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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에 해당되는 글 234건

  1. 14:12:54 [사설]종전선언에서 비핵화로 가는 길 열렸다
  2. 2018.04.13 [정동칼럼]남북-북·미 정상회담 성공이 보인다
  3. 2018.04.12 [사설]한·미연구소 논란과 폐쇄가 남긴 것
  4. 2018.04.11 [이대근 칼럼]트럼프가 알아야 할 것 하나
  5. 2018.04.05 [사설]일본도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줄 알아야 한다
  6. 2018.04.04 [특파원칼럼]북·미 회담과 ‘협상의 기술’
  7. 2018.04.03 [조호연 칼럼]김정은의 ‘선물 정치’
  8. 2018.03.29 [사설]단계적 조치하면 비핵화 해결된다는 김정은
  9. 2018.03.28 [기고]김정은에게 ‘인내’를 설득하라
  10. 2018.03.27 [세상읽기]정상회담의 수로(水路)가 어떻게 열렸나
  11. 2018.03.23 [정동칼럼]역사의 전환점에서
  12. 2018.03.12 [아침을 열며]남북경협, ‘줄탁동시’의 지혜로
  13. 2018.03.12 [사설]북·미 정상회담 성공하려면 중·일·러의 협력도 중요하다
  14. 2018.03.12 [여적]제주도도 뛰어든 북·미정상회담 유치 경쟁
  15. 2018.02.20 [조호연 칼럼]트럼프, 노벨 평화상에 도전하라
  16. 2018.02.12 [아침을 열며]북한 아닌 북핵에 집중할 때
  17. 2018.02.12 [사설]아베 총리의 도 넘은 내정 간섭 발언을 규탄한다
  18. 2018.02.05 [사설]평화올림픽에 오는 아베·펜스의 비평화적 언행
  19. 2018.02.01 [사설]우려스러운 빅터 차 내정 철회와 트럼프 국정연설
  20. 2018.01.22 [정동칼럼]안팎의 훼방자들에 대비하라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최근 방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비핵화 등 핵심 의제를 조율하는 수준까지 진척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역시 열흘 앞으로 다가온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다룰 핵심 의제에 관해 적지 않은 진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남북한과 미국이 서로 교감하면서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남북한)은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말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한반도 안보 상황을 궁극적으로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검토,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전은 비핵화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실질적인 비핵화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남북한과 미국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 문제를 핵심 의제로 삼은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결정이다.

 

남북은 휴전협정으로 전쟁을 일시 중지한 상태이다. 항구적으로 전쟁을 중단하고 북한이 주변국과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종전선언에 이어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북·미 수교를 하기 위한 법률적·현실적 여건이 마련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논의 지지발언은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그 정도의 반대급부는 줄 수 있다고 제안한 셈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만 요구해왔을 뿐 그에 따른 보상조치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항복선언이나 다름없는 협상에 북한이 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고사하고 회담 개최 자체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이 체제보장에 관한 우려를 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종전 문제를 해결하려면 휴전협정의 또 다른 당사국인 중국의 참여와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18일 공개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계획 소식이 주목된다. 비핵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북·중관계 발전은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거쳐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를 도출하고,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 실천을 촉진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KHross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는 모든 사람들의 질문일 것이다. 성공을 위해선 무엇보다 현재의 극적인 상황전개는 지난 사반세기의 데자뷔가 아니라는 분명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 국면은 북핵 문제 자체부터 해법, 그리고 이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구도까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한마디로 ‘판’ 자체가 바뀌고 있으며, 따라서 성공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북핵위기의 장기화로 인한 현실의 경로의존성만큼이나, 판단 역시 같은 함정에 빠져있을 경우 절호의 기회에서도 실패할 수 있다.

