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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를 통보했습니다.”

중국 단둥에서 개최되는 한·중 국제박람회가 북한이 안전상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는 이유로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중단되었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은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이면서 압록강을 사이에 둔 무역 관문이다. 단둥시는 이번 박람회를 통해 한국 기업 150개를 유치해 한·중 교류를 확대하려는 열의를 보였다. 참가하는 한국 기업들은 중국은 물론 유럽과 러시아로 진출하는 통로이면서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발전 가능성이 높아 행사를 준비했다. 단둥시도 참가 기업들에 대해 현지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는 사후관리를 적극 지원한다는 의지도 보였다. 그런데 중단되었다. 참가 기업들은 투자한 비용과 시간을 어떻게 보상받나, 대륙 진출의 꿈이 무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당황하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처럼 북핵 리스크에 대한 공포감까지 휩싸여버린 꼴이 되어 버렸다.

지난 1월 북한 4차 핵실험과 2월 로켓발사로 개성공단을 폐쇄시켰다. 유엔이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했고 미국·일본·유럽연합은 독자적 제재를 가하고 있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피해 규모가 직·간접적으로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취소로 또 하나의 개성공단과 같은 피해가 나타났다. 참가 기업들은 한국제품을 널리 알리고자 미리 제품을 보내기도 하고 행사 기간에 더 많은 홍보를 하고자 많은 콘텐츠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님을 만나기도 전에 가게 문을 닫아버려 적지 않은 비용을 단숨에 날려버린 것이다.

개성공단이나 단둥 진출이 주는 효과는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도 중요하다. 민간교류를 통한 자연스러운 접촉으로 북한의 내부붕괴를 촉진시킬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2015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에서 막을 올린 북·중 무역박람회에서 북한 판매원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단둥_ 오관철 특파원



가장 폐쇄적인 공산 독재국가 북한에 그나마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장마당이다. 아무리 유엔 제재, 주요 선진국 봉쇄에도 여전히 물건이 공급되고 있고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로 상대적으로 단둥, 옌볜, 선양에서 한국제품을 파는 가게가 성황을 누리고 있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주민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위험해지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권력에 대해 용납할 수 없을 거라고 한다. 젊은 독재자가 그나마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그가 가진 인위적인 힘이 아닌 장마당 경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풍선에 매달아 한국 소식을 보냈던 방식에서 드론을 이용해 대량으로 콘텐츠가 담긴 USB를 보내자고 한다. 인위적인 물량 공세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접촉과 함께 자연스러운 문화적 교류를 통해 북한을 교화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그래서 단둥처럼 북한과 중국 심지어 러시아까지 쉽게 교류가 가능한 곳을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둥은 지리적으로 볼 때 중요한 곳이다. 러시아 가스전에서 만주벌판, 선양, 단둥, 평양을 지나 남한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이 통과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는 물론 유럽을 연결하는 대륙간 횡단열차가 대륙을 넘어가기 전 무조건 쉬어가야 하는 정거장으로 단둥밖에 없다. 아직도 인건비가 낮고 집값이 싸 노동력이 풍부하다. 백두산 등 매력적인 관광자원이 많지만 내세울 만한 국제공항이 없어 공항건설도 시급하다. 거기에 많은 천연광물들이 매장되어 있다. 그래서 단둥은 기회의 땅이자 희망의 땅이다.

미개척 노다지를 간과하면서 통일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북한이 핵을 버리지 않는 한 개성공단 재가동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효과적인 통일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발 빠른 전략과 처방이 필요하다. 폐쇄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맛, 입맛, 눈맛을 느끼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개방시키는 것이다. 개성공단 문제도 하루빨리 매듭짓고 대북정책의 유연함을 발휘할 때가 아닌가 싶다.



송덕진 극동미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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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대응을 두고 미·중 공조에 균열 조짐이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잠잠하던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국 배치 문제가 부상했다. 한·미가 사드 배치의 특정 후보지를 두고 논의하는 단계이며 오는 10월 한·미안보협의회 이전에 결론이 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의 경제적 파트너인 중국 사이에서 정부가 외교적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드가 북핵 문제 해법으로 효용성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북 제재에만 올인하면서 자초한 결과다.

사드 문제에 불을 댕긴 건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의 지난 2일 발언이었다. 3~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참석에 앞서 “한국과 사드 배치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당초 한국 국방부는 사드가 한·미 국방장관 회담의 의제가 아니라고 해명했으나 한민구 국방장관은 지난 4일 “사드 배치에 분명한 의지가 있다”고 말을 바꿨다. 처음엔 중국 눈치를 보다 미국 분위기를 읽어 태도를 바꿨다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자 쑨젠궈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은 5일 “사드의 한반도 전개는 그들이 필요한 방어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중국군 고위 인사가 35개국 군 전문가가 참석한 대규모 국제행사에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반발의 강도를 읽을 수 있다. 한·미는 사드가 북한의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제한적 방어시스템이라고 주장해 왔으나 미국이 현시점에서 사드 문제를 꺼낸 것은 과연 사드의 한국 배치를 추진하는 근본적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북핵을 빌미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더 큰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달 초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중국은 미국의 대중 봉쇄에 맞서 북한에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은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왔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_AP연합뉴스


사드는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한국에 위협이 되는 것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이어서 사드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여론을 호도하는 일이다. 동북아에서 미·중 간 전략적 균형을 깨면서 한반도 안보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이렇듯 심각한 사안임에도 정부는 미·중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대북 제재 이행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어 정부가 대북 강경노선을 지속하는 한 중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오로지 북한을 옥죄어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 구도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사드가 초래한 아슬아슬한 미·중 줄타기 외교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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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추진 중인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동참해 북한을 압박했던 중국은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대북 관계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을 ‘자금세탁우려국’으로 지정해 압박 강도를 높였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완고한 입장을 누그러뜨렸다고 해서 북핵에 대한 북·중 양국의 의견 대립이 해소된 것은 아닐 것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리 부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북·중간) 우호협력관계를 고도로 중시한다”면서도 북핵 불용 원칙을 고수했다. 비핵화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대북 3원칙도 천명했다. 리 부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핵·경제 병진 노선 고수 방침을 강조했다.

