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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확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90분간 만났다. 18년 만에 이뤄진 북한 고위 당국자의 백악관 방문과 미국 대통령 면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백악관 마당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12일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과정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 번의 회담으로 끝난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며 추가 회담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측에 “천천히 하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미 정상회담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과정(process)이라는 말을 아홉 번이나 사용했다. 앞서 김 부위원장과 고위급회담을 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키워드도 과정과 진전(progress)이었다. 즉각적인 핵폐기, 일괄타결 등을 강조하던 트럼프 정부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정상회담 한 번으로 북핵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 내에서는 말이 많다. 민주당 성향의 주류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정상회담 성공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정 언급 다음날 ‘트럼프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한반도 계획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비판했다. CNN은 ‘(이번) 정상회담은 (실패의) 데자뷔 우려를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이미 실패한 단계적 해법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싱크탱크의 강경파 전문가들이 회의론 전파의 전면에 섰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뉴욕타임스에서 “정상회담이 과정이라는 언급 자체가 즉각적인 비핵화 확약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북한에 대한 양보”라고 평가했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4일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주최 토론회에서 “북한이 정상회담 극장에서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얼마 전 국무부 대변인 브리핑에서 한 미국 기자가 “어떻게 북한 같은 독재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따져보면 정상회담 목표 현실화를 비판하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본질적으로는 이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논조는 북한에 대한 불신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현실을 보는 한 모든 것은 위장이고 쇼일 뿐이다. 트럼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지만 현실적인 대안 제시는 없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북·미 관계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생존의 문제가 걸린 한반도 당사국 시민들의 절실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한반도 전문가다.

 

북핵 협상은 과정일 수밖에 없다. 70년간 이어진 적대관계의 산물인 북핵 문제를 ‘원샷’에 해결한다는 구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선 핵폐기, 후 보상’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 항복 요구이지 협상안이 아니다. 리비아식 핵폐기 주장은 회담의 판을 깨려는 강경파들의 의도적 도발이란 음모론이 제기될 정도다. 영어 속담에 ‘완벽함만 추구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Perfect is the enemy of good)’는 말이 있다. 이는 완벽함에 이르는 게 너무 어렵다며 어떤 일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전략적 인내’라는 멋진 말로 포장한 채 북한 체제가 무너지기만을 기다리던 정책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그 사이 북한은 핵탄두를 미국 본토로 날려보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했고, 미국의 군사적 옵션은 더 이상 공허한 협박이 아닌 상황이 됐다. 북핵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완벽한 해법은 없다. 일방적 항복을 요구할 게 아니라 윈윈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상대가 있는 협상의 기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이 맞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북서쪽 13번가 1500번지. 원형 교차로 길가의 빅토리안 양식 3층짜리 갈색 벽돌 건물이 보였다. 복원 공사를 마치고 오는 22일(현지시간) 개관식을 앞둔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이다. 22일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일이다. 개관식에서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이 건물에 국기 게양이 중단된지 113년만에 처음으로 국기 게양식이 열린다.

 

개관을 앞둔 공사관을 14일 미리 찾아갔다. 돌계단을 따라 현관에 들어가니 왼쪽으로 손님들을 맞았던 객당, 오른쪽으로 연회공간인 식당이 보였다. 관계자는 사진 자료와 고문서를 바탕으로 1880년대 공사관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객당에는 서양식 카페트와 한국 전통의 병풍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공사 집무실과 공관원 사무공간이 나온다. 한복 차림에 수염을 기르고 갓을 쓴 채 서양식 탁자에 앉아 있는 공사관 직원들을 상상해봤다. 숙소로 사용했던 3층은 전시관으로 꾸며놨다.

 

복원공사를 마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외부 전경. 문화재청 제공

 

전시관에서는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아픈 과거를 그대로 볼 수 있었다. 1888년 1월 워싱턴에 도착한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 일행은 피셔하우스를 임대해 업무를 시작했다. 조선왕조는 이듬해인 1889년 2월 당시 정부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2만5000달러를 투자해 이 공사관을 사들였다. 그리고 이 공관은 1897년 10월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 외교 활동의 중심 무대가 됐다. 하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뒤 건물 관리권도 일제로 넘어갔고, 일제는 이 곳을 단돈 5달러에 강제로 매입해 미국인에게 10달러에 팔아넘겼다. 이후 공사관은 되찾아야 할 독립의 상징으로 남았고, 102년 만인 2012년에서야 문화재청이 350만달러에 매입해 원형 복원 공사에 착수했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1층의 객당. 문화재청 제공

 

공사관을 사용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더 생생하다. 초대 공사 박정양은 고종의 명을 받고 2개월에 걸쳐 미국 군함과 일본 여객선을 갈아타며 39,215리 길을 달려 워싱턴에 도착했다. 당시 조선을 속국으로 여기던 청나라는 그에게 영약삼단이란 해괴한 원칙을 요구했다. 주재국에 가면 먼저 청나라 공사관에 알린 뒤 청나라 공사와 함께 주재국 외교부를 방문하고, 외교 모임에서는 청나라 공사의 아랫자리에 앉고, 문제가 생기면 청나라 공사와 합의 처리하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는 청나라 관계자 없이 스티븐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국서를 전달하고 “양국의 우위가 돈독하며 영원히 화평하여 피차 인민이 균등하게 권리를 누리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요청했다.

 

박정양과 함께 근무했던 초대 서기관이 독립협회를 조직했던 월남 이상재다. 1896년부터 주미 공사를 지낸 이범진은 이후 러시아 공사로 자리를 옮긴 후 1910년 나라를 잃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했다. 그의 미국 근무 당시 초등학생으로 아버지의 백악관 방문에 동행해 통역을 해줬다는 아들 이위종은 고종의 헤이그특사 중 한 명이 됐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2층의 공사 집무실. 박영환 특파원

 

전시관까지 살펴보고 되돌아 내려오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구한말 준비 없이 열강의 힘싸움에 휘말려 일본에 나라를 잃었고, 독립 후에는 다시 냉전 대결의 최전방이 되면서 전쟁과 분단이란 비극을 되풀한 우리의 역사가 스쳐지나갔다. 한반도의 현재 상황을 구한말과 비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국은 궐기를 선언했고, 미·중 대결 구도가 심화되면 한국은 또다시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라 이날 방문이 더 특별했는지 모르겠다. 북핵 문제 해결과 종전 선언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는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닦을 수 있는 세기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는 것이다.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찾는 문재인 대통령도 대미 외교 개척의 현장인 이 곳을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

올봄 워싱턴의 최대 화제는 북·미 정상회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직 포르노 배우의 성추문, 그 뒷정리를 하던 트럼프 개인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도 북한 뉴스에 묻혔다. 트럼프가 해고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회고록도 북한 이슈만 없다면 더 팔릴지 모른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핵미사일을 개발하기 직전이니 북핵 문제는 이제 미국인들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핵 외교전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 문재인 대통령 특사단을 통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 트럼프의 전격적인 정상회담 수락과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김정은 면담으로 이어지면서 상황은 대화모드로 급전환됐다.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중단, 핵실험장 폐기 카드를 던지며 본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준비에 들어갔다.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이어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일정도 정해질 것이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해석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트럼프는 전직 대통령들이 못 푼 난제를 풀겠다며 북·미 정상회담을 이슈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의 기대감이 급상승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부분 조심스럽다. 특히 워싱턴 싱크탱크 북한 전문가들의 회의론은 일관된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 선언을 “핵보유국 선언”이라고 규정했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김정은이 이성적이며 책임감 있는 핵보유국 정상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비핵화는 미국과의 군축 대화로 실현될 수 있다는 북한의 입장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근거 없는 희망적 관측은 경계해야 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노벨 평화상은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 중 누가 받아야 하는지를 벌써부터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전문가라면 이들과 달라야 한다. 평정심, 신중함, 명확한 현실감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전문가적 회의론도 현 시국을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된다. 회의론자들은 북한의 평화공세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핵 개발의 시간을 벌고, 한·미관계도 이간질하려는 의도라고 확신한다. 틀을 벗어난 파격적 현실을 해석하기는 어려운 사고다. 이들은 김정은의 선제적 북·미 정상회담 제안과 트럼프의 전격적 수락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들의 분석보다 북·미 간의 협상은 이미 한참 더 나갔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북한과 협상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전문가들이 온갖 곳에서 나에게 북한과 협상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우스울 뿐”이라고 비웃을 정도다.

