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7월 유효구인배율은 1.52배였다. 일자리를 구하는 100명이 취업할 수 있는 기업이 152곳이라는 뜻이다. 유효구인배율은 지난 2월 이후 5개월 연속 상승했다. 같은 날 취업정보회사 리쿠르트가 발표한 내년 봄 졸업예정인 대학생의 내정률(취직이 결정된 사람의 비율)은 84.2%였다. 지난해 79.3%보다 4.9%포인트 올랐다. 2개 이상 기업들에 취직이 결정된 대학생도 64.2%나 됐다. 최근 일본에서 이어지고 있는 ‘구직자 우위’ 취직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이쯤 되면 일본 젊은이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야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젊은 사원들이 적지 않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취직이 이렇게 잘되는 시대에 우울증이라니. ‘취업절벽’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 입장에선 “무슨 배부른 소리냐” 싶겠지만, 일본에선 우울증 치료를 받거나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젊은 사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와세다대 4학년생은 “1년 위 선배가 입사하고 곧바로 우울증에 걸려 회사를 그만뒀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밝혔다. 도쿄대 법학대학원생은 “사회인이 된 친구들이 정신적으로 앓고 있다는 글을 자주 본다”고 밝혔다. 한 대기업 산업전문의도 “신입사원의 우울증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런 ‘신형 우울증’의 특징은 직장에선 침울한 상태지만, 일터를 떠나면 밝아지곤 해서 상사들이 ‘진짜 우울병 맞나’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하지만 악화될 경우 자살로도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신형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든다. 우선 젊은 세대들이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耐性)이 약하다는 점을 거론한다. 달리기 경주에선 순위를 매기지 않고, 성적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 등 20대가 거친 경쟁에 노출되지 않은 채 자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좋은 아이 증후군’이다. 항상 ‘좋은 아이’로 비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이를 조장한다. ‘연결’된 친구들은 많지만,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별로 없는 탓에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 가운데 과정을 중시하는 ‘착실한 사람’이 많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런 사람은 중도에 좌절을 겪으면 ‘수정’이 안된다.

 

확실히 요즘 일본 젊은이들 가운데 스트레스를 못 견디는 사람이 적지 않다.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하는 게 괴로워 회사를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약해 빠졌어”라고만 생각하면 문제 해결은 난망하다. 젊은이들에게 과도한 압력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사회 구조나 사회적 분위기를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우울증 등 ‘마음의 병’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인정된 사례는 498건으로 해당 통계가 집계된 2011년 이후 가장 많았다. 원인별로는 ‘파워하라’(직장 상사의 횡포)로 대표되는 직장 내 괴롭힘, 왕따, 폭행이 74건으로 가장 많았다. 연령별로는 20대가 20명 증가한 107명으로 집계됐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일손 부족으로 인해 20대가 ‘즉시 전력감’으로 여겨지면서 직장에서 과한 압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요즘 일본에서 거의 매일 듣는 말이 ‘일하는 방식 개혁’이다. 일본 정부는 장시간 노동 근절, 유연근무제 확산 등 실행계획들을 내놓고 있는데,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력을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양한 실행계획들 속에 뭔가 빠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 사회는 개인보다 회사를 우선해야 한다는 ‘회사주의’가 뿌리 깊다. “주변의 공기를 읽는다”는 집단주의 문화도 여전하다. ‘좋은 아이’로 보이고 싶은 젊은이일수록 걸리기 쉽다는 ‘신형 우울증’도 이런 사회 구조와 분위기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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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분을 위령(慰靈)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도지사로서 모든 분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 깊은 일이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지난 25일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쿄도 위령협회 주최로 열리는 추도행사에 참석해 희생자를 추도하고 있고, 조선인 희생자도 거기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학살 희생자와 자연재해 희생자는 다르다”는 지적에는 귀를 닫은 모습이다.

 

고이케 지사는 내달 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열리는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주최 측 요구를 거절해 논란이 일었다. 전임 지사들은 추도문을 매년 보내왔고, 고이케 지사도 취임 첫해인 지난해 추도문을 보냈다. 일본 언론은 태도가 바뀐 배경에 추도비에 적힌 ‘희생자수 6000여명’ 문구 논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선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이 숫자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학살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고이케 지사의 모습에서 가해 사실과 책임을 덮으려는 일본 우익들의 익숙한 패턴을 보게 된다. 일본 정치인들은 종전기념일(패전일)인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에 대한 애도”를 이유로 든다. 전쟁 책임과 주변국에 대한 가해 사실은 사라지고 없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특히 태평양전쟁을 기획·주도한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선인 희생자를 전체 희생자에 뭉뚱그려 넣는 식으로 가해의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다.

 

