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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세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외교 이벤트가 열린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이를 토대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합의가 나온다면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구축, 남북 평화공존의 출발이 될 것이다. 실패하면 전쟁의 위기가 이전보다 짙게 드리워질 수 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지금의 갑작스러운 정세변화의 원동력이 북한의 달라진 태도였던 것처럼, 앞으로 전개될 일들의 성패 역시 북한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제재를 피하고 핵무기를 실전배치하기 위한 시간벌기라고 의심하는 시각도 있고 이번에야말로 북한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6일 정부의 대북 특별사절단에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핵포기와 ‘체제안전보장’을 위한 조치를 맞바꾸자는 제안이다. 북한의 진정성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단서는 앞으로 벌어질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체제안전보장을 위한 조치로 한·미에 무엇을 요구하는지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체제안전보장 조치에 대해 명시적이고 일관되게 밝힌 적이 없다. 우리에게 낯익은 ‘대북 적대시정책 철폐’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북한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체제안전보장은 평화협정 체결이나 불가침 선언일 수도 있고 북·미 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의 핵우산 철폐,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나 완전 철수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체제안전 보장을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는 당사자인 북한도 잘 모른다. 북핵 협상에서 일괄타결식 아이디어가 나온 것도 북한에 딱히 뭐가 필요한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바꾸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한·미의 고민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의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라면, 북한의 고민은 체제안전을 어떻게 보장받을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북한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요구할 것인지가 대화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이른바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요구를 한다면 진지한 협상의 기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핵우산 철폐나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 해체 등을 들고 나올 경우 한·미는 북한이 진정으로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체제안전을 위한 조치는 외부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 국가의 정치체제 붕괴는 주로 정통성이 무너질 때 발생한다. 외부 요인보다 내부 요인이 더 크다. 흔히 북한과 비교되는 우크라이나 사태나 리비아 카다피 정권 붕괴도 본질은 핵무기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당시 구소련이 남겨놓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는 독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정권이 붕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은 형용모순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민중봉기로 붕괴하자 러시아가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무력개입했으며 우크라이나가 독립 당시 미·러 등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영토와 안전을 보장받은 ‘부다페스트 협약’이 결국 휴지조각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에 주는 시사점은 독재정권이 민중봉기로 붕괴했다는 점, 확실한 담보가 없는 다자안보조약은 무용지물이므로 견고한 장치의 동북아 다자안보체제가 필요하다는 점 등이지, 핵포기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것도 나토와 미국의 공습 이전에 ‘아랍의 봄’에 영향을 받은 민중혁명이 직접 원인이다. 설사 우크라이나와 리비아가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고 해도 내부에서 촉발된 정권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미가 제공할 수 있는 안전보장조치는 북한 체제안전에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체제유지에 필요한 외부환경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지금의 북한 통치체제가 지속가능할 리 없다. 오히려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려면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북한이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면 비핵화와 그에 따른 주변 강대국의 안전보장 외에 비현실적이고 기형적인 통치체제와 인권 문제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해 나가는 내부 개혁조치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KHross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최근 방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비핵화 등 핵심 의제를 조율하는 수준까지 진척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역시 열흘 앞으로 다가온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다룰 핵심 의제에 관해 적지 않은 진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남북한과 미국이 서로 교감하면서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남북한)은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말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한반도 안보 상황을 궁극적으로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검토,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전은 비핵화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실질적인 비핵화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남북한과 미국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 문제를 핵심 의제로 삼은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결정이다.

 

남북은 휴전협정으로 전쟁을 일시 중지한 상태이다. 항구적으로 전쟁을 중단하고 북한이 주변국과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종전선언에 이어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북·미 수교를 하기 위한 법률적·현실적 여건이 마련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논의 지지발언은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그 정도의 반대급부는 줄 수 있다고 제안한 셈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만 요구해왔을 뿐 그에 따른 보상조치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항복선언이나 다름없는 협상에 북한이 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고사하고 회담 개최 자체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이 체제보장에 관한 우려를 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종전 문제를 해결하려면 휴전협정의 또 다른 당사국인 중국의 참여와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18일 공개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계획 소식이 주목된다. 비핵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북·중관계 발전은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거쳐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를 도출하고,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 실천을 촉진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KHross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 새로운 증거가 튀어나오는 이상(異常) 사태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지난 한 달여간이 그렇다. 오죽했으면 여당인 자민당 간사장의 입에서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나올까.

 

상황이 이런데도 발뺌과 책임 전가에 급급한 정권의 모습은 견제장치 없는 ‘아베 1강’의 본질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아베 총리와 그 주변에서 내뱉는 무수한 언어들은 국민들을 ‘지긋지긋’하게 만들어 “정치가 다 그런 거지”라는 정치 허무·혐오에 빠뜨리려는 것 같다. 문제가 없다고 계속 강변하다 보면 어차피 국민들은 곧 잊는 법, 이라고 깔보는 걸까.

 

아베 정권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건은 더 있다. 재무성 관료 ‘톱’인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사무차관의 성희롱 의혹이다.

 

잡지 ‘주간신초’는 지난 12일 후쿠다 차관이 회식 등의 자리에서 재무성 출입 여기자들에게 성희롱을 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후쿠다 차관은 “키스해도 되느냐” “호텔로 가자” 등 노골적인 발언을 반복했다. 심지어 모리토모학원 문제를 질문하는 여기자에게 “가슴 만져도 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주간신초는 13일 성희롱 음성 녹음을 공개했다. 하지만 후쿠다 차관이 16일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이 사건을 대하는 아베 정권의 자세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후쿠다 차관에게 긴장감을 갖고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의를 줬다”고 밝혔다. 후쿠다 차관의 간단한 보고만을 바탕으로 구두 주의를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한 것이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긴장감을 갖고 행동하게 하겠다”고 밝힌 걸로 봐서 아베 총리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아베 정권은 ‘모든 여성이 활약하는 사회’를 주요 과제로 내걸고 있다.

 

이런 자세는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의 경우와 대비된다. 아베 정권은 마에카와 전 차관의 ‘데아이케(만남) 바’ 출입 보도에 호들갑을 떨었다. “교육행정의 최고 책임자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는 등 인신공격까지 반복했다. 그래 놓고선 현역 사무차관의 성희롱 의혹에는 무르게 대응했다.

 

하긴 스가 관방장관은 가케(加計)학원 수의학부 신설 특혜 의혹과 관련, 총리 비서관의 ‘총리 사항’ 발언이 적힌 에히메(愛媛)현 면담기록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문서에 대해 정부가 코멘트하지 않는다”고 발을 뺐다. 정권에 불리한 일은 덮거나 피하고, 정권에 비판적인 측은 철저하게 때려 부순다.

 

아베 총리는 잇따르는 불상사에 대해 “고름을 다 짜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름이 멈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권은 고름이 나오는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데만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태가 장기화되고 진위가 흐릿해지면 국민들의 관심은 사그라들 것이라는 속내일지도 모른다. 실제 총리 관저에선 “2015년 안보법 통과 때도 야단법석이었지만 얼마 뒤 잠잠해졌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아베 정권이 지금까지 몇 차례 위기를 극복해온 ‘자신감’도 한몫했을지 모른다. 분란을 싫어하고 안정을 지향하는 일본 국민들의 성향, 지리멸렬한 야당 상황 등도 거론된다.