 

논리로 무장한 회의론은 외교의 역할을 무시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이 어느날 갑자기 핵을 폐기하기로 결단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추론은 현실적이다. 다만 김정은은 이제 핵이 아니라 경제개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이를 위한 협상 과정에서 체제안전 보장 등 미국의 합당한 조치가 있으면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북·미의 상호작용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이뤄갈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을 열어둬야 한다. 김정은은 믿을 수 없고, 트럼프는 불안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의 압박 작전, 한국의 중재 외교, 북한의 노림수가 맞물려 관련국들은 이제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입구에 서 있다. 섣부른 희망적 관측은 물론 지나친 회의론도 경계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말하는 ‘조심스러운 낙관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두고 확률 계산을 하던 몇 달 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워싱턴의 반응이 재미있다. 정치권, 싱크탱크 전문가들, 언론들은 기대감보다는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백악관이 ‘코피작전’을 준비할 때 전쟁의 위험을 경고하며 대화를 강조했던 그들이다. 하지만 정상회담 발표 후 뉴욕타임스는 ‘정말 엉망진창’이라고 평가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어떤 핵 양보도 없이 북한을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에 놀라워하던 언론들이 다음날에는 가짜뉴스가 됐다. 그들은 ‘그래서 뭐’ ‘누가 신경 쓰는데’라고 말한다”고 비판할 정도다.

 

워싱턴의 불안감을 이해는 할 수 있다. 너무 빠르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로 시작해서 대북특사단 파견, 남북정상회담 합의, 북·미 정상회담 추진으로 한 달여 만에 한반도 정세가 급변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이 70년에 걸쳐 추진해온 북·미 정상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특사단과의 45분 면담에서 곧바로 결정됐다. 주도권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쥐고 있다. 상황 변화의 시작도, 이후 전개 과정도 그가 던진 카드를 따라왔다. 다음에 무슨 카드를 내밀며 관련국들을 어디로 끌고 갈지 모른다.

 

북한에 당한 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역사적 합의들은 번번이 북한의 약속 위반으로 무산됐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트럼프 정부의 준비 부족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반도 외교라인은 텅 빈 상태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국무부를 “전멸 상태”라고 표현했다. 상황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북한이 쳐 놓은 덫에 스스로 빠지는 게 아닌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성공을 기대하기보다는 실패에 대비하라고 충고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에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를 선택할 시점이다. 지난 겨울 워싱턴의 화두는 한반도 위기론이었다. 전문가 세미나마다 대북 선제타격론이 거론됐고,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을 두고 확률 계산도 이어졌다. 한 공화당 의원의 입에서는 “죽어도 거기서(한반도에서) 죽는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까지 소개됐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한반도 전쟁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쟁 위험에 직면한 한국이나 핵미사일 사거리에 들어간 미국이나 더 이상 앞뒤를 재면서 앉아서 생각만 할 상황이 아니다.

 

북한의 행보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실제 핵을 포기하면서 안보와 경제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1.5 트랙(반관반민) 대화를 해온 수전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기고에서 “북한 정권은 갈등을 피하고 경제를 현대화하기 위한 자체 의제를 가지고 있다”면서 “그게 바로 트럼프가 김정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택하고, 중국을 제쳐두고 미국부터 만나겠다는 김 위원장의 행보는 기존 문법으로는 해석이 쉽지 않다. 판이 바뀌고 새로운 게임이 시작될 수도 있다.

 

북핵 문제는 풀기 어렵다. 실타래처럼 얽혀 서로를 간섭하고 있는 이해와 불신을 하나씩 차례로 풀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엉킨 실타래를 끊어버리고 새 실을 바늘에 꿰는 게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특히 최고 지도자의 결단이 정책 방향을 좌우하는 독재 정권과의 협상에서는 이 방식이 효율적일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사상 첫 북·미 정상 간 담판이 그 모범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 트럼프 정부가 할 일은 철저한 준비이고,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를 위한 충고와 제안을 해야 한다. 조태열 주유엔 한국대사의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표현에 적극 공감한다. “기회는 꼬리가 없어서 지나가면 뒤에서 잡을 수 없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에 동의와 기대를 보낸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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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의 영화관 AMC를 찾았다. <블랙팬서> 개봉 이틀째였다. 극장 입구부터 꽤 긴 줄이 있었다. 흑인 관객들이 유난히 많았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감격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여운을 즐기는 관객들도 많았다. 큰 극장의 한가운데 자리에 앉은 덕분에 영화가 끝나고도 밖으로 나오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먼 곳까지 찾아가 <1987>을 본 후 감정의 정리가 어려웠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블랙 팬서> 포스터.

최근 미국에서 <블랙팬서>가 열풍이다.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 와칸다를 배경으로 하는 흑인 히어로 영화다. 흑인 히어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도 시드니 포이티어가 살인사건 전문 형사로 열연한 <밤의 열기 속으로>가 흑인들을 극장으로 몰려들게 했다. 하지만 이번 바람은 다르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평가다. <블랙팬서>는 미국 흑인 문화사의 분기점이 될 작품이란 평가도 나온다.

 

여배우 옥타비아 스펜서는 미시시피의 극장을 통째로 빌려 어린이들에게 단체관람을 시키고 있다. 사업가 로저 잭슨은 시카고에서 극장을 대여했다. 교회와 사업가, 시민운동가들도 단체관람을 진행 중이다. 애틀랜타 교외의 한 AMC에서는 개봉 당일 이 영화만 총 84회 상영됐다. 극장의 모든 스크린에 <블랙팬서>만 비춘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흑인 74%가 이 영화를 볼 계획이라고 답했다. 온라인에서는 ‘블랙팬서는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해시태그가 유행이다. 각종 흥행기록도 갈아치울 기세다.

 

<블랙팬서>는 미국 흑인들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영화인 듯하다. 19세 흑인 고등학생 오스틴 매시야는 CNN에서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견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블랙팬서>는 그 수준에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은 19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블랙팬서> 팀을 격려하고 “당신들 덕분에 젊은이들이 마침내 극장에서 자신과 닮은 영웅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이 영화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영웅이 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와칸다는 아프리카의 에덴동산 같은 곳이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한 와칸다의 초원에서는 코뿔소와 스텔스 우주비행선이 공존한다.

 

블랙팬서라는 이름은 미국 흑인의 역사와도 연결된다. 1942년 구성된 흑인들만의 탱크부대가 사용한 별명이 바로 블랙팬서였다. 1966년에는 앨라배마의 유권자운동 단체가 상징으로 블랙팬서를 채택했고, 같은 해 오클랜드에서 경찰폭력 등 백인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 ‘블랙팬서당’이었다. 이들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비폭력 운동을 실패로 평가하고 주거, 교육, 시민권의 평등을 위한 혁명전쟁을 내세웠다. 

 

일각에서는 <블랙팬서>는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운동이란 주장도 들린다. 언론인 자밀 스미스는 타임지 기고에서 “백인 이민배척주의자 운동에 의해 추동된 문화적, 정치적 퇴행의 한가운데에서 <블랙팬서>의 존재는 일종의 저항과도 같다”고 적었다. 다양성의 존중이 마치 자선인 것처럼 비치는 현실에서 <블랙팬서> 같은 영화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흑인들은 자부심을 일깨우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뒤틀린 세상에 저항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블랙팬서>는 미국에 정착한 흑인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비현실적인 동경을 담았다는 지적도 있는 게 현실이다. 영화 관람 말고도 수많은 저항의 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장 흑인들의 대선 투표율은 오바마를 당선시킨 2012년에는 66.6%였지만, 2016년에는 59.6%로 떨어졌고 백인 우월주의자를 옹호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안사람들은 대체로 인기가 없다. 이코노미스트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트럼프 정부 1주년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 대부분이 비호감이란 평가를 받았다. 큰딸 이방카에 대해서도 호감 41%, 비호감 42%로 싫다는 사람이 꽤 많았다. 한 명 예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다. 멜라니아에 대해서는 호감이란 응답이 48%로, 비호감 33%보다 훨씬 많았다. 지난해 말 갤럽의 조사에서도 멜라니아의 호감도는 1년 사이에 17%포인트나 올랐고 트럼프 집안에서 최고 호감도를 보였다.