 

성공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첫 번째 근거는 북한의 변화다. 북한은 지난해 말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대외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 결과 대화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2년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후 비핵화에 관련된 어떤 협상도 거부해왔는데, 지금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 25년간 불신구조 속에서 협상의 불리함을 느껴왔다. 즉 한·미 양국의 제재-보상의 가역성에 비해 핵개발 중단-재개는 상대적으로 훨씬 비가역적이므로 불리했지만 이제는 가역성을 확보하였다. 둘째, 생존을 위해 개발한 핵이 최후까지 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얻었다는 측면이 있으나, 동시에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초래함으로써 재차 생존이 위협받는 전형적인 ‘핵보유의 딜레마’를 겪게 되었다. 셋째,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핵의 성공을 먼저 이룬 후 경제로 간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한데, 집권 이후 일관되게 부유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김정은의 약속과도 연결된다. 이 3가지를 종합하면 북한이 생존을 위해 주변국의 반대와 압박의 천신만고 속에서도 개발한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보다, 체제생존을 확신할 만큼의 반대급부가 주어진다면 포기할 수도 있다는 주장에 더 설득력을 부여한다. 더불어 제재와 압박이 어느 정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객관적 지표로도 북한이 당장 제재로 인해 위기상황은 아니라는 점에서 막다른 골목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미국의 변화인데, 단연 트럼프가 핵심이다. 트럼프야말로 지난 25년간 없었던 변수로서 불예측성의 ‘트럼프 리스크’가 남아있지만 기존 사고와 방법론을 뛰어넘는 파격은 역설적으로 빅딜 가능성을 높인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로서는 안팎으로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은 전세역전을 위해 놓칠 수 없는 비장의 카드다. 한국 특사단이 방미했을 때 전한 북한의 메시지를 전격적으로 받은 이유다. 과거의 점진적 방식을 거부하고 임기 내에 일괄타결방식(one-shot deal)을 위해 통 큰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숨겨진 동기가 또 있다. 트럼피즘의 저변에 깔린 백인인종주의는 오바마케어, 파리기후변화협약, TPP, FTA, 이란핵협상 등 오바마의 모든 것을 뒤집어 왔는데, 북한 핵 문제는 오바마가 이루지 못한 것을 달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흑인대통령의 극복이라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가 이전과는 다르다. 한반도 평화정착의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인내와 뚝심으로, 그리고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천재일우의 계기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냈다. 진보정부 10년의 시행착오를 통해 실용성과 용의주도함을 배웠고, 보수정부 9년을 통해서 반면교사로 대화와 협상이 유일한 해법임을 절감했다. 또한 북핵 해결에 있어 한·미 공조의 필수성과 북·미 타결의 중요성을 이해하였기에 한·미 입구론→남북 경유론→북·미 출구론의 바람직한 방향을 택하고 있다.

 

남·북·미 핵심 3자 행위자의 변화 이외에도 현 구도의 차이점은 매우 두드러진다. 이전과는 달리 최고위급의 결단에 의한 톱다운 방식으로 가고 있는데 북핵 문제의 성격상 최고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과거 6자회담의 틀 내에서 세분화된 단계의 완성이 되면 마지막으로 핵폐기 단계에 진입하는 점진적 방식과는 달리 큰 틀에서 합의한 다음 단계적 이행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 종합할 때 4월27일 남북정상회담과 5월 말 또는 6월 초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능한 최선의 결과는 무엇일까?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다짐과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북·미 회담의 ‘길잡이’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임기 내 또는 2020년 5월 말(또는 6월 초)까지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확실한 체제보장의 맞교환 완성을 약속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것이다. 이후 2년간은 이행의 단계적 과정이 되겠지만 과거와는 전혀 다른 속도전이 될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Posted by KHross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지난 12년 동안 운영되던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대학원(SAIS) 내 한·미연구소가 한국 정부의 예산 지원 중단 조치에 따라 다음달 문을 닫는다고 대학 측이 밝혔다. 한·미연구소 논란은 당초 국내 보수언론들이 한국 정부가 연구비 지원을 앞세워 보수성향의 구재회 한·미연구소장을 교체하려 한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재인 코드에 맞추려 소장 교체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은 연구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됐는지의 문제로 초점이 이동했다.

