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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특히 한국에서 한반도의 미래와 장기적 평화 전망에 대한 전례 없는 낙관주의를 촉발했다. 6개월 전에 광범위하게 퍼졌던 전쟁 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고, 남북과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에 대한 희망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회담,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상 첫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생각과 평정심이 필요하다.

 

세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북한과 바깥 세계 간의 더 큰 변화를 막을 수 있다. 첫째, 북한이 정의하는 비핵화와 한국·미국의 비핵화 사이에는 엄청난 의미의 차이가 있다. 둘째, 관련 국가들의 기대와 (정의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에 대한 (시간표는 말할 것도 없고) 합의된 절차나 로드맵이 없다. 셋째, 신뢰할 수 있고, 검증 가능한 핵합의의 필요조건은 정보 공개와 북한에 대한 접근, 국가 주권에 대한 양보를 포함하며 이는 북한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경제클럽’ 오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디트로이트 _ AP연합뉴스

 

비핵화 정의의 간격은 단순한 의미론의 문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주장의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은 채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이해하고 있는 내용은 같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고, 그 의미를 정의하는 일은 미국과 북한에 맡겨두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이 무기 프로그램들을 종결시키는 데 동의했다고 믿지 않는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 있는 핵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북한은 모든 협상은 군축에 관한 것이지 비핵화에 관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이 근본적인 문제를 애매하게 만들고 무시하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는 남북 간 의제 중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판문점선언의 끝부분에 배치됐고 거의 지나가듯이 언급됐다.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핵 문제 취급은 더 걱정스러웠다.

 

성명은 애매하고 희망적인 목표로 후퇴했다. 2005년 9·19 6자회담 공동성명이나 기존 북·미 간 핵 합의보다 훨씬 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이 담기지 못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이 선언의 실제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보다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고, 김 위원장은 어떤 결정적이고 명확한 언어에도 동의하는 것을 거부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상회담 선언에서 이 이슈에 대해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면, 북한의 핵무기를 소유하려는 결심과 미국이나 한국의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 사이의 양립불가능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에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의지를 전달해왔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또한 미국은 앞으로 2년 반 안에 주요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시간표와 로드맵 관련 문제들이 명확해지고, 구속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을 가속화하고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가오는 몇 주와 몇 개월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이런 큰 목표들을 진전시켰는지,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와 약속이 충분한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위험성도 존재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와는 별개의 정치적 필요와 목표들이 있고 그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세계와의 끊임없는 적개심을 수정하지 않고도 자신의 의제들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란 점이다. 두 대통령들은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번영하고 두 나라와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다. 미국은 북한에 미국의 비적대적인 의도를 확신시키기 위해 당면한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미래에는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도 가능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힌트를 줬다. 지난 65년간 전쟁을 억지해 온 (한·미) 안보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는 조치들도 암시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 있어 전례 없는 돌파구를 찾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정상은 김 위원장이 핵 없는 미래를 위한 열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두 정상이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보증 없는 가정을 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

 

<조너선 폴락 |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Posted by KHross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공동성명 서명직전 “세상은 이제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겁니다”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이었다. 중대 변화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지만 곧 모습이 드러날 터이니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사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포기와 그에 걸맞은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했던 투자자들 시각에서 보면 북·미 공동성명은 흥미로운 결과물은 아니었다. 핵만 포기하면 북한은 부자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트럼프가 회담말미에 핵포기 시 북한의 미래 영상을 보여주면서 “북한은 훌륭한 해안선을 갖고 있다. 훌륭한 호텔을 지을 수 있다”고 조언하고, 김 위원장도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게 위안거리이다. 이쯤 되면 북한 핵포기와 경제발전은 암묵의 동의어다.

 

과연 북한은 부자나라가 될 수 있을까. 된다면 언제쯤 가능할까. 북한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이다. 이런 북한에 북·미관계 정상화와 그에 따른 경제지원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명약관화하다. 북한의 개방모델을 놓고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모델이 거론되지만 결국은 국가개입과 당 관리하에서 성장가능한 모델을 선택할 것도 불문가지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서명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에 손을 올린 채 걸어가고 있다. 싱가포르 _ 로이터연합뉴스

 

따지고 보면 중국과 베트남의 성장과실은 30~40년에 걸친 개혁·개방의 결과물이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뒤 1992년 남순강화를 거치면서 저임금에 매력을 느낀 외자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고도성장이 시작됐다. 1986년 도이모이정책을 시작한 베트남도 1994년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거쳐 한국·일본의 주력제품 생산기지가 옮겨오면서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외부와의 단절, 사회주의 잔재가 남은 상황에서 시작한 중국이나 베트남의 개혁작업에 비하면 북한의 여건은 훨씬 유리하다. 김 위원장은 집권 뒤 그간 억눌러왔던 시장을 암묵적으로 허용했다. 시장경제 예비군인 장마당은 이미 400개를 넘어섰다. 4개였던 경제특구도 20개 이상으로 늘었다. 게다가 북한 곁에는 세계 10위권 한국 경제가 존재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쟁쟁한 글로벌 자본들도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비핵화만 이뤄지면 개혁·개방에 가속도가 붙을 것은 명확하다. 김 위원장도 지난 4월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새 노선으로 채택하면서 혈통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 재건으로 민생이 개선되면 권력기반이 강화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북한의 경제상황은 최빈국 수준이다. 2016년 현재 1인당 소득은 150만원이다. 3500만원인 한국의 25분의 1 규모이다. 교역규모는 9016억달러 대 65억달러, 외국인 직접투자는 108억달러 대 0.9억달러이다. 경제 전체를 보면 한국의 50분의 1 수준이라는 게 정설이다. 북한의 개혁 방향을 놓고 말이 많지만 우선적으로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1차 산업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외자가 들어오면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특구 개발에 속도가 날 것이다.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그런 다음에는 소비혁명이 기다린다. 제대로만 진행되면 10년이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하다. 북한의 기회는 한국의 기회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파트너이다. 한국의 자본과 산업화 경험이 북한의 인력, 자원 등과 결합하면 획기적 도약이 일어날 수 있다. 한발 나아가 남북 단일시장이 형성되면 더 큰 것을 누릴 수 있다.