중국의 대북 유화적 태도는 미국의 대중 견제 움직임에 맞서기 위한 성격이 다분하다. 리 부위원장의 방중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일본 방문에 대한 카드로 해석할 수 있다. 리 부위원장의 시 주석 면담 시간이 20분에 불과한 것은 이 면담의 상징적 측면을 말해준다. 반대로 미국이 리 부원장이 시 주석을 면담한 날 북한을 자금세탁우려국으로 지정한 것도 중국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 이는 동시에 미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한 사전 조율 없이 독자적 행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시아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엇갈린 조치를 취하면서 북핵 문제를 양국간 갈등 구조 속으로 밀어넣는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북핵 문제에 대한 양국의 조율된 입장이 중요한 시점이다. 미국은 북한 목을 조이고 중국은 풀어주는 현재의 상황이 우려되는 이유다.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시진핑 면담 마치고 돌아가는 리수용 북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면담한 뒤 이동하기 위해 차량에 타고 있다._연합뉴스


중국과 북한의 유화적 움직임은 그 자체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북·중 양국이 핵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 한국과 미국은 이를 두고 대북 제재 이완을 우려했지만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중국을 통해 국제 고립에서 탈피하려고 시도한다면 이를 적극 돕는 것이 맞다. 미국과 중국은 오는 5일부터 베이징에서 전략대화를 가진다. 북·중간 고위급 대화 복원의 의미를 살려 미·중 양국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입장을 정밀하게 조율하는 무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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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등 동아프리카 3개국과 프랑스 순방 일정에 들어갔다. 정상외교는 시기나 대상국 선정에 대한 면밀한 사전 검토가 요구된다. 특히 국제적 규범과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자칫 이를 소홀히 했다가는 국익 증진은커녕 국가적 위신을 추락시키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이번 아프리카 순방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다. 청와대는 이번 순방이 아프리카 3개국과의 개발협력 논의, 북한 핵 외교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인종청소와 부정선거, 장기집권으로 악명 높은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철권을 휘두르는 우간다를 방문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정상들은 모두 피하는 그를 굳이 만나 독재자와 독재정권을 후원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국익도 아니며, 민주 국가의 역할이라고 할 수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 아프리카 3개국.프랑스 순방 일정_경향DB

박 대통령이 아프리카 3개국에서 새마을운동 확산을 시도한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관 주도였던 새마을운동은 많은 폐해를 낳은 바 있는 과거의 유물이다. 이를 아프리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 때문인지 실제 빈국에서의 새마을운동은 정부지원 프로그램에 새마을 이름만 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 싶겠지만, 그건 개인 박근혜의 일일 뿐 21세기 한국 대통령의 임무는 아니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부적절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자신이 유학했던 프랑스 그르노블시를 방문하는 것도 사적 일정이라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어느 일정에서도 북핵과 글로벌 경제 문제를 논의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포기하고 가야 할 만한 절박성과 필요성을 발견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과거에도 논란이 많았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 때 콜롬비아 방문을 강행해 ‘도피 출국’ 비판을 자초한 적이 있다. 세계 각국의 원수들이 집결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장례식에는 안 가면서 독재자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장례식에 참석한 일도 있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는 평균 30억원의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사적 용도 혹은 국내 현안 회피 용도로 의심받는 순방에 세금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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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남북 군사당국회담 실무접촉 개최를 제의해온 북한 인민무력부 통지문에 대해 어제 답신을 보내 이를 거부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 한 어떤 대화에도 응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군사회담 주장을 “핵개발 책임을 덮고 넘어가려는 면피용”으로 평가절하했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이달 초 7차 노동당 대회에서 남북 군사회담 필요성을 언급한 뒤 잇따라 대화를 제안하고 있지만 정부는 달라질 기미가 없다.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굴복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미와 적대적 관계가 지속되는 한 북한은 체제 안보를 명분으로 핵 능력의 고도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비핵화 조치를 외쳐도 현 상황에서 북한이 수용할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이런 북한을 비난하고 규탄할 수 있지만 이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홍 장관은 “북한과 교류가 있거나 우방이던 국가들까지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어 지금이 북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북한을 더 코너로 몰면 핵을 포기하고 협상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남은 임기 동안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정부가 제재 이후의 단계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_경향DB


정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들어야 한다. 정부가 북한의 대화요구에 응하는 것이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는 북한의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란 피해망상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중국은 이미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추진을 제안하며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로 기울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의 대화 의사까지 밝힌 상태다. 박근혜 정부 임기 중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 협상이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마냥 남북대화를 거부할 일이 아니다. 비핵화가 최대 관건인 만큼 비핵화를 주제로 회담하자고 역제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도 남북 군사당국회담이 열리면 상호 관심사를 포괄적으로 협의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전문가들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기 위한 협상을 먼저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변화없이 이대로 간다면 박근혜 정부는 대북 채널을 모두 잃어버린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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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을 위한 회담을 제의해 왔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명분으로 북한과 사실상 대화를 거부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의미가 있다. 외신에 따르면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도 트럼프의 발언에 “그렇게 된다면 나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을 ‘미치광이’ 취급해 온 트럼프라는 데 있다. 그는 “중국에 김정은을 신속하게 제거하도록 요구할 것이며 김정은은 암살보다 더 나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러잖아도 외교·안보 경험이 전무한 트럼프다. 자신의 발언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냉·온탕을 오가는 행보로 한반도 문제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우선순위를 갖고 있는지 일관되고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공화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착해 인사를 하고 있다_AP연합뉴스