멜라니아는 준비된 퍼스트레이디는 아니었다. 화제의 신간 <화염과 분노>에 따르면 멜라니아는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한 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의 안락한 생활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남편이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멜라니아에게는 조용히 보호받는 생활을 파괴할 끔찍한 것이었다고 한다. 원하지 않는 공인이 됐고 과거 모델 초년 시절의 누드 사진만 공개됐다. 멜라니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에도 아들 배넌의 학교생활을 이유로 뉴욕에 5개월이나 머물렀다. 워싱턴 생활이 얼마나 싫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멜라니아는 여성편력이 화려한 부동산 갑부 트럼프 대통령의 세 번째 부인이다. 슬로베니아 태생의 모델 출신으로 남편과는 24살이나 차이가 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에게 멜라니아의 외모를 자랑하며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라고 떠들었다고 한다. 트로피 와이프는 돈 많고 성공한 중년 남성들이 얻은 젊고 매력적인 부인을 말한다. 그에게 멜라니아는 성공을 상징하는 전리품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브런치와 파티를 즐기는 뉴요커의 삶을 원했던 멜라니아에게 바늘방석 같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이 주어진 지 1년이 지났다. 멜라니아의 첫해 행보는 역대 퍼스트레이디와는 조금 달랐다. 멜라니아는 대통령 남편의 후원자임을 강변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5월 이스라엘 순방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손을 보란 듯이 뿌리쳤다. 최근에는 포르노 배우와의 성추문에 휘말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스위스 다보스포럼 동행을 취소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과의 스캔들을 인정한 다음날 여름휴가를 떠나겠다며 가족끼리 손을 잡고 백악관 잔디밭을 걸어가는 모습을 연출했던 힐러리 클린턴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멜라니아에게는 백악관 퍼스트레이디 집무실인 이스트윙의 주인다운 존재감도 부족하다. 대통령 부인의 갑질 논란은 물론 주목받는 공개 활동도 없다. 인기는 올라가고 있지만 힐러리(58%), 로라 부시(77%), 미셸 오바마(61%) 등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인 것도 이 때문이다. 동유럽 이민자 출신인 멜라니아에겐 서툰 영어부터 콤플렉스다. 변호사였던 미셸 오바마처럼 잘나가는 독립적인 여성 이미지도 아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첫째 부인의 딸인 이방카가 백악관에 사무실을 내면서 멜라니아의 위상은 더 줄어들었다. 미셸의 건강한 먹거리 운동 같은 대표적인 활동도 아직은 없다. 사이버 왕따 예방 캠페인에 나섰다가 남편 트럼프 대통령이 사이버 왕따의 지존이란 핀잔을 들었다. 하이힐을 신고 허리케인 피해지역을 찾았다가 홍수패션이란 구설에만 올랐다.

멜라니아에 대한 호감도는 어쩌면 트럼프 집안사람들에 둘러싸여 백악관에 갇힌 연약한 여성 이미지 때문일지 모른다. 돈과 권력을 가진 트럼프에 비해 약자인 멜라니아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많다는 의미다. 취임 초부터 미국 언론들은 멜라니아를 트럼프타워에 갇힌 라푼젤에 비유했다. 멜라니아는 최근 이스트윙 참모진을 대폭 보강했다. 새해에는 멜라니아가 트로피 와이프란 오명을 털어내고 당당한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를 구축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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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정가의 뜨거운 화제는 마이클 울프의 신간 <화염과 분노>다. 주변 인물들 인터뷰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전후를 생생하게 담았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트럼프 캠프의 누구도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는 점이다.

 

“대선 당일 저녁 8시를 넘기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예상 밖의 전망이 확정적으로 보일 때였다. 트럼프의 아들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아버지가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라고 말했다. 멜라니아는 눈물을 흘렸다.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대선 승리 소식에 트럼프와 부인 멜라니아가 놀라는 대목이다. 유명해지고 싶었던 트럼프는 대선 일주일 전에 친구인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사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꿈꿔왔던 것보다 더 강력하다. 져도 진 것이 아니다. 이만큼만 해도 우리가 이긴 것이다.”

 

트럼프는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다. 트럼프 측은 “쓰레기 저자”의 “기괴한 소설”이라고 부정하지만 책의 내용은 신빙성이 높다. 실제 대선 당일 필자가 확인한 뉴욕 힐튼미드타운호텔에 마련된 트럼프 캠프의 분위기는 승리의 기대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캠프가 제이콥자비츠 컨벤션센터에서 대대적 승리 이벤트를 준비한 것과 너무나 대조됐다. 트럼프의 오랜 친구 크리스 루디 뉴스맥스 사장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어쩌다 대통령(accidental president)”이라 불렀다. 루디는 “그 말이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어쩌다가 대통령이 됐다. 우연한 상황의 연속이 그렇게 이끌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초반 1년이 왜 그렇게 혼란스러웠는지를 알 만하다. 대선에서 유명해지면 그만이었으니 집권 이후 구상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길 생각이 없었으니 욕을 먹더라도 세금 내역을 공개할 이유는 없었다. 대선 승리 후 트럼프에게 기성 정치권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지, 그가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갖게 됐을지도 상상할 수 있다. 자신을 반대해온 공화당 주류가 발아래로 보이고, 포퓰리즘의 힘을 한껏 느꼈을 것이다. 줄곧 클린턴이 이긴다고 떠들던 주류 언론이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을 것이다. ‘가짜뉴스’ 공격에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국에는 유명한 ‘어쩌다 대통령’이 또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된 후 1945년 취임 4개월 만에 루스벨트가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한 해리 S 트루먼이다. A J 베임이 지난해에 출간한 <어쩌다 대통령: 해리 S. 트루먼과 세계를 바꾼 4개월>에 따르면 당시 한 백악관 출입기자는 트루먼을 “마치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뽑힌 것처럼 백악관에 들어온 남자”라고 묘사했다. 한반도 전쟁 위협, 핵전쟁 이야기도 두 사람의 겹치는 부분이다. 일본 원자폭탄 투하, 6·25 전쟁 파병이 트루먼 재임 시 이뤄졌다.

 

운으로 시작했다고 훌륭한 대통령이 못될 이유는 없다. 트루먼은 승계한 대통령직을 마친 후 재선에도 성공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전후 세계질서의 기틀을 다졌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이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도 못 채우고 쫓겨났다. 다만 트럼프에게서는 성공 가능성을 찾기 어렵다는 게 비극이다. 트루먼은 취임 5개월 만에 지지율 87%를 찍었지만 트럼프는 1년이 지난 현재 정신건강 의혹까지 제기되며 30%대의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선거 캠페인과 통치는 다른 영역이고, 유명인과 훌륭한 정치인은 겹치는 게 아니며, 리얼리티쇼와 대통령직 수행은 달라야 한다는 게 증명됐다.

 

1년 만에 미국 사회에서는 반지성이 횡행하고, 가진 자들의 탐욕은 노골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은 ‘위대한 미국’의 시작이 아니라 미국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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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뒤에 가짜뉴스(fake news)가 있다. 전부 다는 아니다. 물론 일부는 괜찮은 사람들이다. 어디 보자. 한 30% 정도는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군기지에서 열린 연방수사국(FBI) 내셔널 아카데미 졸업식에서 자신을 향한 카메라를 가리키며 졸업생들과 생중계로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에게 한 말이다. 가볍게 미국 언론인의 70%는 가짜(fake)가 돼 버렸다.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가 마무리되고 있다. 워싱턴에서 지켜본 트럼프 정부 1년은 불안하고 실망스러웠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배타적 백인 민족주의로 조금씩 휩쓸려 가는 미국은 더 이상 다양성을 원동력으로 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 우선주의만큼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올 한 해 자주 사용한 단어는 ‘가짜뉴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한 케이블 채널 인터뷰에서 “미디어가 내가 만든 용어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가짜란 단어를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리엄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가짜뉴스란 단어는 19세기 말부터 사용됐다. 물론 이 용어를 세계에 유행시킨 당사자는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다. 영국 사전출판사 콜린스는 지난달 2일 올해의 단어에 가짜뉴스를 선정하고, 지난 1년간 사용 빈도가 365% 급증했다고 밝혔다.

 

가짜뉴스는 본래 언론 보도를 가장해 온라인 공간에서 퍼지는 거짓되고 선정적인 정보를 말한다. 전통 언론의 영향력을 추락시키고 현실을 왜곡하는 가짜뉴스의 폐해는 심각하다. 당장 미국 정보기관은 러시아가 가짜뉴스를 활용해 지난해 미국 선거에 개입했다고 결론 내린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뉴스란 말을 자신을 비판하는 주류 언론을 비난하는 데 사용하며 의미를 비틀었다. 존 로이드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안 현실(alternative reality)을 만들어냈다”며 “언론인들의 실수는 가짜뉴스 공격으로 증폭되고, 주류 언론은 거만한 엘리트들이 소외된 이들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묘사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뉴스 공격은 권력 견제라는 언론의 기본 기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할 정치권력의 언론 무력화 시도가 수정헌법 1조로 언론의 자유를 명시한 미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16명이 직접 고발한 성추행 의혹을 보도해도 그는 가짜뉴스라고 역공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298일 동안 하루 평균 5.5개의 거짓말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했다. 가짜뉴스 공격은 포퓰리즘을 무기로 집권한 ‘피노키오 대통령’이 고안한 자기방어 수단인 셈이다.