 

70년간 적대관계였던 북·미 정상이 마주 앉은 것은 역사적 진전임이 분명하다. 과거 핵을 포기하면 대가를 준다는 방식에서 벗어나 적대관계 해소를 먼저 다룬 뒤 미국이 먼저 양보하면서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는 방식은 기존 문법과는 다른 역발상이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이미 비가역적 변화는 시작된 셈이다. 경제분야라고 역발상을 못할 게 없다. 경제자위론은 핵자위론 못지않다. 경제가 번영하면 상호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김 위원장이 덩샤오핑처럼 개혁개방의 전도사가 되고, 원산이 상하이가 되면 자연스레 전쟁은 멀어진다. 등산 애호가인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뒤 백두산·개마고원 트레킹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부동산 사업자인 트럼트는 평양 대동강변에 세워질지 모를 트럼프타워에서 퇴임 뒤 꽃놀이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강릉의 안목해변처럼 원산 해변가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박용채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

세계 경제의 양대축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보복전으로 치닫고 있다. 아르헨티나·터키·브라질 등 신흥국의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데다 세계 1, 2위 경제대국이 치고받는 무역전쟁을 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지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관세를 다음달 6일부터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상품수지 적자 3750억달러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관세 부과 대상은 1102개 품목이다. 중국이 이른바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항공우주·정보통신·산업로봇·신소재·무인자동차 등 첨단기술 제품들이 대거 포함됐다. 글로벌 기술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기술 굴기(堀起)’를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중국도 즉각 보복관세 조치를 취하면서 반격했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16일 “5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659개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농산품·자동차·수산물 등을 포함한 340억달러 규모의 545개 품목에 대해선 다음달 6일부터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똑같은 규모의 보복관세 조치로 맞대응한 것이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어기는 미국에 적극적인 반격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이 보복관세를 주고받으면서 통상장벽이 높아지면, 교역을 위축시켜 세계 경제성장률을 1%포인트 넘게 떨어뜨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장 15일 국제 원자재시장에서 구리·알루미늄·백금 등 산업용 금속의 선물거래 가격이 2% 넘게 하락하고,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도 급락세를 보였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가하는 무역전쟁에서 승자는 없고, 모두 패자로 남게 될 것”이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의 80%는 중간재다. 중국은 한국산 부품으로 완제품을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이 적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미국의 25% 고율관세 부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10% 줄어들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도 연간 30조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글로벌 무역전쟁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치밀한 대응전략을 세워야 한다.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양자·다자간 통상외교도 강화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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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이르면 이번주부터 후속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관측된다. 북·미 양국은 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북한 고위급 관리가 주도하는 후속 협상을 “가능한 한 가장 이른 시일에 개시하기로 약속한다”고 공동성명에 명기한 바 있다. 양측은 정상회담 직후에 주목할 만한 ‘초기 조치’를 공개했다.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폐쇄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 입장에서 합의 이행의 초기 조치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의 초기 조치에 해당한다.

 

한·미 양국이 군사훈련 중단 계획을 발표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북한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대형 미사일 엔진 실험 시설 폐기 조치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동시 행동 원칙에 입각해 초기 조치에 나서는 것은 상호 신뢰를 쌓는 바람직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의 다음 단계 조치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보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일부 해외반출 같은 대담한 초기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올 들어 핵·미사일 실험 중단 선언, 억류 미국인 3명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의 선제조치를 내놨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식의 상호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로 움직여온 셈이다. 북·미 공동성명이 주고받을 목록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이런 북한의 포괄적인 의지를 미국이 신뢰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북·미 간의 새로운 관계 수립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바쁘다. 정상회담은 트럼프가 말한 대로 ‘과정의 시작’이었다. 초기 조치를 얼마나 신속하고 순조롭게 취해 나가느냐가 과정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할 정도로 북·미관계는 탄력을 받고 있다. 이 동력을 살려 과감한 초기 조치 이행으로 북·미관계를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Posted by KHros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과 선의의 협상을 진행하는 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훈련을 중단할 경우 한·미동맹 전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북한이 도발로 간주하는 연합훈련 중단이 진작에 이뤄졌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13일에는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까지 우려를 표명하는 등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연합훈련 중단 비판론은 비핵화 협상은 물론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소모적이다. 비핵화 협상의 동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조기에 진화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점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조치가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협상 상대를 자극하는 군사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상식이다. 북한이 6개월째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있는 데 대한 상응조치로도 필요하다. 북한은 이외에도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와 억류 미국 시민 3명 석방 등 여러 차례 ‘선의’를 표시했지만 미국은 한 번도 상응조치를 하지 않았다.

 

훈련 중단 선례도 적지 않다. 한·미가 1993년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한 뒤 남북대화 봇물이 터졌고, 지난 3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올림픽 이후로 연기했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훈련을 연기한다고 해서 안보에 구멍이 뚫리거나 군 전력이 약화됐다는 근거는 없었다. 오히려 남북대화와 교류가 활성화되는 등 안보가 강화되는 효과를 거뒀다. 사실 한·미 연합훈련이 연중 실시되는 점을 감안하면 일시 중단으로 인한 전력 약화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에 연합훈련을 중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 안보나 전력 약화가 의심된다면 훈련을 중단하지 않는 방안도 가능하다. 일시 유예하거나 축소하는 것이다. 통상적인 훈련은 진행하되 전략자산을 동원하지 않는 방안도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공격이 전제된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금지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훈련 중단 방법이 아니라 비핵화를 향한 의지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군사적 신뢰구축이 필수적이다. 북·미 간 군사적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북한이 체제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비핵화를 위한 과정에 적극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도 과도적 안보 제공으로 핵폐기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므로 훈련 중단은 종전선언 효과도 거둘 수 있는 방안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14일 비핵화 목표 시한을 2년으로 잡은 것에 대해 비현실적이란 비판이 나오지만 군사적 신뢰가 있다면 이 역시 못할 것 없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남북 및 북·미 대결의 원인이지만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과 미국은 전쟁 억제와 대비태세 강화를 위해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정권 안전과 체제 유지에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해왔다. 상대의 군사적 행동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대비태세를 강화하면서 군사적 긴장과 갈등 수위를 고조시켜온 것이다. 어느 한쪽이 도발적 행동을 멈추지 않는 한 이같이 위험한 질주를 막을 수 없다. 북한의 도발적 군사 행태뿐 아니라 핵 및 미사일 개발도 이런 모순적 구조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왜 군사훈련 문제가 첫 단추가 되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한반도 평화라는 점이다. 비핵화는 평화 정착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역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이다.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는 8월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중단할 방침이라고 CNN이 보도했다. 트럼프의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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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가 만들어졌다. 전쟁과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공존과 평화의 시대로 향하는 문이 열린 날이다. 센토사섬 카펠라호텔 현관 양쪽 회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중앙으로 걸어 나와 12.5초간 나눈 악수는 70년 묵은 적대감과 지난 수년간 임계점에 다다랐던 전쟁위기가 극적 반전을 맞는 순간이었다. 4월27일이 분단과 전쟁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여는 상징이 되었던 것처럼, 한때는 ‘죽음 앞의 섬’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해적과 폭력, 전쟁과 학살의 어두운 역사가 있던 센토사섬은 평화의 섬으로 재탄생할 기회를 얻었다.