고이케 지사의 이번 행태는 이전부터 지적돼온 배외주의가 보다 명확한 형태로 폭주하려는 ‘전주곡’으로 보인다. 그는 ‘첫 여성 총리’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지만, 극우 포퓰리스트 성향을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평화헌법 개정이 목표인 극우단체 일본회의에서 활동하고 있고,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한다. 극우단체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의 강연회에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지사에 취임한 직후 전임 지사의 제2한국학교 부지 대여 방침을 백지화했다. “보육원 대기아동 문제가 심각한데 외국인에게 왜 공간을 내주느냐”는 우익의 반발에 편승한 것이다. 이는 보육시설 부족에 대한 일본인들의 분노를 외국인에게 향하게 하는 전형적 배외주의다. ‘고이케 신당’을 추진하는 ‘일본 퍼스트회’는 배외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각각 ‘호주 퍼스트’ ‘뉴질랜드 퍼스트’라는 극우 정치운동이나 정당이 존재한다. 고이케 지사는 ‘고이케 극장’이라 불릴 정도로 능수능란한 이미지 정치로 대중 지지를 얻어 왔다. 하지만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의 대항마로 꼽히지만, 아베 총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뒤질 게 없는 극우 포퓰리스트의 모습이다.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는 공원 내에선 같은 시간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단체가 ‘진실의 간토대지진 희생자 위령제’라는 ‘맞불’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주최자는 과거 고이케 지사의 강연회를 개최한 ‘재특회’ 관련 단체다. 재특회는 혐한(嫌韓) 시위와 헤이트 스피치(증오 표현)를 이어온 배외주의 단체다. 고이케 지사가 추도문을 거절한 것이 이런 움직임과 관련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학살 사실을 왜곡하고 배외주의를 조장하는 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이런 배외주의가 대재난을 통해 극대화된 것에 다름 아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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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겸허하고 정중하게 국민이 맡겨준 책임에 부응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3일 개각을 단행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 상태로 8초 정도 있었다. “다시 한번 반성한다” “사과드리고 싶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시종일관 저자세로 일관했다. 지난 4월 특파원 부임 이래 보아온 아베 총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베 총리의 몸 낮추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일 요미우리TV에 나와 “마음가짐에 교만이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친구가 이사장인 가케(加計)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에 총리 측이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둘러싼 국회에서의 답변 태도를 ‘반성’한 것이다. ‘일생의 과업’이라던 개헌에 대해서도 “일정이 정해진 게 아니다”라면서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최우선 과제는 경제 살리기”라고 했다. 마치 “나 이렇게 변했어요”라고 홍보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단행한 개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 _ AFP연합뉴스

 

아베 총리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은 물론 지지율 추락으로 ‘아베 1강’ 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높은 지지율을 배경으로 이론(異論)을 틀어막는 ‘1강 체제’를 구축해왔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결형 정치’로 정권 구심력을 유지해왔다. 이런 정치 자세에는 한때 70%를 넘봤던 높은 지지율, 2012년 정권 탈환 당시의 중의원 선거를 포함해 4번의 전국 선거에서 연승을 기록해온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대결형·강압적 정치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역사적 참패’와 지지율 급락으로 벼랑 끝에 몰리면서 개각으로 ‘민심(民心)의 일신(一新)’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아베 총리의 개각과 저자세 행보는 일정한 효과를 얻고 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추락은 일단 멈췄다.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아베 내각 지지율은 전달보다 2~9%포인트 정도 상승한 35~44.4% 수준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회복세로 들어섰다고 말하기는 일러 보인다. 지지율 상승이 개각에 따른 반짝 효과일 가능성도 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지지한다’는 응답을 상회하는 등 아베 총리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3~4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3연임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54%로, 찬성 36%를 웃돌았다.

 

한 저널리스트는 이번 새 내각에 대해 ‘잊어주세요 내각’이라고 이름붙였다. 개각을 통해 가케학원 특혜 의혹, 모리토모(森友)학원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 자위대의 문서 은폐 의혹 등 3개의 문제를 덮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집권 자민당은 가케학원 의혹의 핵심 인물인 가케 고타로(加計孝太郞) 전 이사장이나 자위대 문서 은폐 의혹과 관련한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전 방위상의 국회 출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또한 아베 총리가 “정해진 일정이 없다”고 했지만 개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철회한 것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각료들의 면면이 아니다. 국민에 대해 겸허하고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아베 총리 자신이 바뀌느냐에 있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안보 관련법 성립, 원전 재가동, 공모죄법 성립, 개헌 추진 등 ‘아베 노선’을 일방통행식으로 달려왔다. 비판이나 의문의 목소리에 대해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후과가 지금 ‘아베 1강’의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이미 그를 불신에 찬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만약 아베 총리가 이번에 자신을 바꾸기는커녕 ‘호박에 줄 긋기’식으로 넘어가려 한다면, 그에게 권한을 위임한 일본 국민들이 그를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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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신경 쓰지 않고 밟고 다니는 맨홀 뚜껑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맨홀 뚜껑 인증샷’을 찍거나 ‘맨홀 카드’를 모으기 위해 각 지역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맨홀 뚜껑 애호가’를 가리키는 ‘만호라(manholer)’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디자인의 맨홀 뚜껑을 내놓고 있다. 후루사토(고향) 납세에 대한 답례품으로 맨홀 뚜껑을 준비하는 지자체까지 생겼다.

 

1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디자인의 맨홀 뚜껑이 존재한다. 지역 특산품이나 동식물, 명소 등이 새겨져 있고 색깔이 들어가 있기도 해서 일본의 ‘서브 컬처’(하위문화)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런 ‘디자인 맨홀’의 발상지는 1977년 물고기 떼를 새겨넣은 오키나와 나하(那覇)시로 알려져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과 하수도단체가 설립한 ‘하수도홍보 플랫폼’에 따르면 일본에는 간단한 기하학적 문양을 포함해 약 1만2000종의 맨홀 뚜껑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만화 <명탐정 코난>의 캐릭터를 그린 돗토리현 호쿠에이정의 맨홀 뚜껑(왼쪽 사진)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히메지성을 새긴 효고현 히메지시의 맨홀 뚜껑.

 

이런 맨홀 뚜껑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애호가인 ‘만호라’도 적지 않다. 이들은 현지에 직접 가서 맨홀 뚜껑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현지에 직접 갔다는 ‘인증샷’으로 올리는 이들도 있다.