 

미국의 퇴행은 전 세계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 영감을 줬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 세계 15개 권위주의 국가에서 인권탄압 등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하기 위해 가짜뉴스 공격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군 감옥 인권실태를 고발한 국제사면위원회 보고서를 “우리는 가짜뉴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반박했고, 중국 인민일보는 인권운동가 고문 주장에 “트럼프가 옳다. 가짜뉴스는 적이다”고 대응했다. 가짜뉴스가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된 셈이다.

 

가짜뉴스 공격이 통하는 배경에는 주류 언론들의 신뢰 추락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민의 신뢰 회복은 언론의 몫이다. 하지만 오만한 언론이 밉다고 언론의 권력 견제 역할까지 무시해서는 안된다. CNN 보도의 형평성에 불만이 있더라도 CNN을 때려눕히는 동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는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폐해는 가짜뉴스보다 더 심각하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온전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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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지나갔다. 가족과 함께 연휴를 보내기 위해 이동하는 미국인이 51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대이동의 연휴였다. 대도시의 주요 간선도로는 자동차로 넘쳐났고, 주요 공항에서는 비행기 연착이 잇따랐다. 대도시에서 공부하는 조카도, 다른 주에 살고 있는 삼촌도 고향 집에 모였다. 연휴를 이용해 따뜻한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았다.

 

명절 연휴에 모인 가족이 즐겁기 위해서는 피해야 할 대화가 있다. 노총각·노처녀 결혼 이야기, 중·고등학생 성적 비교만큼이나 짜증을 유발해 화기애애한 가족 만찬을 망칠 수 있는 화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 바로 정치 이야기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8~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화로 정치가 일등으로 꼽혔다. 종교나 돈 문제보다 정치를 더 입에 올리기 싫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의 61%가 정치 대화는 가장 하고 싶지 않다고 답해 여야 구분이 없었다. 인종적으로는 66%가 정치 대화가 걱정이라고 답한 백인들이 가장 조심스러웠다. 백인 사회의 정치적 분열이 가장 심각하다는 의미다. 최근 NBC와 월스트리트저널 조사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백인들의 여론은 지지 47% 대 반대 49%로 극명하게 갈렸다. 트럼프만 생각하면 짜증부터 나는 민주당 지지자 조카와 미국 노동자들이 못살게 된 것은 이민자들 때문이라며 열변을 토하는 트럼프 열성팬 삼촌이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정치를 논해봤자 싸움밖에 날 게 없다.

 

대선 직전이었던 지난해 추수감사절 가족모임 때는 “선거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한마디면 됐다.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인 올해는 다르다. 세제 개편, 오바마케어 폐지, 이민 문제 등 논쟁적인 이슈들이 널려 있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해도, 성추행 문제를 개탄해도 모든 게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로 귀결된다. 언론들은 추수감사절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충고를 내놨다. NBC는 “올해 추수감사절은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다”며 ‘추수감사절 정치 이야기에서 살아남는 법’ 7가지를 충고했다. 정치 대화를 가능하면 피하고, 불가피하다면 상대방의 자극적 언사에 반응하지 말라는 게 핵심이다. CNN도 에티켓 전문가를 동원해 ‘가족 연휴 식사 자리에서 정치 대화 방법’ 5가지를 소개했다.

 

명절 모임에서 정치 대화를 피해야 한다는 충고는 일반론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짜증 유발자로 전락한 현실이 갈수록 악화된다면 문제가 된다. CNN의 지난해 조사에서 추수감사절 저녁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두렵다는 응답은 53%, 정치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응답은 43%였다. 하지만 올해 NPR·PBS 조사에서는 정치 대화가 두렵다는 답변이 58%로 늘었고, 기대한다는 답변은 31%로 크게 줄었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민주당 지지자들의 절망감이 커진 것도 원인이다. 민주당 지지자 중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다른 생각을 듣는 게 흥미롭고 정보가 된다는 답변은 28%에 불과했고, 짜증나고 절망적이란 답변은 63%나 됐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현안에 대한 생각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조사에서 현재 미국 정치권의 담론이 긍정적이란 답변은 11%에 불과했다. 부정적이란 평가가 50%, 분노가 느껴진다는 답변은 36%였다.

 

트럼프 정부 첫해가 한 달 남았다. 화합보다는 편가르기에 집중하고, 지지층 확장은 포기한 채 ‘개탄스러운 사람들(deplorables)’의 이탈을 막는 데만 주력하는 대통령이 있는 한 정치는 계속 갈등의 원인으로 남을 것이다. 부자들 세금 깎아주고, 서민들 건강보험 혜택 축소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공화당도, 그런 공화당에 정권을 내준 민주당도 갈등 유발자다. 미국에서 정치가 미래를 선도하기보다는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 볼수록 강해진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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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마다 점보제트기가 한 대씩 추락하고 있는데 정부는 애도만 하면서 대책 마련에 무관심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총기사고를 방치하는 미국 사회의 현실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인근의 한 교회에 20대 남성이 난입해 신자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26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사망자 중 절반은 어린이였다. 문제는 이런 끔찍한 총기사고가 미국 사회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지난달 1일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58명이 목숨을 잃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보도되지 않은 참사는 더 많다. 비영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샌안토니오 사건이 발생한 당일 미국 전역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한 총기사건만 38건이다. 이날 하루 64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올해 들어 지난 5일까지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이 307건 발생했다. 매일 한 건씩 총기 사건이 일어난 셈이다. 10개월간 총기사고로 총 1만3136명이 죽고, 2만7000여명이 다쳤다. 열흘마다 미국인 400명을 태운 점보제트기가 한 대씩 추락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총기가 문제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미국 인구는 세계의 4.4%이지만, 이들은 민간인이 가진 전 세계 총기의 42%를 소유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총격범이 묵었던 호텔 방에서 AK-47 등 20여정의 총기가 발견됐다. 인터넷매체 복스에 따르면 총기 소지율 60%를 넘는 와이오밍주와 몬태나주는 10만명당 16명 이상이 총기에 사망했고, 소지율 10% 수준인 하와이주의 10만명당 총기 사망자는 4명이었다. 총기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텍사스 사건을 계기로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총기규제 제도화 주장이 다시 들린다.

 

놀라운 점은 미국인들 중 상당수가 총기규제에 반대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제도를 보완할 의지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켄 펙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폭스뉴스에서 이번 사건을 설명하면서 “다행히 텍사스에서는 총기를 보이지 않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권한(concealed carry)이 있어서 누군가가 여러 사람을 죽이기 전에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총기를 들고 다니며 난사범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해 9월 워싱턴포스트는 조지아주 윈더에 사는 51세 백인 남성 짐 쿨리를 소개했다. 쿨리는 월마트를 갈 때도 사람이 많이 모이면 위험하다며 AR-15 반자동소총을 들고 다닌다. 트럼프 셔츠를 입고 한 손에 소총을 들고 한 손에는 코카콜라를 든 쿨리는 총기소지 자유를 주장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이었다. 쿨리는 이제 휴일 교회를 갈 때도 소총을 들고 갈지 모르겠다.

 

트럼프 정부의 총기참사 대응에는 패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총기 사건 직후 “가슴이 찢어진다”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함께 뭉쳐 슬픔에 맞서야 한다”며 단합도 호소했다. 하지만 “총기 문제가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건강 문제”라며 총기규제는 반대했다.

 

라스베이거스 총기사건 때도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조기 게양을 주문하며 애도했지만 제도 보완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은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단합할 시간”이라며 피해갔다. 슬퍼하고 침묵하면서 총기 문제가 잊혀지기를 기다리는 전략이다.