 

오랜 세월이 만든 좌절감과 냉소의 관성이었을까? 70년 적대관계를 뒤로하고 평화를 향해 협력하겠다는 공동성명문에 서명까지 했음에도 전율의 시간을 맞은 지 불과 반나절 만에 성과에 대한 평가절하가 시작됐다. ‘만화 같다’는 한 미국 언론의 표현이나 ‘공상과학영화의 판타지 장면 같다’는 김 위원장의 표현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두 정상은 미국 내부를 점령하다시피 한 회의론자와 비판자들의 반발을 의식하기보다는 상호신뢰 확보가 우선임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전형성과 경로종속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시대로 가는 중요한 추동력을 공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개된 공동성명문 내용도 평가절하받을 이유는 없다. 세계역사상 정상 간 공동성명들이 그랬듯이 디테일보다는 원칙과 약속 위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모호성만 가지고 비판하기 어렵다. 제작 김정은, 감독 문재인, 영감(inspired by) 트럼프.

 

물론 구체적 실행방안과 타임프레임이 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 과욕일 수 있고, 성명문에 담지 않은 합의가 있을 상당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정상회담 전날 심야의 전격 실무회담은 합의를 위한 막판 줄다리기보다는 그동안 미국이 요구했던 비핵화의 과감한 초기 조치, 소위 ‘프런트 로딩’에 대한 김 위원장의 결단을 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폼페이오가 정상회담 하루 전에 백악관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결과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것이나, 트럼프가 회담 당일 새벽에 증오자와 패배자들을 비난하며 성공을 확언했던 것을 통해 추정해볼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미국의 ‘CVID 근본주의’ 문제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 모두 완전한 비핵화, 즉 CD라고 명문화하고 있음에도 미국에서는 ‘V’와 ‘I’가 빠졌다고 비핵화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실현 가능한 수준에서의 CVID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완전한 비핵화를 명기한 것은 현실적 최대치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북·미 성명에서는 판문점선언보다 강한 표현인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비핵화’라고 적시한 점은 진전이다.

 

아무튼 ‘I’는 북한의 반발이 타당하므로 빠지는 것이 맞다. 주권국가로서 상황이나 조건이 변해도 입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행동에 따라 체제안전 보장 약속을 변경할 수 있듯이, 북한도 미국이 약속을 깰 경우 바꿀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공평하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맺은 위안부 합의에서 주장하는 비가역성의 부당성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또 검증을 말하는 ‘V’는 필요한 과정이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한 후에는 효용성이 반감됐다. 즉 북한이 핵을 가지기 전까지는 검증만으로도 비핵화가 가능할 수 있었으나, 핵을 완성한 후에는 검증만으로 확인이 불가능하고 북한의 자발적 신고와 폐기에 대한 신뢰가 동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구에 매달리지 말고,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보다 역진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것은 이번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의 역할이 부쩍 커졌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의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한다는 표현도 그렇지만 회담 전후 내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두 정상의 의지가 읽혔다.

 

북·미 양국의 불신구조에서 싹트는 신뢰의 배아(胚芽)는 한국의 보증을 받고 싶어 한다. 북·미 회담 이후 남·북·미 리더는 확실히 한배를 탔다.

 

트럼프의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에 매우 이례적으로 비디오클립이 상영되었는데 북한에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을 촉구하는 영상이었다. 끝난 후 엔딩크레디트를 올린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 같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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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대해 비판론이 제기된다. 공동성명에 비핵화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일방적으로 김정은에 놀아난 실패한 회담”이라고 혹평했다. 트럼프의 한·미 군사훈련 중단 방침에 대한 안보 우려도 나온다.

 

공동성명이 기대치를 밑도는 것은 맞다. 전문의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 재확인’과 3번째 합의 사항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확약’은 포괄적이다. 미국이 강조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뒷받침한다고 보기 어렵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 업무오찬 직후 싱가포르 카펠라호텔 주변을 함께 산책하고 있다. 싱가포르_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여타 정상회담과 성격이 다르다. 70년간 적대해온 두 나라의 정상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한 것만도 평가받을 일이다. 공동성명에 못 박지 않았지만 두 정상이 후속조치를 이행하기로 약속한 것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엔진 실험장을 폐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도 미국의 신뢰 구축 조치에 상응하는 “선의의 조치”를 취해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아직 회담의 성패를 단정지을 때가 아닌 것이다.

 

북·미가 비핵화에 대해 단순한 핵폐기를 넘어 관계정상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북핵 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므로 이를 해소하지 않고 핵만 폐기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적대관계가 계속되는 한 언제든 핵개발의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두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안전 및 북·미 수교를 추구하기로 한 것은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꾀한다는 의미가 있다.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평화를 위한 여정에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더구나 북한은 벌써 6개월째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해오고 있다. 한·미도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연합군사훈련을 일시 유예하지 않았는가. 안보 측면에서만 볼 일이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을 넘어 비난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모처럼 마련된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 구축 작업의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람들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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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직후 세계 각국에 불공정 무역을 문제 삼는 협박장을 날렸다. 협조하지 않으면 국경세를 내라거나 무역협정을 폐기하겠다는 으름장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알리바바는 100만개의 일자리를, 도요타는 100억달러 투자를, 한국은 748억달러어치만큼 투자하거나 미국산 제품 구매를 약속했다. 지난 5월24일 트럼프는 북한 관리들의 과격한 발언을 문제 삼아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했다. 하지만 반나절도 안돼 북한이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하자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음을 내비쳤고, 결국 회담 개최를 확약했다. 해명이 걸작이다. “누구나 거래를 한다. 확실해 보이던 거래가 깨지고,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거래가 성사되기도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싱가포르 _ 로이터연합뉴스

 

12일의 회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여준 영상이 화제다. 4분 길이의 영상은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미군 전투기 출격 및 미사일 발사 광경, 그리고 에너지 시설, 도로, 대형 댐 등이 담겨 있다. 내레이션에는 ‘역사’가 7차례, ‘선택’이 5차례, ‘기회’ ‘번영’ ‘미래’가 각각 3차례 반복된다. 그러고는 “결과는 두 가지. 하나는 후퇴하는 것, 아니면 전진하는 것. 단 한 번의 기회가 왔을 때 그 사람은 무엇을 선택할까요”라고 말한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면 번영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에게 영상을 보여줬는데 좋아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또 “아름다운 해변에 콘도 혹은 호텔을 건설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는 말도 했다.

