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좋아하는 용어는 아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기준으로 요즘 한국사회를 본다면 참담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5위인 나라에서 국가정보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따지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미국의 ‘워터게이트’를 능가하지만 1년이 돼가도록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보장을 희생해가며 막대한 국방비를 쏟아부었음에도 군은 작전권을 미국이 갖고 있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정부는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초일류기업 삼성은 아직도 노조를 적으로 몰고 있다. “툭 하면 파업할 것”이라며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한 여당 의원의 사고방식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정치, 경제, 사회의식 중 어느 하나라도 세계 보편적 기준을 충족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한때 일본 정보기술(IT)산업의 독자적인 진화양태를 반쯤 놀리는 용어로 쓰이던 ‘갈라파고스화’는 요즘 한국사회의 퇴행을 설명하는 데 오히려 더 적합해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시민권을 얻으려면 ‘반북’과 ‘반일’을 바닥에 깔고 들어가야 한다. 정권은 카드판의 ‘조커’처럼 수세에 몰리면 어김없이 ‘종북’ 카드를 꺼내 판을 흔든다. 북한에 호의적인 태도나 호기심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정권 비판 세력까지도 종북으로 버무려 몰아붙이는 수상한 시절이 됐다. 숱한 의혹이 해명되지 않은 채 공판이 진행되고 있는 천안함 침몰사건은 ‘종북’ 여부를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혹은 근세 일본에서 기독교 신자를 탄압할 때 쓰던 ‘후미에(踏繪·신자인지 구분하기 위해 밟도록 한 예수 그림)’가 됐다. 백번 양보해도 잘 납득이 안 가는 군 당국의 발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간 ‘대한민국 국민’ 자격을 박탈당할 우려가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3년 11월29일(출처: 경향DB)


‘반일’ 카드는 부담도 없을 뿐 아니라 위력적인 ‘꽃놀이패’다. 한국에 온 탈북자가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사회의 반일정서는 도를 넘어섰다. 반일정서가 고양된 데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불철저한 사과와 반성이 근본원인이지만, 해방 후 ‘친일청산’을 못한 스스로의 잘못도 크다. 하지만 우리는 ‘내 눈의 들보’를 보려 하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보건 ‘반일’이면 용서가 되니 모처럼 방일한 정치인들이 출처불명 일본 주간지 기사를 이유로 오찬 행사에 불참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반북’과 ‘반일’로,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한 북한·일본과 대화가 단절됐다. 얼마 전 화산폭발로 새로운 섬이 일본에서 탄생했듯, 마그마처럼 솟구치는 반북·반일 에너지는 한국을 동북아의 외딴 섬으로 바꿔놨다. 아프리카 모리셔스 섬에 살다 멸종된 도도 새의 날개처럼 ‘섬 주민’들의 생각도 급속히 퇴화해간다. 기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꿈은 10년 전만 해도 현실감을 띠었지만, 지금은 앞으로 몇십 년이 지나도록 이루지 못할 것 같다.


글로벌한 감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제 인권에 대한 가치조차 망각해 버린 듯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의 서거에 박근혜 대통령은 뒤늦게 추도문을 내고 조문사절로 국무총리를 보내는 데 그쳤다. 부친의 정적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연상돼서였을까? 한때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취했다고 평가받던 나라지만 요즘 들어 한국에 자긍심을 느낀다는 이들은 주변에 많지 않다. 겨울 스모그처럼 짙은 체념과 자조, 냉소가 동북아의 새로운 섬, 한국에 깔려 있다.


서의동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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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순 ‘코리안타운’으로 불리는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의 한 공연장에서 ‘K팝 대 NK팝’ 대결이라는 이벤트가 벌어졌다. K팝은 물론 한국음악이지만, NK팝은? 놀랍게도 북한(North Korea)음악이다. 60여명 남짓 모인 행사는 ‘북한판 소녀시대’로 불리는 모란봉악단과 한국가요를 비교하며 한류전문가와 북한음악 마니아가 해설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최 측은 대결 결과 NK팝의 승리를 선포했다. 행사 자체도 경악할 일인데다 ‘한류의 성지’인 신오쿠보에서 벌어진 것도 충격적이다. 일본 내 극소수 ‘사회주의 마니아’나 ‘북한 오타쿠’들의 이색 취미라고 넘어가기엔 찜찜하다. 


일본사회의 NK팝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등장한 모란봉악단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란봉악단은 K팝 걸그룹을 방불케 하는 대담한 의상에 북한에서 금기였던 미국 팝송을 불러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지만, 일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한·일 관계 악화로 K팝붐이 꺼져가던 시점과 겹친다. 올들어선 일본 민영TV가 NK팝을 다루는가 하면 인터넷 언론들은 모란봉악단을 소개하는 기사를 올리기도 한다. 일본의 북한전문 인터넷매체들은 김정은 체제에는 비판적이지만 북한음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 않다. 한글에 익숙지 않으니 체제선전 일색인 가사는 관심대상이 아닌 듯하다. NK팝의 신오쿠보 상륙은 한·일 갈등으로 혐한(嫌韓)정서가 심화되는 일본 사회의 단면이다. 


북한 모란봉악단 신년 축하공연(출처 :연합뉴스)


얼마 전 만난 지한파 기자는 “한·일관계가 이명박 정부 말기에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그의 대학생 딸도 최근 친구들과 한국 비판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에 인기를 모으는 구왕실 출신의 우익 논객 다케다 쓰네야스(竹田恒泰)는 “중국은 강대국이니 일본이 전략적으로 대응해야겠지만, 한국은 경제 규모에서 도쿄보다도 작으니 아예 무시하는 편이 낫다”며 ‘한국포기론’을 설파한다. 


보통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는 해방 이후 수십년간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다 2003년 TV드라마 <겨울연가> 방영을 계기로 한류붐이 일면서 급격히 상승해 지난해 초 절정에 달했다가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계기로 급전직하했다. 겨울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일본 사회에선 관계회복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결과적으로 더 나빠졌다. 지난해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K팝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을 때 “지금 분위기는 일과성이다. K팝은 일본에 확고히 자리잡았으니 곧 회복될 것”이라고 낙관하던 앞의 기자는 “잘못 이야기한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점심시간을 전후로 도쿄시내 전철 매점에는 연일 반한기사를 싣는 석간 타블로이드신문의 지면을 소개하는 광고문이 붙는다. ‘한국경제 곧 침몰’ 같은 황당무계한 제목들이 멀리서도 선명하다. 도쿄시내에만 수천개에 달하는 역구내 매점들이 오후만 되면 ‘반한(反韓)’ 광고탑이 된다. 전철에 오르면 ‘반한’ 기사들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는 주간지 광고들과 마주친다. 


한국에 대한 반감은 납치한 일본인들을 돌려주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에 다를 바 없는 수준이 돼 버렸다.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의 회담은 외면하면서 미국, 중국, 영국 등을 방문해 일본을 비판하는 것에 일본에선 ‘고자질(告げ口)외교’라는 극언까지 나온다. 이 반한정서는 관계 정상화가 되더라도 쉽게 사라지기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의 반일정책으로) 일본 사회에 ‘재특회 예비군’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는 어느 한국 전문가의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서의동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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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러운 일본 2014.06.05 10:00 신고
    모란봉악단 맴버들중에서 저는 김설미가 제일 예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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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자국을 위협하는 집단으로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에서 충돌을 빚고 있는 중국이나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을 들고 있지만 그보다는 도쿄전력, 정확히는 ‘주식회사 체제인 도쿄전력’을 더 현실적인 위협요인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원자력발전은 ‘국책민영(國策民營)’ 구조로 운영돼 왔다. 정부가 중장기적인 원전정책을 세우면 민간기업이 원전을 짓고 돌리는 식이다. 정부는 전력회사의 지역독점 체제를 보장하고 공사비는 전기요금으로 벌충하도록 지원해왔다. 발전비용에 일정한 이윤을 곱하는 총괄원가방식으로 전기요금이 산정되는 만큼 전력회사 입장에서는 원전을 지으면 지을수록 유리하다. 또 하나 특징은 원전사고가 날 경우 전력회사가 배상할 수 있는 한도액이 고작 1200억엔(약 1조3000억원)으로 원자력손해배상법에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처럼 초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원조’할 수 있다고는 돼 있지만 구체적 규정은 없다. 원전사고 직후 법개정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앞에 있는 도쿄전력 직원들 (출처: AFP연합)