 

아마도 미국 정치인들의 주요 자금줄인 전미총기협회(NRA)의 로비력이 유지되고, 쿨리 같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 의원들이 상하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수정헌법 2조를 들어 각종 총기규제 입법을 무력화시키는 보수 우위 대법원이 존재하고, 트럼프 정부의 뭉개기 전략이 계속되는 한 미국에서 총기규제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총기 문화에 이질적인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적인 모습이다. 미국인으로선 부끄러워해야 할 현실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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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 주요 방송과 신문들은 매일 북한과 미국의 전쟁 가능성을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괌 포위사격 발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경고로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온라인에서는 핵전쟁 대피시설과 비상식량 등 전쟁 대비 물품들의 판매가 급증했다. 곧 전쟁이라도 날 것 같던 미국 언론들의 호들갑은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자 폭력사태 두둔 발언 이후 북한 뉴스는 찾기 어려워졌고 화제는 미국 사회의 현존하는 병폐인 인종주의 문제로 급반전됐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 시민들의 반응이 더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 서울 주재기자는 최근 이번 사태를 회고하는 기사에서 “북핵 위기에 대해 보도할 때마다 마치 두 개의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적었다. 전쟁 위기를 전하는 긴박한 뉴스에 비해 서울 시민들의 반응은 너무나 차분하고 심지어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한국 시민들은 20년 넘게 반복되는 북핵 위기를 한반도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10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내셔널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베드민스터_AP연합뉴스

 

미국 사회의 위기감은 흙탕물 가라앉듯이 진정되고 있지만 물밑의 현실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위기는 이제 본격화됐다는 게 맞는 말이다. 빈센트 브룩스 한·미 연합사령관의 말처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는 “게임 체인저”였을 수 있다. 미국은 이제 북핵을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임박한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미국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에 대한 속내를 상당 부분 드러냈다. 한국 입장에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의 순간’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 때문이다.

 

2년 후라고 가정해보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핵탄두 소형화와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터득하고 활용 가능한 ICBM을 모처에 실전배치했다고 발표한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ICBM 완성까지 2년으로 예상했다가 1년 앞당겼다고 하니 내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 한·미는 어떻게 대응할까. 트럼프 정부의 군사적 옵션은 더 이상 공허한 협박이 아닐지 모른다. 군사적 긴장은 극에 달할 것이고 각종 군사적 옵션이 거론될 것이다. 한반도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가 “거기(한국)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서 죽는 게 아니다”라며 북한과의 전쟁불사론을 폈다는 공화당 의원의 전언은 새삼 공포스럽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미 공격 징후가 없어도 예방타격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어는 지난 20일 “2002년 이라크전 이후 백악관에서 적국에 대한 선제적 군사행동의 장단점에 대해 이렇게 많은 토론이 이뤄진 적이 없다”고 전했다.

 

다른 선택도 있다. 북한을 파키스탄처럼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 중 일부는 이미 북핵을 현실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DNI 국장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는 “이제 우리는 북핵을 받아들이고 한계를 정하거나 통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머리에 핵을 이고 살아야 한다. 내부적으로 전술핵 도입, 핵개발 등 핵으로 핵을 대응하자는 요구도 이어질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시작으로 며칠 잠잠하던 한반도는 다시 시끄러워질 조짐이다. 미국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 북핵 위기가 몇 번 더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전쟁이냐 북핵 인정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만은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20년을 넘게 끌어온 북핵 외교에서 한·미의 완패를 의미한다. 서울 시민들은 무관심하지만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외교관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한 채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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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니미’로 불리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앤서니 스카라무치 백악관 공보국장이 임명 열흘 만인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코미디처럼 해임됐다. 기존 비서실장을 정신병자로 공격하더니 존 켈리 신임 비서실장에 의해 바로 잘렸다. 스카라무치가 잃은 건 명예만이 아니다. 뉴욕포스트는 지난달 29일 스카라무치의 부인이 최근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한 관계자는 “부인은 스카라무치가 노골적인 정치적 야망을 위해 정신 나간 듯이 워싱턴을 추구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때문에 이혼한 사례는 또 있다. 플로리다 지역지 팜비치포스트는 지난달 28일 미국프로풋볼(NFL) 치어리더 출신으로 열성 트럼프 지지자인 부인 린 애런버그와 팜비치 카운티 주 검사로 열성 민주당원인 남편 데이브 앨런버그의 ‘트럼프 이혼’ 사례를 소개했다. 남편은 부인의 트럼프 지지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고 둘은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에” 결혼 3년 만에 이혼했다. 트럼프는 대선 직후부터 미국 사회의 스트레스 거리였다. 워싱턴주에서는 22년을 함께 살던 남편이 트럼프를 찍었다고 고백하자 바로 이혼을 선언한 부인도 있었다. 대선 한 달 후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 이후 절친한 사람과 관계를 끊었다는 응답이 13.4%나 됐다.

 

앤서니 스카라무치 미국 백악관 신임 공보국장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회견 직전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의 사임 소식이 알려졌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트럼프 본인도 세 번 결혼을 했으니 두 번은 이혼을 해봤다. 첫번째 부인은 체코 출신 모델 이바나였다. 두번째 부인은 유부남 트럼프와 스캔들을 일으켜 첫번째 부인과의 이혼으로 몰고간 배우 말라 메이플스였다. 지금 부인은 슬로베니아 출신 모델 멜라니아다.

 

트럼프의 이혼 사례를 소개하는 이유는 또 한 번의 이혼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멜라니아와 헤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트럼프의 세번째 이혼은 집권과 국정운영을 위해 정략결혼한 공화당과의 정치적 이혼이다. 성장 배경도 성격도 딴판인 사람들의 사랑 없이 떠밀려 한 결혼이 오래가기는 어렵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았다. 트럼프는 워싱턴의 주류 정치를 ‘하수구’라며 개혁 대상으로 설정하고 공격을 퍼부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성폭행이나 자랑하는 더러운 입을 가진 부동산 졸부를 지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겼고 둘에겐 정략결혼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트럼프는 의회의 힘이 필요했고, 공화당은 10년 만에 집권당이 됐다.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장의 비서실장 임명은 화해의 상징이었다.

 

트럼프는 취임 6개월 만에 결국 공화당과의 연결고리였던 프리버스를 경질했다. 뉴욕타임스가 전했듯이 비서실장에게 대통령 집무실의 파리를 잡는 역할이라도 맡기며 참으려 했으나 한계에 도달했다. 트럼프가 보기에 공화당은 무능 그 자체다. 오바마케어 하나 폐지하지 못하는 공화당을 향해 트럼프는 대놓고 “바보”라고 비난한다. 트럼프는 이제 포퓰리스트로 돌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한심한 사람들’과 함께 주류 정치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 생각이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프리버스가 없으면 트럼프는 정당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이혼 협박이 잘한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통령이 과반 여당이란 든든한 배경을 버리고 골수 지지층만 끌어안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화당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서 더욱 원론적 목소리를 내며 트럼프를 옥죌 것이다.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정책에 반기를 들었듯이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의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어쩌면 트럼프는 집권 6개월 만에 레임덕에 빠진 미국의 첫번째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섣불리 이혼을 거론할 게 아니라 숙려기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공화당이 진짜 이혼을 결심하면 가장 불행해질 사람은 트럼프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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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는 공화당의 새 건강보험법안, 일명 ‘트럼프케어’다. 트럼프 대통령은 1호 행정명령으로 ‘오바마케어’ 폐지와 대체를 선언했다. 이후 공화당은 하원에서 새 건강보험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제 상원에서 자체 건강보험법안을 만들어 표결을 앞두고 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공화당 지도부는 집권 한 달 만에 오바마케어를 폐지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한다.

 

건강보험 제도는 ‘러시아 스캔들’이나 북한 핵·미사일 위협 등에 비해 미국인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다. 게다가 공화당이 추진하는 건강보험법안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건강보험 혜택을 크게 축소하는 데 맞춰졌다. 건강보험 재원 마련을 위한 부유층에 부과하는 세금은 감면해주고 정부 재원을 통한 메디케이드 지원은 삭감, 폐지한다는 게 기본 방향이다. 가입 강제조항도 사라지고, 기존 질병 보유자에 대한 보험사의 차별도 인정된다. 의회예산국(CBO)은 이미 공화당 법안으로 10년 안에 2300만명이 보험을 잃을 것이란 평가를 내놨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공화당의 건강보험법안 때문에 “매년 9·11 테러보다 더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라고 비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제품 쇼케이스’에 참석해 텍사스에서 생산된 카우보이 모자를 써보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좀비 법안’이란 비아냥까지 들으며 법안 수정을 거듭하고 있지만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 52명의 공화당 의원들 중 3명만 반대하면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17일(현지시간) 이미 4명이 반기를 들었다. 메인주가 지역구인 수전 콜린스 의원과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73%의 지지를 보냈던 캔자스주가 지역구인 제리 모란 의원은 타운홀미팅에서 유권자들의 거센 항의를 경험한 후 법안 반대를 선언했다. 결정타는 강경파들이 날렸다. 마이크 리, 랜드 폴 의원은 수정안이 오바마케어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며 반대를 선언했다.