트럼프는 지지율에서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을 3%포인트가량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등 만만치 않은 후보다. 북핵 문제는 내년 초 출범하는 미국의 차기 행정부에서 최우선 외교의제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연히 미국 대선주자들과 인맥을 구축하고 그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 대선 결과에 한반도의 미래가 휘둘리지 않으려면 한국이 대화와 협상을 바탕으로 한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갖고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주변국들을 설득해야 한다. 미국에 의존하며 대북 제재에만 몰두해서는 힐러리와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신세를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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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최고사령관으로 취임한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할리 데이비슨광이었다. 붉은 두건에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모터사이클 ‘할리 데이비슨’(할리)을 탄 스캐퍼로티 장군의 모습을 그려보면 유쾌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한국에서 볼 수는 없었다. 한국이 분쟁지역이라는 이유로 할리를 가져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휴일이면 서울 시내 오토바이 가게에서 눈요기만 했던 그는 나토 사령관으로 가면 가장 먼저 할리를 타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할리를 사랑하는 것만큼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용산기지를 방문해 그를 등에 업는 장면을 연출했을 때도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며 업무를 보는 한국군에 대해서도 경멸에 가까운 시선을 던졌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이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기지 나이트필드 연병장에서 열린 한·미연합군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이·취임식에서 빈센트 브룩스 신임 사령관(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_연합뉴스

빈센트 브룩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은 전임자와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기지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한국어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며 취임사를 시작했다. 이어 “아내와 저는 수많은 기억을 안겨준 이 땅,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직책을 맡게 돼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다시 애국가를 듣고 한·미 장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서 있으니 기쁨이 벅차오른다”고 취임사를 마무리했다. 브룩스 장군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는 게 행사 참석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과거 한국에서 근무할 당시 한국어 배우기에 열중했던 브룩스 사령관은 토머스 밴달 미8군사령관에게 “한국어를 얼마나 배웠느냐”고 묻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그 는 지난 12일 취임 이후 첫 외부 공개활동으로 판문점 등을 시찰하면서 “(북한과의) 대화와 조율은 계속될 필요가 있으며 그 같은 일(대화)이 재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주한미군사령관은 모자가 3개다. 유엔군사령부 사령관,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을 겸직하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희망하는 발언은 3개 모자 중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유엔군사령관의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향후 활동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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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빈 없는 초라한 ‘셀프 대관식’으로 비아냥거리가 된 북한의 7차 노동당대회가 막을 내렸다. 혹시 협상의 실마리가 나오거나, 이제라도 군사력보다는 쓰러져가는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발언이 나올 것을 기대했던 우리는 또다시 실망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답습할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인사 개혁도 별로 없이 오로지 김정은 찬양과 추대로 일관된 행사였다.

우리를 가장 실망시킨 것은 핵보유 선언을 넘어 소위 “책임있는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로 간주하면서 세계 비핵화에 기여하겠다는 허장성세였다. 북한 정권은 이제 핵·경제 병진노선을 헌법에 이어 당규약에까지 명기했기 때문에 경제적 보상 정도로는 핵을 포기시키기 어렵게 되었다.

단지 김정은이 미국에 한반도에서 손을 떼라면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남북 간 군사당국회담 등 대화를 제안한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에게 축전을 보낸 데서 얼핏 드러나듯이 북·중관계가 파국을 맞지는 않을 것을 예견하게 한다. 북한의 통남봉미적 노선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 노선과 부합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 두 강대국은 미국의 ‘지나친’ 한반도 개입을 견제해 왔고 남북 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를 구축하라는 정책 기조를 보여왔다.

따라서 중국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이어받아 북한을 설득하면서 미국에 6자회담과 4자회담의 동시 병행 개최를 더 강력하게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미국이 긍정적으로 반응할 경우 우리 정부는 난처해질 수 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제7차 노동당대회 경축 군중대회를 보고 있다 _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두 가지 우려를 제기한다. 첫째, 정부가 현재 대화보다는 제재에 몰두하고 있는데, 한국이 고립될 수도 있는 데다 제재의 효과도 조만간 나타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리비아나 이란이 태도 변화를 보이는데 30년 이상이 걸렸다. 쿠바는 50년도 더 걸렸다. 특히 이들 세 나라 모두 서방이 1년 이상 인내심을 갖고 집중적인 협상을 벌인 뒤에야 태도를 전환했다. 제재와 함께 협상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현재 북핵 해결보다 우선적으로 시급한 것은 핵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의 위협에 대한 우리의 대응태세 구비다. 이는 생존의 문제이자 기본적인 국가안보 문제이다. 정부는 사드 배치와 2020년대 중반에야 구비될 킬체인을 구상하고 있는데 5분 내에 도착하는 600개의 북한 미사일을 막기에는 매우 불충분해 보인다.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근원적으로 막으려면 적어도 핵 공격에 대해서는 미국이 자동적이고 즉응적인 핵 보복을 협정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 기한을 정한 뒤 북핵 협상을 진행하고 성과가 없으면 전술핵을 재배치하며, 협상을 계속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재철수할 것을 약속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우리 안보는 우리 스스로 한다는 각오로 북한의 핵 공격 시 재래식 무기로라도 독자적으로 북한의 지휘부를 궤멸시킬 수 있는 정찰·정보, 탄도미사일, 정밀타격, 특수전 능력 등을 신속히 배양해야 한다.

핵 미사일을 예방·억지할 능력을 갖추어 정부는 자신감을 가지고 보다 더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대화가 필요하다. 어차피 거쳐야 할 대화라면 우리가 이를 주도하는 것이 지혜롭다.

이제 김정은에게 핵은 북한 정권 유지의 중추이므로, 협상 성공의 관건은 핵을 폐기한 뒤 재래식 군사력만으로도 북한의 체제 안보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상호안보에 입각한 군사적·외교적 보장이 제안될 수 있느냐에 있다.

과연 우리는 민족 공멸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며 남북 경협을 진흥해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평화협정 체결과 북한 핵 포기를 동시에 타결할 수 있는 전향적이고 창의적인 제안을 국론을 통일해가면서 제안할 수 있을까?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느냐는 북한의 의지뿐 아니라 우리의 결단력과 의지, 통합의 지도력에도 좌우될 수 있다.