이 기묘한 시스템하에서 전력회사는 두 가지 행동패턴을 보여왔다. 우선 원전을 계속 지으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일본경제가 1990년대에 정점을 찍은 뒤에도 일본은 원전 신증설에 매달렸다. 지금도 아오모리(靑森)현 오마(大間) 원전을 비롯해 3기가 건설 중이고, 9기는 계획 중이다. 또 하나는 배상한도가 작고 정부의 지원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대규모 사고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해왔다는 점이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전까지 일본의 전력회사들은 대규모 사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돼 왔다”고 지적한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도쿄전력은 기업논리를 따라 움직였다. 방사능 오염수 문제에 대비해 원전건물 둘레에 차수벽을 설치하자는 지적이 제기됐고, 이에 따라 사고 두 달 뒤 총리실 주도로 차수벽 설치계획이 거의 만들어졌다. 하지만 주주총회가 임박하자 도쿄전력이 막대한 공사비가 드는 이 사업의 발표연기를 요청했고, 차수벽 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정부인사가 의문의 경질을 당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방사능 오염수 처리 현장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다. 극도로 위험한 작업환경임에도 도쿄전력이 비용절감을 위해 작업원의 일당을 깎아버려 불만을 느낀 작업원들이 현장을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쿄전력은 “인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강변해오다 지난 28일 히로세 나오미(廣瀨直己) 도쿄전력 사장이 처음으로 “작업원 확보가 곤란하다”고 실토했다. 민간기업 생리상 이익전망이 없는 사고처리에 돈을 제대로 쓸 리 만무하지만, ‘사고처리의 민영화’가 환경재앙을 확대시키고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도쿄전력은 최근 니가타현 가시와자키가리와(柏崎刈羽) 원전의 재가동을 서두르고 있다. 화력발전 대신 원전을 돌리면 비용이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이 발전소는 2007년 7월 발생한 규모 6.8의 지진으로 변압기가 불에 타는 사고를 겪었고, 발전소 부지가 활성단층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두부 위에 지어진 원전’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지만 도쿄전력은 안전하다고 강변한다.


이런 꼴을 보다 못해 도쿄전력을 파산시키자는 지적이 나오지만 원전에서 이익을 챙겨온 ‘원전 마피아’들의 입김 때문인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식회사 도쿄전력’이라는 괴물을 그대로 두는 한 일본은 두고두고 인류에 ‘메이와쿠(迷惑·폐)’를 끼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서의동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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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 일본 국민들을 위협하는건 다른 나라가 아니라 도쿄전력같은 거대기업과 일본정부입니다.
    국민성 높은 일본도 고위층으로 가면 왜 인간들 하는짓이 전부 똑같은지...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언행은 정부와 고위층들이 하고 있는데 죄없는 일본 국민들이 욕먹고 있는 상황이라서 안타까울뿐. 어떻게좀 갈아 엎었으면 좋겠습니다.
  2. 도쿄전력 숨은 복병인가 자국민들 쥑이고 나라 말아먹을수 있는 초거대 아름다운 집단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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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아베노믹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MB노믹스’와 닮은꼴이다. 고환율(엔저)을 유도해 수출 대기업을 지원하고 건설투자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방식은 다를 게 없고, 그 부작용으로 서민들의 생계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비슷한 흐름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아베가 가리키는 방향 혹은 MB시대의 한국과 비슷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지난달 막을 내린 NHK 아침드라마 <아마짱>은 일본의 ‘속살’이 한국 사회와 다르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도쿄의 여고생인 아키는 여름방학에 어머니의 고향인 도호쿠(東北) 이와테(岩手)현의 작은 어촌마을에 잠시 놀러 왔다가 아예 눌러앉는다. 도쿄의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받으며 우울한 나날을 보냈던 아키는 인심 넉넉한 어촌의 커뮤니티에 편입되면서 어둡던 성격이 확 바뀐다. 아키의 어머니는 가업인 해녀(아마) 대신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1980년대 중반 고향을 등지고 상경했다가 좌절했지만, 아키는 스스로 외할머니의 뒤를 이어 해녀가 된다. 아키는 이곳에서 지역 아이돌로 활동하다 도쿄로 잠시 되돌아가 걸그룹에 편입된 뒤 영화의 주연을 맡기도 하지만 3·11 동일본 대지진이 터지자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아마짱 일본 여고생 해녀 드라마 (출처 ;경향DB)



‘드라마가 끝나 낙이 없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붐을 일으킨 아마짱의 영향으로 촬영지인 이와테현 구지(久慈)시에는 관광객이 넘치고 해녀를 자원하는 젊은 여성들도 등장하고 있다. 도호쿠 지방의 투박한 사투리는 올해 일본의 최대 유행어가 됐다. 천재작가 구도 간쿠로(宮藤官九郞) 각본의 <아마짱>은 ‘지모토시코(地元志向)’로 불리는 지방지향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도쿄에서 한창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 귀향한 아키는 “아직 한창이니 도쿄로 돌아가자”는 연예기획사의 제안을 거절한 채 지역에서 해녀 겸 지역 아이돌 생활을 하기로 한다. 고도성장기인 1980년대 대도시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고향을 등진 어머니와는 정반대의 선택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이돌그룹은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학교와 학원을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한국 고교생과 달리 주인공은 학교를 마치면 해녀복으로 갈아입고 바다에 뛰어들어 성게를 따고, 때로는 친구와 공연 연습을 한다. 대학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서울 일극주의’에 ‘좋은 대학’이 인생을 가르는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비현실적인 전개이지만 어쨌거나 매일 15분씩 6개월간 방영된 <아마짱>은 일본 사회를 열광시키고 원기를 불어넣었다. 


아베노믹스는 효율성과 경제력, 대기업과 도쿄를 중시한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막대한 돈이 도쿄의 인프라 정비에 쏟아부어질 예정이고, 신칸센으로 1시간30분 걸리는 도쿄~나고야(名古屋)을 40분으로 단축하는 새로운 철도 건설도 추진된다. 단축된 시간에 비례해 돈과 사람이 도쿄로 빨려들 것이라는 걱정들도 나온다. 하지만 <아마짱>에 대한 열광에서 보듯 일본인들은 아베노믹스의 잣대로 재기 어려운 지역과 고향의 가치를 중시해왔고 이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 지역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정류장이 아니라 경제·사회적으로 독자성을 갖춘 삶의 공간이다. 같은 성적이면 도쿄 대신 지역의 대학으로 진학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유학비용 부담도 있지만 ‘지역에서의 삶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규모·인구가 다르고, 갈수록 ‘도시국가’화되는 한국에서 <아마짱>과 같은 드라마는 만들어질 수 없을지 모른다. <아마짱>의 ‘귀거래사’는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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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돼 일본 열도가 열광에 빠져있던 9일 오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고발단 대리인인 가와이 히로유키(河合弘之) 변호사는 도쿄지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분노했다. “치사하지 않나. 도쿄올림픽 유치의 축제 분위기를 틈 타 불기소 결과를 발표하다니….”(도쿄신문 9월11일자 보도)


2011년 3월 원전 사고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고발된 간 나오토 전 총리와 가쓰마타 쓰네히사 전 도쿄전력 회장 등에 대해 검찰은 이날 불기소 처분을 결정했다. 10여m 높이의 쓰나미가 닥쳐올 것으로 예상하기 어려웠고, 안전대책에서도 형사책임을 질 정도의 과실은 없었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방사선량이 높다는 이유로 현장조사를 생략했으며, 도쿄전력 관계자들에 대한 가택수색도 실시하지 않아 부실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 사고조사위원회가 “도쿄전력과 규제당국이 안전대책을 의도적으로 미뤘다”며 인재(人災)라고 결론지었지만 검찰은 외면했다. 인류사적 환경재앙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됐다. 


일본 경제산업상(오른쪽) 후쿠시마 제1원전 방문



검찰의 뜻대로 불기소 소식은 ‘도쿄올림픽 유치확정’ 환영 분위기에 묻혀버렸다. 일본인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瀧川クリステル)과 장애인 육상선수 사토 마미(佐藤眞海)의 발랄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프레젠테이션 장면에 열광했다. 다키가와가 프레젠테이션에서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손님을 극진히 모신다’는 일본어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독특한 손짓으로 표현한 장면이 TV에 반복해 등장하며 일본인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물론 일본인들의 감정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가 붕괴한 지 20년이 되도록 일본에는 온국민이 박수치며 기뻐할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잃어버린 20년’간 1995년 고베(神戶)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수 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장기불황 속에 ‘전국민 중산층’ 사회가 격차사회로 퇴행했다.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됐고, 65세 이상 인구가 3000만명을 넘는 초고령화 사회는 활력을 잃었다. 후쿠시마 사고원전에서 대량의 오염수가 유출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근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타자의 시선에 민감한 일본인들은 국제사회가 ‘이런 일본’을 올림픽 개최지로 선택해준 것에 감격했을 것이다. 올림픽이 일본 사회 전반에 스며든 무력감을 털어내고 자신감을 되찾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느껴진다. 무력감이 우경화의 자양분이 되는 일본의 현실을 감안하면 나쁠 이유가 없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유치기원 행사


올림픽 개최라는 기회를 살려 일본에 몇가지 주문을 하고 싶다. 우선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수습에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국제사회의 불신을 사고 있는 도쿄전력을 대신해 정부가 사고수습과 오염수 대책에 매진해야 한다. 아베 총리가 IOC 총회를 앞두고 내놓은 대책도 그리 미덥지 않고, 원전사고에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풍토에서 기대하기 쉽진 않지만. 