 

그렇다면 지난 14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운 3만 시민의 외침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명명백백하다. 아베 정권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잇따라 나오는 증거들과 커지는 분노들. 반면 국민의 ‘지긋지긋한 감정’의 허점을 파고드는 정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일지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Posted by KHross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는 모든 사람들의 질문일 것이다. 성공을 위해선 무엇보다 현재의 극적인 상황전개는 지난 사반세기의 데자뷔가 아니라는 분명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 국면은 북핵 문제 자체부터 해법, 그리고 이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구도까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한마디로 ‘판’ 자체가 바뀌고 있으며, 따라서 성공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북핵위기의 장기화로 인한 현실의 경로의존성만큼이나, 판단 역시 같은 함정에 빠져있을 경우 절호의 기회에서도 실패할 수 있다.

 

성공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첫 번째 근거는 북한의 변화다. 북한은 지난해 말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대외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 결과 대화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2년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후 비핵화에 관련된 어떤 협상도 거부해왔는데, 지금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 25년간 불신구조 속에서 협상의 불리함을 느껴왔다. 즉 한·미 양국의 제재-보상의 가역성에 비해 핵개발 중단-재개는 상대적으로 훨씬 비가역적이므로 불리했지만 이제는 가역성을 확보하였다. 둘째, 생존을 위해 개발한 핵이 최후까지 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얻었다는 측면이 있으나, 동시에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초래함으로써 재차 생존이 위협받는 전형적인 ‘핵보유의 딜레마’를 겪게 되었다. 셋째,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핵의 성공을 먼저 이룬 후 경제로 간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한데, 집권 이후 일관되게 부유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김정은의 약속과도 연결된다. 이 3가지를 종합하면 북한이 생존을 위해 주변국의 반대와 압박의 천신만고 속에서도 개발한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보다, 체제생존을 확신할 만큼의 반대급부가 주어진다면 포기할 수도 있다는 주장에 더 설득력을 부여한다. 더불어 제재와 압박이 어느 정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객관적 지표로도 북한이 당장 제재로 인해 위기상황은 아니라는 점에서 막다른 골목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미국의 변화인데, 단연 트럼프가 핵심이다. 트럼프야말로 지난 25년간 없었던 변수로서 불예측성의 ‘트럼프 리스크’가 남아있지만 기존 사고와 방법론을 뛰어넘는 파격은 역설적으로 빅딜 가능성을 높인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로서는 안팎으로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은 전세역전을 위해 놓칠 수 없는 비장의 카드다. 한국 특사단이 방미했을 때 전한 북한의 메시지를 전격적으로 받은 이유다. 과거의 점진적 방식을 거부하고 임기 내에 일괄타결방식(one-shot deal)을 위해 통 큰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숨겨진 동기가 또 있다. 트럼피즘의 저변에 깔린 백인인종주의는 오바마케어, 파리기후변화협약, TPP, FTA, 이란핵협상 등 오바마의 모든 것을 뒤집어 왔는데, 북한 핵 문제는 오바마가 이루지 못한 것을 달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흑인대통령의 극복이라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가 이전과는 다르다. 한반도 평화정착의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인내와 뚝심으로, 그리고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천재일우의 계기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냈다. 진보정부 10년의 시행착오를 통해 실용성과 용의주도함을 배웠고, 보수정부 9년을 통해서 반면교사로 대화와 협상이 유일한 해법임을 절감했다. 또한 북핵 해결에 있어 한·미 공조의 필수성과 북·미 타결의 중요성을 이해하였기에 한·미 입구론→남북 경유론→북·미 출구론의 바람직한 방향을 택하고 있다.

 

남·북·미 핵심 3자 행위자의 변화 이외에도 현 구도의 차이점은 매우 두드러진다. 이전과는 달리 최고위급의 결단에 의한 톱다운 방식으로 가고 있는데 북핵 문제의 성격상 최고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과거 6자회담의 틀 내에서 세분화된 단계의 완성이 되면 마지막으로 핵폐기 단계에 진입하는 점진적 방식과는 달리 큰 틀에서 합의한 다음 단계적 이행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 종합할 때 4월27일 남북정상회담과 5월 말 또는 6월 초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능한 최선의 결과는 무엇일까?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다짐과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북·미 회담의 ‘길잡이’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임기 내 또는 2020년 5월 말(또는 6월 초)까지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확실한 체제보장의 맞교환 완성을 약속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것이다. 이후 2년간은 이행의 단계적 과정이 되겠지만 과거와는 전혀 다른 속도전이 될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Posted by KHross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지난 12년 동안 운영되던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대학원(SAIS) 내 한·미연구소가 한국 정부의 예산 지원 중단 조치에 따라 다음달 문을 닫는다고 대학 측이 밝혔다. 한·미연구소 논란은 당초 국내 보수언론들이 한국 정부가 연구비 지원을 앞세워 보수성향의 구재회 한·미연구소장을 교체하려 한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재인 코드에 맞추려 소장 교체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은 연구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됐는지의 문제로 초점이 이동했다.

 

우선 이 연구소가 한국 정부로부터 연간 약 20억원씩 모두 200억여원을 지원받았지만 연구 실적이 미미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장 중요한 연구 실적인 연구보고서가 2015년 이후부터 나오지 않았고, 특별보고서도 2016년 8월 이후 없었다는 것이다. 순수 연구비와 한국학 학자 양성 등 핵심사업에는 예산의 4분의 1도 쓰지 않으면서 인건비가 56%나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국내 유력 정치인들을 연구원으로 초빙하거나 한국인들의 미국 방문 시 행사를 주최하는 데 치우쳤다고 하니 공공외교를 강화한다는 당초 목적에 부합했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 연구소는 결산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정부의 요청에도 한두장짜리 결산보고서만 제출하는 등 무성의하게 대응했다. 지난해에는 국회가 예산 투명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요구하는 부대의견을 달고서야 지원 예산이 통과됐는데 이마저 거부했다.

 

이런 연구소의 기능과 역할의 문제는 외면한 채 연구소장 교체만 주목한 언론들의 문제 제기는 도를 지나쳤다. 이들은 대학 측 인사들의 일방적인 주장에만 귀기울이면서 ‘문재인 정권판 블랙리스트’라는 말까지 썼다. 한국을 잘 아는 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 이사장이 문제제기를 했으니 의심은 할 수 있었겠지만 정부 비판을 위해 일부러 사실관계를 도외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정부의 세련되지 못한 대응도 아쉽다.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11일 한·미연구소 측이 정부 보조금과 기부금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게 논란의 핵심이라고 했지만 이것으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청와대 행정관의 석연찮은 역할과 국책 연구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규명해야 한다. 효과적이고 투명한 해외 연구지원과 공공외교 강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Posted by KHross

김정은·트럼프 간 북·미 정상회담이 하루하루 다가오지만, 김정은이 핵폐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릴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체제보장을 해주면 정말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까? 하나의 체제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불가침 조약, 평화협정? 
 
