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프랑스 남부 미요에서 맥도널드 매장을 트랙터로 밀어버린 조제 보베 이후, 농부가 일간지 르몽드의 1면에 등장하는 건 좀처럼 드문 일이다. 


2월24일자 르몽드 인터넷판 1면에 검은 수트(양복)를 입고, 지지자들을 향해 멋지게 손을 흔들며 등장한 남자는 부르고뉴 지방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지불로 에마뉘엘이다. 


그는 자신의 포도밭에 농약을 살포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날 법정에 섰다. 


프랑스 샤블리의 바이용 포도밭에서 직접 포도를 선별하고 있다.(출처 :경향DB)


1985년부터 구축해온 유기농법으로 포도농사를 지어오던 그가 갑자기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 건 지난해 6월쯤. 부르고뉴 행정당국이 포도나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염병 예방을 위해 이 지역 포도농가 전체에 농약 살포를 강제로 명령하면서부터다. 


유기농산물 라벨(표시)을 유지하면서도 쓸 수 있는 농약은 단 하나, 천연재료로 만든 것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에마뉘엘은 그 농약마저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없었다. 그 농약은 해당 병해충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곤충들도 한꺼번에 죽여버리는 바람에 그가 구축해온 유기농 환경이 일거에 파괴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기농 농가에서 농약 사용을 거부한 것은 상식을 넘어, 바람직한 일이라 믿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 이 아연한 죄목으로 법정에 서는 에마뉘엘을 지지하는 위원회를 결성했다. 녹색당을 비롯해 그린피스, 반자본주의 신당, 아탁, 그리고 많은 유기농 농가와 생태주의자들이 그의 선택과 저항을 지지하고 행정당국의 횡포를 고발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 40만명 이상의 서명과 언론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여론의 매서운 바람이 법정에 스민 걸까. 검사는 이날 재판에서 에마뉘엘에게 최소 형량을 구형했다. 벌금 1000유로, 그나마도 절반은 집행유예다. 


에마뉘엘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많은 포도농가들이 농약이 아닌 방법으로 병충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들이 있음을 깨닫고, 그 길에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유럽 최대의 의약품 소비국인 프랑스는 동시에 유럽 최대의 농약 소비국이기도 하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로 내려주었다는 포도주. 그러나 포도농장 사람들은 대부분 암으로 죽는다. 이들이 가장 흔하게 걸리는 병은 방광암이다. 그것은 농약 사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농장주들은 얘기한다. 포도 재배가 그들을 먹여살리지만, 결국 그것으로 인해 그들은 죽음에 이른다. 이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농부들이 유기농으로 전향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유기농 전환에는 수많은 행정절차, 더 많은 실험이 따른다. 따라서 더 많은 인내와 비용이 요구된다. 그리고 에마뉘엘이 마주했던 것처럼, 집요한 시스템의 방해가 그들의 전향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다. 프랑스의 사회보장금고를 털고 싶어 하는 제약 마피아가 프랑스인들의 의약품 소비를 부추기는 가장 큰 동력이라면, 프랑스의 농약 사용을 부추기는 동력은 몬산토 등 다국적기업과 결탁한 유럽 위원회, 그리고 그들의 명령에 순종하는 프랑스 행정당국이다.


벌레를 죽이기 위해 땅을 죽이고, 농민을 죽이고, 소비자들까지 서서히 죽여가는 동안 다국적기업만 홀로 배를 불리게 하는 법. 불행하게도 오늘의 세상에는 그러한 법들이 난무하며 범인(凡人)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법이 모두의 상식을 배반할 때, 우린 이렇게 말해야 한다. ‘법은, 그것이 존중받을 만할 때만 지킨다.’ 에마뉘엘의 한 지지자가 결연히 외쳤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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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문입니다.’


이것은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지난 토요일 1면에서 외친 절규다. 리베라시옹은 르몽드, 피가로와 함께 프랑스 3대 언론인 동시에 종이 신문이 갖는 난.망한 운명을 고스란히 지고,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또 한마리의 길 잃은 양이기도 하다.


4년 전, 르몽드지에 닥쳤던 시련은 리베라시옹의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중이다. 지난해 15%의 판매부수 급감은 100만유로의 적자를 남겼고, 사측과 주주, 노조는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논의되어 오던 내용과 무관한 주주들의 일방적 ‘미래 플랜’이 협박장처럼 날아든다. 그 구상은, ‘리베라시옹’이란 상표를 내건, 새로운 사업 프로젝트이다. 파리 중심에 있는 사옥은 레스토랑, 바, 소셜네트워크용 콘텐츠 제작, 크리에이터, 방송 스튜디오, 문화이벤트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키고, 전체 콘셉트는 사르트르가 자주 드나들던 카페를 본떠, 21세기의 카페 플로르를 만든다는 것. 그럼 신문사는? 파리 외곽으로 규모를 줄여 이전한다. 당연히 직원들의 급여도 줄이고.


사측에 날아든 주주들의 구상이 직원 총회에서 발표되는 자리에서는 비명과 야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주들은 미래의 비전에서 ‘오로지 전략적, 경제적 원칙만이 유일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못 박으며, 언론의 사명감 따위를 품고 있는 기자들을 구시대적이라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예기치 못한 주주들의 테러에, 기자들은 하루 동안 파업을, 그리고 다음 날엔 발행 중단을 감행한 후,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펜과 매체를 사용하여, 주주들의 몰지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리베라시옹은 1968년 5월혁명의 선전지에서 출발했다. 이후 사르트르가 발행인이 되어 언론으로 정식 출발한 것이 1973년. 선명한 좌파성향이면서, 소수자들의 삶을 지면에 끌어들이는데 또렷한 족적을 남기고, 시적인 사진들, 구어와 문어가 세련되게 조합된 특유의 리베라시옹 필체를 만들어내면서 학생과 좌파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는 신문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첫 경영난 이후, 새 주주들과 함께 재탄생한 1981년 이후의 리베라시옹은 확연히 본연의 색을 누그러뜨렸고, 그들의 문체에는 현란한 허무의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르트르, 히피적 자유로움이 달아주었던 깃털을 하나 둘 잃어갔고, 그것은 바로 디지털 환경의 급부상만큼이나 리베라시옹 몰락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프랑스 신문들에는 놀랄 만큼 광고가 없지만, 바로 그 광고 비중이 작은 매체들을 지원하는 정부의 언론보조금이 있고, 이들의 인터넷판 신문은 유료화되어 있다. 무가 신문이 지하철입구에서 열심히 뿌려지는 건 우리와 같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동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조간신문을 뒤적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파리지앵들의 일과는 여전하다.


(출처 :AP연합)


리베라시옹 기자들은 이제 막 칼을 빼들었지만, 그들이 가진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프랑스의 그 어떤 언론도 리베라시옹이 맞은 운명과 무관하지 않기에, 그들의 탈출 혹은 몰락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다.


더욱이, 선동적이리만큼 거칠게 자본의 논리를 신문사 한복판에 폭탄처럼 투척한 주주들의 태도는 말랑말랑하던 리베라시옹 기자들의 팔뚝에 급히 투사의 근육을 장전시킨 탓에 볼만한 싸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인의 적이 된 주주들의 폭력적 요구가 그들의 문턱에 밀려오기까지, 이들이 협력해 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기에, 사태를 바라보는 심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목수정 | 작가·파리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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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사생활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2주간의 소동은 지난 토요일 프랑수아 올랑드가 개인 자격으로 발표한 발레리 트리발리에르와의 관계의 공식 단절(결별 선언)로 일단락되었다. 


올랑드의 새 연인에 대한 보도가 나간 후, 프랑스인 과반 이상(54%)이 향후 대통령의 동반자에 대한 그 어떤 공식적인 지위나 예산도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더 이상 유사한 사건이 일으킬 어떤 종류의 피곤함도 사양하겠다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 어떤 법 조항에도 없었으나, 슬그머니 관례로 자리잡아 왔던 대통령의 동반자를 위한 적잖은 예산과 인력 소모가 이번 소동으로 정리될 수 있다면 그나마 이번 스캔들이 건져낸 수확인 셈이다. 


졸지에 프랑스의 전(前) 퍼스트레이디가 된 발레리 트리발리에르는 1년 전부터 약속되어 있던 인도 뭄바이에서의 결식아동을 돕는 자선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2주간의 침묵을 깬다. “내 걱정은 하지 마시라!” 밝은 얼굴로 건재를 과시하는 그녀를 더 이상 걱정하는 무례는 삼가야 할 듯하다.


사회당은 물론 대중민주연합에서도 다시 본격적으로 민생 문제에 정치권이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며, 이 신속한 결말을 반기는 분위기다. ‘바람도 피우는 보통 남자 올랑드’에서 한 나라의 수장이라는 정상 궤도 복귀에 성공한 올랑드. 그러나 그를 맞이한 건 실업 증가를 막지 못한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따끔한 질책이다.


2012년 5월 올랑드 취임 이후,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려오던 실업률 그래프가 다소 완만해지면서 2013년 12월에는 마침내 실업률 그래프가 하향선을 그리게 될 것을 정부는 은근히 기대해 왔다. 


그런데 지난 12월에도 실업률은 여전히 0.3% 증가한 것으로 결국 확인되면서 ‘실패’라는 단어가 올랑드 대통령의 어깨 위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양궁 체험을 하고 있다.(출처: ap연합)


프랑스 정부가 해결해야 할 단 한가지 문제를 꼽으라면, 그것은 ‘실업’이다. 정부의 모든 노력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될 수밖에 없으며, 올랑드 또한, 1년 전, 실업률 상승곡선을 반드시 하향곡선으로 바꿔놓을 것을 약속한 바 있다. 