도쿄 코리안타운 일대에서 벌어지는 반한시위의 행렬도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 개최지에서 인종차별 발언이 횡행하는 광경은 볼썽사납다. 한국, 중국과의 갈등에도 올림픽 개최국다운 태도로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냄새 나는 곳에 뚜껑을 덮어둔’ 채 손님들을 극진히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7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서의동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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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외교가 처음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일본이 하반기 중 정상회담을 열 것을 제안해 왔고, 그에 답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관성대로라면 거부하는 편이 손쉽고 명분도 있다. 당장, 8·15 추도사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아시아 각국에 대한 ‘가해와 반성’을 빼먹은 일을 들어 ‘올바른 역사인식을 그렇게 강조했건만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면 그걸로 족하다. 정부는 9월 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회담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을 비쳤다. 하지만 어렵고 험한 상대와도 만나 대화를 통해 타협을 도출하는 것이 외교라고 한다면 이런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바람직스럽게 보이지는 않는다.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정권은 앞으로 별일이 없다면 향후 3년은 지속된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좋든 싫든 어딘가에선 마주치게 돼 있으니 그럴 때마다 얼굴 붉히며 외면하는 것도 겸연쩍은 일이다. 최근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가장 밉고, 보기 싫은 상대이다. 그렇다고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나라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 독재국가에 한국을 침략한 북한과도 최근 교류의 끈을 다시 잇기 시작했는데, 일본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일본 아베 총리 731’ 훈련기에 탑승 (AFP연합)


박근혜 정부가 일본을 외면하니 일본도 한국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논의하는 총리 직속 전문가회의는 ‘한반도 유사시’에 자위대를 출동시키자는 이야기마저 공공연히 거론한다. 8·15 전에 한·일관계가 복원됐다면 아베가 전몰자추도식에서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 부전(不戰) 결의를 빼지 않았을지 모른다. 최소한 악수하고 있는 동안에는 허리춤에서 총을 빼들 수 없듯,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지속했더라면 일본이 ‘안면몰수’의 상태로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부친의 일본 이름이 거론되는 일을 겪으면서 박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전후(戰後)체제의 탈피를 내세우고, 과거의 식민지배와 전쟁이 잘못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아베 정권과 섣불리 대화를 가질 경우의 리스크도 감안했을 법하다. 그런 이유로 정권 출범 이후 반년간 대화의 문을 닫아걸었다. 하지만 이 정도 냉각 기간을 가졌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과거 독재시절의 ‘반공(反共)’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반일(反日)’ 정서가 고양돼 있다. 아베 총리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못지않은 ‘악의 축’이 돼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한국에 대해 불신과 증오를 키워가고 있다. 한국의 웬만한 종합일간지 이상으로 팔리는 시사주간지들이 최근 ‘한국때리기’ 특집을 잇따라 내보내는 현상은 걱정스럽다. 


(경향DB)


김대중 정부는 그 ‘밉던’ 북한에 햇볕을 비춰 남북관계를 해빙시켰다. ‘퍼주기’ 논란이 없진 않았지만 북한이 금강산 관광을 위해 장전항에 있던 잠수함 기지를 후방인 원산항으로 물린 것은 화해협력 정책의 성과다. 우경화와 재무장화가 우려된다면 일본에 대해서도 포용정책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일본이 아무리 싫어도 나라를 통째로 옮겨갈 수는 없으니 일단 끌어안아 더 엇나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장 박 대통령이 일본을 가는 것도, 아베 총리가 한국에 오는 것도 아닌 각국 정상들이 모이는 다자간 회의에서 약식으로 만남을 갖자는 제의까지 내칠 일은 아니다. G20이 어렵다면 이후 회의 때 만나서 과거사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당당히 따지면 된다. 그런 뒤에도 엇나가면 그때 가서 제대로 한판 붙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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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면 한국과 일본은 심상치 않은 열기에 휩싸이고, 이 현상은 올해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지난 주말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에서 일본 응원단은 한국에서 군국주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욱일승천기를 흔들었고, 한국 응원단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일본의 한 각료는 한국의 민도(民度)가 의심스럽다고 발언했고, 한국 외교부는 “무례하다”고 되받으며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경향DB)


일본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한국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해 고조됐던 한·일 갈등이 잦아드는가 했으나 최근 상황은 지난해 못지않다는 느낌이다. 강경보수 월간지는 최근호에 ‘자멸하는 한국’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고, 일본 최대 시사주간지인 ‘슈칸분슌(週刊文春)’은 미국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는 것을 두고 ‘한국, 적당히 하라’는 제목의 비판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담았다. 휴가철을 맞았지만 신문에 한국 광고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달 초 도쿄에서 열린 ‘한·일 프렌드십 페스티벌’에서 만난 일본 여행업계 관계자는 “개인관광은 그다지 줄지 않았는데 단체관광객이 격감했다”고 말했다. 사회의 공기를 읽는 데 민감한 회사나 학교들이 한국 단체관광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올봄에 만난 일본인 사업가는 “한국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주변에 적지 않지만 한·일관계가 나빠 눈치만 본다”고 말했다. 


도쿄 코리안타운인 신오쿠보의 음식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상이 회복되지 않자 울상을 짓고 있다. 7월 초 이후 잠정중단 상태이긴 하지만 주말마다 혐한시위가 되풀이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스포츠신문에서는 한류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K팝 스타들도 TV에서 자취를 감췄다. 


일본의 반한 분위기에 분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점에서 일본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를 한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한·일전에 등장한 대형 현수막을 가리켜 한 일본 기자는 “한국은 반일이라면 뭘 해도 괜찮다는 식이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한국에 비판적인 일본인들은 ‘반일무죄’라는 표현을 쓴다. 반일을 위한 것이라면 법이건 질서건 마음대로 어겨도 된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런 말이 통용되는 데는 한국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쓰시마(對馬)섬에서 도난당해 한국에 밀반입된 금동관음보살좌상. 충남 서산의 부석사가 이 불상을 두고 14세기에 한국에서 제작돼 부석사에 봉인돼 있던 것을 왜구가 약탈했던 것이라며 이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법원이 이를 수용했다. 불상이 도난품인지는 일단 제쳐두고 도굴꾼이 한국으로 훔쳐온 것인 만큼 일단 돌려준 뒤 역사적 사실을 따지는 것이 상식에 맞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한·일전에서도 한 선수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쓴 카드를 들고 운동장을 돌아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 내에선 그 선수가 뭘 잘못했느냐며 감싸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이런 한국의 태도에 보통 일본인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 등장한 현수막도 엄격히 따지면 룰 위반 가능성이 크다. 한국 측은 일본이 먼저 욱일승천기를 휘둘렀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국제사회에 통용될지 의문이다.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과거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화가 나고 답답하겠지만, 한국의 대응도 조금 더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 비유하자면 과거 시위진압 경찰이 쓰던 ‘다연발 최루탄’식의 공격을 퍼부을 게 아니라 ‘핀포인트’ 정밀공격을 하자는 것이다. ‘반일무죄’식 태도는 한국에 호의를 가진 일본인들조차 적으로 만들 뿐이다. 다연발 최루탄은 맞아봐야 기분만 나빠진다.





서의동 도쿄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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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노부오(吉田信夫·63). 일본 공산당 도쿄도의회(광역의회) 4선 의원인 그는 평소 지붕을 씌우고 확성기를 얹은 ‘귀여운’ 오토바이를 몰고다닌다. 지난해 6월 취재차 만났을 때 오토바이를 몰고 나온 그는 “구석구석 골목을 누비며 유권자들을 만나는 데 최고”라며 으스댔다. 지역구인 스기나미(杉倂)구는 좁은 골목길에 단독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주택가다. 차로 다니면 못 보고 지나칠 지역의 문제점들도 오토바이를 타면 눈에 띈다. 그의 사무실에서는 매주 월·목요일 변호사가 입회하는 주민생활 상담이 이뤄진다. 변호사 비용이 없는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공산당은 둘도 없는 버팀목이다.