우크라이나에서 핵폐기 논의 때 군과 보수파는 러시아 위협을 들어 핵폐기를 반대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미국·영국과 함께 안전보장 각서를 체결했다. 핵이 폐기됐다.

 

그리고 7년여 지난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역사는 조약 협정을 맺고도 전쟁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협정 이상이 요구된다. 항구적인 평화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법제도, 정책, 질서의 총체, 즉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체제보장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김정일 시대에도 비핵화-체제보장(평화체제)을 위한 협상이 있었지만 김정일은 평화 대신 핵을 선택했다. 김정일의 시각에서 평화체제는 체제보장책이 아니다. 체제불안 촉진책이다. 평화가 북한 내부로 스며들면 비평화체제인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고 김정일은 믿었을 것이다.

 

그때 북한은 ‘우리 체제는 우리가 보장하는 것이다, 미국이 보장해준다는 건 가소로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이게 체제보장의 본질이다. 김정일처럼 자기 통치에 불안감을 느끼면 외부의 체제보장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그가 정권 안정을 확신하지 못하면 한·미가 비핵화-체제보장 교환 로드맵을 아무리 정교하게 짠들 소용없다. 협상 국면을 공허한 논리 대결과 제자리를 맴도는 소모적 논쟁의 수렁에 빠뜨리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지금 세계가 김정은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가 아버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노심초사한 김정일과 달리 자신감에 찬 김정은은 북한을 확 바꿔 놓고 있다. 김정일은 정권 붕괴 걱정에 선군정치를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선군정치 정당화의 근거를 무너뜨렸다. 조선인민군 창건일을 김일성 유격대 결성일인 1932년 4월25일에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게 1948년 2월8일로 옮긴 것이다.

 

인민군에 덧씌워진 항일 혁명 전통의 계승자라는 신화의 베일을 걷어내서 보통 군대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조치였다. 선군정치의 제도적 장치이자 상징이었던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했다. 선군정치는 껍데기만 남았다. 선군정치의 거품을 뺀 김정은은 지난 9일 당 정치국회의 내용을 하루만에 공개하는 등 정치를 정상화했다. 김정일의 은둔 통치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정책도 다르다. 김정일은 2002년 경제 활력을 위한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도입, 안팎으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체제안정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나머지, 3년 만에 그만두었고 결국 경제난이 심화됐다. 반면 김정은은 과감한 시장 요소를 도입했고, 경제 상황을 개선시켰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통제·빈곤·부족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북한-은 사실 김정일의 작품이다. 북한에서도 1960년대까지 김일성 시대는 좋은 시절, 1970년 이후 김정일 시대는 나쁜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그 때문에 김정은이 가히 살부(殺父)의 정신으로 김정일 시대의 나쁜 기억을 지워나가는 것일지 모른다. 아버지가 빈말로 하던 광폭정치도 그가 실천하고 있다. 북한 내 정권교체와 다를 바 없다. 김정은이 핵 문제에 대해 김정일과 다른 계획을 갖고,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 근원은 외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변화 가능성을 지닌 체제로의 전환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김정일 시대에는 실패했던 비핵화-체제보장이 김정은 시대에는 가능해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트럼프도 체제 변화가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면 북한의 시간 벌기라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아직도 김정은에게서 김정일을 보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의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의 핵폐기 결단이 임박했다고 예단해서도 안된다. 핵폐기는 북한 내부의 변화로 충분하지 않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카드를 보고 결심할 것이다. 역시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고 뒤로 물러설 수도 있고, 아버지가 못 이룬 위업을 달성할 수 있겠다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핵폐기는 김정은·트럼프 두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공동작품이다. 우리는 분단 70년 만에 낡은 냉전의 섬에서 탈출해 한반도 평화를 손에 쥘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 우리가 왜 트럼프가 잘하기를 빌지 않겠는가?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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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의 당사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다음달 또는 6월 초에 그들과 만나는 것을 여러분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9일 노동당 정치국회의에서 “이달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북남수뇌회담에 대해 언급하면서 당면한 북남관계 발전 방향과 조·미(북·미) 대화 전망을 심도 있게 분석평가하고 금후 국제관계 방침과 대응방향을 비롯한 전략전술적 문제들을 제시했다”고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며 현안에 대해 거수투표하고 있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두 정상의 발언은 비핵화 주제의 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시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일각에서 제기한 ‘회담 연기론’ 등으로 인한 회담의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효과가 있다. ‘슈퍼 매파’로 분류되는 존 볼턴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공식 업무를 시작한 날 이 발언이 나왔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북 라인에 잇단 대북 강경 인사를 기용했지만 정상회담 준비는 이와 무관하게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이 있을 것이고 양측 간에 큰 존경심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상당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북한 매체의 김 위원장 발언 보도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 변화를 내부에 공개하는 효과가 있다. 북·미 정상회담의 경우 북·미 대치 상황을 고려해 ‘조·미 대화’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번 보도로 운을 뗀 셈이다. 무엇보다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핵 억제력 강화나 핵·경제 병진 노선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이 주목된다. 북한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비핵화라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정책 전환에 따른 이해를 구하는 홍보작업을 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을 헌법 서문에 명시할 만큼 핵을 중시하는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내부 정지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정상회담은 불신과 대결로 점철된 한반도 역사를 새로 쓰는 일대 사건이다. 북·미 정상의 정상회담 개최 공식화로 회담 준비에 속도가 붙게 되면서 비핵화 성과를 거둘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핵과 체제보장을 주고받는 큰 틀의 교환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두 정상의 굳은 의지와 한국 등 주변국의 협력, 정밀하고도 실현 가능한 로드맵이 완벽하게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 있다. 이번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한반도 비핵화는 불가능해지고 전쟁 위기가 다시 고조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퇴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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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 동(東)구타 지역에서 지난 7일 화학무기 공격으로 수십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시리아 반군 활동가와 구조단체들은 최소 40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화학무기 살포로 인한 호흡곤란 등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부상자가 1000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제구호단체와 의료진이 공개한 영상에는 현지 건물 바닥과 계단에 어린이들을 포함한 시신들이 쌓여 있고, 입과 코에서 하얀 거품이 나오는 장면도 등장한다.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피해자들은 또 호흡곤란, 눈 화상 등의 증상을 보였고, 산소 부족으로 피부가 푸른색으로 변하는 청색증 증세도 나타난다고 한다. 아비규환의 참상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올해로 7년째인 시리아 내전에서 화학무기로 인한 인명살상이 빈발하고 있다. 2013년에도 사린·염소 가스 공격 등으로 1400명이 숨졌고, 지난해 4월에도 반군 장악 지역인 칸 셰이쿤 지역에서 사린가스 공격이 발생해 8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사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2013년 9월 시리아 내 화학무기를 전량 폐기하기로 한 합의가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화학무기가 남용되자 세계는 수많은 희생을 초래한 데 대한 반성으로 1925년 사용을 금지하는 제네바 의정서를 채택했다. 1993년에는 화학무기의 사용은 물론 개발·생산·저장을 전면 금지하고, 폐기를 의무화하는 화학무기금지협약을 채택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인명살상을 위해 화학무기를 동원하는 만행이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이르면 10일(현지시간)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화학무기 사태의 진상 조사를 위한 결의안 채택에 나설 계획이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사드 정권을 비호해온 러시아의 거부로 부결되면 미국이 독자적인 군사행동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반군들이 동구타에서 철수하기로 정부군과 합의하면서 막바지로 접어드는 흐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출한 화학무기 공격이 미·러 대결구도를 촉발시켜 사태를 더 꼬이게 할까 걱정스럽다. 미국과 러시아는 화학무기를 지구상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내전이 종식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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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스포츠 애호가들 사이에서 ‘4·15 마라톤 지도’는 꿈의 지도다. 이 지도는 15일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각 도시에서 열리는 43개의 마라톤 대회를 붉은색 중국 대륙에 꼼꼼히 표시해둔 것이다. 중국 육상협회에서 인정한 마라톤 대회가 150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4월15일은 마라톤 축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6만명이 참여하는 이날의 마라톤 행렬을 두고 현지 언론은 중국 설인 춘제 귀성 행렬과 비교하고 있다.