61%에서 시작된 그의 지지율이 1년반 만에 22%로 떨어지는 동안 프랑스 실업자 수는 290만명에서 330만명으로 늘어났다. 10%의 증가율을 보이던 2012년의 실업률 상승이 2013년에는 5.7%로 다소 완만해졌다는 사실만을 그나마 정부는 위안으로 삼지만, 불행하게도 프랑스 통계청은 올 상반기에도 지속적인 실업률 증가를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실업대책이다. 그들은 온전히 기업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기업의 ‘고용비용 경감’을 실업이라는 전쟁에 나서는 무기로 삼고 있다. 이미 실패가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강력한 기업 감세 조치로 고용비용의 획기적( !)인 경감을 올랑드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약속하면서, 이것이 올랑드의 명백한 배반인가, 아니면 본격적인 커밍아웃인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진 바 있다.


1936년 인민전선 정부로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조금 덜 일하고, 더 많이 버는 사회적 목표는 줄기차게 실현되어 왔다. 그런데 불과 20여년 전부터, 프랑스는 더 많이 일하고, 덜 벌며, 일자리는 계속 줄어드는 최악의 사이클에 접어들었다.


‘고용의 적은 금융’이며, ‘20세기 이후, 프랑스에서 이토록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적은 없었다’는 노동계의 지적을 외면하는 한, 엉뚱한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서는 올랑드 정부의 실패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bastil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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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취임 후 세번째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2013년 말 프랑스 국민을 향해 던진 신년사에서 그는 완전한 우향우를 선언하는 듯한 청사진을 내비치며 정국을 술렁이게 한 바 있다. 이날의 기자회견은 바로 그 수상쩍은 계획에 대한 세부내용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기자회견을 목전에 두고 그에게 새 연인이 생겼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타고 있던 대통령 올랑드는 갑자기 관심의 세례를 한몸에 받으며 60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 앞에 섰다. 스쿠터를 타고 연인을 찾아 밤길을 가르는 중년 남자 올랑드의 모습이, 밋밋해 보이던 보통 대통령 올랑드의 이미지에 새로운 활기라도 불어넣은 듯, 이날의 흥행 성공에 그의 새 연애가 큰 역할을 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정작, 기자들에게는 연말부터 부풀어 오르던 더 큰 질문이 있었다.

“올랑드, 당신은 누구지요?” 이것은 그의 커밍아웃을 추궁하는 질문이었다. 거기에 올랑드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소, 나는 사민주의자(social-democrate)요.” 1991년 시인 박노해에게 사형을 선고하게 만든 ‘그렇소, 나는 사회주의자요’라는 선언의 패러디처럼 들리는 이 선언은 박노해의 그것과는 정반대로 자신이 더이상 사회주의자가 아님을 선언하는 말이었다. 집권 초반부터 조금씩, 신년사 이후로는 더욱 또렷이, 올랑드를 겨냥한 신자유주의자 ‘커밍아웃’이 개봉 박두했다는 소문이 널리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날, 올랑드는 ‘실업’이라는 프랑스의 가장 시급한 과제의 해법으로 ‘친기업’ 노선을 선택했으며, 350억유로에 해당하는 사회보장기금에서 기업 분담금을 2017년부터 면제해주겠다는 제안을 해법으로 내세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경향DB)

기업의 고용 부담금을 줄여주고 모자라는 돈은 국가재정을 긴축하는 것으로 메우겠다는, 공공지출이 줄어들면 서민들의 부담과 고통이 더 커지겠지만, 그래도 위기니 감당해야지 어쩌겠느냐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그는 끝내 커밍아웃은 거부했다. 사회당 출신의 대통령이기는 하나, 더이상 사회주의와는 무관하며, 오른쪽으로 상당히 이동한 자신을 나름 대담하게 인정하느라 난데없이 사민주의를 들먹이게 된 것이다. 사회당에서 가장 왼쪽 날개에 속하는 저명한 노조활동가 제라르 필로쉬는 올랑드가 지금까지 실천해온 정책 가운데 80%가 친기업적인 것이었으며, 20%만이 사회당으로서의 사명을 실천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날 쏟아진 35개의 질문들 가운데 7개는 그의 사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우파 언론 피가로의 기자가 물었다.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는 여전히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인가?” 올랑드는 “사생활은 사적으로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즉답을 피했으나, 대답을 얻지 못한 질문이 그에게 되돌아왔다. 결국 “2월 미국 방문 전에 이 문제를 분명히하겠다”고 올랑드는 답해야 했다. 어쩌면 대통령 부인 자리가 바뀔지도 모른다고 국민들은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올랑드는 그 질문을 온전히 사적인 영역이라며 피할 수만은 없었다. 사적 스캔들이 그에게 드리울지 모르는 올가미를 피하려 열변을 토하며 애쓰는 올랑드의 노력을 프랑스 국민들이 가상히 여긴 듯, 그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프랑스인들 가운데 54%가 올랑드가 프랑스의 미래를 향해 있다고 답했고, 51%는 그의 용기있는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이 설득력 있다고 답한 사람은 28%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보여준 용기는 가상하지만, 국가가 기업에 혜택을 베풀면, 기업이 알아서 고용을 확대해 줄 거라고 믿는 프랑스인은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자회견 다음 날, 르몽드는 ‘올랑드, 기업의 선택을 좌파에 강요하다’라는 헤드카피를 뽑아 걸었으며 그의 새 연인이라는 여배우 모습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결국 그의 약속이 얼마나 이행되는가에 있을 뿐이다.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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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31일 오후 5시가 되면 파리 시내 모든 대중교통은 무료로 운행된다. 다음날 정오까지.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연말파티를 즐기는 시민들에게 파리교통공사가 제공하는 애교스러운 서비스다. 지하철은 밤새 흥청거리는 사람들을 무료로 실어 나른다. 백야축제를 하는 날 밤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축제니까, 우리도 시민들 기분 좀 맞춰줄까? 하면서 공공서비스가 시민들에게 내놓는 선물이다. 갑자기 이동의 자유가 확대될 때, 사람들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은 “이 무한한 해방감을 매일 누릴 수는 없을까?”이다. 이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은 의식과 행동반경을 확장하는 해방의 행위임에 분명하다. 아직까지 한국의 진보진영이 외쳐보지 못했던 구호. ‘무상 대중교통’의 꿈을 실현해가는 도시들이 프랑스에서 늘어가고 있다.

“자유, 평등, 무료.” ‘박애’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보다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구호 ‘무료’를 박아 넣은 깃발을 프랑스 남부 도시 오바뉴의 모든 버스들이 달고 달린다. 오바뉴의 모든 버스노선은 4년 전부터 무료로 운행되기 때문이다. 이 야심찬 계획을 실행에 옮긴 사람은 공산당 출신의 시장 다니엘 퐁텐이다. 2008년 시장으로 재선된 퐁텐은 무상 대중교통 프로젝트에 바로 착수했고, 4년이 지난 지금, 이 도전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통비 부담이 없어진 사람들은 당연히 더 자주 외출하고, 친구 집을 오가며, 인근 도시들과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인근 도시에서 부러움을 사면서 도시의 인구도 늘어났다.

 

(경향DB)

 

그렇다면 이 대중교통 수단의 운영비를 지급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9인 이상의 직원을 가진 기업주들이 내는 교통세이다. 버스 승객의 55%가 학교나 직장에 가기 위해 매일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며, 25세 이하의 승객이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기업을 돌아가게 하기 위한 직접적인 인력, 혹은 미래의 인력들을 위한 비용이므로 조세저항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매표와 검표를 위한 시스템, 이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인건비가 사라졌으므로 당연히 대중교통운영의 비용 자체가 상당한 폭으로 감소하기도 했다.

25년간 오바뉴에서 버스 운전을 했던 장루이는 버스가 무료가 된 후 더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이용하게 된 것은 분명하지만, 우려했던 버스의 시급한 낙후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힌다. 반면, 승객들이 훨씬 더 느긋하고 편안해지면서, 자신 또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운행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노동조건도 향상되었다고 증언한다.

현재 프랑스에는 오바뉴뿐 아니라, 샤토후, 콤피에느 등 총 24개 도시가 무료 대중교통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벨기에, 스페인 등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대중교통을 무료화하는 도시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 이유 중에는 ‘이동의 권리에 대한 보장’ 차원에서뿐 아니라, ‘환경 보호’(무료 대중교통이 등장하면서 자동차를 이용하는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 외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시장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면서 구매력 확대, 시장 활성화와 같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도 포함된다.

2013년 1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모든 대중교통이 무료로 운영되는 유럽 최초의 수도로 탄생했다. 언젠가는 파리의 대중교통도 무료가 될 날이 올 것인가? 바로 이러한 꿈을 목표로 하는 시민운동 조직 ‘유료 대중교통 폐지 조직’이 2000년도에 파리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요금 제로 = 무임승차 제로’를 슬로건으로 하고, 시민들의 이동의 자유를 극대화할 것을 주장한다. 비록 2014년 1월부터 파리 인근 수도권의 대중교통 요금이 3% 인상된다고 파리교통공사는 정반대의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해 나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늘어난다면, 아름다운 꿈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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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이 치러진 지 1년이 지났다. 부정하게 얻은 권력은 부정한 역사만을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입증한 한 해였다. 국민들의 사퇴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는 공모자들은 공안몰이와 노동탄압이라는 무기를 들고 날뛰었다. 한 나라에서 치러진 부정선거. 그것을 직접적으로 다른 나라가 비난하는 것은 다소 껄끄러운 일임을 프랑스에서 만나본 정치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권력이 독재의 전력을 지닌 과거로 한국사회를 단숨에 되돌리며 인권과 노동권 탄압을 자행한다면, 그때부턴 국제공조가 발휘되기 시작한다. 급작스러운 철도 민영화 시도와 8500여명의 철도노동자들을 직위해제한 대대적인 노동탄압은 현정권의 부정한 뿌리를 뒤흔들 최대의 패착일 수 있다. 국제기구로부터 국제노조연대, 그리고 해외교포들까지. 한국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 파괴에 경악하고, 연대를 선언하는 국제적인 움직임이 강하게 술렁인다. 그 시발점은 뜻밖에도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였다.