오는 21일 치러지는 참의원(상원) 선거운동으로 눈코 뜰 새 없는 요시다 의원과 10일 전화가 연결됐다. “이번 선거처럼 공산당에 대한 기대가 뜨거웠던 적이 없어요. 아마 공산당에는 역사적인 선거가 될지 모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선 약간의 흥분감마저 느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공산당이 유세를 하면 멀리서 손을 흔들어주는 게 고작이었는데 요즘은 직접 다가와 ‘이제는 공산당뿐’이라며 악수를 청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어요.”


일본 공산당 중앙본부 (경향DB)


일본 공산당에 왜 지지가 모이는 걸까. 리버럴 기조의 민주당이 집권 3년 만에 국민 신뢰를 잃으면서 붕괴한 뒤 뒤를 이은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자민당 정권은 전쟁이 가능한 군대를 만들겠다며 개헌에 의욕을 보이고 있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채 수습도 되지 않았는데 원전 재가동을 외치고 있다.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은 지리멸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정책에서도 갈팡질팡하는 등 견제력을 상실했다. ‘제3세력’으로 주목받던 일본유신회도 올들어 자민당 ‘2중대’라는 본질이 드러나면서 공산당이 대안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도쿄도 의회선거에서 일본 공산당은 의석을 두 배 이상 늘리며 민주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참의원 정원(240석)의 절반을 뽑는 이번 선거는 자민당의 압승이 확실시되면서 공산당이 얼마나 약진하느냐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공산당 중앙위는 이번 선거에서 5석 획득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2배인 10석까지 얻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과거 자민당을 이끌던 온건파 원로들도 최근 일본 공산당을 재평가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주역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은 시사월간지 ‘세카이(世界)’ 최근호에서 “지금 가장 제대로 정당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일본 공산당”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정계를 은퇴한 고가 마코토(古賀誠) 전 자민당 간사장은 지난 5월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와의 인터뷰에서 “전후 오랜 기간 자민당과 일본 공산당은 입장과 정책은 달라도 각기 자부심을 갖고 활동해왔다”며 “자민당과 공산당이야말로 (일본의) ‘양대 정당’”이라고 평가했다. 보수정당이되 좌우의 날개로 균형을 유지해오던 자민당이 아베 정권 들어 ‘오른쪽 날개’만으로 위험천만한 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원로들이 공산당에 시선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 공산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집권까지 바라는 이들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사회주의 폭력혁명 노선을 일찌감치 탈피했지만 공산당에 덧씌워진 ‘주홍글씨’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헌금과 정당 보조금을 완전히 받지 않는 청렴성에다 줄곧 서민의 편에 서온 공산당의 ‘한결같음’이 다시 조명받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지리멸렬 상태의 한국 야당은 일본 공산당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서의동|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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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이 쓴 유명한 동화 <빨간구두>는 마법에 걸린 빨간구두를 갖게 된 어느 소녀의 이야기다. 가난해서 맨발로 다니거나 나막신을 신어야 했던 소녀가 어느 날 빨간구두를 갖게 되고 춤의 명인이 됐지만 마법에 걸려 쉴새없이 춤을 춰야 했다. 신발이 딱 달라붙어 벗을 수 없게 된 소녀는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잘라내야 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 


일본의 어느 경제학자는 지난달 23일 대폭락을 겪은 이후 요동이 좀처럼 멈추지 않는 일본 주식시장을 안데르센의 <빨간구두>에 빗댔다. 차원이 다른 대담한 금융완화의 마법으로 치솟았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롤러코스터처럼 등락하는 통제불능의 모습이 빨간구두를 신은 소녀와 닮아 있다. 수십년간 안정세를 보였던 일본국채 시장이 불안해진 것은 어쩌면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자르게 될지 모를 심각한 사태가 닥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재정적자 개선 대책을 따져물은 것은 예사로이 넘길 일이 아니다. 


(경향DB)

3년여간 우왕좌왕하다 물러난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을 배경으로 등장한 아베 정권은 ‘강한 일본’을 내세웠다.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아베가 지난 6개월여 동안 펼쳤던 정책을 잠깐 돌이켜보자. 아베노믹스의 ‘세개의 화살’ 중 하나인 재정정책을 보면 과거회귀 경향이 두드러진다. 민주당 정권의 정책을 180도 뒤집은 ‘사람에서 콘크리트로’를 비롯해 ‘복지에서 방위로’ ‘지방에서 중앙으로’라는 역코스를 밟아가고 있다. 자립이 어려운 하층민의 생활보호 예산을 9년 만에 최대폭으로 감축하는 대신 방위예산을 11년 만에 늘렸다. 세계 최고의 사회인프라를 갖춘 나라에 웬 영문인지 토목건설 관련 예산을 사상 최대로 편성했다. 결론적으로 ‘레짐체인지(체제전환)’란 말을 즐겨써온 아베가 실제 펼친 정책은 ‘앙시앙레짐(구체제)’의 복원이었던 셈이다. 그뿐 아니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에선 아직도 ‘죽음의 재’가 누출되고 있는 데도 원전 재가동에 나서고 해외에 원전을 팔러 다니다 ‘죽음의 상인’이라는 야유를 받고 있다. 반면, 방사능 제염비용을 국가가 더 이상 부담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놔 후쿠시마 주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중국유학생들이 일본정부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국유화를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DB)


외교에서도 아베는 빨간구두를 신은 듯 세계를 바쁘게 누비며 ‘중국 포위망’ 구축에 나섰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센카쿠(尖閣) 열도를 둘러싼 중·일간의 공방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아베 정권의 안일한 인식은 동맹국인 미국의 불신감만 키웠을 뿐이다. 이달 초 전례없이 장시간에 걸친 미·중 정상의 만남에 초조해진 아베는 G8 정상회의 기간 중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려 했지만 보기좋기 거절당했다. 아베의 숙원인 헌법개정 작업은 여론의 거센 역풍 앞에 일단 멈춤 상태에 놓였다. 70%대에 이르던 내각 지지율이 어느덧 50%대로 접어들며 욱일승천 기세도 한풀 꺾였다. 


일본은 이쯤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방향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는 ‘강한 나라’보다는 ‘현명한 나라’가 슬로건으로 더 어울려 보인다. 중국을 포위하려다 포위당할 수도 있음을 감지했다면 1970년대 국교정상화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간의 합의대로 센카쿠 문제는 유보하는 것이 상책이다. 과거사를 뒤엎으려는 시도가 전후(戰後)일본이 쌓아올린 명망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음도 명심해야 한다. 평화헌법이 ‘세계유산’이라는 자민당 원로의 주장을 겸허히 새겨 평화국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면 국제사회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다. 아베 정권은 더 늦기 전에 빨간구두를 벗어야 한다.



서의동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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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들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대표가 설정한 프레임을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지난 27일 도쿄에서 열린 외국특파원협회 기자회견에서 하시모토는 “일본 정부가 직접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매매한 증거는 없다”는 말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 했지만, 그의 시도는 조롱거리가 됐을 뿐이다. 하시모토의 논리는 일본 우익들에겐 먹힐지 몰라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면 ‘말장난’에 불과했던 셈이다.


요즘 유행하는 ‘국격’이란 말로 가늠해봐도 최근의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주요 8개국(G8) 회원국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보편적 인권 의식과 도덕적 우위를 지닌 정치인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 총리감으로 꼽히던 하시모토는 위안부 망언에 미군들을 상대로 풍속(성매매)업소 활용을 권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다 나락으로 추락했다. 