 

맨홀 뚜껑 붐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 맨홀 카드다. 앞면에는 맨홀 뚜껑 사진과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가, 뒷면에는 디자인의 유래와 지역 정보가 실려 있다. 각 지역 관공서나 하수도 관련 시설에서 무료로 발매된다. 맨홀 카드는 ‘하수도홍보 플랫폼’이 하수도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지난해 4월 처음 무료 형태로 발매했다. 첫 시리즈 30종은 10만장이 순식간에 팔려 증쇄를 해야 했다. 이후 4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시리즈를 발행하고 있다. 1일부터 지자체 49곳이 참여한 5번째 시리즈가 발매됐다. 지금까지 191개 지자체가 222종을 발행했는데, 이달 안에 총발행장수가 100만장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맨홀 카드는 독특한 디자인에, 현지에 가지 않으면 구입할 수 없다는 희소성이 더해지면서 열광적인 호응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인기 카드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2만엔(20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지난 1월 사이타마(埼玉)현에서 개최한 ‘맨홀 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에는 예상 입장객 700명을 훌쩍 넘는 3000명이 몰려들었다. 이 행사장에선 ‘작은 에도’로 불리는 사이타마현 가와고에(川越)의 상징인 시계탑 문양 맨홀 카드를 비롯해 맨홀 카드 9종을 미리 배포하면서 ‘만호라’들로 혼잡을 이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맨홀 뚜껑과 맨홀 카드 제작에 공을 들이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맨홀 카드를 구하러 온 이들이 지역 명소를 둘러보도록 해 지역 활성화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다. 지역을 대표하는 만화가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넣은 한정판 맨홀 뚜껑도 등장하고 있다. 공룡 화석이 다수 출토된 것으로 유명한 후쿠이(福井)현에선 공룡을 디자인한 맨홀 카드를 발행했다.

 

맨홀 카드를 기획한 ‘하수도홍보 플랫폼’의 야마다 히데토(山田秀人)는 “한 종의 카드를 절대 한 곳에서밖에 얻을 수 없다는 설계로 수집 난도를 높인 게 수집가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전체 맨홀 카드를 완성하는 것은 어렵지만, ‘후지산이 포함된 카드’처럼 지역이나 마을, 명소 등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카드를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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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깊이 반성한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겸허하게 일을 추진하겠다”.

지난 2일 도쿄도의회 선거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 말들이다. 야당의 추궁에 “신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니까 (야당)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맞받아치던 사람이 한 말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바싹 몸을 낮춘 모습이다. 자민당의 ‘역사적 참패’로까지 표현된 선거 결과와 지지율 추락이 어지간히 뼈아프긴 했나 보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기존 57석의 절반도 안되는 역대 최저인 23석을 얻었다. 지난 10일 발표된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0%대 중반으로 2012년 12월 2차 내각 발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베 총리가 8월 초 ‘대폭 개각’을 서둘러 천명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돌아선 민심을 붙잡기 위해 면모를 일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성’이니 ‘겸허’니 하는 단어에 얼마만큼의 성심성의가 담겨 있을까.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선거 이후 잇따랐다. “자위대로서 잘 부탁한다”는 발언으로 선거 참패의 원인 제공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은 지난 6일 규슈 북부에 폭우 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약 1시간 청사를 떠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위대가 실종자 수색 및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현장에 투입된 상황에서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아베 1강’ 체제의 해이가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아베 1강 체제의 ‘혼네(本音·본심)’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또 있다. 자민당 구도 쇼조(工藤彰三) 중의원 의원은 지난 1일 지원 유세에 나선 아베 총리에게 야유를 보낸 청중에 대해 “조직범죄처벌법(공모죄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쓴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11일 시행된 공모죄법은 인권 탄압과 비판여론 봉쇄 등 ‘감시사회’ 우려가 줄곧 제기된 법안이다.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도 야유를 보낸 청중을 두고 “프로활동가에 의한 방해”라고 쓴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따지고 보면 당시 지원 유세에서 아베 총리의 언행부터 문제가 있었다. 그는 가케(加計)학원 특혜 의혹, 공모죄법 강행 처리, 도요타 마유코(豊田眞由子) 중의원 의원의 비서관 폭언·폭행 파문 등 연일 터지는 불상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선거 전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두연설에 나섰다. 그런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야유를 보내는 청중들에게 “이런 사람들에게 질 수 없다”고 말했다. 울분과 분노를 표출하는 청중들을 향해 ‘이런 사람들’이라면서 국민·비(非)국민으로 편 가르기를 한 것이다. 이런 인식과 태도가 ‘반성’ ‘겸허’ 같은 말들로 가려질 수 있을까.

 

아베 총리는 ‘당장의 소나기부터 피하고 보자’는 생각일지 모른다. ‘제1야당인 민진당의 지리멸렬함이 계속될 것이고,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의 돌풍도 예전 민주당(민진당 전신)처럼 한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경제와 외교로 점수를 딴 뒤 다시 논란 많은 법률이나 정책을 밀어붙이면 된다.’ 아베 총리가 개헌 추진 의사를 굽히지 않는 것을 보면 이 같은 추측이 억측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이런 꼼수를 꿰뚫어보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런 사람들’이라고 했던 이들이 ‘아베 1강’ 독주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아베 총리는 9일 “하나하나 결과를 내가는 방법밖에 신뢰 회복의 길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만큼 중요한 게 과정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비롯,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신뢰 회복의 길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에게 이런 ‘주권재민’은 눈엣가시가 아닐까. 그러니까 난폭한 방법으로 헌법을 바꿔 전전(戰前)으로 회귀하려는 게 아니겠는가.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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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뿐 아니라 서점 직원들도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다. 일본에서 서점발(發) 베스트셀러가 속속 탄생하고 있다. 책의 일부를 가리고, 서점 직원의 이름을 딴 상을 만드는 등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널리 읽히기 위한 서점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효과를 보면서다. ‘독서광’ 서점 직원들의 열의와 자신감이 불황 속 출판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 고토구의 기노쿠니야서점 라라포트도요스점의 특설 판매대에는 책 말미의 해설을 필름으로 가린 문고본이 늘어서 있다. 하야미 가즈마사의 미스터리 소설 <이노센트 데이즈> 문고본의 가려진 해설 부분에 삽입된 종이에는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해설을 읽지 않으면 소설의 충격이 절반 또는 제로가 될 것”이라는 이 서점 문고담당자의 홍보글이 쓰여 있다. 지난 3월 이 실험을 시작한 뒤 이 책은 두 달 동안 1000권 넘게 팔렸고 서점 매출은 10배로 뛰었다. 아이디어를 낸 직원 히라노 지에코는 3년 전 이 소설의 양장본을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으니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문고판 발매를 계기로 행동에 옮겼다고 아사히신문에 설명했다.