OECD 사무총장 앙헬 구리아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기 라이더와 공동서명한 서신을 11월25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 한국정부가 행하고 있는 심각한 노동탄압을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는 한국정부가 최근 공무원노조와 교직원노조에 행한 심각한 위반사항을 긴급히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한국정부가 이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이들을 법내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등의 행위에 대해 맹비난했다. 한국정부가 국제법을 준수하고 전공노와 전교조의 합법성을 보장하며, 정부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OECD, ILO는 물론 한국과 교역하는 다른 국가들을 통한 국제 커뮤니티의 압력을 통해 한국정부에 감시의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한인 집회 (경향DB)

 

이 서신은 “한국정부는 노동기본권 준수라는 차원에서 역사의 시계를 반대방향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노동기본권의 후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로 맺고 있다. 한국 정부의 도를 넘어서는 노동탄압을 보고받은 일부 회원국들은 한국의 OECD 제명을 거론할 만큼,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관계자는 전한다.

또한 유럽과 아프리카 철도노조들 연합체인 ‘국경 없는 철도네트워크’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을 모두 포괄하는 노조연대인 ‘국제노조연대투쟁 네트워크’는 한국정부가 파업에 나선 철도노동자들을 상대로 저지른 야만과 인권탄압을 고발하며, 만국의 노동자들을 향해 한국 철도노조의 투쟁을 지지하는 행동에 동참할 것을 12월18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호소했다.

이들은 “공기업인 한국 철도를 민영화로부터 사수하려는 철도노동자들의 요구는 정당하며, 한국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은 곧 우리의 투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앞서 12월6일에도 프랑스 최대 노조연합인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은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를 표명하며, “한국정부가 벌이고 있는 노동탄압은 민주주의에서 이보다 더 우려스러운 정치적 행위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것”이라며 한국정부를 비난했다.

그리고 18대 대선 1년이 되는 19일을 전후해 전 세계 10개 도시의 교포들은 ‘부정당선 1년, 박근혜 사퇴촉구 연속 시국집회’를 벌인다. 18일 메릴랜드에서 시작된 이 집회는 19일 LA, 시카고, 20일 베를린, 파리, 뉴욕으로 이어지며, 21일에는 런던, 워싱턴, 토론토, 그리고 22일 일요일 필라델피아로 끝을 맺는다. 이들은 지난 17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18대 대선무효’, ‘재선거 실시’, ‘이명박 구속수사’, ‘특검 실시’ 등을 요구한 바 있다. ‘일베의원’ 김진태의 피를 끓어오르게 했던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닙니다”라는 현수막은 “그러므로 박근혜는 사퇴해야 합니다”라는 추가된 현수막과 함께 20일 저녁 다시 한번 에펠탑 앞에서 나부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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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에 대체로 무감한 프랑스 사람들. 이번만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세계학력성취도(PISA) 결과에 동요하는 빛이 역력하다. 최근 몇 년간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려오던 프랑스 학생들의 학업성적은, 바닥을 모르며 추락해오던 올랑드의 지지율만큼이나 새로운 뉴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프랑스가 교육 불평등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는 소식은 모든 프랑스 언론들로 하여금 앞다투어 이 수치스러운 상황을 톱기사로 타전하게 했다. 이번 학력성취도 평가는 여전히 프랑스가 세계 최고수준의 엘리트를 배출해내는 교육에선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사회적 하층민의 자녀가 학교교육을 통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10년 전의 프랑스에 비해서뿐 아니라 비교대상국들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는 뼈아픈 결과를 알렸다. 이 사실은 프랑스라고 하는 공화국의 근본적인 사명 자체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부끄러운 결과라고 프랑스 언론들은 입을 모았다.

사회당에서는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로 이어지는 우파정권 10년간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고 공박하였고, 특히 재임기간 중 무려 8만여명의 교사 정원을 줄이며 무리하게 교육재정의 긴축을 시도했던 사르코지의 정책이 빚어낸 직접적인 결과라고 비난하였다. 교육사회학자 아네스 잔텐은 부르디유의 말을 인용하며 “학교는 학생들이 가진 문화적·환경적 차이에 무심한 채, 이전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교사들은 이미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학생들이 더욱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방법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점은 뛰어난 자질을 가진 학생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택할 수 있도록 교사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높아지고, 교사들의 교육방식에 대한 지속적인 재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경향DB)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평가시스템을 전 세계의 표준모델로 만들고 있는 OECD 자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일었다. 10년 전 32개 국가들이 참여했던 이 학력 경쟁에 올해는 65개 국가가 참여했으며, 그들의 성공적인 로비는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이 테스트에 매우 비싼 비용을 치르며 참여하게 하고,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여기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참여 학생들을 임의로 조작하는 경향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1961년 만들어진 OECD는 50년 만에 그들의 기준을 국제사회에 강제하는데 성공했고, 그들은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또 다른 기준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 수치화, 계량화된 잣대를 통해 인류의 삶을 경쟁 구도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학력 평가에 참여하기 위해 프랑스는 53만4000유로(약 8억원)를 지불해야 했다. 심지어 OECD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러저러한 평가는 매우 짭짤한 장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각각의 나라는 딱히 소득도 없는 평가에 엄청난 비용을 치르며 참가하고 있는 이 기이한 현상을 르몽드는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위권의 성적을, 그러나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동기와 학교에서 행복한지를 묻는 질문에서는 최하위권에 속하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르몽드는 이런 한국의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들” 그리고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세상에서 가장 경쟁적이고 고통스러운 교육”이라 표현했다.

우리는 굳이 OECD의 평가를 통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이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동시에 지옥 같은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그 수렁에 계속 집어넣고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그렇다면 이 반복되는 불행을 끝내는 그 첫번째 방법은 이 뻔한 평가에 굳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경쟁의 무거운 굴레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한꺼풀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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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20일), 프랑스 일간지 위마니테(l’Humanite)는 유럽위원회 수석 경제학자가 작성한 미공개 문서를 입수,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유럽연합이 유로존 국가들에 일제히 적용시킨 긴축정책이 결국 이 모든 나라들에 재앙을 가져오게 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학자들이 금융위기에 빠진 국가들에 건넨 로드맵이 계산 착오에 의한 실수였음을 인정한 이후 두 번째로, 신자유주의의 성전에서 돌출해 나온 비판적 고백이다. 연초, IMF 소속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와 다니엘 라이는 IMF 공식 사이트에 올린 보고서를 통해 IMF가 유럽국가들을 상대로 적용한 긴축모델은 경제예측에 관한 수학공식상의 치명적인 실수였음을 밝혀 충격을 준 바 있다.

위마니테지가 보도한 보고서의 작성자 장 벨드(Jan In’t Veld)는 유럽위원회의 경제성장 모델을 제시하는 수석 경제학자로, 유럽위원회가 유로존에 제시한 대부분의 경제 정책은 그의 작업을 기초로 완성되었다.

 

(경향DB)

그는 ‘유로존에서의 예산 안정화와 그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유럽연합이 일률적으로 유로존 국가들에 적용한 긴축정책은 프랑스 국내총생산의 성장을 4.78%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독일에서는 2.61, 이탈리아에서는 4.86, 스페인은 5.39 그리고 최악의 경제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그리스에서는 8.05%의 하락을 유발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유로존의 모든 국가들이 동시에 긴축이라는 정책을 구사하였을 때 이 여파가 상호 간에 작용하면서 그 부정적인 효과를 상승시켰다고 덧붙인다.

이에 대해 아탁(Attac: 국제금융관세연대) 프랑스의 대표인 경제학자 토마 쿠트로는 “전혀 놀랍지 않은 분석”이라고 답하였고, 시앙스포 경제연구소의 카트린 마티유도 “그 보고서는 우리가 평가한 내용과 유사하다”고 인정하면서 자신의 연구소는 같은 기간, 프랑스 국내총생산 성장의 7.5%가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감축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유로존 국가들이 지금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더 이상 적용시키지 않는다고 해도, 2011년부터 2년간 적용한 정책이 남긴 구멍을 메울 수 있게 되는 건, 2018년에 가서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유로존 정부들은 지금의 긴축정책 방향을 지속할 것을 천명하고 있어, 경제상황은 2018년이 되어도 호전될 전망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카트린 마티유는 전한다.

장 벨트가 속한 경제위원회는 유럽위원회 가운데서도 가장 정통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그룹으로 알려져 신자유주의 노선의 실패를 인정하는 최초의 보고서가 던지는 여파는 작지 않다. 이토록 심각한 비판이 제기되는 긴축정책을 지속하는 프랑스 정부와 이를 추동해온 유럽위원회에 대해 그 정책의 정당성에 심각한 문제가 대두된다고 프랑스 아탁의 경제학자는 지적한다.

이쯤 되면 신자유주의는 이 시대의 자기 파괴적 광기를 조정하는 종교며, 유럽위원회는 국제통화기금과 함께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신성한 교리를 사수하는 자본의 바티칸이라고 부를 만하다. 몇몇 경제학자들의 고백은, 부패로 몰락해 가는 중세교회에서 일탈한 양심있는 사제들의 고발을 연상케 한다.