홍현익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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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제7차 노동당대회가 폐막했다. 나흘간의 당대회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권력기반이 공고하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각인시켰다. 당대회를 계기로 김 위원장은 당·정·군을 아우르는 절대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상당 폭의 인사를 단행했고, 대규모 군중이 참여하는 축하행사도 열었다. ‘김정은 대관식’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일각에서 제기해 온 북한 붕괴론을 불식하는 당대회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위상 강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앞날은 암울해 보인다. 수직적 지도체제의 경직성은 심화되고 당의 노선과 정책은 주민 삶에서 더 멀어졌다. 핵개발 중단이나, 국제사회 일원으로의 참여 기대도 무너졌다. 당대회 이후 북한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오히려 더 커졌다. 북한은 노동당 규약을 개정해 핵·경제 병진 노선을 명기했다. 김 위원장은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핵·경제 병진 노선을 당의 항구적 전략으로 못박았다. 이로써 핵개발은 돌이킬 수 없는 지상명령이 되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할 것이다. 이는 동시에 북한에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는 더 높은 수준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다.

북한 김정은의 당·정·군 직위_경향DB


북한은 당대회에서 경제발전계획을 제시하면서도 목표는 구체화하지 않았다. 이는 전력 1000억kwh, 화학비료 700만t 등 세부적 생산목표를 제시한 6차 당대회 때와는 크게 다르다. 경제적 의존도가 큰 중국까지 가담한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의식했을 터이다.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자력갱생을 강조했지만 이것만으로는 경제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 때문에라도 핵·경제 병진 노선은 성립되기 어렵다.

북한은 남북관계에서도 활로를 열기보다 진정성 없는 태도로 나왔다. 김 위원장은 “북남 군사당국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군사당국회담을 제안했다. 하지만 남북 간 정치·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핵개발을 강화하는 조치를 하면서 동시에 대화와 협상을 제의하는 이중적 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 위원장은 유일영도자로서 커진 권한만큼 책임도 막중해졌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민족의 미래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어떤 길이 최선인지 고민하기를 그에게 권고한다. 영국 BBC 기자는 김 위원장에 대해 “최고지도자란 타이틀에 걸맞은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하기 힘들다”고 보도했다가 추방당했다. 김 위원장은 이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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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7차 당대회는 김정은 정권의 비타협성을 드러냈다. 조선노동당은 김정은 시대를 공식 선포했다. 노동당은 김정은의 당이 되었다. 우상화는 김일성, 김정일 수준으로 격상됐다. ‘그이(김정은)의 발걸음에 이 행성이 움직인다’라는 우주급 찬사도 등장했다. 그러나 대회 막판 터진 영국 BBC 기자 구금 사건은 김정은 당 제1비서와 당대회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물리적으로 제한한 것은 북한 체제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김 제1비서가 운을 띄운 ‘휘황한 설계도’의 정체는 핵이었다.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유사 이래 최고의 핵강국이 되었다고 자축했다. 그는 육성으로 핵·경제 병진노선도 확인했다. 당 규약에 핵보유국이 들어가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그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치킨게임을 그만두기는커녕 판을 더 키우는 형국이다.

당대회는 당초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예측가능한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우려한 대로 불확실성이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북은 국제사회와 엇갈리는 궤도를 돌겠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문제는 2500만 북 주민의 삶이 정권 생존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김 제1비서는 내부적으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대회 이후에도 국가를 비상대책위원회 형식으로 끌고가겠다는 말이다. 북 주민은 앞으로도 맨몸의 ‘70일 전투’를 계속해야 할 판이다. 정상국가로의 회귀나 인간다운 삶은 무기 연기되었다.

북 주민 삶의 질이 다른 나라보다 열악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인권에 관한 국제 기준은 북에도 어김없이 적용돼야 한다. 그에 미달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책임이다. 김 제1비서는 “인민생활 문제가 천만가지 국사 가운데 제일국사”라던 자신의 올 신년사 발언을 명심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이 역주행한다면 그것은 남쪽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남한 정권이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는 핑계로 툭하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권을 침해한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재벌과 상위 1%를 위한 온갖 특권도 북한 문제와 얽히면 묻혀버리기 일쑤다. 남북 정권은 이 같은 적대적 공존, 묵시적 연대로 이익을 교환해 왔다. 남한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북한 정권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릴 일만은 아니다.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_AP연합뉴스

김정은 정권에 핵은 양날의 칼이다. 생존을 보장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생존을 위협한다. 핵·경제 병진노선은 성립 불가다. 식량과 연료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북한 현실을 감안할 때 핵과 경제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개발 진로에는 중국이 버티고 있다. 중국은 핵에 관한 한 북한을 대변하는 형제국가가 아니다. 당대회 개막일에 북한을 겨냥해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메시지로 찬물을 끼얹을 정도이다. 이는 엄포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중국은 북한이 핵 야망을 접지 않는 한 입안의 가시처럼 행동할 것이다. 러시아도 당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김 제1비서는 당대회에서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고립은 어디까지나 김 제1비서가 자초한 일이다.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나라가 국제사회와 갈등을 고집한다면 답은 뻔하다.

김 제1비서는 또다시 길을 잘못 들었다. 그 길로 나아가면 이번에는 정권의 생존조차 기약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북 주민의 앞날이 험난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키를 돌리는 것만이 희망이다. 국제사회와 조화하고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정답이다.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이데올로기는 시민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일 뿐이다.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한다며 시민 행복을 저당잡는 것은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것이다.

모멘텀을 만드는 것은 김정은 정권의 몫이다. 핵 문제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남은 북이 손을 내밀 때 지체 없이 잡아야 한다. 북의 잘못된 행태를 비난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남북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계 개선을 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순서이다.