 

중국의 마라톤 열풍은 불과 몇 년 새 급속히 가열됐다. 7년 전만 해도 22개에 불과했던 마라톤 대회는 지난해 관련 대회까지 포함해 1100개로 불어났다. 대회에 참가한 인원만 500만명에 달한다. 마라톤 열풍은 중국의 경제 성장과 관련돼 있다. ‘중산층이 즐기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마라톤이 중국인들의 허영심까지 자극했다. 마라톤 대회도 적지 않지만 지원자는 몇 배 더 많으니 대회 참가 자체가 잡히지 않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4·15 마라톤 지도’가 꿈의 지도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라톤 대회 참가 규정은 까다롭다. 심장병, 고혈압 같은 건강 상태뿐 아니라 완주 경험 등을 심사해 참가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완주보다 신청 통과가 더 힘들다. 그러다 보니 꼼수까지 나왔다.

 

2016년 12월 샤먼에서 열린 국제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가 대회 도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사망한 우모씨는 대리인을 통해 신청한 후 그의 이름이 달린 이름표를 달고 뛰었다. 유족들은 우씨의 건강 상태가 마라톤을 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대회 측의 관리 부실로 사망까지 했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아프리카 국가의 무명 선수들을 참가시켜 국제대회로 이미지 탈바꿈하는 주최 측 상술까지 더해지면서 마라톤 열기는 이상 과열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논평에서 미국에서 풀코스 마라톤 경기는 1100개, 하프 마라톤은 2800개(2016년 기준)로 참가 인원은 1600만명에 이르는데, 이에 비하면 중국의 마라톤 대회가 아직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광란의 열풍 속에 관리 부족, 안전 위험 등 더욱 혼란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급속히 성장하면서 제도나 의식에서 놓치는 부분이 많았다. 시각장애인 가수 저우윈펑은 은행에서 민사행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은행카드 발급을 거부당했다. 시각 장애인을 자신의 행동을 판별할 능력이 없는 금치산자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일었다. 중국 유명 검색사이트 바이두의 리옌훙(李彦宏) 회장은 “중국인은 자신의 개인정보에 민감하지 않다”는 말로 논란이 됐다. 중국인들은 자신의 개인정보와 온라인상 편의를 맞바꾸는 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그의 말은 공분을 일으켰다. 누구보다 개인정보를 소중히 다뤄야 하는 기업의 책임자의 빈곤한 의식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왔다.

 

안전 불감증, 장애인 배려와 복지 부족, 개인 정보 보호 의식 결여 같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 중국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는 분야도 있다. 중국은 반부패 처벌에서만큼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무섭게 대처한다. 장런화 산시일보 전 사장은 뇌물 수수 등을 이유로 정청급 간부에서 과원으로 6단계 강등됐다. 사표를 마음대로 던지는 것도 기율 위반인 상황에서 망신을 견디며 일해야 하는 고난형을 받았다. 장중성 뤼량시 부시장은 10억위안 이상의 부패를 저지른 혐의로 사형이 선고됐다. 아무리 엄중한 부패 호랑이도 사형 집행을 연기하고 2년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해왔지만 장 부시장은 1심에서 사형이라는 강력한 심판을 받았다. 중국이 국가 성장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선 성장과 의식의 균형적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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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일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며 이기기 쉽다”고 한 공언과 달리 미국은 중국을 굴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무역전쟁은 미국과 중국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는 논리로 방어에 주력했던 중국은 적극적인 공격을 통해 확전을 불사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2일 1300개 중국산 제품에 총 500억달러(약 54조원) 상당의 관세 부과 방안을 발표하자, 중국은 그다음 날 106개 미국산 제품에 총 500억달러 상당의 보복 관세로 응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우리는 미국을 대표했던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들이 오래전에 패배한 무역전쟁을 하는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통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지만, 중국은 현재까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왜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까지 중국을 쉽게 이기지 못했을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의 불공정 행위에 불만을 가지는 국가들조차 미국에 대한 지지를 꺼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동맹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까지 불공정 무역 국가로 규정하고 ‘최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우선주의가 미국의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는 자충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웨스트버지니아주 화이트설퍼스프링스에서 열린 세제 개편 토론회에서 준비해온 원고를 던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지난 3월 모든 수출국에 대한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부과 조치였다. 이 조치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국가가 중국(미국 수출 순위 11위)이 아니라 캐나다(1위), 한국(3위), 멕시코(4위), 일본(6위)이었기 때문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와중에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11개 회원국을 모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성사시키는 데 캐나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멕시코 역시 NAFTA 재협상을 국경장벽 건설과 연계하는 것은 물론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공조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함께 중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는 일본도 한국·호주와 달리 관세 부과 조치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혹해하고 있다. 한·미 FTA 개정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극찬한 지 단 하루 만에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그것을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는 단서조건을 단 바 있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압박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은 우방국의 지원 없이 단독으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취임 이후 한 번도 5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관세 보복 조치는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취약점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다. 미국 수출품 중에서 대중 의존도가 높은 상품은 대두, 수수, 돼지고기, 항공기 등이다. 미국 대중 수출품 중 약 10%를 차지하는 대두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대두와 돼지 생산량 상위 10개 주 가운데 8곳에서, 수수 최다 생산 10개 주 가운데 7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바 있다. 지난 3일 대두가 중국의 보복 관세 방안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미국대두협회(ASA)가 무역전쟁의 자제를 촉구하였다. 선거 일자가 다가올수록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층의 요구를 무시하기 더 어렵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을 자주 번복함으로써 국제적 신뢰를 상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월 취임하자마자 미국이 TPP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올해 1월 다보스 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더 나은 협상을 할 수 있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미국이 TPP에 다시 가입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였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급증했다고 지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WTO 탈퇴까지 시사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달 23일 미국 무역대표부가 중국의 지적 재산권 침해를 WTO에 제소한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앞으로 미·중 무역전쟁의 승패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달려 있다. 미국이 막후 협상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중국의 양보가 체면을 세워줄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선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무역질서의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왕휘 |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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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가 진전되고 있지만 일본의 처신은 탐탁지 않다.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이 소외되는 이른바 ‘재팬패싱’ 우려가 커지면서 아베 신조 총리 등이 전방위 외교에 나섰지만 무리한 요구와 부적절한 언동으로 되레 반감만 사고 있다. 아베 총리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전 일본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답이 없지만 남북정상회담이 불과 3주일여 남은 점을 감안하면 그 이전에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관계와 비핵화에 미칠 영향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의 요청은 외교 무례에 가깝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4일 (출처:경향신문DB)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언동도 문제다. 그는 지난달 31일 “북한이 새 핵실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은 거짓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38노스’가 “그런 움직임은 없다”고 발표하자 “북한에 대해 공개된 정보를 보면 핵실험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며 물러섰다. 증거도 없이 북핵 우려를 키우는 무책임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일본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과 중거리미사일 포기 약속을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삼아달라고 미국에 요청한 것이나 무작정 북한에 북·일 정상회담을 타진한 것도 정상적인 외교로 보기 어렵다.