 

책의 내용물을 숨기는 마케팅은 지난해 7월 이와테현 모리오카의 사와야서점에서 시작됐다. 이 서점 직원이 가장 추천하는 책을 ‘문고X’로 정해 제목과 저자를 알 수 없도록 포장지에 싸서 판매했다. 이벤트는 대성공이었고 전국 650개 이상의 서점으로 확대됐다. ‘문고X’는 18만부 넘게 팔렸다. 한국의 은행나무·북스피어·마음산책 출판사도 지난 4~5월 ‘개봉열독 X 시리즈’로 이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산세도서점은 도쿄 도내 점포에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 수상작과 함께 ‘아라이(新井)상’ 수상작도 나란히 배치한다. 아라이는 이 회사 영업본부의 문학담당 직원 아라이 미에카(新井見枝香)다. 선정 기준은 아라이가 반 년간 읽은 책 중 제일 재미있었던 책이다. 아라이는 “선정은 완전히 주관적이지만 책임과 열의를 가지고 추천한다는 뜻에서 상에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아라이상 이벤트 기간 중에는 나오키상 수상작보다 더 많이 팔리는 작품도 나온다. 이 서점은 지난 4월 시대소설을 다뤄온 작가 다카다 가오루가 선정하는 ‘다카다 가오루상’도 만들었다.

 

아라이상 외에도 일본에선 서점 직원들이 선정하는 ‘서점대상’이 있다. 2004년 창설된 이 상은 전국 서점 직원들의 투표로 선정한다. 각 지역에서 만든 ‘서점대상’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도쿄 옆 지바현에서는 책과 술을 좋아하는 서점 직원과 출판사 영업직원들이 술집에서 의기투합해 2005년 ‘사케노미(술꾼) 서점원 대상’을 만들었다. 출판된 지 1년이 지난 문고본을 발굴한다. 시즈오카 서점대상, 오사카 혼마(진짜) 책 대상, 교토 미나즈키(水無月)대상, 오키나와 서점대상 등 서점 직원들이 선정하는 상들이 적지 않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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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웰다잉(Well Dying)’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시신 기증이나 유언장 작성 등 지금까지 걸어왔던 삶을 되짚으면서 ‘잘 죽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웰다잉’ 바람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 먼저 불었다. 임종(臨終)을 준비하는 활동인 ‘슈카쓰(終活)’는 문화 현상, 나아가 산업으로까지 성장했다. 일본 노인들은 간병, 종말 의료, 장례 준비, 재산 상속 등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엔딩노트’라는 공책도 팔린다. 자신이 묻힐 납골당이나 묘지를 둘러보는 ‘슈카쓰투어’도 성행하고 있다. 무덤 친구인 ‘하카토모(墓友)’라는 말도 생겼다.

 

‘슈카쓰’의 배경으론 일본인 특유의 철저한 준비성이 꼽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초고령사회를 넘어 ‘독거노인 사회’ ‘고독사 사회’로 가는 현대 일본의 그늘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슈카쓰에선 생전(生前) 정리나 생전 계약이 성행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효고현 니시노미야에 있는 ‘릴리프’라는 회사는 연간 1000건의 생전 정리를 해주고 있다. “물건들을 방치한 채 죽으면 주변에 폐를 끼친다”는 이유로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비용은 35만엔(약 356만원). 신원보증과 간병부터 화장이나 납골까지 대신해 주는 생전 계약도 인기를 끈다.

 

‘고독사보험’이라는 금융상품도 나왔다. 독거노인이 임대주택에서 홀로 사망할 경우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어렵고 임대주택 정리에 비용이 많이 들어 이에 대한 집주인의 손실을 보상해주는 보험이다. 일본에선 고독사 우려 때문에 집주인들이 노인들에게 주택 임대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집주인의 65%가 독거노인에게 주택 임대를 꺼린다는 조사도 나왔다. 고독사보험은 이런 집주인을 안심시킬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일본 사회의 문제는 노인 인구가 많다는 것을 넘어선다. 혼자 사는 사람이 증가하고, 가족·친지간의 관계는 옅어지고 있다. 2014년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65세 이상 독거노인이 2035년에는 762만명으로, 2010년 498만명보다 53%나 늘어난다고 예측했다. 노쇠하고 병이 들어도 혼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슈카쓰의 최근 동향에는 ‘웰다잉’보다 ‘불안’의 요소가 더 강해 보인다. 죽기 직전까지, 혹은 죽고 나서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걱정이 투영돼 있는 게 아닐까.

 

문제는 슈카쓰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종합연구소는 2035년에는 고령자 세대의 27.8%가 수입이나 저축이 부족해 생활보호 수준을 밑돌 것이라는 추계를 최근 내놓았다. 죽음을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 간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실버산업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국가가 정책적으로 나서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독거노인 주거 지원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세계에서 장수(長壽)는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고령화나 노인 문제를 듣다 보면, 모두들 노인들을 ‘주변에 폐를 끼치는 존재’로 여기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경제발전의 장애물도 고령화고, 국가재정 위기의 이유도 고령화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여줬다. 이를 능가하는 게 한국이다. ‘웰다잉’은 둘째치고, 고독사나 독거노인 문제가 얼마나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쇠한 부모를 낯선 곳에 유기하는 ‘고려장’은 설화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현대판 고려장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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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외주의적 공격에 대한 무관심, 이지메(괴롭힘)를 못 본 척하는 게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거리를 걸어다니고 싶다,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3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재일 한국YMCA에선 헤이트스피치(증오발언)억제법 시행 1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다. 차별에 괴로워하는 마이너리티, 그리고 이들과 함께 싸워온 외국인인권법연락회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1년을 되짚고 향후 과제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이번 법이 심각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던 일본 정부가 처음 내놓은 대책이라는 데 의의를 뒀다. 실제로 법 시행 후 우익단체 시위는 줄어들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법 시행 후 지난 4월까지 우익단체의 시위는 3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1건에 비해 감소했다.