남북이 각자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먼저 추진할 경우 자칫 남북관계가 주변국의 이해득실에 함몰될 위험이 있다. 남북 간에는 핵 문제 말고도 풀어야 할 갈등 사안이 산적해 있다. 더구나 핵 문제와 이들 갈등 사안은 연결돼 있다. 함께 풀지 않으면 안된다. 김정은 정권의 활로는 남쪽에 있다. 여기서 길을 찾아야 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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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세계의 비핵화를 언급했다. 그는 지난 6일부터 열리고 있는 노동당 7차 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결산) 보고에서 북한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라면서 “핵 전파방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김 제1비서가 비핵화를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그의 발언을 뜯어보면 비핵화를 추구하기보다 핵보유국임을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더 강해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세계의 비핵화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김 제1비서가 보고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당의 항구적 전략 노선으로 삼겠다고 천명한 것도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유엔과 세계 각국은 북한의 핵도발에 대해 두 달 넘게 고강도 제재를 시행하고 있다. 앞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제지에도 불구하고 4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이런 판국에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선언하면서 세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북한의 발언을 믿을 나라는 드물 것이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 개최 준비를 논의하는 김일성 주석(위쪽 사진 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은 인민복 차림이다._AP연합뉴스

김 제1비서의 남북군사회담 제안도 핵보유국 전제 속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진정성에 의구심을 낳는다. 물론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우선 북남 군사당국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는 그의 인식에 동의한다. 한반도에서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그리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둘러싸고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고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높아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화와 협상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갈등을 풀기 위한 노력이 시급히 요구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본질적 태도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군사회담이 열린다고 해도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김 제1비서는 대북 심리전 방송과 삐라 살포를 지체 없이 중지할 것을 요구해 회담 제안의 목적이 핵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 드러냈다.

김 제1비서가 국제사회와 남한이 자신을 믿도록 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당장 5차 핵실험 움직임부터 중단해야 한다. 핵은 정권의 생존 보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비핵화는 남북한과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정부도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할 책무가 있다. 김 제1비서의 비핵화 발언과 군사회담 제안에 “의미 없다”며 일축하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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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1980년대 중반. 반군인 무자히딘과 맞붙은 소련군 전차부대 지휘관이 휘하 부대에 진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20여대의 전차 가운데 움직인 것은 5대에 불과했다. 전투는 소련군의 패배로 끝났다. 조사 결과 움직이지 않은 전차는 겉만 멀쩡했을 뿐 핵심 부품이 없었다. 장교와 병사들이 부품을 팔아먹은 사실도 드러났다. 무자히딘은 전략의 일환으로 소련군에 마약을 공급했는데, 중독된 장교와 병사들이 마약을 구입하기 위해 전차 부품을 빼돌린 것이다.

한국군도 아찔한 순간을 가끔 경험한다. 2014년 10월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 해군 유도탄 고속함이 포를 쐈지만 포탄이 날아가지 않았다. 포가 불량품이었던 것이다. 그사이 북한 경비정은 유유히 빠져나갔다. 며칠 뒤엔 경기도 연천면사무소에 북한군이 쏜 고사총 탄환이 떨어졌다. 대북전단 풍선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군의 대포병 레이더는 먹통이었다. 군은 3시간 뒤에야 탄피를 발견하고는 뒤늦게 북에 경고사격을 했다. 디지털 장비가 작동하지 않으니 아날로그 방식으로 대처한 것이다. 당시 장비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큰 싸움으로 번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숨이 나온다.

북한 무수단 추정 미사일 발사_경향DB

결정적인 순간에 군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 것만큼 황당한 일도 없다. 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일이다. 장병의 목숨과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군 장비 미작동은 장비 자체의 결함 탓인 경우가 많다. 방산비리의 결과일 터이다. 장비 관리 부실의 산물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군이 단단히 고장 난 결과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북한이 지난주 무수단 미사일을 3차례 발사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사정거리 4000㎞로 괌까지 타격이 가능하다는 미사일이 발사 후 공중폭발하거나 추락했다. 30기가 채 안되는 값비싼 미사일을 열흘여 만에 3기나 잃었으니 심각한 전력 손실이라 할 만하다. 실전 배치 10년이 지난 미사일인데 이런 중대 결함이 드러난 북한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핵탑재가 가능한 미사일을 발사해 6일로 예정된 제7차 당대회를 빛내려던 북한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것 같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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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그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대북 규탄 선언문이 채택되자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고 버림받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 한국 등 26개국이 가입한 안보협의체 CICA는 선언문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거론하며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중국이 의장국이었고 캄보디아 등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들이 CICA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상당한 외교적 성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윤 장관의 발언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북한이 각종 도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북·중관계가 시진핑 체제 들어 전례없이 냉각된 것도 맞지만 중국이 북한을 버렸다고 보는 건 무리다. 예컨대 지난달 중국의 대북 수입액은 1년 전보다 13%, 대북 수출액은 16% 증가했다. 시진핑 주석이 CICA 개막식에서 “한반도에서 전쟁과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언은 북한만 겨냥한 경고가 아니다. 연합군사훈련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한·미에 대한 불만도 표출한 것이다. 이번 대북 규탄 선언문에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지한다”는 부분이 포함돼 있으며 어제 중·러 외교장관들도 한·미를 향해 6자회담 재개를 촉구했다. 이 모두가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여전히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송강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_연합뉴스

다음달 북한의 노동당 7차 대회를 앞두고 5차 핵실험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지만 한·미 양국은 제재 강화 방안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윤 장관의 발언도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 자신의 외교적 성과를 자화자찬하는 것일 뿐 북한의 도발 욕구를 억제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 오히려 핵개발을 진전시키고 장거리 로켓 능력을 고도화해 왔다. 강력한 제재는 북한에 핵개발의 명분을 제공하고 내부 결속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응징과 국제적 고립을 목표로 삼는 외교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윤 장관은 북한 고립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윤 장관은 이 시점에서 다시 자문해 봐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북한을 고립시키고 버림받도록 만든 것을 자신의 외교 치적으로 내세울 것인가. 아니면 북한을 국제사회 일원으로 참여시켜 변화로 유도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성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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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리는 미국 방문 시 이동이 제한된다. 두 나라가 미수교국가이기 때문이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외교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대표부에서 반경 25마일 이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그 바깥으로 나가려면 국무부 허가를 얻어야 한다. 따라서 미국이 허가를 내주면 그것은 단순한 여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북한 측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알아보려고 일부러 여행허가를 신청하기도 한다.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북한 조명록 전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사망)과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특별 대우를 받았다. 조 총참모장은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고 ‘북·미공동코뮈니케’를 발표했다. 방미 기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 등 핵심 관리들과 만났다.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 지속가능 개발목표 고위급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_AP연합뉴스