 

외국인 입장에서 미국의 오바마케어 폐지 논쟁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특수성이다.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전 국민 건강보험이 없는 나라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케어는 보편적 복지와 미국적 현실의 절충이었다. 공공보험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전 국민을 민간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만든 게 오바마케어의 기본 발상이다. 하지만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과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월 OECD 국가들 중 “미국의 기대 수명은 이미 고소득 국가들에 뒤지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미국의 의료복지는 열악하다.

 

현실이 이런 데도 미국의 집권당은 국민 건강보험을 국가가 아닌 시장에 맡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은 오바마케어 방어에 주력하고 있을 뿐 보편적 복지로서의 건강보험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는 샌더스 상원의원이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는 단일 건강보험제도인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를 위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울림이 약하다. 몇몇 주에서도 자체적으로 공공보험을 실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성공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주정부가 보험료 징수와 의료혜택지급을 일괄담당하는 단일보험체계 도입 법안이 상원 통과 후 하원에서 막혔다. 뉴욕·콜로라도·네바다주도 최근 보편적 복지 개념의 건강보험 개혁안을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세이무어 마틴 립셋은 <미국 예외주의>란 저서에서 미국은 유럽에 비해 훨씬 덜 복지 지향적이고, 덜 국가주의적이며, 더 방임주의적이고, 더 권리지향적이고, 더 애국적이며, 더 도덕주의적이고 종교적이란 점에서 ‘예외적’이라고 평가했다. 사회주의 경험이 없는 미국의 예외주의는 립셋의 평가처럼 양날의 칼이다. 미국의 장점이자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의미다. 특히 건강보험 개편을 둘러싼 미국 정치권의 논쟁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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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언제까지 계속 질까. 한국이 아니라 미국 이야기다. 미국 민주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조지아주 6지구와 노스캐롤라이나주 5지구 연방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패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치러진 네 번의 보궐선거에서 모두 공화당을 꺾는 데 실패했다. 몬태나주에서는 기자를 ‘보디슬램’한 그레그 지안포르테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고, 조지아에서는 민주당의 30세 젊은 후보 존 오소프의 바람이 통하지 않았다.

 

보궐선거 4연패가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고 할 수도 있다. 게다가 네 곳 모두 공화당의 전통적 우세지역이었다. 특히 톰 프라이스가 트럼프 정부 보건부 장관으로 가면서 자리가 빈 조지아 6지구는 40년간 공화당 텃밭이었다. 대표적 우파 정치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의 지역구였다.

 

문제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반전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느냐에 있다. 2018년 선거에서 하원의 다수당이 되겠다는 민주당의 희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공화당 의석 24개는 빼앗아와야 한다. 조지아 선거가 전국적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그런 흐름의 시작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2010년 공화당 신예 스콧 브라운이 민주당의 텃밭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공화당 연승의 첫번째 물결을 일으킨 바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로 휘청거리며 40%도 안되는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은 48%까지 올라갔다. 공화당은 가난한 이들의 건강보험을 빼앗아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며 정치적 자살에 가까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모든 게 민주당에 유리한 환경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다수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싫어하지만, 민주당을 대안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게 보궐선거의 교훈이다. 현재 민주당 브랜드로는 더 이상 유권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지 못한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선거 패배 후의 모습만 봐도 민주당은 ‘안되는 정당’의 길을 답습하고 있다. 성찰은 없고 노선 다툼에 책임공방만 벌이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트럼프의 가장 큰 결점이 거울 앞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라면 민주당의 문제는 차마 거울을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앞세운 트럼프의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은 언제쯤 제동이 걸릴까. 민주당은 내년 중간선거에서 의회 다수당을 회복하고, 2020년 대선에서 권력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낙관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비관론이 더 현실적이다. 샘 스타인 허핑턴포스트 정치에디터는 “민주당은 지금부터 영원히 모든 선거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정도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패배할 운명에 처해졌다”고 논평했다. 한번 신뢰를 잃은 정당이 유권자의 지지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예를 봐도 그렇다.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을 내준 한국의 민주당은 다양한 형태로 이름을 바꾸며 혁신을 외쳤지만 선거 때마다 습관성 패배를 계속했다. 2016년 총선에서야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

 

미국 민주당의 보궐선거 4연패는 본격적인 패배 행진의 신호탄일지 모른다. 반트럼프 여론에 취해 유권자들이 왜 자신들을 외면했는지 성찰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내년 중간선거와 차기 대선에서 더 처절하고 충격적인 패배를 경험할 수도 있다. 깅리치는 예언했다. “네 차례 보궐선거에서 연전연패하고도 (민주당의) 망상과 환상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재선될 것이고, 2024년에는 아마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 트럼프 탄핵을 논할 처지가 아니다. 트럼프 재집권이라는 악몽만은 피할 수 있게, 유권자들에게 외면받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기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할 상황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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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100도(약 38도)를 넘나드는 한낮 폭염을 뒤로하고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러시아 스캔들’에 관한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사진)의 증언을 취재하기 위해 13일(현지시간) 찾아간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장 하트빌딩 216호. 입구에는 방청객들이 이미 수십m의 줄을 이루고 있었다. 청문위원들과 마주 보는 기자석의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예정보다 10여분 지난 오후 2시40분쯤 세션스가 입장하자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공화당 소속 리처드 버 정보위원장과 민주당 간사 마크 워너 의원의 모두발언 이후 세션스가 선서를 했다. 그는 10여분의 모두발언에서 “나는 지난 20년간 상원에서 여러분의 동료였다”면서 “러시아 내통 의혹에 내가 연루됐다는 주장은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거짓말”이라고 했다. 앞서 그는 인준 청문회 때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를 두 번 만났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메이플라워호텔에서 한 차례 더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세션스는 이번 증언에서 “러시아 대사나 러시아 관리들과 대화하거나 만난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는 또 “법무부의 오랜 관행상 대통령과의 비밀대화를 지켜야 할 의무를 저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와의 대화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선수를 친 것이다. 의혹은 부인하고 불리한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하겠다는 예고였다.

 

앞서 8일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중단하라는 압박을 했다고 증언했다. 버는 세션스에게 코미의 이 증언에 대해 물었다. 세션스는 “대통령과 FBI 국장 간의 대화에는 전혀 잘못된 게 없다”고 답했다. 세션스는 민주당 첫 질문자인 워너의 질문까지 자르며 공격적으로 답변했다. 코미가 트럼프와 독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상의해왔을 때 법무장관으로서 어떻게 조치했느냐고 묻자 세션스는 “코미는 그게 부적절하다는 세부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과는 날카로운 설전을 벌였다. 코미에 관해 트럼프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일절 답변을 거부했다. 민주당 마틴 하인리히 의원은 “의회 조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공격했고, 론 와이든 의원도 “의사진행 방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세션스는 “법무부의 역사적 정책을 따르는 것일 뿐”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출신인 카말라 해리스 의원은 ‘법무부 관행’을 들며 답변을 거부하는 세션스를 몰아붙이다 위원장의 경고를 듣기도 했다.

 

키슬랴크 대사와의 만남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세션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서 스스로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다른 이유가 있느냐고 와이든이 몰아붙이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나한테 말해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화당 의원들은 세션스 방어에 나섰다. 톰 코튼 의원은 “미국의 현직 상원의원과 외국 대사가 수백명이 있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스파이 역사상 최대의 범죄를 공모한다는 웃기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물었고, 세션스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웃었다. 민주당의 의혹 제기를 희화화한 것이다.

 

2시간30여분에 걸친 청문회가 끝났지만 트럼프 측과 러시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트럼프가 무엇을 감추려 했는지 선명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트빌딩을 나설 때도 숨막히는 더위는 여전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는 “세션스는 여러 질문들을 쳐냈고, 대답을 했다 하더라도 얄팍하고 무용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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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큰딸 이방카의 장기는 ‘사라지기’다. 트럼프가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발표하는 순간 이방카는 현장에 없었다. 트럼프가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기 위해 트럼프케어의 하원 표결을 시도한 지난 3월에도 이방카는 콜로라도주의 스키리조트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즐겼다.