 

하지만 집회 신청이 필요 없는 거리 선전은 그만큼 줄지 않았다. 아케도 다카히로(明戶隆浩) 간토가쿠인대 강사는 “거리 선전은 19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4건에 비해 그리 많이 줄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인을 살해해온 ○○인”처럼 위협을 먼저 가해온 게 상대방이라는 ‘정당방위’ 뉘앙스를 사용하거나 “소멸시키자”라는 극단적인 표현 대신 “(재일한국·조선인 등에게 영주권을 주는) 입관특례법 폐지”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터넷이다. ‘사형’ ‘사살’ ‘살처분’ ‘기생충 구제(驅除)’처럼 거리 시위나 거리 선전에서 피하는 잔혹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외국인이 관련된 범죄사건 기사에는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달린다.

 

김명수 간사이가쿠인대 교수는 “인터넷상의 헤이트스피치 때문에 한국·조선 국적의 40%가 인터넷 이용 자체를 피하고 있고, 프로필에 자신의 출신을 쓰지 않는다”면서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이트스피치억제법은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을 없애기 위해 지난해 6월3일 시행됐다. 지자체 단위에서 제도를 보완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하다. 아케도는 “법무성은 선동의 범위를 ‘쫓아내자’처럼 직접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유럽에선 특정집단의 위협이나 위험성을 부채질하는 듯한 발언도 선동에 포함시킨다”며 “프랑스에선 ‘무슬림이 이 나라의 지배자’ ‘외국인의 침략을 받고 있다’는 발언을 한 이들이 모두 유죄판결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상이 헤이트스피치만이라는 점도 한계다. 지난 3월 발표된 법무성의 외국인주민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재일 외국인의 40% 정도가 살 집을 구하는 데에서 차별을 겪었고, 25%는 취업 차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주택 입주나 취업에서의 차별은 국제사회가 금지하는 중대한 차별인데 일본에는 관련 법률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법은 ‘일본 외 출신’에게만 적용된다. 하지만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나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차별도 만만치 않다. 이날 연단에 선 기타가와 가오리는 “‘아이누 사람들은 겉모습으론 알 수 없으니 DNA 감정을 해야 한다’거나 ‘아이누가 멸종되게 놔뒀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게 한 일본 정부가 대단하다’는 식의 헤이트스피치가 널리 퍼져 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오키나와 류큐신보의 아라카키 쓰요시 기자는 “경찰이 오키나와인을 ‘토인(土人)’이라고 말했는데도 일본 정부는 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헤이트스피치가 퍼지다 보면 헤이트크라임(증오범죄)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이 법이 제대로 이행되려면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책과 함께 인종차별철폐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모로오카 야스코 변호사는 “정부와 지자체는 국제 인권법에 합치하는 인종차별 철폐정책을 만들고 법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면서 “법무성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인권대국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연내에 인종차별철폐기본법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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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8일 재임 1981일을 맞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를 제치고 전후 세 번째 ‘장수 총리’가 된 것이다. 아베 총리가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할 경우 2019년 8월에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2798일)를 제치고 전후 최장수 총리에 오를 수도 있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이고, 강력한 장악력으로 당내에 반대 목소리가 없으며, 제1 야당인 민진당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최장수 총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아베 총리와 측근들의 최근 언행에선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는 자신감이 배어나온다. 잇따르는 망언과 독선에선 오만함까지 엿보인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는 가케(加計)학원 스캔들 대응도 마찬가지다. 이 스캔들은 아베 총리가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가케학원이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받도록 힘을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지난 17일 폭로된 정부 문건에는 총리실을 담당하는 내각부가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에 대해 문부과학성 측에 “관저 최고위층의 의견” “총리의 의향”이라고 압력을 가한 내용이 담겼다. 26일에는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성 사무차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문서는 확실히 존재한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 폭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문제는 아베 정부의 대응이다. “괴문서” “출처를 알 수 없어 신빙성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마에카와 전 차관의 도덕성 문제를 부각시키는 식으로 스캔들을 덮으려 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마에카와 전 차관이 문부성 퇴직 관료들의 취직 알선 문제로 지난 1월 사직한 것을 두고 “스스로 사임하지 않고 지위에 연연하며 매달렸다”고 비판했다. 마에카와 전 차관이 유흥업소에 출입했던 사실도 거론했다.

 

이번 스캔들의 핵심은 가케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에 아베 총리의 의향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내각부가 ‘총리의 의향’을 핑계 삼아 문부성의 ‘신중론’을 눌렀는지다. 아베 정부는 이에 대해선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관료사회의 ‘손타쿠(忖度·알아서 기다)’ 현상만 두드러진다. 문부성은 자체 조사 결과 앞서 폭로된 내부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관련 직원들의 컴퓨터 문서 삭제 이력을 조사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바다에 가서 잉어가 잡히지 않는다고 ‘잉어는 없다’고 말하는 논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스캔들은 한국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첫째는 ‘정윤회 문건’ 사건이다. 지난 2014년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국정에 관여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유출 문건 파동을 말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문건 내용은 찌라시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어도 최씨 일가가 박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을 해왔다는 것은 추후 드러났다. 둘째는 ‘채동욱 낙마’ 사건이다. 2013년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방패막이였던 채동욱 검찰총장은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보도로 결국 사임했다. 이번 가케학원 스캔들에선 ‘괴문서’라는 말이 등장한다. 마에카와 전 차관의 유흥업소 출입 문제는 보수신문인 요미우리신문이 단독 보도했다.

 

요즘 아베 정권이 밀어붙이는 ‘테러 등 준비죄’(공모죄) 법안을 두고 지난해 한국에서 야당의 기록적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낳았던 테러방지법 논란의 ‘일본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일 평행이론’ 얘기도 들려온다.