북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담은 2007년 ‘2·13 합의’ 직후 방미한 김계관 부상도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미국 측은 김 부상이 활주로에서 따로 내려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게 배려했다. 취재진이 오토바이를 타고 김 부상이 탄 차량을 추적하자 아예 고속도로 전체를 봉쇄해 접근을 막기도 했다. 뉴욕 맨해튼의 한 식당에서 오찬을 한 뒤 걸어나오는 김 부상을 선글라스를 낀 미 정부 경호요원이 밀착경호하는 사진은 외신에서 인기를 얻었다. 김 부상은 당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 등 미국의 대북정책을 결정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 미국 언론은 이를 두고 ‘화려한 외출’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북한 관리에 대한 미국의 대우는 북·미관계와 비례한다. 미국은 지난 20~24일 뉴욕을 방문한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행동 반경을 유엔본부와 호텔과 북한대표부 건물로 제한했다고 한다.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은 이 조치가 북한의 23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에 대한 보복 성격이라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이 때문에 동포간담회 등의 일정을 소화하지 못한 채 미국을 떠났다. 미국을 속 좁다고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분란을 일으킨 북한 정권의 책임이 너무 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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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그제 동해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1발을 기습 발사했다. 올해 초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도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각종 미사일 발사와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에 이어 이번에 잠수함에서 은밀히 발사되는 최신 무기를 시험한 것이다. 정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라며 “긴밀한 협력하에 유엔 안보리 등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지난 21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2030 유엔 지속가능개발 목표 고위급회의 연설’에서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종식시킬 것을 요구한다”며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나,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다음달 36년 만의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내부 결속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5차 핵실험이 당대회 전 현실화할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계속 고조시키는 것은 고립을 심화시키고 국제사회의 응징이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또 북한의 멈출 줄 모르는 도발은 주변국들의 대북 강경 조치는 물론 정세 불안을 불러온다. 벌써 북한의 추가 핵실험 시 한·미·일이 대북 원유 수출을 전면 차단하는 유엔 안보리 제재를 추진하기로 했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온다. 한반도 정세가 이 지경에 이른 건 민생 개선을 외면하고 핵개발에 집착하는 북한 탓이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이 북한만의 몫은 아니다.

북한, 잠수함 미사일 시험발사 모습 공개…김정은 참관_연합뉴스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선 획기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리수용 외무상이 23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한국과 군사훈련을 몇년 만이라도 중단하면 북한도 핵실험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의 이 같은 제안이 처음도 아니고 한·미 양국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뻔히 알면서 반복했다는 점에서 추가 핵실험을 위한 명분 쌓기용 성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1992년 1월 노태우 정부의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발표를 전후해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던 역사가 있다. 당시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 가입과 핵사찰 수용도 전격 결정했다. 정부는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유예나 규모 축소 같은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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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의제 선점 능력이 탁월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본능과 신념에서 비롯된 이 정치 행태를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집권여당이 뒷받침했다. 통일대박론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거쳐 노동개혁에 이르는 길에서 볼 수 있듯이, 적과 동지를 가르는 이분법의 정치에서 박근혜 정부의 실력은 여실히 발휘됐다. 의제 선점만큼이나 국면전환을 위한 의제 변경에서도 그 실력은 출중했다.

그러나 국가의 일보다는 정치적 지지의 확보를 그 목적으로 했던 박근혜 정부의 정치는, 4·13 총선이 낳은 여소야대로 치명상을 입었다. 정책적 실천이 결여된 감성자극적 말의 놀이가 생산한,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다.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주체가 불일치하는 분점정부의 효과는, 다수가 된 야당의 의제 설정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야당들이 마치 보수세력처럼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수익성의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먼저 의제화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첫 분점정부를 탄생시킨 1988년 4·26 총선 이후 ‘3김’의 ‘혁명평의회’(1989년 2월21일 경향신문의 기사에 등장한 용어)가 전두환 정권의 심판을 의제화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입법권력을 장악한 야당이, 정파적 다툼의 증폭으로 정책적 실천이 난국에 직면하는 것보다,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여야협력을 선호한 결과다. 소수여당의 대응은, 기업의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의 연계, 그리고 여야와 정부가 만나는 협의체 구성이다.

분점정부의 정치문법이 ‘적절히’ 작동하면, 여야의 협력을 통해 정치지형이 중도로 수렴하게 된다. 여야협력은 서로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상호조정을 의미한다. 분점정부의 긍정적 효과가 말의 상찬을 넘어서려면, 의제의 교환이 산출하는 상승효과가 있어야 한다. 여야협력은 기업 구조조정과 복지의 확대를 연계하는 전략을 실현가능하게 한다.

반면, 기업의 구조조정만큼 긴급한 과제이고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는 문제임에도, 야당이 침묵하는 의제가 있다. 바로 한반도의 평화다.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은 대통령 선거와 달리 총선의 쟁점이 아니다. 총선에서도 관행처럼 북풍의 동원이 있었지만 여당에 유리한 선거결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두 야당이 안보쟁점에서도 중도로 이동한 것이 북풍을 무력화한 요인이었을 수 있다. 북한이 핵능력을 급속히 증강하고 있는 국면에서 야당의 침묵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제재를 포함한 강압정책에 대한 동의로 읽힐 수 있다. 야당이 과거의 햇볕정책으로 회귀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 지속가능 개발목표 고위급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_AP연합뉴스

핵을 가진 북한을 교류협력이란 장거리 경주를 통해 비핵화로 유도하는 길은 국내정치적 지지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야당은, 강압정책의 목적이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 비핵화에 있는 것이라 한다면,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가지고 박근혜 정부와 협상해야 한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결의 2270은 대북제재의 목적을, 49항에 “대화를 통한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의 촉진”과 “긴장을 악화시킬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삼감”으로, 50항에 “6자회담의 재개”, “검증가능한 비핵화”와 “미국과 북한의 상호 주권존중과 평화적 공존”의 내용을 담은 “9·19공동성명 지지”로 명기하고 있다.