 

일본은 한반도 주변국으로서 북핵 해결 등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 하지만 실제 처신을 보면 그 반대로 보인다. 이런 행태는 일본의 국익에도 반하는 것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도 소망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팬패싱만 해도 아베 정권이 국내 ‘극우정치’에 북핵 문제를 활용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대북강경책을 고수하다 남북 및 북·미관계 급진전 움직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성찰하지 않고서는 재팬패싱 현상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중시하는 납치 문제도 비핵화의 진전 여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침 고노 외무상이 다음주 한국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고노 외무상은 서울에 와서 한반도 평화가 일본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지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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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절친 데니스 로드맨은 지난해 여름 평양을 방문했다. 로드맨이 가져간 선물 가방에는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저서 <협상의 기술>이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5월에 열릴 예정이다. 김정은은 <협상의 기술>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트럼프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까.

 

트럼프는 말한다. “가장 좋은 것은 힘의 우위에서 협상하는 것이다. 레버리지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트위터에선 자신의 책 내용을 이렇게 인용했다. “레버리지. 그게 없다면 협상을 하지 마라.” 트럼프는 전례 없이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레버리지로 여긴다. 김정은이 대화를 먼저 제안한 것도 최대의 압박 정책 때문이란 게 백악관의 판단이다. 새라 허커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최대의 압박 작전 덕분에 오랜 시간 처음으로 미국이 약자가 아닌 강자의 입장에서 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 후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고, 남북관계도 급진전되고 있다. 트럼프로선 한국과 중국이 대북 압박 공조에서 벗어나 김정은의 숨통을 터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지난달 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안에 대한 서명을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미룰 수 있다”며 압박했다.

 

“뭔가 비범한 것을 요구하라.” 트럼프는 1980년 재선에 실패한 지미 카터를 만난다. 카터는 도서관 건립을 위해 모금운동 중이었고, 트럼프에게 당시 500만달러를 요구한다. 트럼프는 어이가 없었지만 카터가 왜 대통령이 됐는지는 알게 됐다고 말한다. “카터는 대통령 자격이 없었지만 보통을 넘은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용기, 배짱, 남자다움이 있었다.” 트럼프가 무리수를 두는 데는 다른 목적이 있다. 모든 수입 철강에 일괄적인 폭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한국이나 멕시코 등과의 개별 무역협정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카드였다. 북·미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는 예상 밖의 카드를 꺼내 놓으며 관련국들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

 

트럼프는 “가끔은 대결이 유일한 선택일 때가 있다”며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겁먹지 마라. 너의 입장을 고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당당하게 서 있으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유연성의 중요함을 인정한다. “나는 또한 유연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한다. 절대 하나의 목표나 하나의 접근법에 집착하지 않는다.” ‘화염과 분노’ 경고를 접고 전격적으로 협상을 택한 이상 과감한 타협으로 성과를 내려할 것이란 관측도 많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만큼 핵무기를 미국으로 실어나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의 무력화만 달성해도 타협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언제 테이블에서 걸어 나올지를 알아라.” “협상에서 범할 수 있는 가장 잘못된 행동은 협상 타결에 절박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트럼프는 최근 김정은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잇따라 표시하면서도 협상 결과가 “좋지 않다면 걸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강조한 협상의 기술 중 하나는 기대보다는 부정적 결과에 대비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최악을 예상하면서 협상에 임한다. 최악에 대비하면, 최악의 결과와 함께 살 수 있고, 좋은 결과는 항상 스스로를 돌본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정권 교체를 주장해온 강경파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국무장관에 지명하고,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설파해온 네오콘 존 볼턴 전 유엔대사를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했다. 세기의 담판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협상 실패가 가져올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협상의 기술이 제대로 발휘돼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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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시진핑 주석에게 큰 선물이었다. 중국은 더 이상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지 않게 됐다. 시 주석으로서는 황제의전과 2억원짜리 마오타이주 선물이 아깝지 않을 터였다. 중국 언론의 ‘중국 역할론’ 대서특필에서는 ‘한반도 지분’ 복원에 대한 안도감이 엿보인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치밀하게 연출한 기획임에 틀림없다. 김정은은 용의주도하게 “나의 첫 외국 방문이 중국이 된 것은 너무도 마땅하며 조·중 친선은 나의 의무”라며 시 주석의 체면을 한껏 세워주었다. 방문 시점도 절묘하다. 중국이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 및 비핵화 논의에서 소외되고, 미국의 통상압박과 대만접근 문제가 불거지면서 원군이 절실하던 차에 김정은이 등장한 것이다.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주변 국가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점에 제공하는 이런 외교술을 나는 ‘선물 정치’라고 부르고 싶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베이징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은의 선물 대장에는 시진핑만 있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찌감치 이름을 올렸다. 정치적 궁지에 몰린 가운데 중간선거를 맞은 트럼프에게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표명은 가뭄 속 단비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설이 도는 것을 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조만간 수혜자가 될 것 같다. 한반도 주변국 정상 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만이 아직 선물을 받지 못했다. 북핵 문제를 극우정치의 동력으로 삼다가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타 정상들과 성격이 다른 점이 있다. 김정은과 국제사회를 연결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선물 정치는 북한 내부에서 비롯됐다. 북한 정권 탄생 이래 지도자와 엘리트층이 특권과 충성을 주고받는 구도로 운영돼왔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 민생은 들어설 틈이 없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집권 첫 공개 연설에서 “인민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번영을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처음에는 나이 어린 독재자가 우쭐해서 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후 그의 행보는 일관성이 있었다. 핵무기와 경제번영을 동시에 추구하는 핵·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했고, 선물 정치의 우산 아래서 거대한 부패자본가로 성장한 특권 집단에 철퇴를 가했다. 인센티브제와 장마당 활성화 등 잇단 경제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도 단행했다. 김정은이 선대 유산인 선물 정치에 종언을 고하고 민생 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현상이 점점 뚜렷해졌다.

