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미국인은 전 세계 인구의 4.3%지만 전 세계 민간인이 가진 총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 1968년 이후 미국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남북전쟁과 수많은 해외 참전에서 죽은 사람보다 많다. 비극적인 총기 난사 사고가 반복돼도 미국은 총기 규제로 좀체 나아가지 못했다. 총은 자기방어라는 미국적 신념의 결정체인 전미총기협회(NRA)는 너무도 거대했다.

 

그런 미국에 요즘 균열이 보인다. 지난달 14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로 17명이 숨진 후 일어난 총기 규제 여론은 종전과 좀 다르다. 총기를 규제하자고 외치다 거듭 좌절된 절박함이 임계점을 넘은 것일까. 총기를 규제하자고 하는 이들은 이제 ‘행동’하고 있다.

 

그 중심에 해시태그가 있다. 해시태그는 이제 ‘총기규제(#guncontrol)’를 넘어 ‘보이콧NRA(#boycottNRA)’로 진화했다. NRA에 투자하거나 NRA 회원에게 할인을 제공하거나 NRA의 홍보 채널을 가진 모든 연관기업이 보이콧 리스트에 올랐다.

 

‘#보이콧NRA’는 플로리다 총기 난사 사고 이틀 뒤 은퇴한 교장 주디스 피어슨이 트위터에 “내용 없는 애도에 신물이 난다. 이제는 (총기 난사의 주범인) 반자동 소총 AR-15를 불법화하고 이에 응하는 모든 이에게 상을 주자”고 제안하면서 해시태그를 단 것이 시작으로 꼽힌다. 여기에 사고에서 살아남은 10대들과 운동가들이 가세하면서 거대한 캠페인으로 번졌다.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연방법원 앞에서 17일(현지시간) 학생들이 ‘돈이 내 친구들을 죽였다’ 등 팻말을 들고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포트로더데일 _ 로이터연합뉴스

 

6년 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정치인들에게 NRA의 후원을 거절하라는 운동이 벌어졌지만 아예 NRA의 돈줄을 끊겠다는 전략은 새로운 양상이다.

미국의 거대 민영은행 내셔널 뱅크 오브 오마하를 시작으로 델타항공,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트루카, 허츠, 에이비스, 알라모, 시만텍 등이 불매운동에 손을 들고 NRA와 연을 끊었다. NRA가 24시간 총기를 홍보하는 방송을 내보내는 TV 채널을 아마존에서 내리라는 청원에는 5일 현재 28만여명이 참여했다. 아마존이 계속 침묵하자 이들은 #보이콧아마존(BoycottAmazon)과 #가입취소아마존(CancelAmazon)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회원가입을 철회한 뒤 이를 인증하는 화면사진을 찍어 서로 공유하자, 모든 포스팅에 아마존 보이콧 해시태그를 달라는 주문은 구체적이다.

 

해시태그가 사회운동의 핵심 도구로 쓰이면서 ‘해시태그 행동주의’라는 말을 낳았다. 해시태그는 소셜미디어에 흩어진 목소리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준다. 내 목소리가 거대한 파도의 일부임을 느끼게 한다. 

 

#미투(MeToo)는 고립돼 있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줬고 #미퍼스트(MeFirst), #위드유(WithYou) 같은 공감으로 확산됐다. 인종차별적 공권력 남용에 저항하는 ‘#흑인의생명도중요하다(BlackLivesMatter)’는 흑인의 분노를 거리로 불러냈다. 

 

하지만 해시태그 행동주의는 ‘소심하고 게으르다’는 비판도 받았다. 아무리 해시태그가 널리 퍼져도 실제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미셸 오바마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납치한 여학생들을 석방하라며 ‘#우리소녀들을돌려달라(BringBackOurGirls)’는 해시태그를 달고 수많은 사람이 리트윗을 해도 보코하람이 트위터를 보고 ‘아, 우리가 마음을 바꿔야겠다’고 하지는 않는 것처럼.

‘미투’의 종착점은 성폭력을 낳는 뿌리 깊은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 ‘흑인의생명도중요하다’도 시위를 넘어 흑인을 차별하는 제도를 바꾸는 일로 나아가야 한다. 

‘#NRA보이콧’이 총기 규제라는 미국의 수십년 묵은 과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면 소셜미디어와 현실의 무력한 괴리를 좁히는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이인숙 뉴콘텐츠팀장>

 

'경향 국제칼럼 > 기자메모, 기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시태그의 힘  (0) 2018.03.06
정치권 ‘미투’, 남의 일일까  (0) 2018.02.27
막말의 비용  (0) 2018.01.23
목욕을 생수로 해야 하는 도시  (0) 2017.11.30
가미카제와 쿠데타  (0) 2017.11.02
노동자 잃은 사민당  (0) 2017.09.28
Posted by KHross

문화·종교계 남성 인사들의 성폭력 전력을 폭로하는 증언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누가 더 충격적인지 경중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명제는 만고불변의 진리였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시기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이 권력을 행사해 여성에게 성적 관계를 강제하는 일은 지역과 문화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이 시작된 미국을 포함해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도 일부 남성의 성의식 수준은 한국보다 나을 게 없다.

 

가장 최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 유력 인사는 바너비 조이스 전 호주 부총리다. 조이스는 그의 공보 비서였던 여성과 내연 관계임이 보도된 데 이어 별도의 성폭력 의혹까지 받고 있다. 2주간 비판 여론이 들끓자 결국 그는 소속 국민당 대표직과 부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부총리가 일으킨 스캔들은 내각 조직문화에 대한 토론에 불을 댕겼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장관과 부하직원의 성관계를 금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장관 윤리강령에 매우 분명하고 명백한 조항을 추가할 것”이라며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장관들은 직원과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간 개인의 양심과 도덕에 맡겨뒀던 사안을 윤리강령에 넣어 당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총리가 이렇게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것은 정치인이 직원에게 성적인 관계 맺기를 요구하는 일이 그만큼 만연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인과 부하직원 간에 사랑이 싹트는 상황도 없지는 않겠으나, 대다수 직원들은 상급자의 심기를 거슬렀을 때 닥칠 불이익이 두려워 불쾌한 언행을 간신히 참아주고 있을 것이다.

 

정치인과 부하직원의 성적 관계라면 미국도 일가견이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당시 백악관 인턴이던 모니카 르윈스키의 염문이 대표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도 과거 그에게 성추행당했다는 여성들의 폭로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미국 의회는 호주보다 먼저 의원들과 직원 간 관계 단속에 나섰다. 이달 초 미 하원은 의원과 직원의 성적 관계 맺기를 금지하고, 의원이 성추행 등으로 송사에 휘말렸을 때 합의금을 세비가 아닌 사비로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정치권에도 경각심을 일으킨 셈이다. 결의안이 정식 발효되려면 상원의 표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이 필요하지만, 의회가 자정 움직임을 보인다는 사실은 평가할 만하다.

 

영국 의회도 미투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 데이미언 그린 부총리가 성추문으로 낙마한 뒤 의회 내 성폭력조사위원회가 발족해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지난해 의회 직원 5명 중 1명이 성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조사위는 의원의 성폭력 사실이 확인될 경우 의원직을 박탈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린 전 부총리에게 성희롱당한 사실을 폭로한 칼럼니스트 케이트 말트비는 최근 일간 가디언 기고문에서 영국의 한 의원실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A의원 사무실에 들렀다가 25세 여성 직원을 발견한 B의원이 A의원에게 “자네가 갖지 않겠다면 내가 가져도 되겠느냐”고 공공연히 물었다는 얘기다.