2005년 6자회담에서 만들어진 9·19공동성명의 핵심은,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교환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건설은, 한국전쟁 종료 이후 정전협정에 의거해 개최된 1954년 제네바회담부터 1990년대 후반의 4자회담과 2000년대의 6자회담을 관통하는 의제다.

북한이 비핵화로 들어선다면, 평화를 제도화하는 평화체제를 논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비핵·평화체제’를 분점정부의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 우연이겠지만, 민주화 이후 첫 분점정부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휴전협정을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그 전까지 북한이 전유했던 평화체제란 의제를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불온한 상상력이지만, 민주화 이후 첫 분점정부는 역대 어느 의회보다 민주적이고 효과적이었지만, 정치공학적 계산과 북한문제를 빌미로 한 보수대연합으로 붕괴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성장과 복지를 한 쌍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당의 기획은, 한반도의 비평화 때문에 반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평화는 성장과 복지의 기초다.


구갑우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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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 북한이 핵개발을 취소하고, 경제가 붕괴할 것으로 정말로 믿고 있는 걸까. 정부의 대북전략은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하에 수립된 걸까. 이를 의심할 만한 관측 두 가지를 소개한다. 우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4년 탈북한 146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하루에 세끼를 먹었다’는 응답률이 86.9%, 그것도 쌀로만 세끼를 먹었다는 응답자가 61.4%였다. 육류도 ‘일주일에 한두 번 먹었다’는 응답이 30.8%, ‘거의 매일 먹었다’는 22.6%였다. 북한을 등진 탈북자들의 절반이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고기를 먹었다는 증언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통념을 깬다. 연구원이 매년 실시해온 탈북자 조사를 보면 북한의 식량난은 해소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평가다.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 사정에 정통한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가 지난해 12월17일자 동아일보에 쓴 칼럼의 한 대목이다. “진짜 문제는 김정은에게 A학점을 주는 북한 주민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중략) 바로 엊그제 통화한 북한 주민도 ‘과거라면 10년이 걸릴 변화가 요즘은 1년 만에 이뤄지고 있다’며 좋아했다.” 정부가 그려온 김정은 정권의 이미지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북한 전문가들은 농민과 생산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경제시스템이 개편된 것이 변화를 이끈 것으로 분석한다. 2012년 협동농장 단위 인원을 1~2가구로 나누고 수확량의 30%를 자유처분하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한 것이 생산력 증대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정권이 대형 유통센터를 속속 조성하며 시장을 양성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물가는 현재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런 분석들은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지난 8년간이 북한경제에서 중대한 국면전환의 시기였음을 시사한다. 이제 북한은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단계를 벗어나 상호호혜적인 협력대상 수준으로 경제가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변화상이 좀처럼 부각되지 않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뉴스와 천안함 침몰사고, 연평도 포격이 우리 시야를 좁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단절로 정보원이 감소한 데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이 취사선택돼 유통됐을 가능성도 있다.

노동신문이 보도한 함경북도 군중대회 모습_경향DB

북한의 8년에 걸친 변화와 함의를 숙고하지 못한 한국 정부는 대북강경 정책으로 일관했고 급기야 ‘공단자금이 핵개발에 쓰인다’는 근거 없는 논리로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대실책을 저질렀다. 남북관계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작성되던 1990년대 초반은커녕, 7·4남북공동성명 이전으로 후퇴했다.

남북관계 단절은 한반도 평화에만 마이너스가 아니다. 벼랑으로 몰린 한국경제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 더 안타깝다. 계획대로라면 800만평의 공단에 2000여개의 기업이 매년 500억달러 이상을 생산하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됐을 개성공단은 이명박 정부 이후 개발이 중단됐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월 15만원의 급여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만한 양질의 노동력을 구할 수 없다”고 증언한다. 동남아에 비해 물류와 마케팅 비용도 거의 공짜다. 공단개발이 순조로웠다면 봉제, 전기전자, 기계금속은 물론 첨단기업도 진출했을 것이고, 남북은 경제공동체에 한발 더 다가갔을 것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대로 북한지역인 강원도 안변에 조선(造船)단지가 조성됐다면 조선업이 지금처럼 위기를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북긴장은 민생에도 마이너스다. 매년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쏟아붓고 있지만 ‘안보장사꾼’들이 끊임없이 내놓는 출처불명의 정보에 국민은 공포에 시달린다. 그 결과 복지에 쓰여야 할 재원이 군비로 들어가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한편으론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의 방산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과연 이런 현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민심은 총선을 통해 남북관계를 대결 일변도로 몰아간 박근혜 정부에 레드카드를 줬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기업인과 노동자, 그 가족이 등을 돌린 것도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빈사상태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대북태도를 바꿔야 한다. 남한의 기술·자본,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이 결합한다면 경제 재도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착륙의 기회는 확보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개성공단의 재가동이다. 오늘은 공단이 중단된 지 2개월16일째 되는 날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서의동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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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 외교의 끝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한·일 양국 정부의 12·28 합의로부터 100일이 지나고 있다. 합의 직후부터 여론은 극명하게 갈렸다. 한국 정부로서는 최선의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굴욕적인 합의였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합의문의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들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반대 행동에 나섰다.

그래서일까. 1월13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 어디에서도 위안부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합의 이후의 미래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오로지 기자와의 약속된 질문에 “현 상황에서 최상의 것을 받아내 제대로 합의되도록 노력한” 결과라고 답변했다.

일본 정부가 ‘군의 관여’를 인정한 후 ‘책임’을 표명했고, 총리가 사죄와 반성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으며, 정부에서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의 예산을 출연하기로 약속했다는 점을 들어 한국 정부로서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 것이다.