하시모토 도루 (경향DB)


2년여 체류하면서 지켜본 일본은 선진국치고는 이례적일 정도로 여성인권 의식이 낮아 보였다.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성장전략으로 여성인력 활용도를 높이겠다며 여성 육아휴직을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내놨지만 여성계의 반응은 썰렁했다. 한 시사주간지 여기자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일본에서 여성이 3년간 쉬도록 기다려주는 회사가 있기나 한가. 이 정책이 제도화되면 기업들이 여성채용을 꺼리게 돼 여성의 취업기회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날 것”이라며 혀를 찼다. 유치원생 아이가 있는 그는 어느 일간지 여기자가 두번째 임신을 하자 회사 간부들이 ‘이제 회사 그만두는 거냐’며 사퇴를 압박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이유가 뭘까. 일본은 근대화 이후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한번도 겪지 않았다. 이는 변혁 과정에서 분출되는 에너지가 구성원의 의식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기회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무사정권인 바쿠후의 권력이 일왕으로 넘어간 메이지(明治)유신은 상층부 간의 권력교체에 불과했다. 2차 세계대전 패배와 연합국군사령부(GHQ)에 의한 7년간의 점령도 일본을 근저로부터 뒤바꾸지는 못했다. 일본의 태평양전쟁을 총지휘한 다이혼에이(大本營)의 작전참모였다가 전후 이토추(伊藤忠) 상사에 입사해 회장까지 지낸 세지마 류조(瀨島龍三) 같은 이들에서도 보듯, 전시 일본을 이끌던 세력들은 잠시 유예기간을 거친 뒤 전후 일본의 중심세력으로 복귀했다. 전후 일본은 서양식 민주주의 체제의 외피를 뒤집어쓰긴 했지만 속살은 바뀌지 않았고, 그런 탓에 여성인권이 전전(戰前)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는 일본의 부부동성제도는 여성을 ‘이에(家)’라는 집안의 부속물로 여기는 사고를 보여준다. 학자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활동해야 하는 여성이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게 되면, 전 남편의 성으로 발표된 논문이 자신의 것임을 일일이 증명해야 한다. 회사에서 여자선배가 남자후배의 커피심부름을 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은? 호주제가 폐지됐고, ‘서울대 우조교 사건’ 등을 겪으며 사회의식은 다소 개선됐지만 실상이 일본과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직장 내 성희롱은 ‘갑을관계’와 얽히며 더 교묘해지고 있고 성매매업소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간 일본인들을 만나면 “19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여성운동이 성장하면서 사회인식도 개선됐다”고 자랑스레 말하곤 했지만 ‘윤창중 인턴 성폭행 사건’ 이후론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시모토의 망언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서 개운치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

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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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일본 도쿄 시내 한 회의장. 한국의 언론노조 격인 일본 매스컴문화정보노조회의(MIC) 주최로 열린 외국특파원 초청토론회에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인디펜던트 특파원들과 함께 패널로 참가했다. 일본의 황금연휴인 ‘골든위크’ 첫날인데도 140여명의 청중이 토론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도쿄대 하야시 가오리(林香里)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의 주제는 ‘외국특파원이 본 오늘의 일본’. ‘일본 언론들은 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권력을 대변하는 보도로 일관하는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아베 신조 정권의 우경화에 대한 보도는 뭐가 문제였나. 일본 언론은 저널리즘의 본령에서 벗어난 것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된 자리다.


아베 (경향DB)


일본의 최근 우경화 현상은 한국 언론들만의 우려는 아니었다. 인디펜던트의 데이비드 맥닐 특파원은 “아베 정권은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우파정권으로, 아베 총리는 보수가 아니라 과격한 국가주의자”라고 일갈했다. 마틴 패클러 뉴욕타임스 도쿄지국장은 아베 정권을 용인하는 일본 사회 분위기에 주목했다. “아베와 자민당은 그리 바뀌지 않았는데, 예전과 달리 일본 사회에서 우경화에 대한 견제장치가 약해진 것이 문제입니다.” 10년째 체재하면서 일본 사정에 정통한 패클러는 일본의 기자클럽 체질이 권력에 대한 감시능력을 저하시킨다고 지적해 왔다.


나는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관련해 일본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일본 신문들은 TPP에 대해 개별사안에는 간혹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총론에서는 너나없이 찬성이더군요. 언론들의 비판이 정부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말이죠. 일본 언론들이 미국이 관련된 사안을 ‘성역’으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에 가졌던 일본 언론에 대한 신뢰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여지없이 무너졌다.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인가, 체제붕괴를 막는 게 급선무인가’라는 갈림길에서 일본 언론들은 후자를 택했다.


흰 연기가 건물 주변으로 번지던 1호기 폭발과 달리 시커먼 버섯구름이 수백m 상공으로 치솟았던 원전 3호기의 폭발장면을 공영방송인 NHK가 내보내지 않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 아닐까. 언론들의 석연치 않은 보도 태도 때문에 지금도 항간에서는 3호기는 ‘수소폭발’이 아닌 ‘핵폭발’이라는 의혹이 불식되지 않는다. 방사능 오염 공포가 한창일 당시에도 신문들은 “당장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 발표를 전하기 바빴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3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난 순간 (NHK)


우치다 다쓰루(內田樹)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는 원전사고 보도를 ‘다이혼에이(大本營) 발표 받아쓰기’식 보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태평양전쟁을 총지휘하던 일본 군부의 다이혼에이가 불리한 전황을 빼고 발표하던 것을 그대로 받아적던 전시 일본 언론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자리의 성격상 평소 생각해오던 일본 언론의 문제점들을 마음껏 지적했지만 속은 그리 편하지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언론들의 체질이 조금 바뀌긴 했어도 출입처에 의존하는 보도태도는 일본 언론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신뢰를 잃으면서 독자가 줄어들자 부족한 수입을 기업광고로 메우는 악순환 속에서 한국의 대기업 총수는 언론의 ‘성역’이 된 지 오래다.


‘만약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대참사가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한국 언론은 얼마나 제대로 보도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린 지 열흘이 넘었지만 이 물음은 아직도 머리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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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됐을 땐 일본에서도 기대가 많았는데, 지금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네요.” 


한국 문제 전문가인 일본의 한 신문사 간부가 들려준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이다. 주한 특파원을 지낸 바 있고 평소 박 대통령에 호의적이었던 그의 말투엔 냉담함이 배어 있었다. “일본에 대한 메시지도 전혀 없어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지난해 험악한 갈등을 겪었던 일본은 박 대통령의 당선을 환영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도 친분이 있는 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일관계를 열었던 만큼 ‘양국관계에 대한 인식이 남다를 것’이고 ‘최소한 MB 이상 아니겠느냐’는 기대감도 있었다. 오죽하면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의 당선 이틀 뒤 한국과의 합의도 없이 특사를 보내겠다고 발표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을까. 


아베 총리와 통화하는 박근혜 대통령 (경향DB)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전 재무상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가 줄줄이 한국을 방문해 박 대통령을 만났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라’는 말뿐이었다. 3·1절 기념사에서도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올바른 역사인식’은 물론 중요하지만 한·일관계의 기본전제일 뿐이다. 기본전제만 강조하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 독도·일본군 위안부 등 까다로운 현안이 양국 간에 있음을 감안한다 해도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신중함보다 ‘무신경’으로 비쳤다. 도쿄에서 열린 3·11 동일본 대지진 2주기 추도식에 한국 대표가 불참한 사건은 결정적이었다. 신각수 주일대사가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에게 단순 사무착오로 불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일본의 기대는 싸늘하게 식었다. 


2012년은 동북아의 한·중·일 3국 정상이 한꺼번에 바뀌는 해였고, 3명 모두 세습 정치인이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을 달성했으나 독재로 치닫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대통령의 딸이자, 범상치 않은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오른 동북아 첫 여성 지도자라는 점에서 ‘스타성’이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부친과 10년 전 직접 만난 적도 있는 만큼 북핵·미사일 국면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당선일로부터 치면 넉 달이 되도록 박근혜 정부는 국제사회에 아무런 인상도 심지 못했다. 북한 문제에서 노출한 ‘갈팡질팡하는’ 태도가 이미지로 굳어질까 걱정될 정도다. 


그동안 아베 총리는 미국과 동남아 3개국·몽골을 돌았고, 일본 총리로는 이달 말 10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극동지역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속도도 빨랐고, 대중국 견제를 위한 ‘가치관 외교’라는 메시지도 선명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역시 지난달 러시아와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하며 일찍 시동을 걸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인사혼란 때문에 출발이 늦었다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국제사회에선 통하지 않는다. 