 

우선 이 연구소가 한국 정부로부터 연간 약 20억원씩 모두 200억여원을 지원받았지만 연구 실적이 미미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장 중요한 연구 실적인 연구보고서가 2015년 이후부터 나오지 않았고, 특별보고서도 2016년 8월 이후 없었다는 것이다. 순수 연구비와 한국학 학자 양성 등 핵심사업에는 예산의 4분의 1도 쓰지 않으면서 인건비가 56%나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국내 유력 정치인들을 연구원으로 초빙하거나 한국인들의 미국 방문 시 행사를 주최하는 데 치우쳤다고 하니 공공외교를 강화한다는 당초 목적에 부합했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 연구소는 결산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정부의 요청에도 한두장짜리 결산보고서만 제출하는 등 무성의하게 대응했다. 지난해에는 국회가 예산 투명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요구하는 부대의견을 달고서야 지원 예산이 통과됐는데 이마저 거부했다.

 

이런 연구소의 기능과 역할의 문제는 외면한 채 연구소장 교체만 주목한 언론들의 문제 제기는 도를 지나쳤다. 이들은 대학 측 인사들의 일방적인 주장에만 귀기울이면서 ‘문재인 정권판 블랙리스트’라는 말까지 썼다. 한국을 잘 아는 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 이사장이 문제제기를 했으니 의심은 할 수 있었겠지만 정부 비판을 위해 일부러 사실관계를 도외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정부의 세련되지 못한 대응도 아쉽다.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11일 한·미연구소 측이 정부 보조금과 기부금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게 논란의 핵심이라고 했지만 이것으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청와대 행정관의 석연찮은 역할과 국책 연구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규명해야 한다. 효과적이고 투명한 해외 연구지원과 공공외교 강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Posted by KHross

김정은·트럼프 간 북·미 정상회담이 하루하루 다가오지만, 김정은이 핵폐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릴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체제보장을 해주면 정말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까? 하나의 체제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불가침 조약, 평화협정? 
 
우크라이나에서 핵폐기 논의 때 군과 보수파는 러시아 위협을 들어 핵폐기를 반대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미국·영국과 함께 안전보장 각서를 체결했다. 핵이 폐기됐다.

 

그리고 7년여 지난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역사는 조약 협정을 맺고도 전쟁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협정 이상이 요구된다. 항구적인 평화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법제도, 정책, 질서의 총체, 즉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체제보장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김정일 시대에도 비핵화-체제보장(평화체제)을 위한 협상이 있었지만 김정일은 평화 대신 핵을 선택했다. 김정일의 시각에서 평화체제는 체제보장책이 아니다. 체제불안 촉진책이다. 평화가 북한 내부로 스며들면 비평화체제인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고 김정일은 믿었을 것이다.

 

그때 북한은 ‘우리 체제는 우리가 보장하는 것이다, 미국이 보장해준다는 건 가소로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이게 체제보장의 본질이다. 김정일처럼 자기 통치에 불안감을 느끼면 외부의 체제보장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그가 정권 안정을 확신하지 못하면 한·미가 비핵화-체제보장 교환 로드맵을 아무리 정교하게 짠들 소용없다. 협상 국면을 공허한 논리 대결과 제자리를 맴도는 소모적 논쟁의 수렁에 빠뜨리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지금 세계가 김정은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가 아버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노심초사한 김정일과 달리 자신감에 찬 김정은은 북한을 확 바꿔 놓고 있다. 김정일은 정권 붕괴 걱정에 선군정치를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선군정치 정당화의 근거를 무너뜨렸다. 조선인민군 창건일을 김일성 유격대 결성일인 1932년 4월25일에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게 1948년 2월8일로 옮긴 것이다.