 

아베 총리 주변에선 ‘최장수 총리’ 등극은 시간문제로 보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베 1강(1强)’의 뒤틀린 인식이 어느 틈에 파열음을 낼지 모르는 일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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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엔과 일본 정부의 관계가 미묘하다. 유엔 특별보고관이 일본 국내 문제에 대해 잇따라 우려를 표명하자 일본 정부가 대놓고 반박하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유지하기 위해 ‘여론 호도’를 서슴지 않으면서다. 급기야 유엔 측이 “위안부 합의에 동의한 적 없다”고 진화에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 논평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합의에 따라 해결할 사안이라는 데 동의했다”면서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아니라, 위안부 해법의 본질과 내용을 규정하는 것은 양국에 달렸다는 원칙에 동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은 구테흐스 총장이 지난 1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회담하며 “위안부 합의를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또 “특별보고관은 독립적인 전문가로 유엔 인권이사회에 직접 보고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특별보고관의 우려 표명에 항의했고 구테흐스 총장도 항의에 공감했다는 듯이 발표했는데, 두자릭 대변인은 이 또한 부인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면담 내용을 호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게 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을 보류하면서 유네스코의 난징(南京)대학살 자료 등재에 반발하고, 한·일 위안부 자료의 심사 및 등재를 막아왔다. 유엔 인권최고기구 산하 고문방지위원회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개정하라고 권고한 것에 대해서도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문을 제출했다. 국제무대에서 국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의 외교전에는 위안부 문제 등 보편적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빠져 있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반인도 범죄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과거사를 반성하고,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일이다.

 

일본 내 인권·민주주의 상황에 대해 유엔 특별보고관들의 우려가 잇따르고 있는 점도 되새겨볼 대목이다. 유엔은 ‘감시사회’ 논란을 일으킨 공모죄 법안,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해온 시민운동가의 장기 구류, 언론 통제 등을 두고 인권과 표현의 자유 침해를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우려를 되레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우려한 특별보고관의 서한에 대해 “무언가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고까지 했다.

 

일본은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북한 납치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이유로 특별보고관에게 국가훈장을 준 적도 있다. 다니구치 마유미(谷口眞由美) 오사카국제대학 부교수는 전날 TBS 방송에 나와 일본 정부가 “두 개의 혀”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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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밀어붙이는 ‘테러 등 준비죄’(공모죄) 법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정부·여당은 지난 23일 국회 중의원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회기 내(6월18일)에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야당과 시민단체에선 “감시사회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2월 한국에서 야당의 기록적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낳았던 테러방지법 논란의 ‘일본판’이다.

 

공모죄 법안은 조직범죄를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기만 해도 계획에 합의한 전원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범죄가 실행돼야 처벌하는 현 일본의 형사법 원칙을 크게 바꾸는 것으로, 과거 세 차례 무산된 것을 아베 정권이 다시 추진하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테러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야당·시민단체 등은 처벌 대상 범죄가 277개로 범위가 너무 넓고 불명확해서 일반시민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쓸 수 있고, ‘범죄계획 합의’ ‘준비 행위’를 판단하는 것도 수사기관의 자의에 달려 있어 공권력이 오·남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법안이 실제 테러 방지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도 있다. 공중납치나 화학무기 사용을 사전 단계에 처벌하는 예비죄가 있는데 굳이 공모죄 법안이 또 필요하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테러방지’를 이유로 합법적으로 국민 모두를 감시하는 수단을 얻게 되는 것이 문제라는 우려가 크다. 공모죄 법안이 개인의 사상이나 양심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인권이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도통신이 지난 20~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공모죄 법안에 대한 정부 설명이 충분했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가 77.2%에 달했다.

 

이는 2016년 3월 한국에서 통과된 ‘테러방지법(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수정안) 논란과 ‘닮은꼴’이다. 테러방지법은 국가정보원에 정보 수집 및 추적권을 주고 테러인물을 감시·관리할 수 있는 근거를 뒀다. 두 법안 모두 범죄를 모의하거나 의심이 가는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권력 남용 및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 정부가 전 국민을 합법적으로 사찰할 수 있어 ‘대국민 감시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유사하다. 온라인상에선 한·일 양국 ‘평행이론’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야당 측은 국정원의 무분별한 감청 및 금융정보 수집이 가능해져 민간인 사찰을 포함한 정치 탄압에 악용될 수 있다며 9일간 필리버스터를 펼치며 반대했지만 필리버스터가 끝난 직후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일본의 무력한 야당을 볼 때 공모죄 법안 논란은 한국의 테러방지법 때보다 더 참담하게 끝날 듯하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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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浜)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바다를 따라 조성된 야마시타(山下) 공원을 걷다보니 히카와마루(氷川丸)가 보였다. 1930년 건조돼 1960년까지 시애틀 항로를 오간 1만2000t급 호화 화물여객선이다. 나들이객들이 히카와마루를 배경으로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10살 남짓한 일본 남자아이가 아빠에게 묻는다. “칼빈슨은 어디 있어?”

 

‘골든위크(황금연휴)’ 막바지에 아이의 입에서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 얘기가 나올 줄은 예상 못했다. 하긴 지난 한 달여간 일본 정치권과 보수 언론들이 야단법석을 떤 걸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아이의 뇌리에 ‘칼빈슨’이라는 이름을 새겨넣었을 정도로 칼빈슨호의 동향을 시시각각 전했으니 말이다.