권력 창출 과정에서 빚어진 부정은 차치하고라도, 모든 복지공약의 발 빠른 폐기, 유럽 순방 중 외국기업들에 한국공공시장 개방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온 박근혜 정부가 택하고 있는 경제노선은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들에 대한 철저한 배신이다. 그와 동시에, 이미 수렁이었음이 판명된 지점으로 국가의 운명을 몰고 가는 어리석은 아집일지도 모른다. 지금 제2의 IMF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곳은 바로 새누리당 내부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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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한국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찾아온 한국의 국가원수를 맞이하는 프랑스의 태도는 뜨겁지 않았다. 인터뷰는 르피가로의 한국주재원이 유럽 방문 직전 했던 것이 전부였고, 극소수의 언론만이 한국대통령의 방불을 언급하고 있었다. 


간략한 개인사와 함께 대부분 언론이 하나같이 지적하고 있는 사항은 부정선거 스캔들. 경제지 레제코는 ‘국정원의 트위터로 흙탕물 튀긴 한국 대통령’이란 제목으로 국정원, 군의 조직적 개입 뿐 아니라 국정원 수사팀에서 제외되었고, 수사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한 윤석열 검사의 이야기까지 상세히 다루었다. 


또한 시사주간지 엑스프레스는 ‘박근혜에 대해 알아야 할 다섯가지’라는 제목으로 부모가 모두 총으로 죽은 비극적 인생, 독재자 아버지의 그림자, 윤창중 대변인의 섹스스캔들, 선거부정 스캔들 등을 기사로 다뤘다. 르몽드 만이 경제인들과의 만남을 스케치 했는데, 박근혜는 프랑스 기업인들 앞에서 한 연설을 통해 한국의 공공부문 시장을 외국기업에게 개방할 것과 프랑스와의 자유무역을 위해 한국의 몇가지 무역장벽을 없앨 것을 약속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반면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펼쳐진 재불한인 집회에는 열띤 기운이 감돌았다. 100여명 안팎이 모인 소규모 집회였지만,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닙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내건 이 집회에는 유학생, 교민, 관광객들 뿐 아니라,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온 국정원, 대사관 직원들, 그리고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부 프랑스인들까지 한데 모여 긴장감과 박진감 속에서 진행됐다.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4·19혁명에 참가한 바 있던 70대의 한 교민은 “민주주의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기는 어려우며, 대부분 세찬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그러나 끊임없이 새로운 싹을 틔우려는 도전만이 비로소 민주주의의 당찬 줄기를 키워갈 수 있다”며 젊은 학생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독려했다. 여행을 왔던 한 중년의 관광객은 혁명의 도시, 파리코뮌의 도시, 68의 도시 파리에서 새로운 촛불을 이어나가자고 외치기도 했다. 


인사 나누는 박근혜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대통령 (파리=청와대사진기자단)


둘쨋날 루브르 박물관앞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불문학을 전공하는 한 유학생이 르피가로지에 나온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나라입니다”라고 한 박근혜의 말을 인용하자 장내에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해직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불법이라 통보하고, 국가기관이 선거에 동원되어 여론을 조작해도 이에 대한 수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라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나라냐 반문하며, 나라 안에서 국민을 속이던 박근혜가 이제는 전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한다“며 분노를 표했다.


철학을 공부하는 또 다른 유학생은 “토요일에 에펠탑 앞에서 집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언론에서 접하며 댓글들을 읽어봤는데,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전라도 사람이며, 참석한 학생들은 모두 북한으로부터 돈을 받은 학생들’이라는 글들이 실려있었다. 그걸 보고 정부는 단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공무원과 민간인들을 동원하는 것 뿐 아니라, 이젠 완전히 일상적으로 국민들의 정신을 썩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집회를 지켜보던 한 프랑스 경찰이 다가와 묻는다. 진짜 이런 엄청난 선거부정이 일어난 거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이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프랑스에선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한국대사관이 이 집회를 거부해줄 것을 요청했었던 사실도 알게 했다. 집회의 자유를 막을 아무 명분도 없다며, 그 요청을 거부한 것은 프랑스 경찰이었다. 


올랑드는 무슨 생각으로 한국 대통령을 만난 것 같냐고 묻자 올랑드가 원하는 건 “시장”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르몽드가 보도한 것처럼, 프랑스가 한국 대통령을 맞이한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한국의 공공부문 시장의 개방과 추가적인 무역장벽제거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통령이 이 방문에서 얻으려고 한 것, 그래서 얻은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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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란 단어는 차마, 불의와 위선을 그 성스러운 치맛자락 속에 감추지 못한다. 아이들을 위한 책 속에,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찬양과 이민자 탄압에 대한 긍정을 담지는 못한다. 우린 아이들에게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라고, 세상의 모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모든 학교 정문 위에는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이 세 가지 혁명의 정신을 잊은 지 오래인 듯한 이 시절에도, 아이들만은 이 세 가지 정신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던가 보다.

프랑스 고교생들은 사회가 그들이 배운 당위를 배반하자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외쳤다. “축출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우린 모두 이민자의 자녀”라고, “인권의 나라 프랑스는 어디에 있느냐”고, “사회엔 관용이, 학생들에겐 교육이 필요”하고, “축출되어야 할 사람은 인종주의자 발스 장관”이라고. 골판지에 각자 갈겨 쓴 거친 목소리들은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이 보여준 교묘한 수사의 역겨운 꼼수 곁에서 더 선명하게 그 투박한 진실을 드러냈다. 추방당한 로마(집시) 소녀 레오나르다를 둘러싸고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지나간 지난 한 주 동안, 이 모순의 땅에 서서 생각했다. 어른들의 추한 뒤통수를 보면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젊음의 활시위를 당기는 이 맹랑한 아이들이 빚어낼 10년 뒤의 프랑스에 대해.

 

프랑스에서 지난 9일 코소보로 추방당한 레오나르다 (경향DB)

학교에서 견학수업 중이던 여중생이 경찰에 체포되고, 곧바로 가족과 함께 코소보로 강제송환된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어른들이 경악하고, 정치인들은 저마다 해야 할 말을 찾으며 머리를 굴리는 동안 아이들은 거리로 나가 이 잔인한 위선을 고발한다. 사회당 내에서 당혹의 술렁임이 일고, 사르코지 집권 시절 이후 똑같이 반복되는 야만스러운 프랑스를 부끄러워하는 일차적 반응이 세상을 덮는다. 총리는 이들을 강제출국시키는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면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말로 소극적인 수습을 기도하지만, 극우정당 르펜의 땅으로 향하던 프랑스는 금세 충격을 흡수해낸다. 우파 주자들이 나서 관용과 인본주의 따위를 가뿐히 바닥에 내던지는 발언을 앞다투어 쏟아내고, 곧이어 프랑스인의 65%가 소녀와 가족의 프랑스 귀환을 원치 않는다는 설문조사가 나오자 상황은 역전된다.

당혹스러운 여론과 사회당이란 간판이 주는 한 줄기 양심 사이에서 방황하던 올랑드 대통령은 최악의 한 수를 두고 만다. “레오나르다의 귀환을 허락한다. 그러나 그 가족들은 안된다.” 올랑드의 이 괴상한 판결이 내려지자, 좌우 양쪽에서 긴 야유가 쏟아졌다.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올랑드의 엉거주춤 리더십은 여기서 정점을 찍는다. 15세 소녀가 자신을 내쫓은 사람들의 땅으로 가족 없이 돌아올 수 있을까? 당연히 그들은 돌아올 수 없다는 답을 들려주었다. 레오나르다는 이번주 프랑스 언론들의 표지를 장식한다. 소위 ‘레오나르다 사건’이 들춰보인 프랑스의 진일보한(!) 얼굴은 많은 술회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우파정당 UMP는 표밭을 향한 탐욕으로 더욱 단호하게 극우의 땅으로 나갈 것을 선언하고, 발스 장관이 주도하는 인종주의로의 행군과 사회주의라는 간판의 무게 사이에서 방황해온 사회당은 더 극렬한 분열의 늪에 빠졌다. 극우정당 FN의 당수 르펜만이 다시 한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카메라를 노려보며 존재를 드러내고, 자신을 축출한 프랑스와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한 올랑드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열다섯 살의 레오나르다는 그 유창한 불어뿐 아니라 수줍음 없는 당돌함에서 영락없는 프렌치 키즈였다. 어깨를 걸고 거리로 나와 그녀의 귀환을 지지하던 바로 그 싱그러운 프랑스 청소년들과 똑같은. 지난 주말 시작된 투생(Toussaint) 방학은 아이들의 분노를 삼켰고, 어제도, 난민신청을 거부당한 298명의 알바니아인들은 하루아침에 강제출국을 명령받았다. 그 속엔 감히 프랑스 언론을 향해 위선을 말해줄 기회를 갖지 못한 98명의 또 다른 레오나르다가 이 모순의 역사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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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프랑스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정치인의 이름은 법무부 장관 토비라(Taubira)였다. 그녀의 이름을 따 ‘토비라법’, 혹은 ‘모두를 위한 결혼법’이라고도 불리는 동성애자 결혼법이 통과되면서, 우로부터의 비난과 좌로부터의 응원을 한몸에 받으며 프랑스사에 확고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겼던 그녀가 다시 한 번 좌우가 격렬하게 맞붙을 개혁 법안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형벌제도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다.