외교부는 이러한 입장을 홈페이지를 통해, 그리고 2월에는 팸플릿을 발행해 여러 비판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옹호했다. 그 핵심은 12·28 합의가 피해자 개인의 존엄과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들은 고통을 위로받지 못했다며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심지어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정부가 발견한 자료 가운데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음에도, 정부는 그동안 준비해 온 백서와 보고서를 감추기 바빴다. 한국 정부가 생존 피해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들은 제2의 가해일 뿐이다.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뒤로 위안부 문제 합의 폐기를 주장하는 글이 붙어 있다_연합뉴스

외교부는 팸플릿에서 앞으로도 전시 성폭력 등 보편적 가치로서 여성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해 국제사회의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월 스위스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일본 심의에서 일본 측 대표가 위안부를 강제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발언했는데도 한국 측에서 반박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없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여성가족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은 인권에 관해 발언하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제회의에서 합의문을 평가하려는 한국 측 학자의 연설이 취소된 일이 있었다.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했는데 정부가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는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외교 보호권을 스스로 포기한 대응이다.

정부는 틈만 나면 역사의 교훈을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의 사회교과서 역사 영역에서 교육부의 편수용어인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을 빼버렸다. 지난 3월18일 검정을 통과했다고 발표한 일본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강제적’이란 표현은 없었다. 대부분 ‘전장에 보내졌다’는 표현에 그쳤고,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소개하는 내용은 대폭 늘어났다. 양국 모두 피해와 가해의 기억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신주백 | 연세대 HK 연구교수



12·28 합의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역사성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주권을 방기하고, 미래 기억을 약화시켜 왔다. 심지어 비판을 옥죄어 민주주의를 훼손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국내에 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것뿐이다. 재단의 피해자 지원 이외에 무언가를 할 생각이 있는지 걱정이다. 차라리 1엔만 받겠다고 했다면 국가의 위신과 국민의 자존심이라도 세웠을 텐데. 국제적으로는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 북한을 더 세게 압박하고 있다. 한·일 협력으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안정시키고 있지 않다. 오히려 남북한 대결 구도를 강화하며 역사적 정체성의 뿌리를 흔들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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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의 정상들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 이행을 강조했다. 그러나 각론에서는 한·미·일 3국과 중국 간 대립 구도가 여전했다. 북핵 해결 논의의 장이 되어야 할 핵안보정상회의가 국제 갈등을 고착화하는 무대가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미·일과 중국의 대립각은 북핵 해법이 다른 데서 기인한다. 중국은 안보리 결의의 충실한 이행을 다짐하면서도 대화를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6자회담 틀 내에서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제재에 주력해야 한다는 3국과 입장이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_경향DB

3국이 먼저 3국 정상회의와 한·미 등 양자 정상회담을 연 뒤 각자 중국과 양자 정상회담을 가진 것 자체가 모양이 좋지 않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3국이 중국을 협공한다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의 폭발성도 재확인됐다. 시 주석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단호히 반대한다”고 사드에 대한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 문제를 협의 중인 한·미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한· 미·일과 중국의 대립 구도는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를 약화시킬 것이다. 대립이 심화되면 한·미·일과 북·중·러 간 신냉전구도로 옮겨갈 수도 있다. 신냉전구도에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에 앞서 이 대립 문제부터 푸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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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결과가 발표되었다. 2017년부터 주로 고교 1학년생들이 사용하는 사회과 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한다. 상당수 교과서에서 “연행”이 “모집”으로, “끌려갔다”가 “보내졌다”라는 표현으로 바뀌고 “군”이 관여했다는 내용이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항의” 혹은 “규탄”이라는 표현 대신, 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못마땅하거나 분하게 여기어 스스로 한탄한다는 “개탄”이라는 단어로 독도문제에 응대했을 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곡된 역사관”이라는 표현 속에 위안부 문제도 들어있다고 변명하거나, “4년 전 검정에 비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분량이 늘었고 고노 담화 내용이 상세하게 쓰여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도 있다”는 주객이 전도된 평가까지 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 12월28일 한·일합의 내용을 볼 때 사실상 예견된 측면이 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책임”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회피한 채,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함”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 자체를 미리 봉쇄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한 국가에서 남의 나라 검정제도를 탓할 수도 없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해도 언론의 보도 태도는 문제가 있다. 상당수의 한국 언론들은 이번 교과서 검정결과가 “한·일합의 위배”라고 진단하고 “합의정신에 맞게” 위안부 내용을 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위안부 합의의 바탕에 깔린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반성의 자세를 일관되게 가질 것을 거듭 요청”하는 황당한 자세마저 보이고 있다.

필자는 이번 교과서 검정결과가 역설적으로 한·일합의 “내용”과 “정신”을 명확히 드러냈다고 본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당사자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양국 간 정치적 합의에 불과했다는 사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일 관계개선의 걸림돌로 규정함으로써 “발전적 미래”를 위한 “걸림돌”을 치울 책무도 한국정부 스스로가 떠안았다는 사실, 쌍방 간 외교적 성과라 내세우는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란 과거사와 연관된 모든 책임으로부터 일본을 자유롭게 해준 대신, 저항하는 한국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공식적 식민지 종식 이후에도 지속되는 식민성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직시하게 되었고, 식민청산의 어렵고도 험난한 길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상실한 ‘자기모순적’이며 ‘굴종적인’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의 현주소도 확인했다.

한국정부와 언론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 지속될수록 이를 대면하고자 하는 도덕적 행위자들 또한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한·일합의 이후, 한국의 당사자들과 시민사회는 지금까지 여러 경로와 방법을 통해 그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합의 자체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 시점에서 한국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출발선상에서 차분히 재검토하시기 바란다.

물러날 곳이 없다고 핑계 댈 필요가 없다. 외교적 결례라 말하지 말라. 물러날 곳은 이미 일본정부와 한국의 시민사회가 충분히 마련해 주었다. 자기기만과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마저 오만과 무지로 걷어찬다면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적 도발에 스스로 탄식만 할 수밖에 없는 종속적 위치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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