 

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 뒷말이 많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보장을 약속한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회담이었다는 게 중평이지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명기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트럼프가 졌다는 시각도 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봤는지 트럼프는 “나는 본능적으로 거래를 원하는 사람을 알아본다. 김 위원장이 거래를 더 원한다”고 말했다. 새 협상은 정상 간 합의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 흔히 작은 장사꾼은 이문만을 우선하고 큰 장사꾼은 믿음을 먼저 생각한다고 한다. 트럼프와 김 위원장이 둘도 없는 파트너가 되기를 바란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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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체제안전 보장을 제공하고, 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의 노력, 북한의 4·27 판문점선언 재확인과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노력, 북한 지역의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 등 4개항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또 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이른 시점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격이 맞는 북한 고위급 인사 간에 후속 협상을 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백악관 방문 요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70년 적대관계를 털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의 길을 함께 가기로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지구상 유일의 냉전 지역이던 한반도가 군사적 대결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와 번영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번 회담은 포괄적이며 선언적이다. 특히 합의에서 미국이 원하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빠졌다. 비핵화의 구체 조치나 시한이 담기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미국 입장에서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 재확인’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70년 동안 대결해온 양국의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만나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큰 틀의 공동 목표를 설정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냉전과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비핵화 로드맵은 실무자들 간의 후속 회담에서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양국 정상 간 합의는 실무자들이 관여한 종래의 북·미 합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한이 절대적 존재인 김 위원장이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싶다. 북한이 CVID란 표현에 대해 무조건 항복이 연상된다며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CVID와 유사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4·27 판문점선언도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돼 있다.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데 실질적으로 CVID 없이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체제안전 보장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약속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에 따른 필수적인 상응 조치이자 북·미 적대정책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번에 체제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핵화 이행 조치를 협상하는 후속 회담 과정에서 다뤄질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북·미 수교 역시 매우 중요하다. 비핵화를 촉진하고, 비핵화를 완결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 폐기와 수교를 통해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 바란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합의는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료와 평화협정이 체결될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기회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해체해 지구상 유일한 냉전을 제거해야 한다. 특히 종전선언은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 보장의 첫 단계로, 남·북·미만의 뜻만 모아지면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북한과 협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매우 도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대화 기간 동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할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 공식적인 합의 못지않은 중대 사안이다. 북한이 그간 미국의 적대행위와 핵개발의 원인으로 한·미 군사훈련을 지목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실질적인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 없이 불쑥 언급한 것이어서 한·미 협의를 통해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두 정상이 단독 및 확대 회담과 오찬을 함께하며 신뢰를 쌓은 것은 합의 못지않게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김정은 위원장은 안보와 번영을 위한 역사적 인물로 기록될 것”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단 하루 회담했지만 신뢰가 쌓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정상이 자주 만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미국의 북핵 우려와 북한의 체제안전 우려를 불식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정상이 계속 만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번에 7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신뢰와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두 정상이 정상회담을 열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 노력을 약속한 것만 해도 진전이다. 그러나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특히 비핵화 합의가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미국 주류와 보수층을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간 미국 내 여론이 공동성명에 CVID 표현이 담기는지 주목해왔다는 점에서 회담 성과 논란이 심화될 수도 있다.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 때 그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진 것이 그런 관측을 낳게 한다. 논란이 장기화될 경우 자칫 비핵화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 가급적 빨리 북·미 간 후속 회담을 열어 정상회담 합의를 뒷받침하는 가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트럼프와 김 위원장은 이제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정상들이 직접 나선 만큼 북핵 해결 과정을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뿌리 깊은 반목과 갈등이 일거에 해소될 수는 없다. 만남과 협상을 통해 신뢰를 쌓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진전된 조치를 만들어 나가는 길밖에 없다. 한국 정부의 지원과 중재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오랜 세월 한반도를 압박해온 분단과 냉전을 끝내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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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세기의 만남’이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다. 북·미 두 정상이 성공적인 합의를 이뤄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적대관계가 청산되는 전기가 마련된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에만 남은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위대한 출발선에도 두 사람은 나란히 서게 된다. 70년간 반목과 대립을 거듭해온 양국 정상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 자체만으로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사변적 의미가 있다. 이미 두 정상이 이틀 전인 10일 싱가포르 현지에 입국해 리셴룽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등 사전 일정을 시작한 것은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 부여하는 무게감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북한이 요구해온 ‘불가역적’ 체제안전 보장 및 제재해제가 어떤 수준에서 거래되느냐일 것이다. 두 정상이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전체 일정을 포괄적으로 합의하되 그 과정을 최대한 압축해 단계적·동시적으로 이행한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담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비핵화-체제 보장의 초기 조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아낼지가 초점이 될 것이다. 북한이 통 크게 비핵화 초기 조치를 이행하고, 미국도 종전합의는 물론 외교관계 수립 일정을 합의문에 명시하는 방안이 합의될 수도 있다.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에는 눈에 띄는 점들이 적지 않다. 우선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러·몽골이 아닌 제3국을 정식 방문한 것은 1984년 김일성 주석의 동유럽 순방 이후 34년 만에 처음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미 합중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첫 상봉과 회담을 위해 중국전용기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싱가포르에 도착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와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들”이라고 회담의제를 공개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외국 방문을 귀국 전에 보도한 것도 이례적인 데다 타국 항공기 편을 이용한 사실을 주민들에게 솔직하게 공개한 것도 파격이다. 체면과 자존심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의 성향이 반영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회담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북한의 각오도 엿보인다.

 

미국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의 오찬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내일 아주 흥미로운 회담을 하게 된다. 아주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가 발신해온 메시지는 가변적이지만 이제는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그는 싱가포르 출발에 앞서 “북한을 위대하게 만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단 한번의 기회”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회담을 ‘과정의 시작’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북한과 관계 맺는 것을 최소한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회담에 그치지 않고 워싱턴 혹은 평양에서 후속 회담을 이어가며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최종목표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이 엿보인다.

 

트럼프의 표현대로 북·미 정상회담은 ‘미지의 영역’이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 위에 두 사람이 서게 될 줄은 반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양측 당국자들의 성의있고 진지한 노력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담대한 결단이 더해져 비로소 열린 길이다.