기대가 낙담과 실망으로 바뀌면서 국제사회에선 한국 정부를 무시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이 최근 일본 기자들 앞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점에 대한 한국 정보의 신빙성에 불만을 터뜨린 것은 그냥 웃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도쿄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사석에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대북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현 외교라인이 그럴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공식 출범한 지 두 달이 채 안된 만큼 앞으로가 중요하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북한만큼이나 요령부득’이라는 첫인상을 갖게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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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 있는 와세다(早稻田)대학은 게이오(慶應)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사학 명문이다. 예로부터 출세를 위해 상경한 지방 학생들이 ‘청운의 꿈’을 불태우던 대학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한 통계를 보면 최근 5년 새 1만명 가까이 지원 학생이 감소했다. 그중 태반은 지방 학생들이다.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대학입시센터시험’을 친 수험생들의 진학희망 대학을 보면 올해에는 메이조(名城)대(나고야), 긴키(近畿)대(오사카) 등 지방대가 강세를 보인 반면 도쿄 소재 대학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수험생들이 수도권보다는 출신지 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지방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던 와세다대가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일본 지방 학생들의 ‘지역지향’ 경향에 대해 가와이주쿠(河合塾) 등 입시학원 전문가들은 취직난 때문에 도쿄유학 비용을 취직으로 회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데다 한 자녀 가정이 늘면서 자녀들이 부모를 배려해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선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경향신문DB)


대학입시뿐 아니라 취업·거주 등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서도 청년층의 ‘탈수도권’ 혹은 ‘지역애착’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재작년 도쿄대학이 동해 쪽에 위치한 후쿠이(福井)현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66%가 ‘현내 대학 진학’을 희망했으며, 현외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졸업 후 후쿠이현으로 돌아와 취직하겠다는 응답이 88%에 달했다. 최근 일본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 ‘사토리(득도)세대’를 소개한 아사히신문은 이 세대의 특징을 ‘해외여행을 꺼리는 대신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일본 젊은이들의 지역지향성은 장기불황하에서 리스크를 무릅쓰고 대도시로 유학하기보다는 나고 자란 고향에서 머물며 가족이라는 안전망에 의존하려는 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지역이 도쿄의 대안이 된다는 이야기다. 


일본은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각 지방이 독자적인 경제·문화권을 구축해온 전통이 있다. 일본 정부가 고도성장시대에 쌓은 부를 지방에 일정하게 배분하면서 대도시에 버금가는 인프라를 구축한 것도 지방이 대안이 될 수 있게 된 이유다. 게다가 청년들의 지역지향에는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애착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인 지난 11일 일본 한 민영방송이 방영한 특집 다큐멘터리에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에서 부모를 잃은 10살 소년의 사연이 소개됐다. 대지진 한 달 뒤 아빠의 시신이 발견됐을 때 한 차례 눈물을 보인 이후 ‘아빠’를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던 소년은 그해 여름 마쓰리(축제)에 참가하면서 아빠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됐다. 쓰나미로 괴멸돼 도로조차 구분이 안 가는 시가지에서 주민들은 마쓰리 수레를 끌며 슬픔을 잊었고, 수레에 오른 소년은 북을 두드리며 아빠를 떠나보냈다. 지역 커뮤니티가 재난의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캠프’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물론 일본의 기득권층은 젊은이들의 지역지향성에 혀를 찬다. 고도성장시대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학을 나와 취직한 뒤에는 ‘회사인간’이 돼 밤낮으로 일에 매진해온 이들에게 해외유학은커녕 ‘도쿄유학’도 기피하는 젊은이들이 곱게 보일 리 만무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서울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일본의 ‘지역지향’은 성숙사회의 일면으로 느껴질 정도다. 한국은 어쩌면 ‘서울 일극주의(一極主義)’라는 거대 쓰나미에 진즉에 휩쓸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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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도쿄 특파원



 

올 초 일본의 각종 영화상을 휩쓴 <기리시마, 부카쓰 그만둔대(桐島, 部活やめるってよ)>는 일본 지방 고등학교의 부카쓰(동아리 활동)를 소재로 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배구부 주장에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기리시마가 배구부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소식을 계기로 학생들 사이의 미묘한 인간관계가 표면화되는 과정을 묘사했다. 영화 줄거리도 흥미롭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고교생들이 수업이 끝난 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배구·배드민턴 연습을 하며 땀을 쏟거나 관현악부에서 연습에 몰입하는 장면들이다. 영화부원들은 학교건물 옥상이나 건물 뒤 공터에서 열심히 8㎜ 카메라를 돌린다.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고 입시학원으로 직행하는 ‘귀가조’도 없지 않지만 소수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명문대학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도 동아리 활동에 참가한다. 지난해 도쿄대에 203명을 진학시킨 일본 최고의 진학 명문 가이세이(開成)고교에는 50개의 공식클럽과 15개의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다. 중·고 일관교인 이 학교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동아리에 가입한다. 학창시절 입시공부에만 전념하는 이들을 비꼬는 ‘가리벤(ガリ勉)’이란 일본말이 있지만 ‘가이세이고 학생=가리벤’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일본 영화 '스윙걸즈' (경향신문DB)


지난해 도쿄의 중위권 사립대학에 진학한 한 재일교포의 딸은 고교시절 리듬체조 동호회를 했다고 한다. 대회에 입상할 정도의 실력도 아니고, 학교에서 정식 클럽으로 인정받지도 못했지만 입시준비가 한창인 고3 때에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계속했다. 사립명문 와세다(早稻田) 대학을 졸업한 한 일간지 기자는 고교시절 록밴드 활동을 했다. 기타와 보컬을 맡아 시민회관에서 공연까지 했다는 그는 쉰이 넘은 나이에도 당시의 추억을 자랑스럽게 들려준다. 일본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것은 입시 스트레스가 한국보다 적다는 정도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아무리 바빠도 세수나 양치질을 생략할 수 없듯이 동아리 활동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풍토가 정착돼 있다. 학교 다니며 공부만 해서는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된다는 생각이 일반화돼 있다. 


동아리 활동은 고교시절을 풍성하게 만들 뿐 아니라 대학이나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취미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학업경쟁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땀을 흘리며 우정과 협동심을 쌓는 경험이 인생의 아름다운 자산으로 남는다. <기리시마…>가 일본 영화상을 휩쓸고, <스윙걸즈>나 <워터보이즈> 등 고교 동아리 활동을 다룬 영화가 많은 것은 이 시절을 추억하려는 수요층이 그만큼 두껍기 때문이다. 고교시절이 일본의 사회와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시공간인 셈이다.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킨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우정파괴’ 광고는 기막힌 한국고교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좋은 대학이 인생을 결정하는’ 교육현실 속에 한국의 고교시절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모라토리엄’의 시공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박근혜 정부가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리기 위해’ 자유학기제 정책을 내놓았다. 절망 상태의 학교교육을 개선해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대기업 독식의 기업생태계를 바꾸고,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하는 ‘경제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의 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데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한국에 비해서는 숨 쉴 공간이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우리 아이들이 우정과 꿈이 넘치는 학창시절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경제민주화는 필수불가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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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도쿄 특파원



 

북한의 3차 핵실험에 가려져 부각되지 않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한 2기 첫 국정연설에 시선을 확 끄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간당 7.25달러(약 7870원)인 미국의 최저임금을 2015년까지 9달러(약 9770원)로 올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같은 날 일본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요네쿠라 히로마사(米倉弘昌) 게이단렌(經團連) 회장 등 경제 3단체장과 가진 의견교환회에서 “실적이 개선된 기업들은 종업원 임금인상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미·일 두 나라 정상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 ‘임금인상’을 화두로 꺼내든 것은 두 나라 모두 ‘내수 살리기’가 경제회복의 관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베 정권은 무제한 금융완화와 대규모 공공사업 투자를 통해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탈출하겠다는 ‘아베노믹스’를 내걸었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민간소비가 자발적으로 확대돼야 하는데, 가계소득이 오르지 않는 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가계소득이 늘지 않는데 물가만 오르게 되면 서민생활이 파탄해 아베노믹스는 실패하고 만다. 아베 총리가 이례적으로 재계단체장들을 불러 임금 인상을 압박한 데는 이런 절박한 사정이 있다. 아베 내각은 기업이 종업원들의 임금을 올릴 경우 그 상승분에 비례해 법인세를 깎아주는 전례없는 세제대책도 내놨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경향신문DB)


일본 기업들은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이익을 내도 투자하지 않고, 고용과 급여도 늘리지 않은 채 현금만 쌓아왔다. 일본기업의 내부 유보자금은 281조엔으로, 10년 전보다 1.7배 증가했다. 반면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1997년 월 37만엔에서 지난해 31만엔으로 6만엔이 줄었다. 근로자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 대신 임금삭감을 선택한 탓이다. 이런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아베는 완만한 형태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정책목표로 삼았다. 물가가 오르게 되면 현금을 들고 있어봐야 손해이므로 기업들은 투자나 고용·월급을 늘리게 된다. 


2006~2007년의 1차 아베 내각이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추진해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을 계승해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것에 비하면 최근 아베 내각의 움직임은 시장에 깊숙하게 개입하는 ‘큰 정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자증세 문제도 한 달여 만에 처리해버렸다. 영토·과거사 문제에서 ‘극우’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보수적인 아베 정권이 경제정책에서는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인상적이다. 