 

말트비는 “의원들은 자신을 신이라고 여긴다”며 “그들은 하급 직원들과의 직업적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가르쳐주지 않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 직원에게 지켜야 할 선을 지키지 않는 게 어디 영국 의회만의 일일까. 한국 국회의원들의 성의식 수준이 미국이나 영국 의원들보다 높다는 근거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현재 문화·종교계에 번진 미투의 들불이 언제 정치권으로 옮겨붙을지 노심초사할 국회의원이 다수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국제부 | 최희진 기자>

 

'경향 국제칼럼 > 기자메모, 기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시태그의 힘  (0) 2018.03.06
정치권 ‘미투’, 남의 일일까  (0) 2018.02.27
막말의 비용  (0) 2018.01.23
목욕을 생수로 해야 하는 도시  (0) 2017.11.30
가미카제와 쿠데타  (0) 2017.11.02
노동자 잃은 사민당  (0) 2017.09.28
Posted by KHross

정치 신인이라던 대통령은 알고 보니 외교의 달인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세련된 외교 매너로 서구 언론의 혼을 쏙 빼놓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마크롱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고 썼고, 영국 가디언은 마크롱에게 ‘외교적 제스처의 장인(master)’이라는 수식어를 선사했다. 최근 마크롱은 독일·영국 등 다른 유럽 주요국 정상들보다 더 빈번히 뉴스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마크롱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상징을 적절히 활용해 정치와 외교에 서사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상징 활용은 정상 외교의 각종 이벤트에서 두드러진다. 마크롱은 지난해 9월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해 유럽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유럽연합(EU)의 미래상을 제시할 곳으로 민주주의가 태동한 아테네보다 더 적합한 장소가 어디 있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프랑스 혁명기념일인 바스티유 데이(7월14일) 행사에 초청한 것도 세심하게 기획된 작품이다. 이날 마크롱은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트럼프에게 보여줌으로써 프랑스군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말(馬)을 선물한 것이나 영국에 11세기 자수작품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대여하기로 한 결정도 마크롱이 상징 외교에 들이는 정성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의미 있는 선물과 이벤트로 감동을 안기다가도 분쟁과 갈등에 예각을 세우고 직설을 아끼지 않는 것 역시 마크롱 외교의 특징이다. 특히 공동 기자회견에서 상대국 정상 면전에 ‘돌직구’를 던지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자신에 대한 허위 기사를 유포한 러시아 매체를 비난했고, 지난달 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선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것을 비판했다. 이런 외교술 덕분에 프랑스는 할 말은 하는, 갈등의 중재자이자 해결사라는 평판을 쌓아가고 있다.

 

프랑스의 위상이 올라가는 사이, 거의 모든 국제문제의 해결사를 자임했던 미국의 신뢰도는 이울고 있다. 마크롱이 상징과 직설 사이에서 솜씨 좋게 줄타기한다면 트럼프는 막말의 ‘외길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데, 막말도 대륙 하나를 들었다 놓을 정도의 폭탄 발언만 골라서 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입과 트위터로 쏟아내는 무신경하고 부주의한 발언은 전 세계에 혼란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아이티와 아프리카 국가를 ‘거지소굴(shithole)’이라 부른 것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정부 관계자와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내 핵단추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것보다 크다”는 말은 트럼프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과 실제 건강검진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북한은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던 것도 트럼프의 거친 발언이 초래한 비용이다. 백악관에서 막말이 나올 때마다 골치를 앓았을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거의 매주 드라마를 찍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시민들이 트럼프에게 느끼는 피로감은 수치로 구체화되고 있다. 취임 1주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국정수행 지지도는 40%에 그쳤다. 외교 업무 수행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56%, 다른 나라 정상들이 트럼프를 존경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도 65%에 이르렀다.

 

마크롱은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거지소굴 발언을 비판하며 “그는 고전적(classical) 정치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전적인 정치 문법을 모르는 트럼프에게 마크롱 수준의 외교 수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트럼프의 임기는 3년 더 남았다. 그가 무분별한 발언으로 평지풍파 일으키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설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국제부 | 최희진 기자>

'경향 국제칼럼 > 기자메모, 기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시태그의 힘  (0) 2018.03.06
정치권 ‘미투’, 남의 일일까  (0) 2018.02.27
막말의 비용  (0) 2018.01.23
목욕을 생수로 해야 하는 도시  (0) 2017.11.30
가미카제와 쿠데타  (0) 2017.11.02
노동자 잃은 사민당  (0) 2017.09.28
Posted by KHross

“엄마가 오늘 추수감사절 요리에 쓸 야채를 씻는데 한 번 씻을 때마다 생수 4병을 썼다. 그렇게 3번을 씻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미국의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을 앞둔 지난 21일,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의 탈리아 부퍼드 기자는 이런 트윗을 올렸다. 부퍼드의 고향은 미시간주의 작은 도시 플린트다. 지난해 이맘때 플린트 주민 멜리사 메이스도 트위터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식구들이 모여 앉은 식탁을 배경으로 작은 화이트보드에 추수감사절 요리를 하면서 쓴 생수 58병의 내역이 적혀 있다. 칠면조 해동하고 소금물에 담그기: 생수 33병, 칠면조 헹구기: 3병, 야채 씻기: 6병, 으깬 감자 요리: 6병…. 메이스는 지난 22일 온라인 매체 쿼츠에 “올해도 생수병을 따다 손에 물집이 잡혔다”고 말했다.

 

플린트에서는 수돗물이 납에 오염돼 먹지 못한 지 30일로 790일이 된다. 병에 든 생수로 살아온 지 3년째지만 추수감사절 요리는 플린트의 불합리를 더욱 아프게 드러낸다. 지나 러스터는 7살 딸을 목욕시킬 때 딸아이와 ‘생수로 욕조 채우기’ 게임을 한다. 30분이 걸린다. 러스터네 네 식구의 하루에는 생수 150병이 든다. 그가 수돗물을 쓰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변기 물을 내릴 때.

 

그런데도 주민들에게는 매달 먹지도 못하는 물에 200달러가 넘는 돈을 내라고 청구서가 날아온다. 2010년대 들어 시 재정이 악화되면서 플린트의 수도요금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환경보건 단체 푸드앤드워터워치가 지난해 2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전해 1월 기준 플린트의 가구당 연간 수도요금은 864.32달러로 전국 500개 도시 중 가장 비쌌고 전국 평균 요금의 거의 3배였다.

 

플린트는 전체 인구 9만7000여명 중 흑인이 57%이며 전체 인구의 42%가 빈곤층이다. 플린트가 고향인 마이클 무어 감독은 “공화당 소속 릭 스나이더 주지사가 2011년 취임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업과 고소득자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였다. 세수가 줄자 학교, 연금, 식수 안전 등 공공 예산을 깎았다”고 비판했다.

 

플린트시는 디트로이트의 상수관을 이용해 깨끗한 휴론 호수의 물을 사서 쓰다가 재정난이 심해지자 2014년 4월25일 가까운 플린트강으로 상수원을 바꿨다. 이때부터 수돗물이 누렇게 변하고 악취가 났다. 플린트는 1908년 제너럴모터스(GM)가 설립된 곳이다. GM 공장은 번영을 가져다줬지만 플린트강은 ‘GM의 하수구’로 불렸다. 강물은 깨끗하지 않았고 낡은 상수도관은 부식돼 있었다. 주정부는 돈이 없다고 약품 처리도 하지 않았다. 1년 반 동안 납에 오염된 수돗물이 나왔지만 주정부는 “안전하다”고 무시하다가 이듬해 10월에야 수돗물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그사이 수많은 아이들이 납에 중독되고 레지오넬라병으로 주민 12명이 숨졌다.