 

70년에 걸친 뿌리 깊은 적대관계와 북핵 문제가 한 차례 회담으로 일거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두 정상이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싱가포르 회담이 평화로 가는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기를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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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다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아직 회담 의제와 실무 협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사실상 회담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셈이다. 이제 회담의 성패는 온전히 트럼프와 김정은의 손에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으로 미뤄 이번 회담은 며칠 동안 열릴 공산이 없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협상이 매우 잘되고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은) 매우 중요한 며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이 여러 날에 걸쳐 열리는 건 나쁜 소식이 아니다. 선언적인 입장 표명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종전선언 및 남·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도 있다. “싱가포르에서 북한과의 만남이 큰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미국과 달리 북한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 이후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싱가포르 일정이야 보안관계상 공개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김 부위원장의 방미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전달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북한의 침묵은 미국에 대한 압박수단이 되겠지만 회담이 임박한 지금에 와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6·12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결정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 전경. 5성급 최고급 휴양시설인 이곳은 250m가량의 구불구불한 진입로를 거쳐야 하는 데다 높은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어 경호와 보안이 용이하다. 싱가포르 _ 로이터연합뉴스

 

여러 난관을 뚫고 회담이 성사된 것을 보면 김정은과 트럼프의 강력한 의지는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회담 성공은 의지만으로 이뤄질 순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먼저 비핵화-체제안전 보장의 병행 원칙이다. 이번 회담은 비핵화를 위한 것이지만 비핵화라는 동전의 뒷면은 체제 보장임을 명심해야 한다. 비핵화만 요구하거나 비핵화를 먼저 하라고 고집한다면 회담은 깨질 수밖에 없다.

 

둘째로는 상호 존중의 원칙이다. 역대 북·미대화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궁극적으로 서로를 진지한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은 사상 처음으로 양측 최고지도자가 나선 만큼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이를 통해 두 사람이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회담은 절반 이상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라는 역사적 대업을 완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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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미 3자 협상을 통해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방안을 밝힌 이후,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차이나 패싱’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이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중국은 정전협정의 서명국으로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강조하는 한편 오는 8일 칭다오에서 개최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북·중·러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원하는 남·북·미·중 4자 협상이 즉각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두 번째 만난 이후 태도가 바뀌었다”고 지적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연기를 선언했던 일 이후, 남북 모두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 중국을 장기간 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북·미가 비핵화에 합의한 후 경제 지원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하면, 중국이 미국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다면, 북한 경제의 재건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물론 개혁·개방정책의 경험을 전수하는 데 중국보다 더 적극적인 국가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낙후된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만 향후 10년간 270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증세를 하거나 국채를 발행하지 않는 이상, 현재 우리 정부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남북협력기금(1조6000억원)과 공적개발원조(3조482억원)밖에 없다. 또한 우리 민간 기업이 정치적 위험이 큰 대규모 투자를 당장 추진할 가능성도 아주 희박하다.

 

미국이 핵무기 폐기 대가로 북한에 제공할 공식적인 경제지원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다. 정부 차원의 공식적 자금 지원은 군사동맹국에조차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기조에 부합하지 않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대규모 개발원조보다는 제재 완화를 통한 미국 민간 자본의 투자 확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 배상금으로 약 200억달러(약 21조4000억원)를 지불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가 국교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해결이 선행되기 전에 배상금이 지급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같은 다자개발은행(MDB)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이 세계은행과 ADB의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가입 전에 공식적인 지원을 받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또한 이 기구들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회원국이 되어야 하는데, 최대 지분을 가진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더라도 최소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규모 자금을 당장 지원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밖에 없다. 중국은 5월 북·중 정상회담 직후 북한 노동당 핵심 간부로 구성된 경제투자사절단을 초청해 경제협력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여기에서 중국이 주의해야 할 점은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에 위배되지 않게 협력의 속도와 범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만약 중국이 보편적 국제규범보다 북·중 혈맹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한다면, 중국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AIIB는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AIIB 정관에 따르면, 총회에서 최대다수결(3분의 2 이상 회원국 총회 참가에 4분의 3 이상 투표권 찬성)을 확보하면 비회원국에 투자를 할 수 있다. 중국·러시아·인도·한국 등 주요 회원국이 지지한다면, 북한에 대한 지원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 북한이 당장 필요로 하는 철도·도로·항만 개발이 AIIB의 주력 사업이라는 점도 유리한 점이다. AIIB를 통한 대북 경제지원은 시진핑 정부의 일대일로 구상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연결시키는 고리가 될 수 있다. 이 사업을 통해 환서해경제벨트와 환동해경제벨트가 중국·몽골·러시아 경제회랑과 연계된다면, 한국·북한·중국·러시아·몽골을 포괄하는 새로운 동북아경제권이 형성될 것이다.

 

중국이 국제규범을 존중하면서 북한 경제개혁과 동북아경제권 형성에 건설적인 역할을 확대한다면, ‘차이나 패싱’ 논란은 저절로 수그러들 것이다. 따라서 지금 중국은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남·북·미·중 4자 회담을 주장하기보다는 종전선언 이후 평화체제 구축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왕휘 |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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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 퍼즐의 답을 찾은 것 같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요구를 부분 수용하고, 종전선언을 시사했다. 불신이 팽배한 북·미관계를 고려하면 먼저 비핵화하면 보상한다는 미국의 구상은 비현실적이었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교환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계별로 이행사항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게 합리적이다. 종전선언은 북 체제보장의 첫번째 절차에 해당한다. 미국의 추가 대북 제재 유예 조치도 평가할 만하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험 중지와 맞물려 생각하면 양측은 낮은 단계의 모라토리엄을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로소 북·미 사이에 정상적인 토론과 협상이 가능한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비핵화를 넘어 분단·냉전 구조 해체와 평화 정착 등 한반도의 미래와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다. 통상의 국제회담은 깨져도 관련국 간의 일시적인 관계 경색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실패 시 군사긴장 고조로 이어지고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세기의 회담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진지하지 않았다. 협상 타결을 위한 협의가 아니라 일방적 항복 요구나 다름없었다. 패전국 다루듯 하는 미국 강경파들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회담은 한 차례 취소 사태를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정책 전환은 미국 사회 주류의 완고한 반북정서와의 투쟁 속에서 나온 것이어서 값지다. 그들은 북한이 체제유지의 수단인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체제모순으로 붕괴할 것이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도 본다. 심지어 빌 클린턴 같은 대화파도 처음에는 북한 붕괴론을 철석같이 믿었다.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을 의회가 반대하자 “경수로 완성 시점에 북한 정권은 사라질 테니 걱정 말고 투자하자”고 설득할 정도였다.

 

현재까지 트럼프의 노력은 성공적이다. 대북 강경파 존 볼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그 증표다. 중대한 외교이벤트가 진행 중인데, 이를 총괄해야 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침묵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트럼프가 입을 막은 것이다. 그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가 김영철을 면담하는 자리에도 배석하지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자신들을 대화 상대로 존중한다고 믿을 만한 사례일 것이다.