 

아마 김정은이 내부 선물 정치에 안주해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면 북한은 흥하지도 망하지도 않은 채 겨우 생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의 북한이 아니다. 휴대전화가 500만대 이상 보급될 정도로 외부 정보에 노출된 북한 주민은 기아선상에서도 항의 한마디 못했던 부모 세대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공개 장소인 동평양대극장에서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따라 부르고 자신들의 삶이 척박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신세대다. 계기가 주어진다면 잠재적인 정치 불만세력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이 아니더라도 선물 정치가 한계에 부딪혔다고 판단했음직하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국가번영 목표를 버리고 핵무장을 하거나 비핵화하고 번영국가를 추구하는 것이다. 외견상 김정은은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선물 정치의 요체는 핵무장과 비핵화 두 가지다. 상충하지만 둘 다 있어야 선물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본질적 의문은 남는다. 핵무장 선언 직후 비핵화할 거였다면 애초 뭐하러 핵무장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그간의 광기 어린 핵개발 폭주와 위협적 언동을 돌아보면 이런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더구나 김정은은 아직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로는 충분치 않다.

 

물론 김정은이 비공개적으로는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가 미국 내에서 비핵화 의지에 문제제기가 나올 때마다 “진정성이 있다”며 김정은을 대변하는 점이 흥미롭다. 지금은 김정은을 믿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은 20여일, 북·미 정상회담은 두 달가량 남았다. 그의 진심과 전략을 확인할 시간도 머지않았다.

 

하지만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선물은 주고받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계속 주기만 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김정은의 비핵화 선물에 국제사회도 의미 있는 선물로 호응하며 한반도 평화를 엮어가야 한다. 김정은이 가장 원하는 선물이 체제안정이라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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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및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갈등으로 치닫던 북·중관계 회복과 한반도 비핵화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비핵화는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시 주석 면전에서 직접 육성으로 밝힘으로써 비핵화가 흔들림 없는 정책 목표임을 대내외에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달 초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 면담석상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지만 이후 한국과 미국 일각에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비핵화를 내세운 북한의 갑작스러운 대남, 대미 관계 개선 시도가 대북 제재를 피해 핵개발을 하려는 시간 벌기일 뿐이라는 우려다. 김 위원장이 이런 의구심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유사한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지난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베이징 _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또 북·중 정상회담에서 “남한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이 먼저 평화 실현 조치를 하면 비핵화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선(先) 조치, 후(後) 비핵화’ 방안은 향후 핵심 당사국들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의 핵포기를 주장할 뿐 이에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제안이 문 대통령의 일괄타결 방안과 조화될지도 주목된다. 비핵화의 길이 험난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비핵화가 필수적이라는 남북한과 미국의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향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견해차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 등을 단계별로 맞교환하는 해결책을 담은 9·19합의 등 비핵화 논의에 참고할 만한 기존 합의와 구상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진정성이다. 과거 북·미 간에 여러 차례 비핵화 합의를 하고도 번번이 깨진 것은 불신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중 정상회담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 상황에서 끼어드는 형국으로 갑작스럽게 열렸다. 이것이 새로운 변수가 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북·중관계 정상화는 일차적으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역시 비핵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영향력이 약화되는 이른바 ‘차이나 패싱’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중국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자국의 역할 확대를 미·중 패권 경쟁에 활용하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북·중관계 회복이 대북 제재의 끈을 헐겁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 나라가 관계 발전의 일환으로 경협 활성화를 논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대북 제재 강화가 아니라 정밀한 비핵화 로드맵 마련과 착실한 이행으로 풀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당사국인 중국이 남·북·미 간 관계개선과 비핵화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시점의 문제였을 뿐 불가피한 일이다. 일본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주변국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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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남북 간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던 시절 장관급회담을 포함한 각종 남북 간 교류현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경험은 핵 문제 관련 북한 대남사업 관계자들의 질문이었다. “1994년 제네바합의에서 2002년까지 지어주기로 약속한 경수로건설이 2002년 합의 파기까지 공정률이 얼마인지 아십네까?”(실제 공정률은 40%가 안된다), “2005년 9·19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날 미국이 취한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네까?” 자신들이 핵개발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입장, 즉 미국은 절대 신뢰 못할 존재라는 것이다.

 

지난해 핵미사일 실험에 ‘올인’하면서 한반도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키더니 금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신년사를 시작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김여정 특사의 방남, 우리 측 특사 방북 이후 4월 정상회담과 5월 북·미회담이 개최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강화된 유엔과 미국의 제재 때문에 결국 북한이 굴복하고 나섰다는 설명은 북한을 너무나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다. 제재압박이 전혀 무용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본질은 북한이 이젠 자신감을 갖고 대화모드로 전환해도 되겠다는 전략적 판단, 나아가 남쪽 문재인 정부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런 판단을 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아마도 2차례 정상회담의 대화내용을 숙독했을 것이다. 두 정상의 정치철학과 문재인 대통령의 삶의 족적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자신들 정권체제안보를 남쪽과 함께 논의해도 좋겠다는 판단이 섰으리라 생각된다. 역지사지 관점에서 북한이 핵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한 공감 표시, 나아가 우리의 책임도(사실은 미국이지만) 크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생각된다.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핵 없는 한반도 나아가 신뢰와 평화를 회복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자는 뜻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우리 측이 10·4선언과 2005년 정동영 특사가 북측에 약속했던 내용 등 그간 남북 간 합의된 사항들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제안하다면 북의 핵포기와 경제협력을 포함한 남북교류협력의 재개와 확대,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한 인도적 사안들도 어렵지 않게 합의에 이를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문제는 5월의 북·미대화에서 북이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임할 것인가가 관건이라 생각된다. 미국은 동맹관계인 한국의 입장과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란 점에서 북의 정상회담 제의를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심 선 비핵화 조건을 포기한 것이 아님은 여러 가지 징후에서 알 수 있다. 미국 주요 언론의 한반도전문가 기고문의 논점이나 신임 국무장관과 안보보좌관의 인물 면면을 들여다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 간 만남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핵포기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직접 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굴복은 죽음이라는 북의 핵정책과 대립될 것은 분명한 사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북·미대화에서 인내가 필요함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북이 원하는 평화체제 전환과 북·미수교를 위해 한국 정부는 각별히 노력할 것임을 약속할 필요도 있다. 물론 외교파트의 혼신의 노력으로 미국을 설득함도 필요하다. 이번 북·미회담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원칙적 선언과 구체적 프로세스는 6자회담에서 논의한다는 선에서 합의하면 어떨까. 사실 9·19공동성명 내용이 지켜졌다면 한반도는 비핵화, 나아가 진전된 남북교류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성원 한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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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료 세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최근 한 달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을 흔들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한때 일본을 떠받친다고까지 얘기됐던 관료 세계의 혼란과 해이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우선 모리토모(森友)학원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을 둘러싼 재무성의 문서 조작. 아베 총리 측이 헐값 매각이나 문서 조작에 관여했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두드러지는 점은 의혹이 제기된 당시 담당 국장이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국세청 장관을 필두로 재무성 관료들이 정권 옹호에 필사적이었다는 것이다. 사가와가 국세청 장관에 임명된 것도 이런 ‘충성심’을 평가받은 덕분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런데 문서 조작 사건이 터지자 상황이 180도 뒤집혔다. 아베 정권은 “최종 책임은 사가와”(아소 다로 부총리)라면서 재무성 관료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사가와는 ‘꼬리 자르기’ 대상으로 전락했다.