 

플린트 사태로 전국이 들끓었다. 정부가 움직이고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해결은 더뎠다. “제때 보고를 안 했다” “몰랐다”는 공무원들의 변명이 반복되고 성난 주민들은 시·주·연방정부를 상대로 10여건의 집단 소송을 걸었다. 지난 3월에야 환경보호국(EPA)은 플린트 상수도 시설 개선에 1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정부는 플린트의 오염된 상수도관 1만8000개를 교체하는 데 동의했다. 지난 6월까지 시 공무원 15명이 과실치사로 기소됐다. 지난 21일 플린트 시의회는 주정부 산하 수도청에서 30년 동안 상수원을 공급받는 합의안을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지금 당국이 물을 여과해 납 성분은 안전한 수준까지 낮췄다고 하지만 누구도 수돗물에 손대지 않는다. 시 재정과 주민의 건강을 바꾼 결정은 다시 심각한 불신과 절망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상수도관이 모두 바뀌는 2020년이면 마음이 좀 놓이고 생수병을 따는 수고로움이 덜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플린트에 사는 한 우리는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는 마음의 상처는 치료될 것 같지 않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경향 국제칼럼 > 기자메모, 기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권 ‘미투’, 남의 일일까  (0) 2018.02.27
막말의 비용  (0) 2018.01.23
목욕을 생수로 해야 하는 도시  (0) 2017.11.30
가미카제와 쿠데타  (0) 2017.11.02
노동자 잃은 사민당  (0) 2017.09.28
러시아 제재 계산표  (0) 2017.08.03
Posted by KHross

스페인의 ‘반역자’로 몰린 카를레스 푸지데몬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의 처지가 궁색하다. 지난달 27일 독립 선언 후 자치정부가 해산되고 검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자 그는 벨기에 브뤼셀로 몸을 피했다. 그가 여기서 정치적 망명을 하려 한다는 설이 돌았다. 지난달 31일 그는 “망명을 신청하러 온 게 아니라 자유롭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이곳에 왔다”며 “스페인 정부가 (신변 등) 보장을 해준다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벨기에 정부에는 네덜란드어권 지역 플랑드르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신플랑드르연대’가 참여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인 이들이 우호적으로 대해 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의회 최대 정당으로 정치권의 ‘주류’가 된 신플랑드르연대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푸지데몬을 초대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벨기에 언론에 따르면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는 신플랑드르연대 출신 장관들이 만나 스페인과 외교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푸지데몬과 접촉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지난달 29일 카탈루냐 독립에 반대하는 수십만 인파가 바르셀로나 거리를 메웠다. 스페인 깃발이 나부꼈다. ‘침묵하던 다수’가 나왔다고들 했다. 카탈루냐 독립을 주도했던 민중연합후보당(ERC)과 그가 속한 카탈루냐민주당(PDeCAT)은 조기총선을 받아들였다.

퇴로가 막힌 푸지데몬은 결국 12월21일 치러질 조기선거를 받아들이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고 했지만 이미 힘은 빠졌다. 스페인 고등법원은 푸지데몬과 해산된 자치정부 각료 13명에게 2일 반역죄를 심판할 마드리드의 법정에 서라며 소환장을 발부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푸지데몬은 최고 3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스페인 정부는 푸지데몬을 궁지로 몰았으니 성공한 걸까. 당장 분리주의자의 목소리는 작아진 듯하지만 12월 선거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카탈루냐의 민심은 복잡하다. 지난달 1일 스페인 경찰의 봉쇄 속에 얼렁뚱땅 치러진 국민투표는 투표율이 43%에 불과해 반쪽 여론에 불과했다. 카탈루냐의 독립 찬성과 반대 여론은 늘 분분했다. 엘문도가 여론조사기관 시그마도스에 의뢰해 지난달 30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43.3%가 독립을 반대해 찬성 여론(42.5%)보다 조금 높았다. 독립 선언 전인 지난달 23~26일 실시된 조사다. 자치정부의 공공여론조사센터가 지난달 31일 내놓은 결과는 찬성이 48.7%로 반대 43.6%보다 높다.

 

그러나 또 다른 조사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29일 시그마도스 조사에서 카탈루냐인들은 중앙정부가 자치권을 박탈하려 헌법 155조를 적용하는 것에 55.5%가 반대하고 32.5%만 찬성했다. ‘침묵하는 다수’들이 독립에 부정적이어도 중앙정부의 강경대응과 억압적 직접 통치 역시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풀뿌리 시민활동가 출신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의 말은 카탈루냐 사태의 본질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다. “분리주의 정당들이 다수의 지지를 결여한 채 카탈루냐 독립 공화국을 향해 ‘가미카제식 질주’를 한 것에 대응해 마드리드는 ‘민주주의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둘 사이에 대화와 타협을 모색하는 ‘정치’는 실종되고 유권자도 소외됐다.

스페인 정부와 카탈루냐 분리주의자들의 정치 도박은 돌아 돌아 결국 다시 카탈루냐 유권자의 손에 맡겨졌다. 위기의 근인을 짚어보고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일단 스페인 정부가 폭력 없이 이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누군가의 출마를 제한하지 않고 투명한 선거를 보장하는 것이다. 선거를 유리하게 움직이려 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또 결과가 어떻든 민의를 과대포장해 또 다른 정치 도박을 벌이는 일은 카탈루냐 유권자를 배신하는 것이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경향 국제칼럼 > 기자메모, 기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말의 비용  (0) 2018.01.23
목욕을 생수로 해야 하는 도시  (0) 2017.11.30
가미카제와 쿠데타  (0) 2017.11.02
노동자 잃은 사민당  (0) 2017.09.28
러시아 제재 계산표  (0) 2017.08.03
헬무트 콜의 씁쓸한 장례식  (0) 2017.07.06
Posted by KHross

24일(현지시간) 독일 총선 결과가 나온 후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SPD) 대표는 ‘씁쓸한 승리’를 거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향해 “이번 총선의 최대 패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슐츠가 메르켈 총리를 비웃을 처지는 아니다. 이번 총선의 최대 패자는 다름 아닌 슐츠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민당은 지금 존폐 기로에 놓였다. 사민당은 한때 굳건한 ‘노동자의 정당’이었다. 진보적 성향의 청년층과 중산층의 지지까지 더해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가 이끌던 1960~1980년대는 40%가 넘는 지지율을 자랑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신승한 2002년에도 38.5%로 연정을 끌고 나가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20.5%로 주저앉아 1933년 이래 최악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사민당의 텃밭이던 구동독지역, 북부 함부르크, 브레멘과 서부 루르의 산업 지역 등에서 대거 지지층을 잃은 것이 컸다. 독일 주간 디자이트는 “사민당이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기댈 수 없다는 걸 보여줬다”고 썼다. 여론조사기관인 인프라테스트디맵과 선거연구그룹(FGW)의 분석을 보자. 노동자 계층의 사민당 지지율은 1998년 49%에서 올해 25%로 반토막이 났다. 4년 전 총선과 비교해보면 사민당 지지자 중 여전히 사민당을 지지한 사람은 절반(53%)밖에 안된다. 사민당을 지지했던 이들의 9.2%는 이번에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고, 이념좌표에서 매우 오른쪽에 있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자유민주당에로 4.5%, 4.9%씩, 사민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좌파당으로 6.2%가 이탈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뒤에 ‘앵그리 화이트’가 있었다면 AfD의 약진 뒤에는 ‘성난 오시(Ossi)’들이 있었다. 오시는 구동독지역 사람을 말한다. AfD는 구동독지역에서 전국 지지율의 2배 가까운 22.5%를 득표했다. 인구개발베를린연구소의 라이너 클링홀츠는 디벨트에 “좌절한 사람들이 AfD를 시위용 정당으로 선택했다”며 “이들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일자리가 없어진 변화의 루저”라고 말했다. ‘오시’들은 실업자 사회보장제도 개혁과 밀려드는 난민으로 ‘뭔가를 빼앗겼다’고 느꼈다.

 

사민당은 8년 대연정 속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이번 총선 캠페인에서 뒤늦게 ‘사회정의’를 외쳤지만 유권자의 80%가 사민당이 사회정의를 이루기 위해 뭘 하려 하는지 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슐츠는 메르켈의 연정 제안을 거부하고 야당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야당이 된다고 활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독일 사민당의 모습은 유럽 전통 좌파의 위기를 재확인해주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은 올해 대선에서 6%의 지지율로 결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6월 총선에서는 284석의 거대 정당에서 29석짜리 군소정당으로 몰락했다. 영국 노동당은 ‘제3의 길’을 주창한 토니 블레어 이후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제러미 코빈을 중심으로 한 강경좌파가 당을 이끌고 있지만 재집권은 물음표다. 스페인의 사회당도 극좌 포데모스와 카탈루냐 민족주의자들에게 지지기반을 내줬다.

 

이들은 하나같이 노동의 변화를 읽지 못하거나 외면했다.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거대 노조로 결속돼 있지도 않고 삶의 수준과 노동의 조건도 제각각 달라졌다. 역설적이게도 1990~2000년대 좌파 정당들이 선택한 ‘뉴레프트’가 이렇게 파편화되고 분절된 노동을 도왔다. 블레어의 ‘제3의 길’이 그랬고 슈뢰더가 밀어붙인 ‘개혁 2010’이 그랬다.