 

그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둘러싼 문제제기들은 상식선을 넘은 게 많았다. 북한이 핵무기 일부를 은폐할 것이라는 발상부터 우습다. 핵은 보유 사실을 공개해야 효과를 발휘하는 정치무기, 외교무기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마다 보유국임을 시사한다. 김정은이 직접 나선 회담을 국제사기극으로 몰고 가는 행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정말 북한이 신격화하는 지도자의 권위를 훼손하면서까지 외교사기를 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북한 입장에서 이번 회담은 외무성 관리들이 맡았던 기왕의 회담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절대 권력자가 나선 만큼 반드시 개최돼야 하고, 실패해서도 안되는 회담이다. 체제의 생존은 물론 회담 종사자들의 안위까지 걸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방향 전환이 과연 북한의 이런 속사정까지 파악한 뒤에 나온 결정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든 그의 결단이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히 소중하다는 사실만큼은 변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낙관은 금물이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 이후 미 주류세력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언론과 보수세력의 공격 목표는 북한에서 트럼프로 바뀌었다. “트럼프가 북한에서 양보를 얻어내기도 전에 북한의 선전전에 승리를 안겼다”(뉴욕타임스)는 식이다. 북한이 아무런 비핵화 양보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대북 제재의 끈을 늦추고 관계 개선을 지향하는 제스처를 보였다는 비난이다. 그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한 것은 뭐라고 봐야 하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트럼프 공격에 가세했다. 한국 보수가 미국은 무오류의 국가, 미국 대통령은 무비판 대상이라는 금기까지 깨는 것을 보니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트럼프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두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2000년 클린턴과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그리고 4일 트럼프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클린턴과 조명록은 북·미 수교를 담은 공동코뮈니케를 도출했지만 이후 북·미관계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집요한 방해로 공전하다 뒤이어 등장한 조지 부시 정권의 대북 강경책으로 파국을 맞았다. 이번 회담은 그때와 다르고, 또 달라져야 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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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예방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면담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은 뒤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 선언으로 잠시 우여곡절을 겪었던 6·12 북·미 정상회담이 공식 확정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는 비핵화 방식에 관한 미국의 입장 변화를 시사하는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과정을 시작하겠다”고 표현했다. 그는 “나는 (회담이) 한 번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한번에 (합의가) 성사된다고 하지 않았다”고 했고, “우리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갈 수도, 빨리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6·12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마침표를 찍는 합의가 나오지 않더라도 추가 회담을 열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방식을, 미국은 ‘일괄타결’ 방식을 주장하면서 입장차를 드러내왔다. 북한은 단계적으로 핵을 폐기하고 단계별로 미국이 제재완화와 체제안전 보장 등 구체적인 보상조치를 동시적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미국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초기에 폐기해야 체제안전, 제재해제 등 보상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6·12를 ‘과정의 시작’으로 보고, 추가 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방식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한 방에 비핵화를 해결하겠다는 비현실적인 구상에서 벗어나 현실적 접근법으로 진화하고 있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에 따라 6·12 싱가포르 회담에서는 비핵화와 북한 체제안전 보장 의제에 대해 원칙적이고 포괄적인 합의를 도출한 뒤 이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추가 정상회담을 하는 절차를 예상해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종전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6·12 회담에서 종전 문제를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 전망을 묻는 기자에게 “우리는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며 김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졌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회담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진다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이 본격 시동을 거는 역사적인 의의를 갖게 된다. 종전선언은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과도기적 체제안전 보장의 성격을 띠고 있어 북한이 비핵화 여정에 나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효과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 합류해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하는 형식을 갖춘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여전히 군사적으로 북과 대치하고 있는 교전 당사국인 한국이 참가하는 종전선언이 이뤄지게 되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 프로세스에도 무게감을 싣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에 대해 제재를 해제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최대의 압박’이라는 말이 더는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북·미 간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신규 제재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년 만에 처음 이뤄진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백악관 방문에 우방국 최고위급 외교관에게 주어지는 수준의 의전을 제공했고, 김 부위원장 일행을 직접 배웅하기도 했다.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면담에 배석시키지 않은 것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배려로 읽힌다. 이런 환대는 6·12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대화상대로 진지하게 대우하겠다’는 메시지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것이어서 회담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예단하긴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에 앞서 김 부위원장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합의에 이르려면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시사했다. 양측의 간극을 좁히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여러 차례 하겠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이 간극을 메워야 할 최종 주체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다. 두 정상이 현실적인 절충점을 찾아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주고받는 세기의 담판을 성공으로 이끌기를 기대한다. 두 사람은 자칫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을지도 모를 한반도 정세를 평화의 방향으로 반전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100% 굴복시키는 외교는 없으며, 대결이 아닌 협상은 서로 ‘주고받는’ 상호성을 갖는다. 8일 뒤 싱가포르에서 만난 두 정상이 현실적이고, 호혜적인 태도로 합의 도출에 성공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정세의 대전환을 가져오는 회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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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촉발시킨 글로벌 무역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동맹·우방국인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멕시코 등이 생산하는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자 상대국들도 무역보복 조치를 내놓고 있다. 국제사회 일각에선 대공황 이후 공고하게 구축돼온 자유무역 질서가 70여년 만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세계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는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 1일(현지시간)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로 했다. EU도 이날 WTO에 미국이 EU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한 고율관세에 대한 양자 협의를 요청했다. 양자 협의는 WTO가 분쟁에 개입하기 전 당사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로 최장 60일간 진행된다. EU와 캐나다, 멕시코가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은 230억달러어치로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수입량(480억달러)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EU와 캐나다는 WTO 제소와는 별개로 미국에 무역보복 조치를 취할 것을 예고했다. EU는 철강·모터사이클·농산물 등 64억유로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캐나다는 7월1일부터 미국산 철강·알루미늄·맥주·농산물 등에 고율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했다.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협상을 벌이고 있는 멕시코는 미국산 철강과 램프, 과일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일본 정부도 철강 수입제한조치와 관련해 미국을 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앞뒤 가리지 않는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다자간 무역체계의 틀을 뒤흔드는 비이성적 행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는 있겠지만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와 물가급등, 일자리 창출 부진 등의 역효과를 낼 게 분명하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우방국가를 타깃으로 삼는 관세정책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는 등 미국 내에서도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2일 트위터를 통해 “연간 800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보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공정무역이 아닌 ‘바보 무역’ ”이라며 “미국은 무역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무역전쟁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수입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물릴 수 있을지 조사하라고 상무부에 지시했다. 수입 자동차에 고율관세가 부과되면 연간 85만여대를 관세 없이 미국에 수출해온 한국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글로벌 무역전쟁 여파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설 수 있는 국제 공조체제를 견고하게 구축하고, 통상정책의 패러다임 전환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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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다. 역사적인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불과 13일 앞두고서다. 세 번째 만남이지만 그 의미는 앞의 두 번과 비교가 안된다. 만남 자체가 회담의 청신호다. ‘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없애는 쐐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예상 밖의 기대감까지 일게 한다. 33년 전 미·소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85년 11월4일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은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회담을 꼭 보름 앞둔 때였다.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는 11월19~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한 터였다. 슐츠는 왜 모스크바로 날아갔을까.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38번가에 있는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 관저에서 만찬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욕 _ AFP연합뉴스