 

인민군에 덧씌워진 항일 혁명 전통의 계승자라는 신화의 베일을 걷어내서 보통 군대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조치였다. 선군정치의 제도적 장치이자 상징이었던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했다. 선군정치는 껍데기만 남았다. 선군정치의 거품을 뺀 김정은은 지난 9일 당 정치국회의 내용을 하루만에 공개하는 등 정치를 정상화했다. 김정일의 은둔 통치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정책도 다르다. 김정일은 2002년 경제 활력을 위한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도입, 안팎으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체제안정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나머지, 3년 만에 그만두었고 결국 경제난이 심화됐다. 반면 김정은은 과감한 시장 요소를 도입했고, 경제 상황을 개선시켰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통제·빈곤·부족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북한-은 사실 김정일의 작품이다. 북한에서도 1960년대까지 김일성 시대는 좋은 시절, 1970년 이후 김정일 시대는 나쁜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그 때문에 김정은이 가히 살부(殺父)의 정신으로 김정일 시대의 나쁜 기억을 지워나가는 것일지 모른다. 아버지가 빈말로 하던 광폭정치도 그가 실천하고 있다. 북한 내 정권교체와 다를 바 없다. 김정은이 핵 문제에 대해 김정일과 다른 계획을 갖고,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 근원은 외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변화 가능성을 지닌 체제로의 전환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김정일 시대에는 실패했던 비핵화-체제보장이 김정은 시대에는 가능해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트럼프도 체제 변화가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면 북한의 시간 벌기라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아직도 김정은에게서 김정일을 보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의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의 핵폐기 결단이 임박했다고 예단해서도 안된다. 핵폐기는 북한 내부의 변화로 충분하지 않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카드를 보고 결심할 것이다. 역시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고 뒤로 물러설 수도 있고, 아버지가 못 이룬 위업을 달성할 수 있겠다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핵폐기는 김정은·트럼프 두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공동작품이다. 우리는 분단 70년 만에 낡은 냉전의 섬에서 탈출해 한반도 평화를 손에 쥘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 우리가 왜 트럼프가 잘하기를 빌지 않겠는가?

 

<이대근 논설주간>

Posted by KHross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가 진전되고 있지만 일본의 처신은 탐탁지 않다.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이 소외되는 이른바 ‘재팬패싱’ 우려가 커지면서 아베 신조 총리 등이 전방위 외교에 나섰지만 무리한 요구와 부적절한 언동으로 되레 반감만 사고 있다. 아베 총리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전 일본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답이 없지만 남북정상회담이 불과 3주일여 남은 점을 감안하면 그 이전에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관계와 비핵화에 미칠 영향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의 요청은 외교 무례에 가깝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4일 (출처:경향신문DB)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언동도 문제다. 그는 지난달 31일 “북한이 새 핵실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은 거짓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38노스’가 “그런 움직임은 없다”고 발표하자 “북한에 대해 공개된 정보를 보면 핵실험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며 물러섰다. 증거도 없이 북핵 우려를 키우는 무책임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일본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과 중거리미사일 포기 약속을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삼아달라고 미국에 요청한 것이나 무작정 북한에 북·일 정상회담을 타진한 것도 정상적인 외교로 보기 어렵다.

 

일본은 한반도 주변국으로서 북핵 해결 등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 하지만 실제 처신을 보면 그 반대로 보인다. 이런 행태는 일본의 국익에도 반하는 것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도 소망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팬패싱만 해도 아베 정권이 국내 ‘극우정치’에 북핵 문제를 활용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대북강경책을 고수하다 남북 및 북·미관계 급진전 움직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성찰하지 않고서는 재팬패싱 현상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중시하는 납치 문제도 비핵화의 진전 여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침 고노 외무상이 다음주 한국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고노 외무상은 서울에 와서 한반도 평화가 일본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지 깨닫기 바란다.

 

Posted by KHross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절친 데니스 로드맨은 지난해 여름 평양을 방문했다. 로드맨이 가져간 선물 가방에는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저서 <협상의 기술>이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5월에 열릴 예정이다. 김정은은 <협상의 기술>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트럼프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까.