 

그 결과 이제 민심은 ‘계급’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일련의 선거를 통해 왜 좌파 정당들이 우리의 문제를 더 이상 대변해주지 않느냐고 따지고 있다. 독일 총선은 노동의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좌파 정당들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묻고 있다.

 

<이인숙 국제부>

'경향 국제칼럼 > 기자메모, 기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욕을 생수로 해야 하는 도시  (0) 2017.11.30
가미카제와 쿠데타  (0) 2017.11.02
노동자 잃은 사민당  (0) 2017.09.28
러시아 제재 계산표  (0) 2017.08.03
헬무트 콜의 씁쓸한 장례식  (0) 2017.07.06
알자지라의 앞날  (0) 2017.06.08
Posted by KHross

미국 의회가 지난달 27일 러시아를 제재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 러시아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한데 유럽도 화가 났다. 독일 지그마어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미국이 관할을 넘어 유럽 기업을 제재하는 건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지난주 “우리의 우려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으면 법 시행 후 EU는 수일내 적정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제재에 같이 동참하고 있는 유럽이 왜 미국에 화를 내는 걸까. 가스관 때문이다. 미국은 이번 제재 법안에서 기존 러시아 제재에 “러시아 가스관 수출의 건설·복구 사업에 투자하거나 물자 및 기술,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업을 제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더했다. 법안은 러시아에서 독일로 오는 가스관 확장사업인 노드스트림2 프로젝트를 콕 찍어 “EU의 에너지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대한다”고 적었다. 본심은 뒷문장에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에너지 수출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독일은 이를 놓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선 ‘무엇보다 미국(America Above All)’이라고 했다. 미국의 가스 수출을 늘리려고 러시아 제재를 이용했다는 얘기다. 발트해저 1200㎞에 깔린 노드스트림은 동유럽을 거치지 않고 러시아 브이보르그에서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로 바로 가스를 보낸다. 노드스트림2가 놓이면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오는 가스의 80%가 독일을 거쳐가게 된다. 독일이 중계지가 되는 셈이다. 독일의 이권만 걸린 게 아니다.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이 주도했지만 이 사업에는 독일의 유니퍼와 윈터셀, 프랑스의 엔지, 영국·네덜란드 합작 로열더치셀, 오스트리아의 OMV 등 서유럽의 에너지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배로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는 그간 러시아의 값싼 가스값에 밀려 유럽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러시아는 유럽 가스의 34%를 공급한다. 노드스트림2가 깔리면 40%를 넘을 수 있다.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수입처를 다변화해야 하지만 시장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미국을 보는 유럽의 마음은 불편하다. 가스관 밸브가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든, 미국이든 일방적 사업자는 달갑지 않다.

 

러시아 제재 법안은 동·서유럽을 찢어놓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동유럽 국가들은 노드스트림2 사업을 반대해왔다. 가스가 독일로 바로 오면 경유 수수료를 뺏기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폴란드가 타격이 제일 크다. 이들 나라가 빼앗길 경유 수익을 가져가는 중유럽은 독일 편에 서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불안감, 서유럽을 향한 경제적 박탈감이 심한 동유럽을 끌어당기고 있다.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폴란드를 찾은 건 서막이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달 30일부터 에스토니아 등 동유럽을 순방 중이다.

 

국익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는 게 외교라지만 미국은 이번에 대놓고 ‘얌체짓’을 했다. 그런데 미국은 제대로 계산기를 두드린 걸까. 미국 기업들도 의회에 반대 로비를 벌였다. 엑손모빌, GE, 셰브론 같은 에너지 기업뿐 아니라 보잉, 씨티, 마스터카드, 포드 등이 제재 때문에 러시아보다 미국 산업에 손해가 클 거라고 걱정했다. 러시아가 관련된 극지방, 심해 유전 개발부터 금융 거래, 주요 광물 수입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에 미국만 이익을 보는 글로벌 비즈니스란 없는 법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전통의 우방 미국과 유럽 사이는 껄끄럽기만 하다. 파리 기후변화협정,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방위분담금 문제에 이어 가스관은 그 간격을 더 벌려놓을 듯하다. 미국과 유럽이 멀어질수록 러시아가 움직일 공간은 더 커진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경향 국제칼럼 > 기자메모, 기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미카제와 쿠데타  (0) 2017.11.02
노동자 잃은 사민당  (0) 2017.09.28
러시아 제재 계산표  (0) 2017.08.03
헬무트 콜의 씁쓸한 장례식  (0) 2017.07.06
알자지라의 앞날  (0) 2017.06.08
공허한 ‘아는 척’ 이제 그만  (0) 2017.05.11
Posted by KHross

지난달 16일 오후 5시17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 위해 바티칸에 도착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헬무트 콜 전 총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뉴스 보도를 통해서였다. 메르켈은 급히 조용한 장소를 찾아 콜의 부인 마이케 리히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도를 표하고 장례 절차를 논의해야 했다. ‘독일 통일의 설계자’ 콜에게는 국장이 마땅했다. 리히터는 유럽장(葬)을 말했다. 리히터는 이미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얘기를 끝낸 뒤였다. 다음날 융커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장을 거론하며 운을 띄웠다. 콜이 유럽통합에 기여했고, 세 명뿐인 EU명예시민이기에 자격은 충분했다. 그렇게 콜은 지난 1일 치러진 사상 첫 유럽장의 주인공이 됐다. 콜의 영결식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 치러졌다. 그가 안치된 관은 라인강을 따라 고향 인근 독일 남서부 슈파이어 성당으로 옮겨져 장례미사 후 묘지에 묻혔다.

 

1일(현지시간) 첫 유럽연합(EU)장으로 치러진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장례식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앞줄 왼쪽에서 두번째부터) 등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콜 전 총리의 시신을 실은 관은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라인강을 따라 배로 이동해 고인의 고향 인근 독일 남서부 슈파이어의 아데나우어 공원묘지에 묻혔다. 슈파이어 _ EPA연합뉴스

 

정작 독일 국민들은 콜의 업적을 제대로 기리고 애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콜의 부인은 독일 땅에서 이뤄지는 어떤 국가 의식도 거부했다. 리히터가 생각한 유럽의회 영결식 초대 명단에는 당초 독일 정치인이 한 명도 없었다. 나중에 주변에서 리히터를 설득해 메르켈만 간신히 추도사를 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메르켈은 ‘정치적 아버지’를 보내는 ‘상주’가 아니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여러 연사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의도는 명백했다. 콜은 말년에 메르켈을 “배신자”라 불렀다. 콜은 동독 정부의 부대변인이던 메르켈을 중앙 정계에 발탁했지만, 1998년 기독민주연합의 정치자금 스캔들 때 메르켈에 의해 당 대표에서 물러나야 했다. 콜은 메르켈이 등에 칼을 꽂았다고 여겼다. 콜의 분노를 샀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도 초대받지 못했다. 콜의 후임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콜 임기 말년의 자료 파기문제를 조사할 때 슈타인마이어가 총리실 실장이었다.

 

콜의 두 아들은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국장을 치르길 원했다고 한다. 또 아버지가 2001년 불행하게 자살한 어머니 하넬로어 옆에 묻히길 바랐지만 리히터는 거부했다. 콜이 1990년대 중반부터 가깝게 지내던 35살 연하의 총리실 직원 리히터와 2008년 재혼한 뒤 부자는 의절하다시피 했고 가까운 친구, 지인들과의 관계도 단절됐다. 큰아들 발터는 콜의 별세 후 콜의 자택을 찾았지만 들어가지도 못했다. 콜의 가족은 슈파이어 장례미사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는 독일인들의 마음은 극도로 불편한 듯하다. 오늘의 독일을 만든 주인공에게 오늘의 독일이 부정당하는 모양이 됐기 때문이다. 콜은 그저 이름난 정치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독일 역사의 한 장(章)이었다. 메르켈의 말대로 “콜이 없었다면 나를 포함해 1990년 전까지 베를린 장벽 뒤편(동독)에 살았던 수백만명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노와 적대로 말년을 보낸 콜의 마지막 가는 길은 상처로 얼룩졌다. 콜의 정치적 유산은 콜만의 것도, 특정 유족의 것만도, 독일인의 것만도 아니다. 콜의 삶은 자신에 의해서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도 윤색되거나 삭제될 수 없는 공공의 기억이다. 콜은 기록 파기를 강력히 부인해 왔지만 그의 총리 재임 16년 동안의 총리실 기록에는 상당한 공백이 있다. 특히 독일 통일을 추진한 1989~1990년 당시 기록들이 없다고 한다. 콜의 자택에는 그가 남긴 방대한 자료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리히터가 ‘권리’를 주장한다는 이 기록은 누구의 것일까.