 

한반도 위기론을 둘러싼 일본 측의 야단법석은 칼빈슨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외무성은 해외여행 관련 홈페이지에 한국을 방문하는 자국민들에게 한반도 정세에 주의하라는 경고문을 올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북한이 사린가스를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다고 대놓고 얘기했다. 언론에선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시 일본의 사전협의 요청, 한반도 유사시 일본 국민과 납치 피해자 구출 방안 마련 등의 내용이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발로 보도됐다. 급기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뉴스에 도쿄 지하철과 일부 신칸센의 운행이 잠시 중단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전개로 한반도에 전운(戰雲)이 급격히 감돌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반응을 아예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과 보수 언론들이 합작해 한반도 위기론을 부추기고, 일본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해상 자위대에 미군 군함을 보호하는 ‘무기 등 방호’ 임무를 처음 부여했다. 이에 따라 항공모함급 호위함인 ‘이즈모’가 미 보급함을 이틀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일본 정부는 또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도입을 위한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적 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헌법 시행 70주년을 맞은 지난 3일 2020년 개정 헌법 실시, 자위대 헌법 명시 등의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화룡점정’일 뿐 일본은 이미 ‘전쟁 가능한 국가’를 향해 착착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위협론은 ‘전쟁 가능한 국가’를 향한 아베 정권의 행보에 좋은 구실인 셈이다. 이솝 우화 ‘늑대와 양치기’에 비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물 들어온 김에 노 젓겠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실패로 끝난 북한 미사일 발사 뉴스에 다중이용시설인 지하철의 운행을 멈추면서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는 왜 멈추지 않았나. 게다가 미 보급함 방호 임무는 북한의 위협이 없는 태평양 쪽에서 이뤄졌다. 소형 호위함을 투입해도 될 일이다.

 

‘칼빈슨’을 입에 올리는 아이를 보고 호들갑을 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권이 부채질하고 조성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국민들의 생각에까지 널리 영향을 미친다. 2차 세계대전 직전의 독일 나치나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부채질하고, 국민들의 감정을 지배하면서 전화(戰火)를 향해 내달렸다.

 

‘한반도 4월 위기설’은 다행히 ‘설’로 끝났다. 하지만 한반도의 긴장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반도 위기설’의 한편에는 주요 우방국인 일본이 있다. 그 일본은 지금 평화국가에서 전쟁국가로의 전환을 통해 ‘전전(戰前) 복귀’라는 위험한 선택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군사적 대응만 강조하고, 주변국과의 긴장을 높이는 일본의 선택지에 ‘한반도 평화’가 설 자리가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악몽’은 아주 작은 불씨를 통해 현실로 나타난다. 그것이 역사가 가르쳐주는 진실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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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 오전 이마무라 마사히로(今村雅弘) 부흥상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 전날 저녁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행사에서 이마무라가 2011년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을 두고 “도호쿠여서 다행”이라고 말했다가 비판이 쇄도하자 서둘러 수습한 것이다. 부흥청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 도호쿠의 재건을 위해 설치됐다. 이곳의 수장이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망언을 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부흥상으로서 피해자의 신뢰를 잃는, 지극히 부적절한 언동”이라며 사과했다. 그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후쿠시마를 지역구로 둔 요시노 마사요시(吉野正芳) 중의원 의원을 부흥상에 임명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도호쿠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망언은 이뿐이 아니다. 이마무라는 지난 4일에도 원전사고로 고향을 떠난 피난민의 귀향에 대해 묻자 “그것은 본인 책임”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책임은 없냐는 질문에 “재판이든 뭐든 하면 될 거 아니냐”고 했다. 기자가 끈질기게 국가 책임을 묻자 “시끄럽다. 당신, 나가라. 다시 오지 마라”며 핏대를 올렸다.

 

지난달 8일에는 차관급인 무타이 슌스케(務台俊介) 부흥정무관이 “내 덕분에 장화업계가 상당한 이득을 봤을 것”이라고 했다가 물러났다. 그는 지난해 9월 태풍 피해를 입은 도호쿠 이와테(岩手)현을 시찰할 때 장화를 준비하지 않아 수행원의 등에 업혀 물웅덩이를 건너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2014년 6월에는 자민당 소속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환경상이 원전사고로 생긴 오염토의 중간저장 시설 건설과 관련해 “결국 가격이 얼마냐일 것”이라고 말했다가 ‘돈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사죄했다. 민주당 정권의 하치로 요시노(鉢呂吉雄) 경제산업상은 피해지역을 ‘죽음의 거리’라고 불러 사임했다.

 

아베 총리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후쿠시마는 거의 수습됐다”고 했다. 이날도 “도호쿠의 재건 없이 일본의 재생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도호쿠 재건에 2조6896억엔(약 27조1600억)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마무라의 발언은 후쿠시마의 현실을 최대한 숨기고 싶은 정치인들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 버렸다.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정치인의 망언은 사회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원전사고로 피난한 학생들은 ‘세균’이라고 불리며 집단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도호쿠 지방의 한 주민은 아사히신문에 “잘려 버려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도호쿠의 재건을 향한 여정은 아직 멀어 보인다.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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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 오전 이마무라 마사히로(今村雅弘) 부흥상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 이마무라 부흥상이 전날 저녁 2011년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을 두고 “도호쿠에서, 저쪽이었기 때문에 다행이다”라고 말했다가 비판이 쇄도하자 서둘러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잇따르는 각료들의 설화가 정권에 타격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가 발생한 도호쿠지방을 바라보는 속내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마무라 마사히로 부흥상이 26일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한 뒤 사죄하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지진 도호쿠여서 다행”... 아베, 부흥상 경질에 사과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총리 관저에서 이마무라 부흥상이 낸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동일본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은 아베 내각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피해지의 모든 이들의 마음에 다가가면서 부흥에 전력을 다하는 게 내각의 기본 방침”이라면서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는 “이마무라 부흥상의 언동은 극히 부적절한 것으로, 부흥상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피해자의 신뢰를 잃는 언동”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마무라 부흥상은 전날 저녁 도쿄 도내에서 열린 자민당 내 파벌 ‘니카이(二階)파’의 파티에서 동일본대지진의 피해와 관련해 “아직 도호쿠에서, 저쪽이었기 때문에 다행이다”면서 “(대지진이) 수도권에서 가까웠더라면 막대한 피해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흥청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도호쿠지방의 부흥을 목적으로 설치됐다. 이런 부흥청의 수장이 동일본대지진 피해자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망언을 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후임 부흥상으로 자민당 소속 요시노 마사요시(吉野正芳) 중의원 의원을 임명했다. 마사요시 의원은 후쿠시마가 지역구로, 현재 중의원 재해부흥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도호쿠 지방의 성난 민심을 달래 이번 사태를 빨리 수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과 기대를 외면하는 정치인들의 속내가 또다시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일본대지진이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한 정치인들의 망언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는 망언들