지난 9일 열린 장관회의에서 토비라 장관은 그동안 준비해 온 형벌제도 개혁안을 내놓았다. 지난 여름, 2025년의 프랑스를 구상해보라는 올랑드 대통령의 주문에 “대체형벌들이 활성화되어 감옥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고, 경범죄자는 교도소로 보내지 않으며, 범죄자들의 사회 재편입을 돕는” 세상을 그려보였던 토비라 장관의 구상은 이번 개혁안에 그대로 담겨있다. 장 마크 에로 총리는 엄지손가락을 높게 치켜들었고, 동료장관들은 입을 모아 그녀의 개혁안에 담겨 있는 이 탁월한 효율성과 일관성에 감탄했다.

멕시코의 한 어린이가 아버지가 수감 중인 아포다카 교도소 철책을 붙잡고 울고 있다. (출처 :AP연합)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선 지(교도소 수감률 115%) 오래인 감옥에 더 이상 범죄자들을 가두어 놓는 것만이 아니라, 경범죄자들은 감옥으로 보내는 대신 일상 생활 속에서 최대한 이들의 행동을 교정·교화하며, 재범 방지와 형벌의 개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번 법률 개혁안의 골자이다. 형기의 3분의 2를 산 모든 죄인들에게는 자동적으로 보호관찰 대상자가 될 수 있는지를 검토받게 하는 내용과 사르코지식 치안정책의 상징인, 재범일 경우 형감량이 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삭제할 것도 포함하고 있다.

형기를 마치고 아무런 준비도 도움도 없이 출소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곤 한다. 사르코지 집권 동안 경찰은 끊임없이 감옥에 사람을 밀어넣는 한편, 교정과 교화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의 수는 방치했다. 그 결과, 거리에 늘어났던 것은 출소 직후 다시 사회로부터 고립되거나 팽개쳐진 사람들이며 이들은 쉽게 노숙인이 되거나 알코올, 약물 중독자가 되곤 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이들의 사회편입을 도울 보호관찰직을 대폭 늘리는 일이라고 토비라 장관은 말한다. 그녀는 앞으로 3년간 1000명의 고용 창출을 이 부분에서 예고하고 있다.

교조행정노조는 이번 개혁안에 적극 찬성 의사를 표함은 물론, 오히려 더 적극적인 교정중심의 개혁을 제안했으며 판사노조 역시, “브라보”를 외치며, “당장 이 개혁안이 실행되길 바란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물론, 우파 대중민주연합에서는 이 개정안이 지나친 ‘관용주의’를 조장하면서 사회당이 감옥을 텅 비우려 한다며 맹비난했고, 개혁안의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오랜만에 등장한 프랑스 사회당의 참신한 개혁안은 그러나 내년 4월에 가서나 국회를 거치게 된다. 너무도 민감한 이 주제를 내년 3월로 다가온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앞에서 다뤘다가, 사회당이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을 마구잡이로 감옥에 밀어넣는 치안보다 교화와 직업훈련, 출소 후에도 사회생활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는 교조정책은 그 비교 우위를 논할 수조차 없는 양극단의 대척점에 서 있다.

그러나 ‘집시들은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주저없이 내지르는, 사르코지를 꼭 닮은 내무부 장관 발스의 인기가 묵묵히 사회당의 과제들을 실천해 가고 있는 토비라 장관의 지지율을 3배 정도 능가하고 있는 것이 프랑스의 씁쓸한 현실이다.

근육질의 남자가 동네 건달을 들어 구석으로 내다꽂아 당장 눈앞의 군중들에게 박수를 받을 순 있지만, 그 건달을 거두어 먹이며 교화시키고, 교육까지 시켜서, 서로 돕는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일은 천배쯤 의미있는 일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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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나라 프랑스? 아마 그럴지도. 그러나 이 그럴듯한 나라의 아이들에겐 남모를 고민이 있다. 프랑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급속하게 퍼져가는 머릿니가 그것이다. 매년 9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는 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이번 주말 일제히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蝨)를 소탕해줄 것을 부탁한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주먹만 한 크기의 이 그림을 첨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3~4년 전만 해도 학기 초에만 치르던 이 난리법석은 이제 일년 내내 상시적으로 학부모들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됐다.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머릿니들은 최근 완전히 회귀했고, 이제 이들은 그 어떤 독한 약에도 꿋꿋하게 건재하는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머릿니 약을 써도 이의 30%는 여전히 생존한다는 것이 학계의 보고다. 굳이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엄마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머리에 끈적거리는 약품을 바르고 하룻밤이 지난 뒤 감겨도 머리를 빗으면서 다시 꿈틀거리는 머릿니를 발견하는 그 절망적인 순간을 누구나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벌레 하나를 해결하지 못할 만큼 현대의학은 정녕 그토록 무력한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자본이 이 세계를 끌고 가는 선장이 된 이후 언제나 과학은 자신들을 조정하는 ‘비즈니스’라는 실질적인 선장에 의해 어리석은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100%에 가까운 퇴치율을 자랑하며 부작용도 거의 없고 가격도 저렴한 이 퇴치약이 이미 1981년부터 나와 있으나 이 약이 이나 서캐 퇴치용으로는 허가되지 않았을 뿐이란 사실을 언론에 폭로한 사람은 마르세유 의과대학의 디디에 하울 교수다. 이 약은 심지어 약국에서 판매 중이다. 그러나 몇몇 열대병에 대한 치료용으로만 처방이 가능하다. 도대체 왜? 이 약이 머릿니 퇴치용으로는 허가되지 않는 것일까? 하울 교수의 가정을 들어보지 않아도 파리의 약국들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잠시만 눈여겨본다면 그 해답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 퇴치약 선전 포스터로 뒤덮인 약국의 쇼윈도, 다양하게 전면에 배치되어 있는 각종 이 퇴치약들, 다양한 형태의 이 퇴치용 빗, 전용 샴푸, 라벤더 오일…. 이 조그만 벌레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시장이 제약업계를 얼마나 통통하게 살찌우는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제약업계의 어느 누구도 머릿니가 완전히 척결되는 쉬운 처방이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출처 :경향DB)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약을 소비하는 나라로 꼽힌다. 이 때문에 미국의 무기 마피아 못지않게 프랑스의 제약 마피아는 막대한 규모의 자본을 주물러왔고 이에 결부된 권력을 누려왔다.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의료보험 시스템을 갖췄다는 프랑스. 그러나 적절히 시대의 변화와 사용자의 요구에 맞추어 개혁되지 못하고 시장의 논리에 장악되면서 프랑스 제약시장은 자본가들의 즐거운 놀이터로 전락해왔다. 성형외과 의사였던 제롬 카위작이 제약 컨설팅 회사를 차려 스위스 은행계좌가 필요할 만큼의 큰돈을 벌고 예산부 장관이 되기까지 승승장구하다가 은닉계좌들이 정적들에게 포착돼 사임한 이야기는 제약업계와 정계를 둘러싼 석연찮은 커넥션을 압축해서 보여준 한 장면이었다.

의사 두 사람이 작심하고 프랑스 제약시장에서 당장 퇴출되어야 할 약들과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야 하는 약들의 명단을 열거한 책(<유용하거나, 무용하거나, 위험한 4000개의 약 가이드> 베르나르 드브레, 필립 에방, 2012)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도 프랑스 제약업계가 얼마나 부패했으며 제약업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신이 얼마나 팽배한지를 보여주는 일화이다.

제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 머리에 이가 들끓도록 내버려 두는 제약업계, 이들의 이 가당찮은 공모를 구경만 하고 있는 정부. 모든 것을 다 파괴하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자본의 속성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는 씁쓸한 프렌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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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의 존재야말로 프랑스가 실천해 온 문화의 공공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산 증거”라고 프랑스의 문화정책가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해 왔다. 절대왕정의 심장부였던 궁전에서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연간 1000만명(2010년)씩 드나드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박물관으로 변모한 과정을 지켜본다면, 이 주장에 설득력이 있음을 사실로 인정하게 된다.

12세기에 요새로 지어졌던 이 건물이 16세기에 들어 증축을 거쳐 왕궁으로 기능하다가 왕실 소장 예술품 보관소로 변모하게 된 건, 168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궁으로 이전하면서부터다. 그리고 1789년의 혁명을 주도한 국민회의가 왕실과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예술품들을 모든 시민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혁명을 문화영역으로 연결시킬 줄 알았던 진보된 태도에 따라, 루브르는 대중 박물관으로 태어난다. 1793년 8월12일에 시작된 회화전은 루브르가 시민을 위한 박물관으로 개방되던 첫 순간이었다. 무려 2세기도 전에 이토록 눈부신 문화의 민주주의를 입증해주었던, 루브르의 아름다운 변화는 아직도 진행 중인가? 그런가.

 

루브르 박물관 (경향DB)

 

지난 수요일, 파리 검찰청은 중국에서 발행한 루브르 박물관 위조 입장권 3600장이 무더기로 벨기에 세관에 적발됐으며, 이에 따라 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이미 8월 중순부터 루브르 박물관은 몇몇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가짜 입장권을 가지고 박물관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예의주시해 오던 상황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단체로 해외여행을 오면서 얼마 안되는 박물관 입장권을 위조해서 사용하는 중국인들의 태도에 먼저 아연실색하게 되지만, 대체 그 입장료가 몇 푼이나 되길래 하고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루브르 박물관의 상설 전시관 입장료는 12유로(약 1만8000원)다. 미성년자는 언제나 무료고, 매월 첫 번째 일요일은 모두에게 무료입장이 허락된다. 하지만 입장료는 프랑스의 시간당 최저임금에 비해서도 1.5배나 되는 금액이다.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영국의 국립박물관들의 입장료가 없고, 한국의 국립박물관도 무료이며, 독일 뮌헨의 박물관들이 매주 일요일 1유로에 입장하게 하는 현실에 비하면 프랑스의 국립박물관들이 책정한 입장료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이달 초 프랑스 교통부는 대중교통 이용자 중 부정, 무임 승차자로 인한 손실이 연간 4억유로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철도공사(SNCF) 측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3억유로, 파리교통공사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1억유로란다. 그러면서 이들을 적발하기 위해 고용하는 검표원만 1만명이며, 이들에게 지급하는 급여만 1억유로가 소요된다고 했다. 급여 이외에 파리 지하철의 무시무시한 (게다가 점점 더 험악해지는) 개찰구, 검표를 위한 장비, 부정승차를 막기 위해 벌이는 캠페인, 관련 기관들의 행정 비용들을 모두 합친다면, 그 비용은 거의 4억유로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흔히 파리 사람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정부가 부정승차자 적발을 위해 들이는 비용은 모든 공공교통 요금이 무료가 될 때 이들이 감수해야 할 비용과 맞먹을 것”이라는 말이 먼 이야기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들게 한다.