 

개인의 영욕 앞에 역사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정치인의 마지막은 씁쓸했다. 시대가 기록하는 이의 족적은 묘지에도 찍혀야 한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경향 국제칼럼 > 기자메모, 기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자 잃은 사민당  (0) 2017.09.28
러시아 제재 계산표  (0) 2017.08.03
헬무트 콜의 씁쓸한 장례식  (0) 2017.07.06
알자지라의 앞날  (0) 2017.06.08
공허한 ‘아는 척’ 이제 그만  (0) 2017.05.11
‘다마스쿠스의 봄’  (0) 2017.04.13
Posted by KHross

1999년 1월27일 저녁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도 알제 시내가 갑자기 캄캄한 암흑이 됐다. 전기가 나갔다. 전기가 부족해서도, 전력회사의 실수도, 천재지변이 온 것도 아니었다. 정부가 일부러 끊은 것이다. 정부가 수백만명의 불편과 바꾼 것은 알자지라 방송이었다. 이날 알자지라는 알제리 반정부 인사의 토론을 내보낼 예정이었다. 알제리군의 민간인 학살 같은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그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카타르 도하 알자지라 본사를 방문했다. 무바라크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 모든 소란이 이 작은 성냥갑에서 나온단 말이냐.” 개국한 지 3년밖에 안된 카타르의 방송사는 그렇게 중동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무바라크는 2년 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시민혁명으로 30년 독재를 내려놓고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지금 알자지라는 다시 걸프국이 주도한 카타르 ‘왕따’ 사태의 최전선에 섰다. 이웃 나라 쿠웨이트 군주 셰이크 사바가 중재를 자처하며 왕따를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갔지만 갈등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걸프국들이 원하는 건 뭘까. 걸프 안팎에서는 카타르와 이란의 친밀한 관계, 카타르의 ‘얄미운’ 개혁 등 여러 배경이 복잡하게 얽힌 이번 사태의 희생양으로 알자지라가 거론된다.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사우디,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수개월의 외교분쟁 끝에 카타르 주재 자국 대사를 모두 소환했다. 그때도 알자지라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하마스 같은 저항조직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지역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카타르의 특사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난 직후 카타르는 알자지라의 이집트 채널을 폐쇄하겠다는 양보안을 내놨다. 단교까지 치달은 상황을 볼 때 카타르는 이번에 더 큰 양보를 해야 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UAE의 유명 지역 평론가인 술탄 소우드 알카세미는 지난 4일 트위터에 “카타르의 첫 화해 제스처는 알자지라 폐쇄가 될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1996년 4월 영국 BBC방송이 사우디 정부와 공동 소유하고 있던 ‘BBC아랍’이 사우디의 검열을 둘러싼 갈등 끝에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일하던 인력과 카타르의 셰이크 하마드 전 국왕이 ‘빌려준’ 5억 카타르 리얄(약 1500억원)이 합쳐져 그해 11월 알자지라가 탄생했다. 알자지라는 철저한 정부의 보도 통제에 익숙하던 중동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물주’인 카타르 왕실과 정부를 빼면 알자지라의 보도 대상이 아닌 게 없었다. 알자지라는 아랍권 TV로는 처음으로 히브리어를 하는 이스라엘인을 방송에 내보낸 언론이었다. 알자지라가 선보인 라이브 토크쇼 <반대방향(The Opposite Direction)>은 늘 논쟁거리였다. 알자지라의 모토는 ‘의견 그리고 또 다른 의견’이다. 종래 언론에서 볼 수 없던 다른 목소리와 금기들이 전파를 탔다. 그들은 서방 언론과도 달랐다. 알자지라만 내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BBC, CNN 등에서 재방송됐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개국 후 첫 10년 동안 카타르 정부에 450건이 넘는 외교적 항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지난해 개국 20년을 맞은 알자지라는 400만명이 넘는 시청자를 확보한 중동의 1위 방송사가 됐다.

 

2010~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중동의 ‘알자지라 울렁증’은 더 극심해졌다. 당시 알자지라는 소셜미디어와 함께 ‘아랍의 봄’의 일등 공신으로 거론되며 ‘알자지라 효과’라는 말을 낳았다. 이집트 사상 최초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를 축출하고 들어선 엘시시 정권은 2014년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보도로 테러를 도왔다”며 알자지라 기자들을 가두고 추방했다. 사우디도 단교하자마자 알자지라의 리야드 사무소를 폐쇄해버렸다.

 

걸프국들과 카타르가 어떤 타협을 볼지 아직은 알기 어렵다. 만약 타협안에 휘말려 ‘다른 목소리’가 사라지게 된다면 불행한 일이다. 다른 건 원래 불편한 법이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Posted by KHross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세요?”


지난달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여성경제정상회의(W20) 회의장. 사회자의 직설적인 질문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옆에 앉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어쩔 줄 몰라하는 메르켈을 보더니 박수를 치며 폭소했다. 사회자가 패널에게도 물었다. “여기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메르켈의 초청을 받아 패널로 나란히 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의 손은 망설임이 없었다. 여성 지도자의 롤모델로 여겨지는 메르켈은 왜 끝내 손을 들지 않았을까.


이 작은 에피소드는 다분히 고지식하고 수사(修辭)와 친하지 않은 그의 성격 탓인 듯하다. 메르켈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페미니즘의 역사는 내가 공감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나는 그저 모든 여성이 선택과 기회의 자유를 누리길 원한다. 이런 게 페미니스트라면 나는 페미니스트겠지만 나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타이틀로 날 꾸미고 싶지 않다.” 그는 2013년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도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한다면 진짜 페미니스트들이 불쾌하게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번쩍 손을 든 ‘퍼스트도터’ 이방카가 지난 2일 <일하는 여성: 성공의 법칙 다시 쓰기>라는 책을 냈다. 세 아이를 둔 엄마이자 잘나가는 사업가로서 ‘워킹맘’들에게 전하는 성공의 조언을 담은 책이다. 누군가는 부러워 책을 사볼지 모르겠지만 책에 대한 평가는 혹평 일색이다.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온갖 영감을 주는 명언으로 범벅이 된 딸기 밀크셰이크”라고 표현했다. 실제 이방카의 책은 소크라테스,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 제인 구달 등 명사의 말로 가득하다. 구달은 “내 말을 진심으로 이해했길 바란다”고 뼈 있는 충고를 던졌다.


주옥같은 말씀이 겉도는 이유는 그와 어우러진 이방카의 공허한 경험 때문이다. 그는 “대선 기간에 너무 바빠 마사지도 받지 못했고 매일 아침 20분씩 하던 명상을 할 시간도 없었다”고 토로한다. 또 육아휴직을 하는 엄마들에게 “믿을 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서 당신이 떠난 자리를 지키게 하라”고 조언한다. 부동산 재벌의 딸로 태어나 7억4000만달러(약 8300억원)를 가진 자산가이자 아랫사람에게 언제든 일을 맡기고 언제든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는 트럼프그룹 부회장이니 가능한 얘기다. 성평등 운동가인 파티마 고스 그레이브는 “아무리 드라이브를 하고 화창한 해변에 놀러 나가도 집세와 밥값을 벌기 위해 분투하는 두 자녀 엄마의 삶의 무게가 덜어지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경험은 공감의 자양분이다. 그러나 겪어봤다고 공감할 줄 아는 건 아니다. 진짜 공감은 내 경험에 대한 성찰, 다른 이의 경험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이게 빠진 경험은 상처를 주는 독이 되기도 한다. 이방카의 ‘워킹맘’ 운운이 울림이 없는 이유, 차라리 어설프게 아는 척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메르켈의 말이 더 와닿는 이유다.