이번에 사임한 이마무라 부흥상은 지난 4일에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스스로 고향을 떠난 피난민의 귀향 여부에 대해 “그것은 본인 책임”이라고 말했다. 국가 책임은 없냐는 질문에 “재판이든 뭐든 하면 될 거 아니냐”고 했다. 그는 기자가 끈질기게 국가 책임을 묻자 “당신, 나가라. 다시 오지 마라” “시끄럽다”면서 핏대를 올리기도 했다. 

 

앞서 2014년 6월에는 자민당 소속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환경상이 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긴 오염토의 중간저장 시설 건설에 관해 “최후는 가격이 얼마나 되느냐일 것”이라고 말했다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발언을 철회하고 사죄했다. 

지난달 8일에는 차관급인 무타이 슌스케(務台俊介) 내각부정무관 겸 부흥정무관이 자신 덕분에 “장화업계가 상당한 이득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사임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태풍 피해를 입은 도호쿠지방의 이와테(岩手)현을 시찰할 때 장화를 준비하지 않아 수행원의 등에 업혀 물웅덩이를 건너 비난을 받았는데, 이를 소재로 농담을 한 것이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당시 민주당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마쓰모토 류(松本龍) 부흥상은 2011년 7월 이와테현을 방문해 “지혜를 내지 않는 놈은 도와주지 않는다”고  등 막말을 했다가 임명 7일만에 물러났고, 같은 해 9월 하치로 요시노(鉢呂吉雄) 경제산업상은 후쿠시마 원전 피해지역을 ‘죽음의 거리’라고 불러 논란 끝에 사임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배신하는 정치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인해 1만8000명을 넘는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생겼다. 지금도 약 7만명이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피난살이로 인한 사망자수도 2000명을 넘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다른 지역으로 피난한 학생들에 대해 “후쿠시마로 돌아가라” “세균”이라고 부르면서 집단 괴롭힘을 가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확인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도호쿠의 부흥 없이 일본의 재생은 없다’를 기본 방침으로 부흥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흥청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올해 2조6896억엔(27조1600억)의 특별회계를 편성해 부흥 작업에 투여할 예정이다. 부흥청에선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지역에서 떨어진 후쿠시마현 내 다른 지역의 방사선량이 전 세계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높지 않다고 강조하는 등 ‘풍평(風評) 피해(풍문으로 입는 피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홍보 활동 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학적 근거’로 판단해 달라는 얘기들도 하고 있다.

 

하지만 부흥청 수장의 망언으로 이 같은 노력은 빛이 바랬다.

앞서 아베 총리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후쿠시마는 거의 수습이 됐다”고 했다.

 

후쿠시마의 현실을 최대한 숨기고 싶은 게 정치권의 솔직한 심정일 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기대를 외면하는 정치가들의 잇따른 망언은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에도 영향을 준다. 도호쿠지방의 한 주민은 아사히신문에 “잘려 버려진다고 해야 할까, 차별당했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도호쿠의 부흥을 향한 여정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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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군사행동 망설이지 않아’ ‘일본, 미 군사행동시 사전 협의 요구’ ‘미·북 충돌 대비 본격화’.

 

최근 며칠 간 일본 언론들이 쏟아내고 있는 ‘한반도 위기론’ 기사의 제목들만 보면 당장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이 일어날 것 같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일본 측의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지만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한반도 위기론’에 편승해 일본 무장론의 명분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요미우리신문은 13일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에 나설 경우 주일 미군기지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일본과 사전협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미국이 북한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고, 일본이 그럴 경우 사전 협의를 요청했다’는 보도를 부인한 바로 다음날이다. 앞선 보도들과 마찬가지로 요미우리는 익명의 ‘정부 고위관계자’를 인용했다. 일본 정부가 이중 플레이를 하는 양상이다.

 

미국이 화학무기 사용을 응징한다면서 7일(현지시간) 새벽 시리아 공군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한 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날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일본 정부는 화학무기의 확산과 사용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의 결의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 "평화와 안정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관여를 일본은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도쿄 AP=연합뉴스

 

이런 이중 플레이는 11일 외무성의 주의령에도 드러난다. “안전에 바로 영향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한국에 머물고 있거나 방문할 계획이 있는 일본인에게 주의령을 내린 것이다. 정작 미국 정부는 아무 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과도 대조된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개헌을 추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북한 위협론은 무장을 강화할 명분을 키울 기회다. 집권 자민당은 자위대 강화의 근거로 북한 위협론을 거론해왔다. 아베 정권이 ‘테러 등 준비죄(공모죄)’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게다가 아베는 부인 아키에(昭惠)여사와 관련된 우익 학교 스캔들에 휩싸여 있다. 일각에선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대사의 한국 복귀와 한일 위안부 합의, 한국 대선 등을 둘러싼 일본 측의 불편한 속내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과의 협력’ 운운하지만 결국 우방의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아베 총리는 “지구의(地球儀)를 내려다보는 외교”를 내세웠다. 하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북 강경책만 편든다는 지적이 많다. 도쿄신문은 13일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비군사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두에 선다면 지구의를 내려다보는 외교도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아베는 이날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북한이 사린가스를 미사일 탄두에 장착해 발사할 능력을 이미 갖췄을 수 있다”면서 강경 대응을 주장했다. 그의 머리 속엔 ‘비군사적 해결’ 따위는 없는 모양이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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