 

‘퍼스트도터’ 이방카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 없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그녀를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으로 묘사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성소수자(LGBTQ), 여성,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와 환경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미국 언론의 평가다. 직함도 없이 백악관 웨스트윙에 버젓이 사무실도 냈다. 실제 지난 2월 트럼프는 전임 행정부의 성소수자 권리 보호 행정명령을 폐기하려다 포기했다. 당시 뉴욕타임스 등은 이방카 부부의 설득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방카는 파리협정 탈퇴도 끝까지 반대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은 전했다.

 

트럼프의 극단적인 정책들을 얼마나 견제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얼마나 견인했느냐를 기준으로 이방카의 성적을 한번 매겨보자. 이방카가 반대했다고 하지만 트럼프는 결국 ‘종교의 자유’ 행정명령을 통해 성소수자 보호막을 걷어내버렸다. 2400만명이 건강보험을 잃게 될 것으로 추정되는 트럼프케어에 이방카가 반대하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일하는 여성: 성공의 법칙 다시 쓰기>란 책도 냈으나 오바마케어에서 의무화했던 산아제한 지원을 없애는 데 저항하고 있다는 전언은 들려오지 않는다. 기후변화 대응을 옹호한다지만 결국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를 막지 못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빵점’이다. 이방카는 공식 직함도, 직무도 없으니 책임질 일도 없다. 하지만 정식 직책을 맡았다면 그녀는 백악관 대변인 션 스파이서와 함께 해고 후보에 올라야 한다.

 

이쯤 되면 이방카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실제 이방카의 정치적 성향이 잘못 알려졌거나, 아니면 언론이 평가하는 것보다 트럼프에 대한 영향력이 미약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의 크리스티 골드퍼스는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는 아버지를 움직일 수 있는 이방카의 능력을 둘러싼 이야기들과 그녀의 명성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방카는 트럼프의 정치적 자산이다. ‘야수’ 아버지의 부정적 이미지를 보완해줄 ‘미녀’ 딸이다. 트럼프가 세 번 결혼한 방탕한 부동산 갑부라면 이방카는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는 세 아이의 엄마다. 트럼프가 부인 멜라니아의 손을 잡으려다 퇴짜 맞는 영상이 화제가 될 때 이방카는 꽃미남 남편, 아이들과 함께한 행복한 일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트럼프가 피츠버그의 블루칼라 노동자 이미지라면 이방카는 세련된 뉴요커다. 미국 사회에서 이방카와 그녀의 가족은 동경의 대상이다. 코미디 프로그램 <SNL>은 그녀를 상징하는 정서에 ‘공모(complicit)’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방카는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 같은 빛나는 자리에는 배석해도, 파리협정 탈퇴처럼 이미지 구길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를 두고 마치 ‘환경보호광고(greenwashing)’ 같다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오염의 주범 기업들이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적은 돈으로 환경을 소중히 하는 듯한 광고를 하는 것과 같은 역할이란 것이다. 심지어 이방카는 그런 최소한의 희생조차 하지 않고, 이해충돌 논란 속에 상업적 이득만 취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반성소수자, 반여성, 반이민, 반환경으로 가는 게 이방카 탓은 아니다. 그를 비판할 이유도 없다. 다만 이제 이방카가 트럼프의 독주를 견제해줄 것이란 기대는 접는 게 어떨까. 이방카는 실재가 아니라 이미지와 브랜드로만 존재하는지 모른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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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역대로 백악관 대변인에게 방탄복을 취임 기념선물로 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론과 정권 사이에 낀 대변인 역할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미국 언론의 중평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를 “워싱턴에서 최악의 직업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워싱턴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다.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자유로운 언론들에 맞서 입만 열면 거짓말인 도널드 트럼프를 대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해보라.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주류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규정하고 언론과의 전쟁을 해왔다. 스파이서는 그 전쟁의 맨 앞에 서서 언론의 화살을 맞고 있다. 그의 첫 임무는 취임식에 역대 최대 축하객이 왔다는 트럼프의 거짓말을 뒷받침하는 일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취임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게 위성사진으로 증명됐지만 스파이서는 “하객이 역대 가장 많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근거도 없이 오바마가 자신을 도청했다고 주장했고, 스파이서는 근거를 내놓으라는 기자들의 추궁을 맨손으로 며칠간 버텨냈다. 기자들을 향해 “절대 고개를 가로젓지 말라”며 위협하고, “의도적으로 거짓 보도를 한다”고 도발도 했다. 덕분에 그는 코미디 프로그램 SNL 등에서 전 국민의 조롱거리가 됐다.

 

션 스파이서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3월 8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스파이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에 중국이 반발하는 것에 대해 “지난 주말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서 보듯 사드 배치는 한국 방어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P연합뉴스

 

스파이서를 정말 딱하게 만드는 것은 세간의 조롱이 아니다. 그는 아마 미국 정부의 간판인 백악관 대변인이란 권력을 얻었으니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보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언론에 전해지는 트럼프의 평가는 항상 부정적이다. “트럼프는 스파이서 임명을 매일 후회하고 있다” “트럼프가 생각한 대변인은 스파이서가 아니었다”. 최근에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있을 것이고 그 핵심 대상이 스파이서라는 보도가 계속 나온다. 본인은 최전방 전투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데 후방에서는 지원은커녕 비난만 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일 것이다.

 

트럼프의 대변인이란 자리는 누가 맡아도 고난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많다.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로 인식하는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는 데다 양심과 공감능력이 없는”(영국 행동심리학자 조 헤밍스) 트럼프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트럼프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수석 고문을 지낸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뉴욕타임스에서 트럼프의 대리인들은 결국 “거짓말쟁이 또는 바보처럼 보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좋아할 만한 대변인은 없을까.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독재자들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사례를 찾아보자. 세계 최고 독재자로 통하는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이 최근 아프리카·프랑스 정상회의 만찬에서 눈을 감고 졸고 있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올라 논란이 됐다. 그러자 짐바브웨 홍보 담당관은 “대통령은 잠시 눈을 쉬게 한 것일 뿐이지 잠을 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당초 대변인으로 고려했던 켈리언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도 ‘대안 사실’이란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서 트럼프의 역대 최다 취임식 참석자 주장을 옹호했다. 물론 이런 경지에 이르기가 쉽지는 않다. MSNBC의 간판 진행자 미카 브레진스키는 15일(현지시간) 콘웨이도 지난해 대선 때 카메라 앞에서는 트럼프를 적극 옹호했지만 카메라가 꺼지면 “내가 하는 말이 너무 더러워서 샤워를 해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 그런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는 평도 빼놓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스파이서는 트럼프의 신뢰를 얻기에는 아직 너무 양심적인 게 아닌지 모르겠다. 슬픈 미국의 현실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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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문제 대응 방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소위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다. 한성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14일 평양에서 외국 언론들을 불러모아 “미국이 군사작전을 한다면 우리는 선제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오히려 미국을 위협했다. 그러면서 “최고 지도부가 결심하는 때, 결심하는 장소에서 핵 실험이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면 미국이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나온 대응이다. 노동신문은 지난 19일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한반도 배치에 맞서 ‘절대병기’ 수소폭탄까지 거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실 벼랑 끝 전술의 특허권은 미국에 있다. 냉전시대 미국이 소련과의 협상에서 주로 동원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대표적 사례다. 1956년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은 이 전술을 예술에 비유하기도 했다. “전쟁에 이르지 않고 벼랑에 이르는 능력은 필요한 예술이다. 이 예술을 정복하지 못하면 불가피하게 전쟁에 이르고 말 것이다. 전쟁을 피하려고 하거나 벼랑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전쟁에 지게 된다.” 냉전 이후에도 이 협상 기술을 발전시킨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벼랑 끝 전술은 이제 북한의 협상 전술의 전형을 일컫는 용어가 됐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협상을 막다른 상황까지 몰고가는 초강수로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협상 전술이다.

 

 

 

그런데 북한의 ‘치킨게임’ 전술을 무색하게 하는 상대가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특유의 대응 덕분에 ‘광인전략(madman strategy)’이란 용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북베트남과의 평화회담을 위해 핵전쟁 경계령을 내린 데서 유래한 용어다. 미국 대통령이 비이성적이고 ‘미친 X’여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관측을 의도적으로 퍼트려 상대방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려는 전술이다.

 

실제 트럼프식 대응은 두려움을 확산시키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다. 한·미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실제 북한 핵·미사일 시설을 선제타격하는 등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연일 떠들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정세 불안정을 우려하며 유례없는 북한 경제 조이기에 나섰다.