 

또 하나의 ‘사학 스캔들’이었던 가케(加計)학원 특혜 의혹은 다른 양상이다. ‘총리 의향’이라고 적힌 문부과학성(문부성) 문서가 공개된 데 이어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성 사무차관도 “총리 관저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마에카와는 ‘데아이케(만남)바’ 출입 보도 등으로 부도덕한 인물로 낙인찍혔다. 최근에는 문부성이 마에카와의 중학교 강연내용을 뒷조사했고, 친아베 성향의 자민당 의원 2명이 이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권에 반기를 든 사람은 끝까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한 모습이다. 앞서 사가와 건과 비교하면 정권에 충성해도 잘리고, 정권에 반항해도 잘린다.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시계를 조금 더 앞으로 돌리면 아베 정권 추락의 신호가 된 재량노동제 데이터 조작 문제가 있다. 아베 총리는 “재량노동제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일반 노동자보다 짧다는 자료도 있다”고 답변했지만 전제조건이 다른 데이터를 비교한 자료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무부처인 후생노동성이 잠깐만 조사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을 실수한 것을 두고 ‘과잉 충성’에 눈이 먼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의도적인 사보타지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일련의 사건들을 지난해 유행어였던 ‘손타쿠(忖度)’ 문제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관료들이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기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될 만한 것은 감추고 보는 관료 집단의 구조적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난맥상의 배경에 5년 넘게 이어진 아베 ‘1강 체제’의 부작용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은 2014년 내각인사국을 신설해 관료들의 인사권을 장악했다. 이에 따라 관료들이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총리관저의 뜻대로 알아서 움직이게 됐다는 지적이다. ‘손타쿠’ 구조의 정점에 총리가 있는 셈이다. 일련의 사건에서 보이듯 아베 정권은 관료들을 정권을 지키는 도구로 생각한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고 적대시한다. 자민당 와다 마사무네(和田政宗) 의원은 지난 19일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오타 미쓰루(太田充) 재무성 이재국장이 민주당 정권 시절 총리 비서관을 지냈던 점을 들면서 “아베 정권을 깎아내리려고 의도적으로 이상한 답변을 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철학자 우치야마 다카시(內山節)는 근대 정치의 병리로 ‘독재정치’를 낳는 불완전한 대의민주주의와 관료제 문제를 들었다. 정치가는 선거가 끝나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 정치가 밑에서 관료들은 자기보신에 몰두한다. 그 속에 주권자에 대한 공복(公僕) 의식은 없다. 지금 총리 관저 앞에서,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울려퍼지는 함성은 바로 그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훼손된 데 대한 분노에 다름 아닐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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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모두 속전속결로 성사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 전에라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트럼프 특유의 쾌도난마다. 정 실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한 뒤 북·미가 만나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를 수용했다.

 

동석했던 트럼프 외교·국방 참모들 중 일부는 ‘괴짜 트럼프’의 도발적 결정에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보도가 됐다. 하지만 이런저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홍해바다를 가르듯 정상회담이라는 수로(水路)를 틀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용의주도하게 ‘거사’를 도모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트럼프 행정부와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조용히 북한 비핵화의 태엽을 감기 시작했다. 작년 4월 한반도 위기설의 여진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여기에는 북핵 문제를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념이 있었다. 미국의 고질적 대북 불신과 무관심 구조 속에서 김정은의 진의가 트럼프에게 전달되는 데 왜곡이 있을 수 있음을 간파,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자임했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워싱턴을 자극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관심을 끌어당기려면 핵 비확산체제를 흔듦과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완성’이 어쨌거나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위협을 느낀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는 군사적 방법을 통해 ‘체제변화 또는 붕괴’가 긴요하다고 판단했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정책’은 따라서 시간의 문제로 점차 인식되기 시작했다. 체제생존의 위협을 느낀 김정은은 발 빠르게 남한을 통한 적극적인 평화 공세(또는 ‘갈등적 편승 전략’)로 선회했다.

 

셋째, 국제사회의 계속되는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의 체제 내구성이 상당히 약화됐다. 한때 ‘사회주의 진영의 동방초소’로 불리기도 했던 북한으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때마침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체면도 구기지 않고 대화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셈이다. 한국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김여정이 올라섰다. 매파의 시각으로 보면 ‘불량국가’의 일시적 신분 세탁이다. 하지만 “기적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다”는 일본 외무상의 평가처럼 정상회담 개최는 분명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업적이다.

 

넷째, 문재인 정부의 영리한 대미외교가 주효했다. 한국의 공(功)은 최대한 낮추고, 대신에 잘 다듬어진 언어로 트럼프의 지도력을 한껏 치켜세운 외교술이 빛을 발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꼭 여기에 해당됐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사실상 설계자인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정의용 안보실장과 함께 미국으로 보낸 것은 동맹국에 대해 최대의 예우를 표한다는 의미 이외에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데 생길 수 있는 ‘해석의 구멍’을 메우는 한 수였다.

 

그렇다고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이 꽃으로만 장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교전·적대국 관계인 북·미, 남북 사이에 지뢰도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회의에서 “앞으로 두 달 사이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결과도 낙관하기가 어렵고 과정도 조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화로 포장된 길이 낭떠러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문 대통령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변이 없는 한 북·미 정상은 역사적 회담을 하게 된다. 김일성-김정일 때부터 자주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떡하든 미국에 접근하려고 했던 북한이었다. 궁핍한 자원 동원을 극대화하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해 온 김정은으로서는 트럼프를 마주하는 일이 대미외교의 백미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못다 한 꿈을 김정은이 이루는 셈이다. 결국은 미국이 일련의 정상회담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다. 자강(自强)과 균세(均勢)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협상가’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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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사상자 없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 즉 ‘노 캐주얼티(no casualty)’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1993년 소말리아 민병대가 추락한 미군 헬기 조종사의 시신을 끌고 다니는 장면이 방영됐을 때 미국인들의 충격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분노는 적군뿐 아니라 정부까지 겨냥했다. 이란 주재 미대사관에 갇힌 인질 구출에 실패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미군이 전쟁 중 자국 민간인들을 안전한 장소로 소개하는 것은 중요한 작전이 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유사시 그 가족과 미국 민간인 20만명을 대피시키는 비전투원 후송훈련(NEO·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도 이런 차원에서 실시한다. 상·하반기 연중 두 차례 실시하는 이 훈련은 생각만큼 거창하지 않다. 용산 등 미군 기지에 책상 하나 가져다놓고 미군 가족들이 소개에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갖췄는지 등을 점검하는 게 전부다. 한국에 새로 배치된 미군 가족에게 철수 시 절차와 행동 요령을 숙지시키는 것이 훈련의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자원자를 받아 평택기지에 집결시킨 뒤 항공기로 부산 또는 일본으로 소개한다. 지난해 북핵 긴장 고조 시 일본 요코다 공군기지로 대피 훈련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역시 7년 만의 해외 소개 훈련으로 새로울 것은 없었다. 