 

트럼프는 말한다. “가장 좋은 것은 힘의 우위에서 협상하는 것이다. 레버리지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트위터에선 자신의 책 내용을 이렇게 인용했다. “레버리지. 그게 없다면 협상을 하지 마라.” 트럼프는 전례 없이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레버리지로 여긴다. 김정은이 대화를 먼저 제안한 것도 최대의 압박 정책 때문이란 게 백악관의 판단이다. 새라 허커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최대의 압박 작전 덕분에 오랜 시간 처음으로 미국이 약자가 아닌 강자의 입장에서 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 후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고, 남북관계도 급진전되고 있다. 트럼프로선 한국과 중국이 대북 압박 공조에서 벗어나 김정은의 숨통을 터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지난달 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안에 대한 서명을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미룰 수 있다”며 압박했다.

 

“뭔가 비범한 것을 요구하라.” 트럼프는 1980년 재선에 실패한 지미 카터를 만난다. 카터는 도서관 건립을 위해 모금운동 중이었고, 트럼프에게 당시 500만달러를 요구한다. 트럼프는 어이가 없었지만 카터가 왜 대통령이 됐는지는 알게 됐다고 말한다. “카터는 대통령 자격이 없었지만 보통을 넘은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용기, 배짱, 남자다움이 있었다.” 트럼프가 무리수를 두는 데는 다른 목적이 있다. 모든 수입 철강에 일괄적인 폭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한국이나 멕시코 등과의 개별 무역협정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카드였다. 북·미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는 예상 밖의 카드를 꺼내 놓으며 관련국들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

 

트럼프는 “가끔은 대결이 유일한 선택일 때가 있다”며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겁먹지 마라. 너의 입장을 고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당당하게 서 있으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유연성의 중요함을 인정한다. “나는 또한 유연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한다. 절대 하나의 목표나 하나의 접근법에 집착하지 않는다.” ‘화염과 분노’ 경고를 접고 전격적으로 협상을 택한 이상 과감한 타협으로 성과를 내려할 것이란 관측도 많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만큼 핵무기를 미국으로 실어나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의 무력화만 달성해도 타협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언제 테이블에서 걸어 나올지를 알아라.” “협상에서 범할 수 있는 가장 잘못된 행동은 협상 타결에 절박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트럼프는 최근 김정은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잇따라 표시하면서도 협상 결과가 “좋지 않다면 걸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강조한 협상의 기술 중 하나는 기대보다는 부정적 결과에 대비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최악을 예상하면서 협상에 임한다. 최악에 대비하면, 최악의 결과와 함께 살 수 있고, 좋은 결과는 항상 스스로를 돌본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정권 교체를 주장해온 강경파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국무장관에 지명하고,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설파해온 네오콘 존 볼턴 전 유엔대사를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했다. 세기의 담판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협상 실패가 가져올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협상의 기술이 제대로 발휘돼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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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시진핑 주석에게 큰 선물이었다. 중국은 더 이상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지 않게 됐다. 시 주석으로서는 황제의전과 2억원짜리 마오타이주 선물이 아깝지 않을 터였다. 중국 언론의 ‘중국 역할론’ 대서특필에서는 ‘한반도 지분’ 복원에 대한 안도감이 엿보인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치밀하게 연출한 기획임에 틀림없다. 김정은은 용의주도하게 “나의 첫 외국 방문이 중국이 된 것은 너무도 마땅하며 조·중 친선은 나의 의무”라며 시 주석의 체면을 한껏 세워주었다. 방문 시점도 절묘하다. 중국이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 및 비핵화 논의에서 소외되고, 미국의 통상압박과 대만접근 문제가 불거지면서 원군이 절실하던 차에 김정은이 등장한 것이다.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주변 국가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점에 제공하는 이런 외교술을 나는 ‘선물 정치’라고 부르고 싶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베이징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은의 선물 대장에는 시진핑만 있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찌감치 이름을 올렸다. 정치적 궁지에 몰린 가운데 중간선거를 맞은 트럼프에게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표명은 가뭄 속 단비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설이 도는 것을 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조만간 수혜자가 될 것 같다. 한반도 주변국 정상 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만이 아직 선물을 받지 못했다. 북핵 문제를 극우정치의 동력으로 삼다가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타 정상들과 성격이 다른 점이 있다. 김정은과 국제사회를 연결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선물 정치는 북한 내부에서 비롯됐다. 북한 정권 탄생 이래 지도자와 엘리트층이 특권과 충성을 주고받는 구도로 운영돼왔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 민생은 들어설 틈이 없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집권 첫 공개 연설에서 “인민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번영을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처음에는 나이 어린 독재자가 우쭐해서 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후 그의 행보는 일관성이 있었다. 핵무기와 경제번영을 동시에 추구하는 핵·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했고, 선물 정치의 우산 아래서 거대한 부패자본가로 성장한 특권 집단에 철퇴를 가했다. 인센티브제와 장마당 활성화 등 잇단 경제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도 단행했다. 김정은이 선대 유산인 선물 정치에 종언을 고하고 민생 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현상이 점점 뚜렷해졌다.