프랑스 검찰청이 중국 어딘가에 있을 루브르 박물관의 가짜 티켓 인쇄소를 적발하면, 그럼, 이 부정 입장객들의 행렬은 멈춰질까? 오히려 더 정교한 입장권을 만들게 하는 것으로 발전하지는 않을까? 세상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는 햇볕과 폭풍의 끊임없는 내기가 벌어지는 장인 것 같다. 스테판 에셀이 말했던 것처럼 역사의 교훈을 현실정치에서 실천하는 민족이 드물다는 사실은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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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있는가?”


이 ‘똘기’ 충만한 질문은 긴 여름휴가 후 가진 올랑드 정부의 첫 번째 각료회의에서 내무부 장관 발스가 던진 것이었다. 태양 아래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들을 마주하며 화기애애하게 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은 충격으로 술렁였다. 발스 장관은 이어서 “가족 이민이 아프리카 인구정책에 야기하는 문제와 이것이 유럽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가족이민법 개정을 고려해 봐야 한다”며 자신의 돌발 발언이 의도하는 구체적인 발톱을 드러냈다.


아프리카에서 알제리, 모로코를 비롯해 20개의 식민지를 거느려왔던 프랑스의 역사는 수많은 아프리카의 값싼 노동력을 끌어들여 이들을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이용해왔다. 일하러 프랑스에 온 남자를 따라 나머지 가족들이 이주하면서 프랑스 내의 이슬람 인구는 10%대에 이르게 된다. 우파에서는 바로 이 이민자들이 프랑스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어려움의 근원인 것처럼 둘러대왔지만, 이런 주제가 버젓이 사회당 정부의 각료회의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일종의 사고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장관들의 반대입장은 명료했고, 올랑드 대통령도 가족이민법 문제를 재검토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표명했다. 녹색당 출신의 세실 뒤플로 주택부 장관은 “가족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는 예외를 허용할 수 없다”고 즉각적으로 발스 장관을 공격했고, 한국 출신 입양인이기도 한 장 뱅상 블라세 녹색당 상원 대표도 발스 장관이 사회당 정부에 무질서를 초래하고 있다며 꾸짖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그르노블을 찾아 이민자 단속 강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로이터 연합)


발스 장관이 이 같은 문제적 발언을 내뱉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기 전부터 인종주의자적인 그의 면모는 충분히 관측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올랑드 정부의 속마음은 좌우 양쪽에 양다리를 걸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발스가 부려온 만용의 배경은 높은 지지도다.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에 머물러 있는 반면, 그의 지지율은 최근 61%까지 치솟아 명실상부 가장 인기있는 사회당 정부의 스타로 인정돼온 것이다.


되는 일도 안되는 일도 없이 경제위기의 수렁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프랑스에서 사람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염원해왔다. 그 덕에 사르코지가 당선됐으나 그는 지나치게 상식을 벗어난 정치적 광대였기에 민심을 거듭 이반하면서 재선에 실패한다. 그러나 올랑드는 지금의 무기력한 프랑스를 바꾸어 놓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의 지지율은 당선 이후 지속적으로 추락을 거듭해왔다. 올랑드 내각에서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것으로 평가받는 발스는 도발적인 우파적 발언과 야심을 숨기지 않는 저돌성 면에서 사회당의 사르코지라 불려왔다. 이런 현상을 프랑스의 우경화 신호로만 받아들이기에는 극좌로 분류되는 좌파당의 지도자 장 뤽 멜랑숑의 치솟는 인기를 설명할 수 없다. 좌로든 우로든 사람들은 선명하고 확고하게 변모하는 프랑스를 원한다는 사실을 양극단의 정치인들이 누리는 인기는 말해준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민자 차별적 발언으로 저속한 인기의 이삭을 주워보고자 하는 발스 또한 이민자 출신이라는 것이다. 사르코지가 헝가리 출신이었던 것처럼 발스는 스페인 출신이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한 후 20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문득 발스의 이 무개념 발언들은 얼마 전 국정조사에서 ‘광주의 경찰’ 운운하는 무개념 발언을 내뱉은 조명철 의원을 떠오르게 한다. 탈북자 출신 의원인 그가 그토록 오버해야 했던 이유는 발스 장관이 번번이 돌발성 발언들을 내뱉어, 주목받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이유와 같은 뿌리를 지닌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조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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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의아하게 눈에 들어왔던 첫 광경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동네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골목마다 딱히 상호도 없이 그냥 빵집(Boulangerie)이라고만 써 있는 이 가게들은 아침 7시면 문을 연다. 그로 인해 내가 가졌던 프랑스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프랑스 사람들은 부지런하구나’였다. 금쪽같은 아침 시간에 바게트 하나 사려고 줄을 (대부분 남자들이) 선다는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주식으로 먹는 바게트를 집에서 해 먹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않았는지, 이것은 또 지나친 불합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알고 보니 예로부터 빵은 집에서 구워 먹지 않았다. 마을마다 화덕이 하나씩 있어서 그 화덕에서 마을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아침에 빵을 굽고 그걸 두루 마을 사람들이 나눠먹던 전통이 있었다. 그러다가 삶이 도시화·산업화되면서 마을 공동의 화덕을 동네 빵집이 대신하게 되고, 여전히 남자들이 아침에 가서 그걸 사오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편리와 효율을-프랑스적 사고에는 효율이 개입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넘어서는 전통에서 비롯된 행동 패턴이었다.


옆구리에 긴 바게트 빵 하나를 끼고 길을 가는 모습은 카페 테라스에서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떠는 모습과 함께 일상속의 프랑스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인 것이 사실이다. 매년 최고의 바게트를 선발하고 그걸 만든 빵집은 대통령이 사는 엘리제궁에 바게트 빵을 공급할 수 있는 명예(!)를 누리며 이런 과정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될 만큼 바게트는 프랑스인의 삶에 밀착된 문화적 기호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의 길가에 늘어선 카페 테라스 (경향DB)


그런데 이러한 끈질긴 관습에 변화가 생겨났다. 40년 전에 비해 프랑스인의 바게트 소비가 절반으로 감소한 것이다. 40년 전 하루에 바게트 빵 한 개를 평균적으로 먹던 프랑스인들이 지금은 반개밖에 먹지 않는다. 여성과 청소년 층에서 이 바게트 소비의 감소는 더욱 두드러진다. 10년밖에 이 나라 문화를 겪지 않은 나조차 감지할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주요 원인은 식생활 습관의 다원화에서 찾아진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흰 밀가루와 물만으로 빚어진 가볍디 가벼운 바게트라는 전통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제 좀 더 건강한 식습관을 찾아 다양한 곡물로 만든 묵직한 빵을 찾고 쌀, 메밀, 심지어는 구기자까지 몸에 좋다는 각종 시리얼을 섞어 먹는 방식으로 식사 패턴을 급속히 바꾸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빵연구소가 “빵은 사셨나요?”라고 적은 표지판까지 만들며 바게트 빵 소비 촉진에 나섰고, 이 같은 프랑스에서의 현상을 미국 언론들이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 사람들의 바게트 빵만큼이나 견고하던 자기애는 식어가고 있다. 그들이 자랑하던 사회보장시스템도, 주 35시간 근무도, 8월 내내 지속되는 바캉스도 아니다. 그들이 끈질기게 먹던 빵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라고 보도했다.


(경향DB)


미국의 햄버거와 콜라 문화, 멀건 아메리칸 커피를 비웃으면서도 어느샌가 거기에 물들어가는 프랑스 사람들, 프랑스의 문화적 우월감을 틈만 나면 깎아내리고 싶어하면서도 농익은 프랑스산 포도주와 바게트, 에스프레소 커피를 은근히 흉내내고 싶어하는 미국 사람들 사이에 흔히 벌어지곤 하는 신경전이다. 느림과 여유, 이 두 가지가 전제돼야 나올 수 있는 ‘깊은 풍미’는 신속함과 편리,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생산되는 ‘쉬운 맛’과 오랜 싸움을 벌여왔다. 바게트 소비 감소를 둘러싸고 재빠른 공격을 시도했던 미국, 그러나 별 성과는 없어 보인다. 8월에 프랑스는 모두 휴가 중이라서.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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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도까지 치솟는 살인적 폭염으로 들끓는 올여름, 프랑스 극우파들에게는 간담이 서늘했던 잔인한 여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24일 내무부 장관 마누엘 발스는 극우단체 ‘프랑스의 과업’과 ‘젊은 국가주의자’를 강제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7월 초 이미 3개 극우단체의 해산이 발표된 바 있으니, 한 달 사이 극우단체 5개가 사라진 셈이다. 