우리에게도 ‘내가 해봐서 다 안다’고 입버릇처럼 ‘노오력’을 말하던 대통령이 있었다. 찢어지는 가난에 고학으로 성공한 그는 시장에서 어묵을 먹고 청년들에게 실업타개책으로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런 경험도 없는 또 다른 대통령은 ‘아버지가 해봐서 안다’며 ‘한강의 기적’을 말하고 청년들에게 “중동에 가라”고 했다. 올해 대선에 나왔던 어떤 후보는 경비직 아버지와 까막눈 어머니를 앞세워 서민대통령을 자처하면서 ‘귀족노조’를 귀가 따갑도록 들먹였다.


새 대통령은 ‘친구 같은 대통령’을 말한다. 공허한 아는 척과 오만한 ‘지적질’은 이제 그만.


국제부 이인숙 기자

Posted by KHross

“알레포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잠을 이룰 수 있는가.” 온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51)은 지난해 11월6일 영국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하자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규칙적으로 자고 일하고 잘 먹고 운동도 한다.” 시리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느끼느냐고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테러리스트들의 잘못이다. 우리는 지금 자선이 아니라 전쟁을 얘기하고 있다.”

한때 아랍의 새로운 리더로 기대를 받았던 의학도는 ‘괴물’이 돼 있었다. 34살에 아버지 하페즈의 ‘30년 철권통치’를 이어받은 아사드는 당초 정치에 뜻이 없었다. 후계자는 카리스마 넘치던 장남 바셀이었다. 둘째 아사드는 1988년 다마스쿠스 의대를 졸업하고 시리아군에서 의사로 일하다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안과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속도광’ 바셀이 1994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하페즈는 그를 시리아로 불러들였다. 새 후계자를 위한 권력승계가 시작됐다. 아사드는 군에 들어가 권력 기반을 다지고 제2 권력자로 반부패 사정을 주도해 정적들을 제거했다. 2000년 하페즈가 사망하자 그해 7월 치러진 대선에서 아사드는 유일한 후보였다. 군, 정보기관, 집권 바트당을 장악한 아사드 세력은 헌법을 고쳐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이를 40살에서 34살로 낮췄다. 지지율은 99.7%였다.

 

아사드는 취임하면서 개혁, 경제 근대화, 우리만의 민주화 실험을 공언했다. ‘다마스쿠스의 봄’이 왔다. 그는 2000년 11월 인권탄압과 고문으로 악명 높던 메제흐 교도소를 폐쇄하고 아버지 치하에서 투옥된 정치범 수백명을 풀어줬다.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언론이 문을 열고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장이 허용됐다.

 

그러나 봄은 덧없이 짧았다. 해가 바뀌자 수백명이 다시 잡혀가고 언로는 막혔다. 서방 교육을 받은 젊은 지도자는 왜 돌변한 것일까. 시리아를 반세기 동안 지배한 아사드가(家)는 수니파가 다수인 시리아에서 10% 남짓 되는 소수인 시아파 분파 알라위파다. 시리아 정치는 1946년 독립 후 민주주의가 3년 만에 무너지고 이후 쿠데타가 거듭되며 줄곧 군이 좌우해왔다. 알라위파의 핵심 권력 기반도 군이었다. 아버지의 측근들과 아사드가문이 주축인 친위대 ‘공화국수비대’는 개혁에 세게 저항했다. 소수 권력집단의 강렬한 생존본능과 불안에 아사드는 쉽게 굴복해버렸다. 아사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부를 새 엘리트들에게 몰아주는 데만 관심이 있었을 뿐 정치개혁은 당초 그의 리스트에 있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아사드는 2007년에도 유일한 대선 후보로 99.8%의 지지를 받아 임기를 7년 더 연장했다.

 

미완의 ‘다마스쿠스의 봄’은 10년 뒤 다시 왔다. 2011년 ‘아랍의 봄’이었다. 오랫동안 억눌린 분노와 절망이 터져나왔다. 시민들은 1963년부터 ‘숙적’ 이스라엘의 전쟁 위협을 빌미로 온 나라를 짓눌러 온 ‘비상사태’를 해제하라며 정치개혁을 요구했다. 아사드는 거대한 분노에 못 이겨 비상사태는 해제했지만 시위에 무자비한 탄압으로 맞섰다.

 

내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아사드를 멈춰 세울 기회는 시리아 정부군, 반군, 이슬람국가(IS), 미국, 러시아가 뒤얽히면서 멀어져 버렸다. 그 사이 32만여명이 목숨을 잃고 490만명이 시리아를 떠났고 630만명이 집을 잃었다. 아일란 쿠르디는 터키 해변에서 익사했고 오므란 다크니시는 건물에 깔려 피를 흘렸고 쌍둥이 아기는 화학무기에 싸늘한 주검이 됐다. 괴물이 된 지도자와 국제사회의 복잡한 게임 속에서 참혹한 희생을 치른 시리아인들의 바람은 이젠 너무도 소박할지 모른다. 그저 총성과 공습이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다마스쿠스의 봄’은 아직도 멀었나.

 

국제부 이인숙 기자

Posted by KHross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서울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만찬을 함께하지 않은 것은 한국 측이 초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파문을 일으켰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18일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만찬 초대를 하지 않은 것이 대중적으로 좋지 않게 비칠 것이라는 점을 한국 측이 마지막 순간 깨닫고 ‘내가 피곤해서 만찬을 하지 않았다’고 성명을 냈다”고 말했다.

 

과연 한국은 그를 만찬에 초대하지 않았을까. 외교부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은 채 “의사소통 혼선”이라고 에둘러 해명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의 첫번째 방한을 ‘지극정성으로’ 준비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일부러 틸러슨과의 만찬을 피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외교부는 준비 과정에서 만찬을 당연한 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외교부 해명이 명쾌하지 않은 것은 미국의 잘못이라고 적시하기 어려운 한국의 고민이 배어 있는 탓이다.

 

백번 양보해서 한국이 정말로 초대하지 않았다고 해도, 상대국 장관이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부적절하다. 더구나 한국 측이 ‘뒤늦게 여론을 의식해 거짓 해명을 한 것’이라는 틸러슨의 추측성 부연설명은 외교부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문제 등에 사용하던 “국제예양(禮讓)”과 외교관례에 어긋나는 무례한 발언이다. 또 한국은 ‘틸러슨이 피곤해서 만찬을 취소했다’고 성명을 낸 적이 없다. 무엇을 할지 여부는 주최국이 정하는 것이라는 발언도 경우에 맞지 않다. 장관급 만찬과 같은 중요한 외교행위가 양측 조율 없이 일방적 조치로 이뤄지는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수명이 2개월 남은 시한부 정부라고 해도 동맹국을 이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된다. 틸러슨의 무례하고 섣부른 발언은 복잡하고 민감한 국제이슈를 다뤄나가야 할 미 국무장관으로서 자질을 의심케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

지난달 미국 국무부 내부 게시판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연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나 그 외 발언을 주저 않고 미국의 정책이라고 여겼다. 그럼 트위터는?” 이 글을 올린 외교관은 “외교 공무원은 당선자의 즉흥적 트위터 발언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나”라며 국무부에 명확한 공식적 메시지를 달라고 요청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영화 대사를 인용해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 꽤 험난한 길이 될 거야”라고 적었다.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을 찾아 헤아려 보니 당선이 확정된 지난해 11월9일부터 지난 17일까지 69일 동안 330개가 넘는 트윗이 올라왔다. 매일 평균 5개 정도씩 쓴 거다. 하루에 10개 넘게 쏟아낸 날도 있다. 반면, 기자회견은 지난 11일 딱 1번 있었다. 그것도 언론과 내내 싸우다 끝났다.

