현해주고 있다. 앞으로 그리스에서도 ‘완만한 제노사이드’ 참상이 조용히 번져갈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런 참상에 넋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고, 자기방어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유력한 움직임은 지역통화에 의한 물자교환 네트워크를 전국적으로 펼치고, 생활필수품과 서비스를 나누고, 라이프라인을 보충하려는 시도였다. 그 주도세력들은 에른스트 슈마허의 ‘스몰 이즈 뷰티풀’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화석연료 및 자연의 허용치, 그리고 인간성을 우선시하는 지속가능한 경제. 슈마허가 제창한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중간기술의 개발로 지역경제가 네트워크 형태로 연결돼 가는 사회였다. ‘작은 것이 훌륭하다. 거대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파괴로 이어진다.’ 이것이 슈마허의 좌우명이었다. 슈마허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 오늘날을 예측했는지, 다음의 말을 보면 일종의 감동마저 느껴질 정도다. “원자로를 부수는 것도 가동하는 것도 안돼, 그냥 그대로 몇 백년간 혹은 몇 천년간 방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것은 소리없이 공기와 물과 토양에 방사능을 계속 흘려보내고, 모든 생물에 위협을 가한다. 이런 ‘악마의 공장’이 어디에서 얼마나 생겨나는지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지진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상정한다. 가동이 끝난 원자력발전소는 추악한 기념비로 남는다. 인류의 미래에 위협이 전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조금이라도 경제적 이익이 있는 이상 미래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의 미련함을 되새길 것이다.”

지진과 쓰나미가 계기가 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와 글로벌 금융 경제 파탄으로 초래된 유럽 위기를 보고 있으면 슈마허가 40년이나 앞서 오늘날을 들여다본 듯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대 위협은 결코 테러나 이슬람 원리주의, ‘문명의 충돌’ 등이 아니라 성장과 번영을 떠받쳐온 것으로 간주된 대규모 기술과 ‘자유화=규제 완화’라는 단순한 만능약이었던 것이다.

일본을 추월하라. 이 일념으로 앞뒤 안 재고 달린 한국. 그 성공 이야기는 세계의 상찬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성공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시기가 됐다. ‘크고 최신이며, 빠르고 글로벌한 자유화된 것’이 풍요함의 기준이고 선진국 여부를 재는 척도이던 시대는 종막을 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뒤쫓는 데 급급한다면 국민과 그 자손이 행복할 수 있을까. 일본은 이제 모범이라고 할 수 없고, 미국식 스타일의 레세페르(자유방임주의)도 서양 스타일의 ‘중국적’ 자본주의화의 길도 모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지금, 스스로의 창의력과 궁리로 21세기에 적합한 사회모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좌우명이 ‘스몰 이즈 뷰티풀’이 돼야 할 것만큼은 확실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