 

트럼프 정부 들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진 이유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과 미군의 막강한 군사력 때문이다. 트럼프는 하루아침에 시리아 정책을 뒤집어 미사일 공격을 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재래식 폭탄 중 최대 폭발력을 가진 ‘폭탄의 어머니’를 투하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근해로는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급파했다. 트럼프는 북한에 단호하게 대응하겠지만 그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겠다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군사적 타격 가능성을 두고 백악관 대변인과 국가안보보좌관이 다른 말을 한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가 트럼프 정부의 이 같은 행태를 두고 ‘북한보다 더 북한스럽다’고 지적할 정도다.

 

하지만 트럼프의 광인전략은 북핵 해법이 될 수 없다. 북핵 문제에 대한 예측불가능하고 무계획적인 대응은 관련 국가들의 정책 혼란을 야기하고, 자칫 화약고 같은 한반도에서 북한의 ‘오판’에 의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 시민 수백만명의 목숨이 걸린 선제타격 같은 군사적 대응 이슈를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동맹국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더불어 김정은이 ‘미친 뚱보 아이’(존 매케인 상원의원)라서 똑같이 대응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오판이다. 트럼프 정부가 지금 같은 대외 정책을 고수한다면 국제무대에서 신뢰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벼랑 끝 전술은 북한처럼 정권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나라들이나 최후의 수단으로 동원할 만한 전술이다. 말 한마디, 정책 하나가 전 세계 정치·경제 질서에 영향력을 미치는 초강대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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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토마호크미사일 59발이면 충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자신의 리조트로 불러놓고 지중해 함대에서 시리아로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이미 50만명이 넘게 희생됐지만 개입을 거부해온 트럼프였다. 이슬람국가(IS)를 척결하려면 시리아 정부와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게 트럼프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화학무기 공격 후 63시간 만에 트럼프의 정책은 180도 달라졌다.

 

대외 정책의 급변이나 전쟁은 국제 정세뿐 아니라 국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도 북한 변수는 국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하지만 전쟁과 정치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결심은 실제 전쟁으로 이어진다.

 

트럼프의 시리아 공습은 다양한 정치적 효과를 내고 있다. 대외적으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을 향한 시위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집권 초반 지지율 추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일 수 있다. 시리아 공습으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 관계자들이 해킹으로 대선에 개입한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의혹은 뒷전으로 밀렸다. 토마호크미사일이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앗아갔다. 반이슬람 행정명령 무산, 오바마케어 폐지 실패 등 헛발질도 잊혀졌다. 공습 직후 여론은 긍정적이다. CBS가 10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공습 지지는 57%로 반대 36%보다 많았다. 트럼프에게 ‘까칠하던’ 존 매케인 등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그의 결단을 칭찬한다. 국정 발목잡기의 대표 선수였던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이번만은 반대할 수 없었다. 트럼프가 ‘가짜뉴스’라고 비판했던 CNN마저 “트럼프가 처음으로 대통령다웠다”고 평가했다.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왼쪽에서 두번째, 세번째)가 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의 외손주 아라벨라(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조지프(세번째)가 중국 민요와 당시를 암송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짓고 있다. 팜비치 _ 신화연합뉴스

 

이번 공습이 역대 최저로 추락한 트럼프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전쟁을 통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현상은 ‘안보결집효과(rally round the flag effect)’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깃발 주변으로 흩어진 병사들을 다시 모은다는 의미로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불리던 노래 가사의 일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를 지낸 윌리엄 사파이어의 정치학 용어사전에 따르면 미국의 7대 대통령을 지낸 앤드루 잭슨이 남북전쟁 당시 했던 말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트럼프가 집무실에 초상화를 걸어둘 정도로 존경한다는 잭슨이 위기의 트럼프에게 정치적 조언을 해준 셈이다.

 

미국 대통령들의 전쟁은 애국심을 자극하고,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함으로써 결집효과를 내왔다. 물론 전쟁이 모두 대통령들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갤럽에 따르면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들 부시(조지 W 부시)의 지지율은 갤럽 역사상 최대폭인 35%포인트 급등, 86%를 기록했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 정보까지 조작하며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도 지지율은 13%포인트 올랐다.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의 지지율도 걸프전 직후 미국 역대 최고인 89%를 기록했다. 빌 클린턴은 섹스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렸던 1998년 아프가니스탄, 수단의 알카에다 조직과 이라크를 잇따라 폭격했지만 미국인의 관심을 돌리는 데는 실패했다. 로널드 레이건의 1983년 그레나다 침공도 지지율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트럼프가 이번 공습으로 어느 정도의 정치적 이득을 취할지는 예단하기 이르다. 공습이 일회성으로 그칠지, 중동정책의 큰 그림이 마련될지, 야당의 초당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지 등등 변수가 많다. 아사드 정권 응징은 통쾌해 보였지만 시리아 내전의 늪에 빠져 헤맨다면 지지율은 더 추락할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찰스 블로의 말처럼 시리아는 러시아, 아사드 정권, 이슬람국가(IS), 이란 등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모여 있는 ‘말벌 둥지’일 수 있다. 버락 오바마가 건드리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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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 정권에서 ‘엉망진창’을 물려받았다고 변명한다. 트럼프의 이 말이 유일하게 사실로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아마 북핵 문제일 듯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정권을 거치면서 점점 향상됐다. 미국인들에게 북핵은 이제 ‘임박한 위협’이 됐다.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 찾기는 절박한 과제다.

 

지도자가 어떤 정책을 선택할 때 좋은 대안들 중에서 최선을 고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현실 국제정치에서 외교 정책은 최악의 선택을 피하면서 가장 덜 나쁜 대안을 고르는 과정일 때가 많다. 북핵 해법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모든 선택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하지만 지금과 다른 북핵 해법을 나눠보면 세 가지 범주 안에 들어간다. 폭격, 인정 그리고 협상이다. 최근 미국에서 현상유지를 타파하겠다며 유행처럼 거론되는 해법이 선제타격 같은 군사적 해법이다. 방사능 오염 위험이나 작전이 성공할 희박한 확률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화약고인 한반도에서 수백만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최악 중 최악의 선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연설하고 있다. 내쉬빌|AP연합뉴스

 

군사적 해법은 한국 입장에서는 마치 솔로몬 왕의 시험과 같다.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자식이라고 다투는 두 여인에게 공평하게 나눠가지라고 판결할 때 진짜 엄마라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저 여인에게 주라”며 스스로 포기할 것이다. 선제타격론은 아직은 중국과 북한에 대한 협박용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럼에도 미국 정치인, 전문가들이 군사적 선택을 쉽게 입에 올리는 이유는 한국의 희생보다는 미국의 안전이 우선이란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군사적 억지가 북핵을 저지할 외교적 노력의 기둥이라며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군사적 해법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발언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체 어느 나라 장관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새로운 접근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북핵 문제 해결을 포기하고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겠다는 것으로 선택 불가능하다. 국내는 물론 일본 등 주변국들의 핵무장을 부추길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해법은 중국 역할론에 집중되고 있다. 북한의 핵 야망을 저지할 영향력을 가진 중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상이다. 중국 역할론은 사실 새로운 해법이 아니다. 강력한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핵포기를 전제하지 않는 대화는 거부하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 북한이 가장 많은 핵·미사일 실험으로 화답한 지난 8년이 증명하듯이 효과를 내기도 어렵다. 중국이 북한 체제의 붕괴를 감수할 정도로 김정은 정권을 압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북한 정권이 곧 무너질 테니 물 샐 틈 없는 제재로 이를 재촉하며 기다리자는 정책만큼 나쁜 선택이다.

 

결국 남는 새 접근법은 협상이다. 협상은 나쁜 선택이다. 합의를 밥 먹듯 뒤집은 북한에 또 기회를 주는 것은 잘못이다. 어쩌면 북한은 대화하면서 뒤에서 딴짓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반도에 재앙을 가져올 군사작전을 협박하거나,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며 상황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덜 나쁘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 그렇다. 제대로 된 협상 단계로 가기 위한 조건 없는 대화를 우선 시작해야 한다. 눈감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정신 나간 북한을 일단 멈춰 세워야 한다. 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과 미국을 위해서다. 외교적 해법 찾기의 정도는 협상이고 그 과정은 지루하고 짜증날 수밖에 없다. 틸러슨의 말처럼 전략적 인내는 이제 끝내야 한다. 동시에 북핵 문제에서 한국과 미국이 완승할 수 있는 해법은 없다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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