 

주류 미디어를 불신하는 그는 당선 후에도 트위터로 세상과 대면하고 있다.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것도, 주요 인선 발표도 여기서 이뤄졌다. 이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연일 국제사회에 폭탄을 던졌다. 37년간 묵인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재론하면 왜 안되느냐고 했고, 핵합의를 타결한 이란과 관계정상화 중이던 쿠바를 다시 협박했고, 미국의 핵무기를 늘릴 수 있다고도 했다. 또 미국이 제재하고 있는 러시아와 “잘 지내면 좋은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영국 더타임스 웹사이트에 실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인터뷰. 더타임스 웹사이트

 

트럼프의 예측불가능하고 충동적인 트윗은 외교와 상극이다. 외교의 본질인 일관성, 의전, 비슷비슷한 말 사이에 담긴 예민한 뉘앙스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복잡한 이해 당사국이 걸린 외교는 한번 꼬이면 풀기도 어렵다. 교과서 같은 정상회담 문구 하나도 두꺼운 보고서와 수없는 물밑 조율의 결과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퇴임을 앞두고 “외교정책이 트위터의 140자 안에서 만들어진다면 마땅히 져야 할 합리적 책임을 피해갈 수 있고 결국 문제가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든 것을 짜여진 대로 통제해야 하는 중국 같은 나라가 진의를 알 수 없는 트위터로 트럼프에게 ‘주적’ 취급을 당하고 있으니 그 황당함은 짐작이 가능하다.

 

트럼프의 ‘트윗질’을 걱정하는 건 다 비슷하다. 지난 10일 퀴니피악대학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의 64%가 트럼프가 개인 트위터 계정을 닫아야 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여론조사를 담당한 팀 말로이는 “아마 140자로는 트럼프에게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그가 트위터를 끊기를 원하는지 설명해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는 사이 비난하고 걱정할 시기도 지나고 있다. 이제 듣도 보도 못한 ‘트위터 외교’는 현실이 된다. 하루 뒤면 트럼프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오른다. 그는 백악관에 들어간 뒤에도 트위터를 놓을 생각이 없다고 공언했다.

 

국무부는 당장 어려운 숙제를 떠맡았다. 측근들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과연 미국의 외교정책인가? 트럼프가 계속 트위터로 외교하겠다면 국무부는 얼마나 개입해야 할까? 각국의 외교안보 부서도 정색해야 할지 말지 헷갈린다.

 

혹자는 트럼프가 트위터로 의도한 것이 혼선 그 자체라고 보기도 한다. 판을 아예 흔들어 타협의 여지도 없던 문제마저 협상테이블에 올리는 효과를 노린다는 거다. 실제 재미도 봤다.

 

대통령 전용기도 비싸다고 튕겨 보잉사에 값을 깎았고 ‘국경세’ 협박에 포드, GM, 도요타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이 손을 들었다. 트럼프가 자랑해 마지 않는 ‘거래의 기술’이 외교에도 통할까. 아니면 트위터 해독에 씨름하다 허망하게 4년이 흘러갈 것인가. 트럼프 본인도 답을 알지 못하는 모험이다. 분명한 건 트위터가 힘을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 외교에 꽤 유용한 메가폰이 될 거라는 점이다. ‘트위터 골목대장’이 오고 있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Posted by KHross

탈북 종업원들 근무 추정 북한식당 최근 북한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식당의 종업원들이 탈출했다고 24일 정부가 확인한 가운데 이들의 근무지로 추정되는 곳 중 한 곳인 상하이 북한식당 앞을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_연합뉴스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또 근무지를 이탈해 제3국으로 탈출했다.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류경식당에서 근무하던 북한식당 지배인 1명과 종업원 12명이 탈출해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온 이후 40여일 만이다. 정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지난달 8일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은 중산층 이상 성분 좋은 사람들이며,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압박이 집단 탈북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관련 정보를 적극 공개하더니 이번엔 말을 아낀다.

통일부 당국자는 24일 “최근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이 이탈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라고만 밝혔다. 탈출한 인원 수와 근무했던 식당의 소재지, 탈출 시점, 현재 근황 등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외교부가 설명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탈북민의 안전 문제, 외교적인 문제, 주변국과의 문제 때문에 구체사항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탈북자와 관련해 기존에 취해오던 태도로 복귀한 것이다. 40여일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3명의 집단 탈북과 이번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탈출 사이의 차이점은 두 가지다. 정부가 13명의 탈북 사실을 공개한 것은 그들이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이튿날이었다. 최근 탈출한 북한식당 종업원들은 제3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앞선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 탈출 때 정부가 긴급 브리핑을 자청해 관련 정보를 상세히 공개한 이유가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당시가 20대 총선을 닷새 앞둔 시점이었다는 사실이 더해져야 퍼즐이 완성된다.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의심이 설득력을 얻는다.

정부가 민감한 시기에 대북 정보를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다가 꼬리가 밟힌 사례는 또 있다. 정부가 ‘처형’됐다고 공식 발표했던 북한의 리영길 전 인민군 총참모장이 제7차 노동당대회에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함을 과시한 것이다.

정부가 북한 관련 첩보를 ‘신속’하고도 ‘화끈’하게 공개했다가 제대로 망신을 당한 ‘리영길 처형설’은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발표한 2월10일 공개한 것이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12년 만에 중단시키면서 오는 파장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부가 탈북자 관련 정보 공개에 관한 기존 원칙으로 복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유사 사례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북한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장난’을 한 책임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김재중 | 정치부 hermes@ 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내달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히로시마를 방문할지 고민하고 있다. 전임자 10명 중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그가 하려는 이유는 많다. 그는 무엇보다 훗날 ‘핵무기 없는 세상’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취임 첫 해 노벨평화상을 안겨준 이 비전을, 임기 마지막 해에 최초로 핵폭탄이 투하된 도시를 방문해 재천명하는 것은 여러 모로 그림이 좋다.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제안한 것에 화답하게 돼 미국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과의 관계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전략에도 부합한다.

그럼에도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더 많다. 우선 보수층의 반발이다. 오바마는 취임 직후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해 이슬람권과의 화해를 제안했고, 쿠바 레짐체인지 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히로시마까지 찾는다면 ‘미국의 과오를 또 사과한 유약한 대통령’이라는 보수층의 공격에 시달릴 것이다. 원폭 투하로 미군 사망자를 줄였다고 믿는 참전군인·전쟁포로 단체들도 반발한다. 과거사를 왜곡하는 아베 정권 시기에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구실을 준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_경향DB

일제강점기에 대한 반감과 원폭 투하가 곧 해방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강한 한국에서는 부정적 반응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핵무기가 다시 쓰일 일이 없기를 바라는 시민으로서 그의 방문은 반대할 명분이 적고 오히려 지지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 아시아의 이웃 나라 사람들을 강제동원하고 학대한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범죄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트루먼의 원폭 투하 역시 민간인을 희생시킨 ‘반인도적 범죄’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가기로 결정한다면 반대하기보다 평화기념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앞에도 잠깐 들러 묵념하도록 권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으로 피해를 입은 한국인 사망자 및 생존자는 전체 피해자의 10%인 7만명이 넘는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Posted by KHross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2270호가 채택된 지 2일로 한 달이 지났다. 역대 최고 수준 제재라는 평가를 받는 유엔 결의 외에도 한·미·일 등은 독자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도 전면적인 제재 이행을 공언하고 실행중이다.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 정부가 보여준 제재와 압박은 다른 나라와 성격이 다르다.