발스 장관은 “노골적으로 외국인 혐오와 유태인 혐오를 선동하고, 나치의 폐해를 부인하며, 나치와 협력했던 프랑스의 비시 정부와 나치 협력자들을 찬양하고, 비시 정부의 수장 페탕에게 경의를 바쳐왔다”고 이 단체들을 해산하는 이유를 밝혔다.


극우단체 ‘프랑스의 과업’의 출발은 한 집안사에서 시작된다. 설립자 피에르 시도스의 아버지는 나치 협력자였다. 시도스의 아버지는 1945년 해방을 맞이해 총살당하고, 피에르 시도스는 두 형제와 함께 1949년 ‘젊은 국가’라는 이름의 극우정당을 창당한다. 


“공화국 전복”을 표방하던 이 정당은 1958년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된다. 그리고 1968년, 프랑스의 모든 진보적인 생각들이 불꽃처럼 찬란하게 거리에서 작렬하던 그 시절, 그는 ‘프랑스의 과업’을 창립한다. ‘프랑스의 과업’은 테러와 린치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캠프도 갖추고 군대조직처럼 운영되어 왔다. 함께 해산된 ‘젊은 국가주의자’는 ‘프랑스의 과업’의 청년조직으로 행동대원들을 키워내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두 단체의 대표들이 모두 극우정당 국민전선(FN)에서 축출당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각 히틀러를 향해 경례하는 자신의 사진을 유포하고, “나는 반유태주의자”라고 공식 석상에서 선언한 것을 이유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에서 쫓겨난다. 분명, 이들과 같은 색깔을 가진 극우정당이 이들을 축출해야 했던 이유는 뭘까. 아버지 르펜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받은 마린 르펜이 전략적으로 인종주의를 자제시키고, 반유럽·반금융자본주의·실업문제 등 보다 대중적인 이슈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뤄진 조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1881년부터 존재해온 인종차별금지법 때문이다.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은 정당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5개 극우단체들을 일시에 공중 분해시킬 수 있었던 근거도 바로 이 법이다.


100년도 더 된 법이 있었음에도, 그 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조직이 오늘에서야 철퇴를 맞게 된 까닭은 뭘까. 그것은 우파의 대동단결을 가능케 했던 ‘동성애자 결혼법’을 둘러싸고 폭발하던 우파의 정세와 관련이 있다. 지난해 말부터 가톨릭 세력, 극우세력, 동성애 혐오세력 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30년 만에 대규모 우파 시위대를 형성한다. 이들 틈에 끼어 과격한 행동을 일삼던 극우단체들은 점점 대담하게 몸집을 키웠고, 급기야 공중파 방송에 초대되어 자신들의 놀라운 얼굴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지난 6월, 이 극우단체 회원들이 인종차별 반대단체의 일원인 한 청년을 살해해 이들은 종말을 자초했다.


동성결혼 합법화 방안 반대 시위에 참석한 프랑스 여성 (로이터)


한국의 극우파들에게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우상이 있다면, 프랑스의 극우파들에게는 히틀러와 나치에 협력한 비시 정부의 수반 페탕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던 파시스트의 수장과 그들에게 협력하던 하수인들을 숭배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반면 프랑스에는 19세기에 이미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 이들이 사회가 용인하는 선을 넘어설 경우 이들을 단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은 우파들의 처절한 반대에 부딪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큰 차이점이 있다. 차별금지가 아직 상식에도 이르지 못한 우리 사회, 일베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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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을 연상시키는 스산한 날씨가 파리의 초여름을 완전히 몰수해 버리더니, 7월에 접어들며 드디어 맑은 하늘이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께 상공에 등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7월은 바캉스 시즌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삶의 가장 치열한 순간이 펼쳐지는 때이기도 하다. 넉넉한 태양을 누릴 수 있는 남쪽으로 사람들은 이동하고, 거기선 수많은 축제가 열린다. 그중에서도 올해 67회를 맞는 아비뇽축제는 가장 큰 이목을 집중시키는 여름 축제의 꽃이다. 


아비뇽축제를 세계 최대의 연극축제로 등극시킨 건 아비뇽 OFF. 초대받지 못한 극단들이 자비를 들여 비행기를 타고, 트럭에 짐과 소품을 구겨 넣고 인구 9만명의 작은 도시로 몰려온다. 올해도 아비뇽 OFF에 참가하는 극단 수는 신기록을 갱신했다. 20개국에서 온 1066개의 극단은 1258편의 공연을 7월 한 달간 올린다. 전 세계 공연관계자들은 물론 열정에 가득 찬 유료 관객만 230만명에 이르는 아비뇽 무대에 오르는 것은 세상 모든 연극인들의 꿈. 한국에서도 3개의 극단이 올해 이 꿈의 무대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연극의 도가니에는 웅대함과 화려함만이 꿈틀거리진 않는다.


프랑스극단의 거리연극


늘어나기만 하는 수요에 비해 이 작은 도시가 제공할 수 있는 공연장 숫자는 제한된 탓에 학교, 창고, 주차장 등 아비뇽 내 모든 널찍한 공간은 축제 중에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이 때문에 형편없는 시설에도 불구, 극단들은 높은 대관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연이 끝나고 남은 시간, 배우들은 골목을 누비며 관객들에게 공연을 홍보하고, 거리의 모든 벽은 숨 쉴 틈 없이 포스터로 메워진다. 아비뇽축제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자기를 알리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곳곳의 축제와 공연장으로부터 초대받으며 탄탄대로를 일구는 극단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격렬한 예술이 남기는 피로와 더불어 비참함을 안고 떠나야만 하는 극단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뇽으로 찾아드는 관객과 세계 연극인들의 아비뇽을 향한 열정이 줄어든 적은 없었다.


단 한 번 아비뇽축제가 취소된 적이 있다. 2003년 프랑스 문화예술인들의 생존과 더불어 그들이 누리는 찬란한 영광에 대한 보증까지 맡아왔던 공연영화예술인 실업급여제도가 대폭 수정된 것에 저항하기 위해 프랑스 연극인들이 전면 파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무려 750개의 공연이 단번에 취소됐고 수천, 수만개의 꿈들은 일년 뒤로 유보된다. 가장 큰 연극인들의 축제는 가장 좋은 연대와 투쟁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입증한 사례였다. 


‘경제위기는 문화를 덜 중요하게 할 수 없다. 경제위기는 문화를 더욱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만든다. 문화는 사치가 아니며, 경제위기라서 던져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 그것은 미래이며 희망을 창조하기 위한, 우리 모두를 위한 세상을 만드는 도구다’라고 말한 사람은 사회당 대선 후보 시절의 올랑드였다.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문화와 교육에 더욱 큰 투자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었다. 그러나 집권 후, 사회당 정부는 지난해 놀라운 수준으로 문화예산을 삭감한 이후(정부 예산 대비 0.68%), 다시 내년도 문화예산의 대폭 삭감을 예고하고 나섰다. 무려 30년 이전으로 후퇴를 감행하려 드는 무지막지한 사회당 정부의 선택에 예술인들은 강력한 경고장을 내민다. 프랑스 공연예술계 노조들이 일제히 토요일 아비뇽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AP연합)


“매력적이고 역동적이며, 열정적인 나라는 삶이 비실대며 떠나가는 나라보다 빚을 더 잘 갚을 수 있다”고 했던 올랑드 자신의 말을 더없이 잘 입증하는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이들은 연극하며 또 투쟁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어쩌면 아비뇽축제가 누리는 오늘의 영광을 이룬 두 가지 불가분의 요소이기에.



목수정|작가, 파리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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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프랑스의 수능인 바칼로레아 시험이 치러졌다. 일주일간 치러지는 이 시험은 바칼로레아의 꽃이라 불리는 철학시험으로 문을 연다. 인문, 자연, 그리고 경제, 사회로 나뉜 각 분야의 학생들에겐 3개의 질문이 주어지고 학생들은 그 중 하나를 택하여 답을 쓴다. 무려 4시간 동안. 철학시험이 치러진 다음날, 언론과 방송들은 학자들을 초대해 각각의 질문들에 토론의 장을 벌인다. 모범답안을 제시하려는 시도이기보다는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후, 곧 세상에 발을 디딜 학생들이 철학적 고찰로 머리를 환기시켰던 것처럼, 사회 전체가 올해의 철학 문제를 들고, ‘사고를 자극시켜보는 경험’을 공유하는 일종의 철학주간 의식에 가깝다. 올해에는 올랑드 내각의 장관들이 기꺼이 자신들이 받은 바칼로레아 철학 점수를 공개하는 작은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는데, 철학과 교수 출신인 교육부 장관 페이용의 낮은 점수, 외무부 장관 로랑 파비우스가 내놓은 전대미문의 점수(20점 만점) 등이 호기심을 모으기도 했다.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바칼로레아 고사장의 입구 (경향DB)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은 시민사회에 걸맞은 주체적 시민 양성을 목적으로 19세기에 도입됐다. 따라서 철학문제는 언제나 한 개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에서 빚어지는 문제를 중심으로 제시돼 왔다. 올해 제시된 9개의 문제 중 눈에 띄는 한가지는 “정치에 무관심하면서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이다. 이 질문은 법과 도덕,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명확히 구별지을 것을 요구받는 프랑스적 사고를 훈련시키는 동시에 도덕적 정당성만으론 시민의식이 완성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쪽에 담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바칼로레아 시험 모습 (경향DB)