 

주한미군이 다음달 16일부터 닷새 동안 이 훈련을 실시한다고 미군 기관지 성조지가 보도했다. 훈련 시기와 내용이 미묘한 것은 사실이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데다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기간이 겹친다. 게다가 미국인 100명을 처음으로 미국 본토까지 철수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주한미군에서 40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영규 공보관은 “새삼스러울 게 없는 훈련이다. 너무 과장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대북 경각심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곧 전쟁이 날 것처럼 민감하게 반응할 일은 아니다. 북한이 ‘북침 연습’이라고 주장하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서는 연례 행사라고 하면서 미국인 철수 훈련은 전쟁의 전조라고 하는 이중적 태도는 곤란하다. 지난해처럼 주한미군 가족들에게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는 식의 가짜뉴스로 시민 불안을 조장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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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비롯한 800여개 도시에서 24일(현지시간) 총기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지난달 총기난사 사건으로 17명이 희생된 플로리다주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의 생존학생들이 주도한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에는 초·중·고교생과 교사, 학부모 등 각계각층 시민이 참여했다. 워싱턴 집회에만 80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지지를 표명했고, 배우 조지 클루니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은 기부금으로 힘을 보탰다. 한 연사는 “혁명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며 자신들의 운동을 ‘혁명’으로 규정했다. 슬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낸 젊은이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은 ‘총기의 나라’다. 민간인 보유 총기 수가 2억7000만~3억정으로 추산된다. 인구가 3억2600여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1인 1정꼴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999년 컬럼바인 고교 사건 이후 최소 193개 학교에서 18만7000여명이 총격사건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총기규제가 강화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무기 소지 및 휴대에 관한 권리’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2조가 역사·문화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미국 최대의 이익단체인 미국총기협회(NRA)의 강력한 로비는 정치적 장애물이다. 연방 상·하원 의원들은 총기사건이 발생하면 충격과 분노를 표시하지만 그때뿐이다. 규제 강화 입법에 적극 나서거나 NRA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들은 거의 없다. NRA가 쏟아붓는 후원금이 끊길까 두려워서다. 돈 때문에 수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있으니, 이런 야만이 없다.

 

더글러스 고교 사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학교 내 총기 참사를 막기 위해 ‘교사를 무장시키자’고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또한 공화당의 전통적 자금줄인 NRA를 의식해 근본적인 규제 강화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집회에 대해서도 백악관이 “수정헌법 1조의 권리(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행사하는 미국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했을 뿐, 트럼프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운동의 주역으로 등장한 청소년들의 요구에 계속 침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막거나 줄일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방치하는 것은 문명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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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미국 대중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의 한 명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끝부분이다. 번역 오류라든가 프로스트가 매우 싫어했다던 평론가들의 해석논쟁은 접어두고 가장 광범하게 받아들여지는 의미를 새겨본다. 지정학의 저주로 불리는 한반도를 살아가는 한국은 외교에 있어 운명적 결정이 유난히 많다. 그래서 역사적 변곡의 시점이라고 느낄 때마다 자주 이 시가 떠오른다.

 

지금도 우리는 그런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하더라도 전쟁위기를 말했었는데 지금 대화와 화해를 말하고 있다. 황태덕장이 있었던 세찬 언덕바람의 혹한을 고스란히 받아냈던 평창 동계올림픽은 어렵게 평화의 온기를 만들어냈다. 아무도 감히 예상치 못했던 일이며, 트럼프의 당선만큼이나 정치학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온갖 조롱을 받던 ‘한반도 운전자론’이나 북한을 포함한 모든 관련국들의 외면을 받던 ‘베를린선언’은 불과 1년도 안된 일이다. 의심과 냉소 가운데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견지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이니셔티브는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기적처럼 다가온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기회 앞에서 우리는 다시 두 갈래 길 앞에 선 것처럼 분열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미국, 중국, 유럽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은 ‘이미 가본 길’이라는 말이었다. 이면에는 가봤던 길은 실패의 길이며, 북한에 늘 속고 마는 맹목과 오판이라는 비판이 내재되어있다. 군사옵션을 언급하는 강경파는 물론이고, 상당수 대화론자들도 두 개의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결정되기 이전에는 전적 불신, 이후에도 반신반의에 머무른다.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긍정의 차원에서 강조하는 조심성이라면 희망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현실감각이 되겠지만, 실패한 역사의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섣부른 냉소와 비판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하거나 심지어 뒷걸음질하게 만들 수 있다.

 

어찌 협상만 가본 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반도에서 북한 핵 문제가 시작된 지 30년을 향하고 있다. 대화, 협상, 경제지원 등의 온건한 방법은 물론이고, 압박이나 제재 등의 강경한 방법까지 동원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느 방법이든 충분하게 추진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본 길이라고 하더라도 못 갈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걸려 넘어졌던 자리를 알기에 피해갈 수 있으니 성공의 확률은 높아진다.

 

또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못 갈 이유는 없다. 어느 길이든 완전히 다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스트가 노래한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결론은 길이 달라서라기보다 선택한 자의 의지 때문이라고 믿는다.

 

지난한 협상과 검증, 그리고 폐기의 과정은 살얼음이며 유리그릇 같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확실히 다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어질 두 개의 정상회담에서 해결의 시한과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맞교환하는 빅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모든 과정이 완벽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백지화되어버렸지만, 이번에는 목적지점을 정할 경우 과정은 축약될 수 있다. 지뢰를 제거할 때 조심스럽게 하나씩 제거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꺼번에 폭발시켜 제거할 때도 있는데 지금이 그런 때다. 다른 하나는 지난 수년간 절체절명의 막다른 골목 같은 상황을 겪은 후 혼신을 다해 붙잡은 마지막 기회라는 절실함을 거의 모든 당사국이 절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하겠다.

 

9년간 철저하게 끊어버렸던 대화의 연결고리와 막아버렸던 입구들이 운전자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과 미국도 놀라고 있을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루어진 것은 아직 없으며, 한국 정부가 물꼬를 트고 나니 주변국들은 벌써 저마다의 주판알을 튕기며 숟가락을 얹으려 하고, 훼방꾼도 등장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선택을 앞에 둔 망설임이 아니라 과감한 선택의 결과로서의 운명을 개척해야 할 때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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