 

1985년 미·소 정상회담은 훗날 냉전 종식의 기틀이 됐다는 평가를 받지만 추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시 미·소관계는 북·미관계 못지않게 나빴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주둔, 폴란드 민주노조 탄압은 미국의 반발을 샀다. 강경한 냉전 전사 이미지의 레이건도 문제였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낙인찍고, 군축을 말하면서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해 소련을 자극했다. 그러면서 ‘평화의 십자군’을 자임했다. 소련은 그런 레이건을 ‘현대판 히틀러’라고 비난했다. 소련 지도자들의 건강 악화와 잇단 사망도 장애물이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레이건이 신호탄을 쐈다. 그는 1984년 1월 “이 핵무기 시대를 살아나가려면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레이건의 변화를 이끈 이가 슐츠다. 슐츠는 레이건을 정상회담으로 인도한 ‘셰르파’였다. 1982년 7월 국무장관이 된 슐츠는 레이건을 유연하고 실용적인 사고를 갖도록 이끌었다. 1년 뒤 기회가 찾아왔다. 1985년 3월 체르넨코의 사망과 젊은 지도자의 등장이었다. 고르비였다. 그는 레이건보다 20살 어렸다. 레이건은 친서를 보냈다. “빠른 시일 안에 워싱턴으로 초대하고 싶다.” 고르비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장소와 시기를 이유로 시간을 끌었다.

 

그 바탕에는 레이건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그에게 레이건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일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7월3일 두 나라는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고르비는 25년 동안 외교장관을 지낸 그로미코를 사임시키고 셰바르드나제를 앉혔다. 외교정책 변화의 신호였다. 하지만 10월이 되도록 의제조차 합의하지 못했다. 슐츠가 모스크바로 간 이유는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셰바르드나제와 고르비를 처음으로 만나 이견을 조율했다. 마침내 레이건과 고르비는 제네바에서 마주 앉았다. 그러나 세계가 놀랄 만한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북·미 정상회담을 1985년 미·소 정상회담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상황도, 의제도 다르다. 두 주인공 트럼프와 김정은도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럼에도 북·미 정상회담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소 정상회담의 교훈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체제가 다른 강대국 간 회담은 한 차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점과 당장의 성과는 없더라도 계속 만나야 일이 풀린다는 점이다. 회담 성사는 군비감축에 대한 레이건의 의지와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내부 개혁을 원한 고르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미·소 정상회담은 ‘셔틀 회담’이라는 새 형식을 낳았다. 레이건과 고르비는 제네바 회담을 시작으로 1988년 뉴욕 회담까지 모두 5번 만났다. 그 결과 1987년 중거리핵무기폐기협정(INF)을 체결하는 등 군비경쟁을 줄이고 냉전의 마지막 시간을 평화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정상회담은 향후 협상의 무대를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데이비드 레이놀즈 교수는 1985년 미·소 정상회담 등을 분석해 펴낸 <정상회담>에서 효과적인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지도자와 국가의 힘이 비슷해야 하고,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북·미 간 군사력 차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과거 트럼프와 김정은의 상호 비방의 역사를 보면 신뢰가 움틀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두 정상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레이건과 고르비의 일련의 정상회담에서 보듯 중요한 것은 두 정상 간의 화학작용, 보좌진의 상호 신뢰, 끈질긴 인내심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합의가 나올지 알 수 없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차대한 기로에 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니다. 차분하게 지켜보는 일이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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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선언 이행 논의를 위한 남북 고위급회담이 6월1일 열린다. 고위급회담은 당초 지난 16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당일 새벽 북한의 일방적 연기 조치로 무산되면서 보름 늦게 열리게 됐다. 회담에 참석하는 남북 대표단 면면을 보면 남북은 철도연결을 비롯한 경제협력과 8·15 이산가족 상봉행사, 6·15 남북공동행사,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8월 아시안게임 공동 참가 등 ‘4·27 판문점선언’에 담긴 여러 의제들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한반도 정세는 북한과 미국이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과 싱가포르, 뉴욕에서 고위급 및 실무회담이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는 상황이다. 흐름은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지를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인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의 중요성은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북·미관계가 뒷받침하지 못할 경우 남북관계의 근본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북·미관계가 진전될 때까지 남북관계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의 종속변수로만 간주할 경우 대전환기에 들어선 한반도 정세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지난 26일 열린 남북 2차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대화의 추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방침을 밝힌 지 이틀 만에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재차 확인함으로써 미국에 대화 복귀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북·미대화가 실패한다고 해서, 남북관계마저 중단될 경우 한반도 문제에 주도적으로 나설 동력을 잃게 된다.

 

올 들어 남북관계는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전후로 짧은 시간에 다양한 교류가 전개됐고, 두 차례 정상회담으로 신뢰의 기초를 쌓았다. 이 모멘텀을 살려 다양한 교류·협력을 통해 관계 발전을 꾀해야 한다. 경의선·동해선 연결이나 남북경협은 비핵화의 진전에 맞춰야 하겠지만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재개, 8월 아시안게임 남북공동 참가, 6·15 남북공동행사 등은 협의를 서둘러야 할 사안들이다. 이번 고위급회담이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를 구축하는 첫걸음이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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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미국은 금단의 땅이다. 외교관계가 없어 북한 주민의 미국 입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외교관들의 미국 내 이동도 엄격히 제한된다. 일정한 지역을 벗어나려면 일일이 미 국무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2000년 9월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망신살이 뻗쳤다.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아메리칸항공이 신체보안검색에 응하라고 요구하자 항공기에 탑승하지 않았다. 국가원수에 상응하는 예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항의였다.

 

불과 한 달 뒤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첫번째 방미였다. 미국은 항공사 측에 협조를 요청해 이민·세관·검역 절차를 생략하는 등 특별 예우를 했다. 조 부위원장은 군복 차림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지난 29일 미국을 전격 방문했다. 북한 고위인사로는 18년 만의 일이다. 미국은 제재 대상인 그를 위해 여행제한 조치를 일시 면제했다. 김 부위원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인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 문제를 논의한다. 양측 간극이 큰 상황에서 두 사람의 담판은 회담 성사의 마지막 시험대나 다름없다.