이번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은 올해 처음 열린 ‘철학축제’와 맞물리기도 했다. 문화부와 교육부가 공동주관한 ‘철학축제’는 토론회와 방송, 영화상영, 철학책 출간, 전시행사 등이 함께 펼쳐지는 학술문화 축제로 우리의 일상에 철학에 대한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켜 현대의 삶에 철학의 자리를 마련하고, 과거와 현재의 위대한 작가와 사상가들의 보편적이고 정제된 사고들을 나누게 하기위해 만들어졌다. 바칼로레아의 철학시험을 끝으로 3주 동안 이어진 축제 기간동안, 파리지하철 안에는 철학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거기엔 마하트마 간디의 한 문장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발견하는가? 우리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은 명상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다.” 마치 우리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그 철학이 가져다준 명징한 사고가 결국 올바른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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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철학축제를 열고 행동의 중요성을 지하철 포스터를 통해 알리는 이 사회가 반드시 건강한 시민정신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프랑스 사회는 아프고 뒤틀려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정부는 철학이라는 처방을 대량 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들의 생각을 희롱하고 조작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으면서 그에 대해 부끄럼조차 갖지 못하는 국가기관을 둔 또 다른 사회, 역사와 국어, 철학 따위를 학교에서 밀쳐내는 사회는 과연 어떤 미래를 가지게 되는 것인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들이 부정을 보고 궐기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합니다. 정말로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학생들이 일어선 것은 참으로 옳은 일입니다. 또 그런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나는 물러나야 마땅합니다.” 이런 바른 말을 한 사람은 3·15부정선거로 다시 권좌에 오른 이승만이었다. 그는 경무대로 찾아온 시민,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바로 하야를 선언했다. 암울했던 그시절, 청년들의 분노는 말년의 이승만에게 남아있던 한줌의 지성을 일깨웠고, 민주주의는 새 희망을 얻었다. 지금 우리의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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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에게 애초부터 그런 기질이 없었던 건 아니다. 거리에 버려진 물건 주워서 쓰기 챔피언이고, 벼룩시장이라는 꼬질꼬질한 잡동사니 시장을 일찍이 관광지로까지 승화시키기도 했으며, 사는 것보다 뚝딱거리며 고치고, 만들어 쓰는 걸 좋아해서 백화점 지하가 통째로 자재 판매코너가 되기도 하는 브리콜라즈(집안의 목공일)의 천국이니까.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구입한 소비자의 51%가 중고를 산 바 있다는 통계는 평소의 기질을 뛰어넘은, 급격한 사회적 흐름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에 충분하다.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경제위기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사회와소비 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52%의 프랑스인들은 과거의 과시적 성향과 절연하고, 보다 ‘좋은 소비’를 열망하며 적게 소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다. 이들이 말하는 소위 ‘좋은 소비’란 에콜로지스트로서 환경보호를 극대화하는 소비,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소비, 1회용품이 아닌 오래 쓸 수 있는 상품 위주의 소비 등을 말한다. 유기농·공정무역·중고품 이 세 가지는 오늘 프랑스인들의 소비패턴을 규정하는 키워드가 됐다. 프랑스 소비자들의 친환경적·합리적·이성적인 소비로의 변화는 경제적 상황의 위축뿐 아니라 개인적인 신념에 따른 변화라고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개인 수요자와 공급자를 쉽게 연결해주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중고시장의 성장은 극대화됐다. 이러한 프랑스 사회의 소비패턴에 불어온 새 바람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연구소 측은 전망한다.


프로방스 지역 릴 쉬르 라 소르그의 길가에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프랑스 최대 벼룩시장 생투앙 (사진제공 : 권순복)


비드 그르니에(Vide Grenier)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비드 그르니에는 다락방 비우기라는 말 그대로, 집 안에 굴러다니던 잡동사니들을 끌고 나와 길에 내놓고 헐값에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거의 모든 동네에서 봄, 가을이면 주말 한나절 동안 비드 그르니에가 열려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을 1~2유로에 팔아넘긴다. 엄마, 아빠가 물건들을 팔고 있으면 아이들도 그 옆에 좌판을 펴고,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 인형 등을 판다. 한쪽에선 집에서 구운 케이크와 커피, 집에서 빚은 사과주를 들고 나와 팔기도 하면서 비드 그르니에는 그야말로 마을 잔치가 된다.


약 7~8년 전부터 비드 그르니에의 숫자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급격한 증가를 보도한 RUE89지는 이 비드 그르니에를 “모든 것이 뒤섞이며 낭비에 저항하는 투쟁의 장”이라 묘사한다. 모든 계층, 모든 종류의 물건이 한자리에서 만나며 이들은 결국 하나같이 물건을 재활용하는 것에 바쳐지는 혼합의 축제이자 소비에 반하는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는 것. 비드 그르니에가 차지하는 경제 비중이 커지자 여기에 슬쩍 끼어들어 세금도 안 내고 장사하는 전문업자들의 탈세가 문제가 돼 최근에는 개인이 연 1회 이상 비드 그르니에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감지되는 새로운 경향의 진원지는 결국 경제위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단지 지갑이 전보다 얇아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들이 겪는 위기의 실체는 결국, 부도덕한 자본의 흥청거림에 모두가 놀아난 것이라는 자성이 사회 안으로 스며든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 중고시장의 고속성장. 그것은 소비시장 전체의 구조적 변화를 대변하며 이는 과소비에 대한 완강한 심리적 거부와 협력적, 합리적 소비의 출현 속에서 확고한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고 ‘반소비주의’는 이 새로운 경향의 슬로건이라고 제르피 연구소는 밝힌다. ‘좋은 소비’와 ‘중고의 무한 재활용’은 자본의 독재가 파괴해 버린 것들을 되살려낼 수도 있을까? 비드 그르니에의 느긋하고 평화로운 축제가 지금처럼 계속 사람들을 매혹한다면, 축제는 무덤에서 진주를 캐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시장 (경향DB)


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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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넘고 넘어, 드디어 프랑스에서 첫번째 합법적인 동성애자 결혼식이 지난 수요일 저녁(29일) 남프랑스의 도시 몽펠리에에서 열렸다. 사회당 출신의 여성시장 엘렌 만드루가 주례를 선 가운데, 몽펠리에 시청에서 치러진 이 역사적인 결혼식엔 500여명의 하객이 참석했고, CNN에서부터 러시아 방송에 이르는 234명의 기자들이 몰려와 이 멋진 순간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프랑스 첫 동성애자 결혼식을 치르게 된 몽펠리에시는 “프랑스에서 가장 동성애자에게 우호적인 도시”로 선언하고, 이날의 결혼식을 시민들의 축제로 만들었다. 


프랑스 첫 동성결혼 커플인 브뤼노 부알로(왼쪽)와 뱅상 오탱이 29일 몽펠리에 시청에서 결혼식을 마친 뒤 웃고 있다.(뉴시스)


이날의 주인공, 뱅상의 어머니는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하다”라며 감격을 표현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우린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오늘은 축제의 날이다. 나는 내 아들의 결혼식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또 다른 주인공 브뤼노의 어머니 눈엔 감격의 눈물이 가득했다. 이들의 결혼식은 두 사람의 결합이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해 공인되는 것임과 동시에 차별에 맞서 싸워왔던 이들이 긴 투쟁 끝에 승리의 열매를 거머쥐는 것이기도 했다.


주례를 맡은 몽펠리에 시장 엘렌 만드루는 “진보하는 사회는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끊임없이 싸우는 사회”라고 말하며, 이날의 감격을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다. 결혼식이 열린 시청 앞에는 수천의 인파가 모여이날의 축제를 함께했다. 결혼식 전날까지 반대집회를 벌이고, 협박전화를 하던 반대세력들도 이날만큼은 가시적인 행동을 자제했다.


이제 역사 속에 남게 된 그들의 이야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뤼노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 의심도 없는 이성애자로 살아왔던 뱅상은 브뤼노를 통해 처음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고, 둘의 사랑이 시작되자마자 부모에게 그를 소개시켰다. 그의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행복한지 아닌지였을 뿐. 뱅상의 부모는 즉각 브뤼노를 만났고, 두 팔로 그를 받아들였다. 브뤼노는 16세 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고백했고, 며칠 뒤 어머니는 무지개가 그려진 티셔츠를 사오셨다. 함께 게이 프라이드 축제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의 어머니는 현재 몽펠리에의 동성애 자녀를 둔 부모 모임을 이끌고 있으며, 매년 “내 아들은 게이다. 난 그것이 자랑스럽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신다. 아들의 결혼은 그의 어머니에게도 감격스러운 승리의 열매였다.


지난 주말까지도 동성애 반대세력은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경찰추산 15만명,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의 인파는 파리 시내를 누비며 그들의 진정한 속내를 드러냈다. 동성애자 결혼에 반대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차별이 있고, 기득권이 소수를 위해 유지되는 바로 그런 사회라는 것을. “우린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통을 원한다.” 이들의 슬로건은 막판으로 치닫는 우파 시위대의 본심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날 시청사 앞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자들이 시위를 벌이자 사법경찰들이 제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789년에도, 1968년에도 혁명의 물결이 온 세상을 덮으며 불평등을 깨부수고, 더 넓고 세심한 민주주의가 시대정신에 스며드는 그 순간에도 그 흐름을 거부하는 자들은 존재했다. 역사가 새로운 장을 기록하는 이 순간, 언제든지 있어왔던 반동 세력은 그들의 마지막 화염을 거리에 내뿜었다. 시위대 앞에 서서 톡톡히 정치적 이득을 챙기던 우파 정당의 대표도 이번이 자신이 참가하는 마지막 시위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 만큼, 당분간 그들의 섬뜩한 슬로건을 거리에서 마주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번 주말엔 레즈비언 커플이 같은 몽펠리에 시청에서 축제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축제의 빛은 파시스트들의 저주를 이기고 말 것이다.


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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