집권 2기를 맞은 오바마 행정부가 국정연설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들고 나온 것은 중산층 부활을 통해 미국의 성장엔진을 다시 가동시키기 위한 것이다. 오바마는 “중산층을 일으키고 번창시키는 것이 우리 세대의 임무”라고 했다. 중산층을 두껍게 해 민간소비를 확대하는 것이 미국 경제 회복에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두 나라의 움직임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글로벌경제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경제를 이끌어온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이를 대체할 성장엔진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각국은 내수시장을 버팀목으로 활용하려 하는 것이다. 주요국들의 이런 동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수출과 내수 간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외풍에 유독 취약해진 한국에도 시사적이다. ‘수출 외바퀴’를 키우고, 대기업만 중시해온 이명박 정권 5년의 폐해를 박근혜 차기 정권이 얼마나 바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같은 보수 정권인 아베 내각의 움직임도 참고가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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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도쿄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섣달 그믐날 저녁 일본의 ‘국민 프로그램’인 NHK <홍백가합전>에서는 ‘망언 제조기’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대표의 동생이자 숨진 지 25년이 지난 요즘에도 ‘국민 스타’로 추앙받는 유지로(裕次郞)가 드럼을 연주하는 흑백화면이 방영됐다. 1989년에 사망한 일본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추모콘서트는 매년 수많은 팬들이 한곳에 모여 그의 생전 영상을 지켜보며 추모하는, 극히 단순한 행사인데도 지상파 방송이 실황중계까지 한다. 일본의 TV는 철을 가리지 않고 ‘비장(秘藏)영상 대방출’ 따위의 제목으로 옛날 연예인들의 화면을 자주 내보낸다. 


회고·추억이란 영어 단어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의 준말인 레트로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체제·전통을 그리워하며 본뜨려는 현상을 가리킨다. 나라든 일정한 수준의 레트로붐은 있겠지만 일본처럼 끈질기게 지속되는 나라도 드물다. 도쿄 지하철 긴자(銀座)선에 지난해 4월 투입된 새 차량은 1927년 일본의 최초 지하철 개통 당시 운행되던 차량의 색깔과 외양을 재현했다. 최근 번창하는 일본의 한 술집 체인은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세대를 겨냥해 간판부터 메뉴까지 ‘레트로’ 일색이다. 낡고, 오래된 것에서 위안과 안식을 찾으려는 일본인의 감수성은 첨단과 새로운 것에 호감을 갖는 한국인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렇다고 일본 사회의 레트로붐에 이의를 달 생각은 별로 없다. 20년 장기불황의 고통 속에서 ‘욱일승천’하던 과거를 회고하며 위안을 느끼려는 심리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기자회견 도중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출처; 경향DB)



문제는 이런 레트로붐이 일본 정치까지 물들게 하는 데 있다. ‘일본을 되찾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달 열린 중의원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정권의 경제정책은 ‘레트로’란 단어를 연상시킨다. 토목건설 등 공공투자에 돈을 쏟아붓는 경기진작으로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으로부터 탈출하겠다는 ‘아베노믹스’는 사실은 일본 경제의 거품이 붕괴되던 1990년대 이후 역대 정권이 해오던 수법과 다를 게 없다. 당시에도 일본 정부는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공공사업 투자 등 아베 정권과 판박이인 경기대책을 시행했다. 이런 정책을 반복한 결과 일본에 남은 것은 1000조엔에 이르는 막대한 국가부채였다. 


열도개조론을 내세워 일본 열도 전체를 공사장으로 만든 19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 시대에는 그나마 지역불균형을 시정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국토 강인화’라는 명목으로 10년간 200조엔(약 2600조원)을 쏟아붓겠다는 발상은 건설업체 외엔 득될 게 없다. 


사회구조의 변화를 미시적으로 살피지 않은 채 기업이 성장하면 자연히 국민 생활도 나아질 것이라는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의 안이한 경제관이 일본 경제를 파탄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는 사이에 비정규직이 전체 일자리의 3분의 1에 이르게 됐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젊은층이 출산은커녕 결혼조차 기피하는 ‘불임사회’가 됐다. 


하지만 재등판한 아베 내각은 인적투자보다는 건설투자로, 육아·노인복지의 책임을 공공에서 가족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보육원을 확충하는 대신 여성의 육아휴직을 보장하겠다는 아베 정권의 주장은, 선진국인데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놀랄 만큼 낮은 일본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아베의 자민당 정권은 ‘롱런’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젊은 세대에 비해 투표에 적극적인 데다,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노년 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집권으로 정치적 시민권을 얻는가 했던 일본의 젊은층은 다시 ‘유령’ 신세로 되돌아갈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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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도쿄 특파원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지난 17일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 지사와 당을 합치기로 하면서 그간 주장해온 ‘탈원전’ 정책을 공약에서 제외한 것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는 다음달 16일 열리는 일본 중의원(하원) 총선에서 탈원전 이슈가 더 이상 승패를 가르는 쟁점이 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계산 빠른 하시모토는 탈원전에 매달리는 것보다 영토문제 등에 초강경 태도를 보이는 이시하라와 손잡는 것이 총선득표에 더 플러스가 되리라고 판단했을 것이 틀림없다.


올해의 일본을 되돌아보면 묘하게도 탈원전 이슈가 표출된 뒤 영토문제가 불거지곤 했다. 우선 이시하라가 지난 4월16일(현지시간)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초청으로 방미해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민간인이 소유한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도쿄도가 사들여 관리하겠다”며 중·일 간 영토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대표적인 원전 찬성론자이기도 한 이시하라의 발언이 나오기 사흘 전인 4월13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각료회의를 열어 간사이(關西)전력의 오이(大飯)원전 2기를 재가동하기로 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설득에 나서기로 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반원전 시위 (경향신문DB)


 이시하라의 센카쿠 매입을 저지하겠다는 명목으로 노다 총리가 ‘센카쿠 국유화’ 방침을 꺼낸 것은 지난 7월7일. 20만명(주최 측 추산)에 달하는 시민들이 총리관저 일대에 운집해 ‘원전 재가동반대’를 외쳤던 6월29일로부터 8일 뒤다. ‘수국혁명’이라는 이름까지 붙을 정도로 뜨거웠던 여론에도 아랑곳없이 일본 정부는 7월1일 오이 원전 3호기의 재가동을 강행했다. 


이시하라와 노다의 주고받기가 중국을 자극하면서 센카쿠를 둘러싼 중·일 갈등이 9월에 절정으로 치달았다. 영토갈등이 한창이던 9월 미국은 일본 정부가 추진하려던 ‘2030년대 원전제로’ 방안에 제동을 걸었고, 결국 9월14일 열린 각료회의에서는 ‘2030년 제로’ 등 핵심내용을 빼버린 에너지 정책을 의결했다. ‘탈원전’ 이슈가 영토문제로 희석된 상황을 단순히 우연으로 봐야 할지,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의 작용으로 봐야 할 것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 정도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탈원전 이슈는 노다 총리가 내건 환태평양경제협정(TPP) 참가 여부와 영토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정책, 소비세 증세문제 등과 함께 ‘쟁점 중 하나’로 전락해 버렸다. 영토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보수 자민당은 탈원전에 반대함에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민주당은 아직도 탈원전을 이야기하지만 유권자들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탈원전을 내건 국민생활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는 ‘구태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힘을 쓰지 못한다. 원전 즉시 철폐를 외치는 공산당은 주류 언론들이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아직도 시간당 1000만㏃(베크렐)의 방사성물질이 방출되고 있다. 녹아내린 핵연료가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핵연료를 식히느라 매일 500t의 오염수가 새로 생겨나고 있지만 처리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원전에서 400㎞가량 떨어진 시즈오카(靜岡)현에서 재배된 차잎에는 세슘이 묻어있고, 오염된 버섯들이 10개현에 걸쳐 발견되고 있다. 후쿠시마 현에 사는 10대 소녀는 갑상샘암 판정을 받았다.


도쿄 총리관저 앞에는 ‘원전재가동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이 매주 금요일 모이지만 기세가 한풀 꺾였고 언론도 관심을 접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작고 안전한 나라’ 일본을 꿈꾸던 이들은 낙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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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도쿄 특파원


 

도쿄대학 부근 혼고산초메(本鄕三町目)의 초밥집에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와 마주앉은 것은 보름 전쯤의 일이다. 영토문제에 관해 새로 쓴 저서를 받을 겸 만난 자리에서 선생은 시종 한·일 관계의 미래에 대해 우려했다. 그 얼마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극우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당선된 것이 양국관계에 미칠 영향도 화제에 올랐다. 와다 선생은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이자, 한국의 민주화와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진력해온 실천가이다. 