중국은 현재 충실하게 제재를 이행하고 있는 단계에 있지만 언제든 강약 조절을 할 수 있는 나라다. 미국은 의회의 대북제재법을 통해 가능해진 ‘세컨더리 보이콧’을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16일 행정명령을 통해 독자 대북 제재를 강화할 때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언제든지 ‘세컨더리 보이콧’을 가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두었을 뿐 실제로 그 카드를 쓰지는 않았다. 미 의회의 대북제재법이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총을 만들어 행정부에 준 것이라면, 이번 행정명령은 그 총에 장전을 해놓은 것에 해당한다. 쏠지 말지는 여전히 정책적 판단에 달려 있다. 일본도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통로는 차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대표들이 대북 제재 결의안에 대해 찬성의견을 표시하고 있다._연합뉴스

제재가 북한 태도를 바꾸기 위한 카드로 의미 있게 작동하려면 북한 태도에 따라 그 제재를 거둬들일 수 있어야 한다. 미·중·일 등이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 제재’를 택하고 최후의 수단은 아직 동원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재는 대화 재개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포함해 정부가 취한 대북 제재 조치는 마지막 카드까지 모두 써버린 ‘올인 베팅’이며 퇴로를 스스로 차단한 배수진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압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정부가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지지하지만 제재 강화 이후에 대한 분명한 전략과 정책적 방향이 있어야 한다. 제재만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제재는 북핵 해결을 위한 대화와 담판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협상용 칩’을 모으는 작업일 뿐이다.


정치부 | 유신모 simon@ 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

비록 북한의 핵실험으로 빛이 바래긴 했지만 미국과 북한이 지난해 가을 평화협정에 대해 비밀리에 얘기를 나눴다는 사실은 한국 정부는 물론 언론도 놀라게 한 사건이다. 보도가 나온 후 3주가 지나도록 미 국무부 대변인과 대북정책특별대표, 주한 미대사관이 한국의 청중을 향해 미국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사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평화 협상을 병행 추진하자는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제안이 있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돌아온다는 근본적인 결정을 내리면 궁극적으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한반도에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3일 정례 브리핑에서 “비핵화가 논의의 일부가 되어야 하고, 6자회담이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미국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 평화 협상 추진을 병행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았다. 비핵화 논의를 할 수만 있다면 평화 협상과 비핵화 협상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들은 미국이 병행론을 배제하지 않은 것에 ‘한국 소외론’을 제기했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테러방지법 표결 저지 필리버스터 진행 중 울먹이고 있다 _경향DB


이에 미국 정부는 8일 주한 미국대사관 언론 성명과 성김 특별대표의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우리와 협력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비핵화가 출발점이며 회담의 형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논란을 진화했다. 미국 정부의 평화협정에 대한 입장은 6자회담의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북한이 핵을 폐기한 이후 다시 핵무장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한반도의 안보구조를 바꾸기 위해 비핵화 논의와 함께 적절한 시기에 평화협정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변한 것은 지난 10년 사이 핵능력을 향상시킨 북한이 정작 병행론에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 변한 것이라면 일련의 사태를 거치며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의 정권 붕괴 이외에는 답이 없다고 언명했다는 점이다. 정작 남북이 손놓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나 언론 등 청중들이 듣기 좋게 얘기하는지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손제민 | 워싱턴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

“내 사무실에 이 신문이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9일 인민일보사를 둘러보던 중 자매지인 환구시보를 가리키며 이 같이 말했다. 환구시보는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놓고 군사대응 불사도 거론하는 등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냈던 언론이다.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이 19일 인민일보사를 방문해 둘러보던 중 환구시보를 가리키며 “내 사무실에서 이 신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_환구시보 웨이보

시 주석에게 직접 거론된 환구시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환구시보는 20일 공식 웨이보(微博)계정에 시 주석의 발언을 소개하며 “바쁜 와중에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줘 시 다다(大大·시 주석 별칭)에게 감사한다. 중압감이 산처럼 커졌다”고 올렸다.

최근 사드를 둘러싼 한·중 이견이 커지면서 환구시보를 인용한 보도가 잇따랐다. 환구시보는 “한국에 사드가 배치된다면 중국 사회는 동북 지역에 해방군을 늘려 강력대응하는 것을 지지할 것”(16일),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 한국은 독립성을 더 잃게 되고 국가적 지위에 엄중한 악영향을 받게 될 것”(17일)이라는 등 경고성 논평과 기사를 보도했다. 환구시보를 인용한 한국언론의 보도가 이어지자 한국 외교당국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한국 외교당국 측은 18일 베이징에 주재하는 언론사 특파원들에게 “환구시보는 인민일보 산하지만 상업성을 띈 국제전문 매체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의미를 절하했다.

이날 시 주석은 인민일보 등과 가진 여론공작좌담회에서 “당의 뉴스와 여론 작업은 당의 원칙을 지켜야 하고 무엇보다 당의 여론지도방침을 따라야 한다”면서 언론은 당과 다른 정치적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언론의 메시지를 애써 낮춰 보려는 것은 한·중 온도차만 더 벌릴 수 있다.


베이징|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승전국 지위를 얻지 못해 그 후속조치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한·일관계는 이처럼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출발해 어느덧 50년이 흘렀다.

모든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지난 세월의 모순을 하루아침에 바로잡는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지난 28일 한·일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는 것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 합의의 문제는 법적 책임을 분명하게 하지 못했다는 데 있지 않다.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하고,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로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약속을 일본에 해준 것이 진짜 문제다.

아베 내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 책임은 고사하고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조차 명확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말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지만 이를 검증한다는 명목으로 무력화시키려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강제성을 입증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는 많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 입증과 평가는 앞으로 얼마든지 명확하게 내려질 수 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기시다 일본 외무상이 28일 서울 외교부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_서성일 기자


이번 합의는 역사적 사실과 평가를 현재 상태에서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종결해 이 같은 길을 원천 차단해버렸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법적 책임이 없으며 앞으로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번 합의로 보장해준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로 상호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합의로서 효력이 없다.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일본과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침묵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는 인권에 관한 것이어서 어느 나라도 이에 침묵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여론을 결집시켜왔다. 이제 와서 “일본과 약속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겠다”고 할 것인가.

더욱 자괴감이 들게 하는 것은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대가로 받은 것이 돈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공동기자회견 발표문에서 ‘상기 1항2조에서 표명한 조치를 일본이 착실히 이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1항2조는 일본이 10억엔의 예산을 출연해 위안부 재단을 설립한다는 내용이다.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연봉 정도의 돈을 받고 위안부 문제를 거론치 않겠다는 이 합의를 국제사회는 어떻게 바라볼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8일 회담을 마친 뒤 일본 기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그토록 원하던 ‘위안부 면죄부’를 단돈 10억엔에 건네준 것이 한국이라는 사실은 역사에 영원히 굴욕 외교로 기록될 것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

지난 11일 남북 당국회담이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로 결렬된 뒤 정부는 금강산관광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에 저촉될 수 있다는 논리를 또 꺼내들었다. 이 문제가 결의 위반인지 여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안보리결의 조항은 2가지다. 2013년 1월에 나온 안보리결의 2087에 “제재회피를 위해 대량의 현금을 이용하는 것을 개탄한다”는 내용이 있다. ‘너희들이 외교행낭을 통해 현금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북한에 경고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이어 2014년 3월 나온 결의 2094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대량살상무기(WMD) 또는 안보리결의 위반 행동과 관련된 대량현금 이동 및 금융서비스 제공을 금지한 것이다.


금강산관광이 시작한지 10년이 된다. 17일 육로 통행로가 왼쪽에 보이지만 관광 중단으로 오가는 차량은 없다._경향DB


이 조항들에서 알 수 있듯이 유엔결의는 정상적인 무역이나 은행을 통한 금융거래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대량의 현금이 유입되더라도 그것이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다는 근거가 있어야 결의 위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관광대금이 핵개발에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정부 우려대로라면 개성공단을 포함해 북한과의 모든 상거래가 결의 위반이다.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은 정부만이 할 수 있다. 유엔결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각국 정부 몫이다. 설사 안보리에 문의한다 해도 “알아서 판단하라”고 답할 게 뻔하다. 이 논란은 시작된 지 2년이 훨씬 넘었다. 검토를 끝내고 결론을 내리기에 너무도 충분한 시간이다. 정부가 아직도 “검토 중”이라는 낡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며 버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남북관계에서 금강산관광 문제를 우회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안보리결의 뒤에 숨어 구차한 변명으로 시간 끌어봐야 북한에 비난 명분만 줄 뿐이다. 현금 지불 대신 사회 인프라 제공을 제안하든, 북한이 금강산관광을 절실히 원하는 것을 이용해 더 큰 것을 받아내든, 재개 불가 선언을 하든 정면 돌파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는 남북관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