 

김 부위원장이 방미 기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접견한다면 일이 잘 풀렸다는 의미가 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내는 친서를 전달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에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편지·전화하라”고 썼던 트럼프는 김 부위원장의 방미에 대해 “나의 편지에 대한 확실한 답변”이라며 환영했다.

 

18년 전 조 부위원장의 방미는 성공적이었다. 핵카드가 없었는데도 상호주권 인정과 적대관계 청산이라는 합의를 끌어냈다. 핵보다는 평화를 향한 양국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 부위원장은 항일투쟁 때 연락병으로 시작해 평생을 군에서 봉직한 천생 군인이었다. 김 부위원장은 군인이지만 수십년간 대남군사당국대화에 종사해온 회담전문가이기도 하다. 김 부위원장의 방미가 좋은 결실을 맺기 바란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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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봉합되는 듯했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2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어 “무역법 301조에 따라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첨단 기술제품에 대해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기존 계획을 원래대로 실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중 협상단이 워싱턴에서 제2차 무역협상을 벌인 뒤 지난 19일 합의한 ‘상호관세 부과 보류’ 방침을 열흘 만에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다음달 15일 고율관세가 부과되는 품목을 공표하기로 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고율관세 부과 대상으로 바이오 신약·통신장비·항공우주·산업로봇·반도체 등 1300개 품목을 지목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또 주요 산업기술을 획득하려는 중국 기업과 개인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수출을 통제하겠다는 조치까지 내놨다. 아울러 중국의 차별적인 기술허가 요건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3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기한 분쟁해결 절차를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미국이 중국산 첨단기술 제품에 대한 관세 장벽을 높이고, 기술이전을 막으려는 것은 중국의 이른바 ‘기술굴기’를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그동안 ‘중국 제조 2025’ 로드맵에 따라 인공지능·산업로봇·전기차 등 미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해외 기업의 첨단기술에 눈독을 들여온 게 사실이다. 백악관은 이날 고율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면서 “ ‘중국 제조 2025’ 로드맵과 같은 산업정책이 미국과 전 세계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담화문을 통해 “미국 백악관의 ‘책략성 성명’은 워싱턴에서 이룬 합의에 위배된다”며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 세계 경기에 찬물을 끼얹고, 교역을 위축시킬 수 있다.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은 25%, 미국은 12%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산 중간재로 완성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기도 한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면 한국의 대중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역협회는 미국이 중국산 첨단기술 제품에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총수출은 2억달러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치밀한 대응 전략을 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는 통상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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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건 5월12일이었다. 정상회담을 정확히 한 달 앞둔 시점에서다. 어느 호텔이냐, 판문점 도보다리 같은 곳이 있느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기는 한번에 날아올 수 있느냐…. 세계가 들썩거렸다. 이후가 문제다. 북·미 고위 당국자들이 거친 말을 주고받았다. 실무자들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만나지도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회담 취소 편지를 보내고, 북한이 손 내밀고, 양측이 다시 만나기로 하면서 갈등은 봉합됐다. ‘회담 열차’는 다시 6월12일을 향해 트랙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회담까지 절반인 2주가 속절없이 지나갔다. 준비 측면에서 진척된 게 없으니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그렇지만 남겨준 시사점도 크다. ‘세기의 담판’이라며 구름 위를 걷는 듯 들뜬 발걸음을 현실의 땅 위로 옮겨놓았다. 회담을 연다는 사실 자체가 낙관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한반도 평화를 향한 과정이 험난할 것임을 확인시켜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네수엘라에 억류됐다가 2년 만에 풀려난 조슈아 홀트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워싱턴 _ 로이터연합뉴스

 

우선, 이제 엄밀한 의미에서 ‘리비아 모델’이란 말 자체는 필요없어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모델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으로 이해된다.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하기 전에는 미국이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리비아 모델 적용을 주장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정조준해 “일방적 핵포기 강요” 등으로 비난한 걸 보면 북한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은 리비아 모델과 다르다”고 약속했다. 큰 틀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접근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의미도 작지 않다. 북한 비핵화 과정이 ‘트럼프 모델’로 불리건 ‘코리아 모델’로 불리건, 한반도의 상황에 근거한 해법이 나올 것임을 예고한다.

 

북·미가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양측 모두 대화를 강하게 원하고 있고, 성공적 회담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가 아닌 공개 서한을 통해 회담 취소를 알리면서 “생각이 바뀌면 연락하라”고 했다. 북한이 하루 만에 ‘정중하게’ 응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들이 회담을 매우 많이 원한다. 우리도 그러기를 원한다”고 화답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더 절실한 건 북한이고, 회담이 안돼도 미국은 나쁠 게 없다고 말해왔다. 미국 내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북·미 회담에 드라이브를 걸어온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대화 포기를 선언한다면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회담 취소와 번복 과정은 북·미는 물론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에도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잠시 멈췄지만 대화 의지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협상은 적극적으로 진행될 것이란 기대를 낳는다.

 

무엇보다 비핵화와 보상을 둘러싼 내용과 이행 순서에 대한 북·미 간 입장차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비핵화와 보상 간 주고받기가 난제임을 확인시킨 것이다. 미국이 ‘선 비핵화’에선 한발 물러섰다 해도, 북한이 그에 버금가는 큼지막한 것을 내놔야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는 입장은 여전하다. 최단기간 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를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남한도 그러기를 바란다. 이행 과정이 길어지면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고, 과거처럼 실패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북한도 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다만 북한은 미국이 그 속도를 감당할 만한 조치를 취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마지막 단계에서, 동시에 마무리돼야 할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인데 미국도 속전속결로 끝낼 자신이 있냐는 것이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 즉 안보 위협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했는데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핵을 포기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북·미 간 신뢰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신뢰는 일방적이지 않다. 가는 말이 곱지 않은데 오는 말이 곱기를 바랄 수는 없다. 나는 하기 싫지만 너는 해야 한다고 할 수도 없다. 상호적이다. 실상 한반도의 구조적 위기도 양측이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탓이 크다. 서로가 70년을 적으로 살아왔다. 한반도 분단 이후 처음 북·미 정상이 만나 다짐을 해도 이행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실행되지 않으면 허사다. 회담보다 중요한 것은 이후다. 북한의 비핵화도, 미국에 의한 체제보장도 결국 불신을 신뢰로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여정의 ‘시작의 끝’이 아니라, ‘끝의 시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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