“만약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해 아베 총재가 총리가 되면 한·일 관계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노다 정부가 한국으로선 맘에 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민주당 정권이 있는 동안에 양국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만들어야 한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은 정권이 교체된 듯한 착각을 유발할 정도로 대한 강경파이지만 2009년 등장한 민주당 정권 전반적으로는 한·일 관계에서 비교적 전향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초대 총리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한국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담은 ‘한일병합 100년 담화’를 발표하고 조선왕실의궤를 반환했다. 


물론 ‘독도는 우리땅’ 교과서를 비롯해 한국으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사회 전반적으로 우경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민주당 정권에 대해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꼬인 대일관계 풀 해법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이어진 선생과의 대화는 양국의 정권이 바뀌기 전에 한·일 현안을 풀기 위한 포괄적인 대화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한·일 현안대책위원회’쯤 될까. 물론 양국 간 현안이 뭔지 몰라서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현안을 일단 이 위원회에 쓸어담아 두고 대화를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해법이 도출된다면 좋겠지만, 양국 갈등을 ‘복기’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민간 전문가와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하거나 정부가 옵서버로만 참여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만든다고 해서 당장에 성과를 낼 리 만무하다. 의제 설정이나 분과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할 소지도 다분하다. 위원회에 어떤 성향의 전문가를 참여시킬지를 양측이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어찌보면 이명박 정권이 끝날 때까지 위원회가 출범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독도방문과 일왕사과 요구발언으로 키워놓은 갈등을 매듭지으려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일본으로서도 한·일 갈등을 대화로 풀려는 모습이 위험수위에 달한 중·일 갈등 완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한·일 양국 정상은 이달 19~20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3’ 정상회의에서 마주칠 기회가 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이 먼저 ‘한·일 현안대책위’ 구성을 제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양국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해 만드는 위원회라면 차기 정권에서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8~9월 그 뜨거운 여름 이후 양국은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잠시 전투를 멈추고 선수교체를 기다리는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전지대로 떠오른 동아시아의 장래를 우려한다면 분쟁 당사자들이 조속히 본격적인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정권 말기인 지금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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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도쿄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일본 정부는 1945년 8월15일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지 3일 만에 미군을 상대로 하는 위안소 설치에 착수했다. 일본의 작가 겸 역사가인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가 쓴 <소화사(昭和史)>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일본 내 치안 최고책임자인 내무성 경비국장이 8월18일 점령군을 위한 ‘서비스 걸’을 모집하라는 행정명령을 각 지방에 내려보냈다. 당시 재무관료로 후일 총리가 되는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가 “(위안시설 조성에) 얼마나 필요한가”라고 묻자, 특수위안시설협회 간부가 “1억엔 정도”라고 답변했다. 이케다는 “1억엔으로 (나머지 여성들의) 순결이 지켜진다면 비싼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라를 이끄는 핵심관료들이 점령군의 진주에 대비해 위안부 시설을 솔선해서 만드는 전대미문의 광경이다. 일화를 접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식이 왜 이리 안이한가’라는 궁금증이 조금은 풀렸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지켜보면 보편적 인권 차원의 문제의식은 애초부터 결여된 듯 보인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동남아 전역으로 전선을 확대해가면서 더 많은 군인을 전장으로 내보냈고, 그에 비례해 위안부의 수를 늘렸다. 이 과정에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이 최근 밝힌 대로 ‘위협해 연행하거나 공장 등에서 일하는 것으로 속여’ 데려왔을 개연성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양금덕 할머니가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경향신문DB)


“민간인 업자가 모집 주체였고, 정부나 군이 강제적으로 연행했다는 문서상 증거가 없다”며 위안부 강제성을 부인하는 일본 우익인사들의 변명은 그 자체가 치졸하기도 하지만, 여성인권에 대한 저열한 인식이 두드러진다. 


전후 67년이 경과했지만 일본의 여성인권에 대한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느낌을 종종 받는다. 지난해 참석한 어느 모임에서 겪은 일이다. 저녁을 겸한 토론모임에서 주문한 도시락이 오자 좌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여성 회원이 움직여 도시락을 참석자들에게 분배했다. 그들보다 나이가 적은 일본인 남성들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태연히 도시락을 받아 들었다. 지인인 재일동포 여성은 “회사에서 남자 직원들을 위해 커피를 타준다”며 “일본에서는 여직원들이 이런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일본이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외무성 전직 관료인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지적한 대로 위안부 문제는 이미 국제적인 현안이 됐다. 전쟁시기에 도입된 불가피한 제도라는 설명은 국제사회에 통용되지 않는다. 일본은 여성을 중시하지 않는 야만국으로 간주되고, 미·일 동맹에도 균열이 생길지 모른다는 그의 경고는 심상치 않다.


하지만 한·일 갈등의 광풍이 가라앉자 양국 모두 위안부 문제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달 민주당과 자민당의 대표 및 총재 선거가 마무리되면서 일본에선 득표를 위한 ‘우경화 선풍’도 가라앉은 데다, 한국 정부도 양국 갈등 봉합을 위해 문제해결에 나서려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양국이 평행선을 달리게 되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고,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영구미제’로 남게 된다. 미제사건을 떠안은 양국의 미래가 결코 밝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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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도쿄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오판했다. 지난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 것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다. 후진타오가 경고를 한 다음날 노다 총리는 각료회의를 열어 센카쿠 열도 3개 섬의 국유화를 결정했다. 외무성의 일부 간부들이 “국유화는 조금 기다렸다 하자”며 충고했지만 노다 총리는 듣지 않았다. 국가주석의 체면이 구겨진 중국은 무섭게 화를 내고 있고,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일본은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노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인 활동가가 일본의 센카쿠 열도 매입에 항의해 욱일승천기를 불태우고 있다. (경향신문DB)


 일본의 외교라인은 중국의 본심을 읽는 데 실패했다. 이토추(伊藤忠)상사 회장을 지낸 친중파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주중 일본대사를 ‘이지메’할 때부터 대중국 라인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듯하다. 관료들이 가야할 자리에 상사맨이 앉아 있는 것을 못마땅히 여기던 노다 내각의 외교라인은 니와 대사가 외신 인터뷰에서 “일본정부의 센카쿠 국유화가 중·일관계에 엄중한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한 충고를 문제삼아 끝내 경질해버렸다. 하지만 니와의 경고는 석달 뒤 현실이 됐다. 센카쿠 국유화 시점도 하필 중국인들에게 ‘국치일’인 만주사변 발발일(18일) 일주일 전이었다. 외교관료들이 무능하거나, 노다 정권에 대해 사보타주를 벌이고 있든가 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근시안적인 결정이다. 


과거에도 일본 외교의 상황판단은 ‘아마추어’였고, 국가를 파탄시켰다. 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1년 7월. 일본은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뒤 친독 비시정권이 수립되자 중국 국민당군의 보급로 차단을 위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인 베트남 남부에 진주했다. 미국이 석유 금수조치에 나설 우려가 있다는 신중론이 많았지만 군부는 “프랑스 정부가 용인하는 데 제3자인 미국이 나설 리 없다”며 강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은 대일 석유 전면금지 조치를 발동했고 견딜 수 없게 된 일본은 진주만 공격을 강행하며 자멸의 길로 빠져 들어갔다.


국제관계에서 ‘외교의 껍질’을 벗겨내면 군사 대결이 남는다. 센카쿠 열도에 만약 양국군이 출동하게 된다면? 중국이 군함을 출동시키면 일본도 호위함을 보내고, 중국 전투기가 센카쿠 상공에 출동하면 일본도 F-15 전투기로 맞설 것이다. 대치과정에서 국지전이 일어난다면 전투기와 전자장비, 공중조기경계기 능력 등에서 우위인 일본이 초반 승기를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더 큰 보복을 부를 것이고, 중국이 장거리미사일로 일본 본토를 공격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일본의 유일한 버팀목인 미국이 중국과 대신 싸워줄 것인가. 무인도 하나 때문에 미국이 최대 시장인 중국과 싸우는 사태는 현실성없는 시나리오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영토분쟁에 입장이 없다”며 일본의 기대를 저버렸다. 노다 총리가 센카쿠 국유화 방침을 밝힌 지난 7월 중국 ‘환구시보’의 여론조사에서 ‘군사적 수단’으로 대항해야 한다는 여론이 90.8%에 달했다. 이런 데도 국유화를 강행한 일본 정부를 보면 뭔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이 든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원인제공자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나 노다 총리를 책망하는 목소리가 일본에서 잘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영토문제를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우익의 마초적 선동이 일본의 이성을 마비시킨 탓일까. 일본 외교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독도를 졸지에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들어놓은 한국정부도 이번 사태를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


<서의동 | 도쿄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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