 

아마 김정은이 내부 선물 정치에 안주해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면 북한은 흥하지도 망하지도 않은 채 겨우 생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의 북한이 아니다. 휴대전화가 500만대 이상 보급될 정도로 외부 정보에 노출된 북한 주민은 기아선상에서도 항의 한마디 못했던 부모 세대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공개 장소인 동평양대극장에서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따라 부르고 자신들의 삶이 척박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신세대다. 계기가 주어진다면 잠재적인 정치 불만세력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이 아니더라도 선물 정치가 한계에 부딪혔다고 판단했음직하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국가번영 목표를 버리고 핵무장을 하거나 비핵화하고 번영국가를 추구하는 것이다. 외견상 김정은은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선물 정치의 요체는 핵무장과 비핵화 두 가지다. 상충하지만 둘 다 있어야 선물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본질적 의문은 남는다. 핵무장 선언 직후 비핵화할 거였다면 애초 뭐하러 핵무장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그간의 광기 어린 핵개발 폭주와 위협적 언동을 돌아보면 이런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더구나 김정은은 아직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로는 충분치 않다.

 

물론 김정은이 비공개적으로는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가 미국 내에서 비핵화 의지에 문제제기가 나올 때마다 “진정성이 있다”며 김정은을 대변하는 점이 흥미롭다. 지금은 김정은을 믿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은 20여일, 북·미 정상회담은 두 달가량 남았다. 그의 진심과 전략을 확인할 시간도 머지않았다.

 

하지만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선물은 주고받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계속 주기만 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김정은의 비핵화 선물에 국제사회도 의미 있는 선물로 호응하며 한반도 평화를 엮어가야 한다. 김정은이 가장 원하는 선물이 체제안정이라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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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및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갈등으로 치닫던 북·중관계 회복과 한반도 비핵화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비핵화는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시 주석 면전에서 직접 육성으로 밝힘으로써 비핵화가 흔들림 없는 정책 목표임을 대내외에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달 초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 면담석상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지만 이후 한국과 미국 일각에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비핵화를 내세운 북한의 갑작스러운 대남, 대미 관계 개선 시도가 대북 제재를 피해 핵개발을 하려는 시간 벌기일 뿐이라는 우려다. 김 위원장이 이런 의구심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유사한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지난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베이징 _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또 북·중 정상회담에서 “남한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이 먼저 평화 실현 조치를 하면 비핵화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선(先) 조치, 후(後) 비핵화’ 방안은 향후 핵심 당사국들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의 핵포기를 주장할 뿐 이에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제안이 문 대통령의 일괄타결 방안과 조화될지도 주목된다. 비핵화의 길이 험난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비핵화가 필수적이라는 남북한과 미국의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향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견해차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 등을 단계별로 맞교환하는 해결책을 담은 9·19합의 등 비핵화 논의에 참고할 만한 기존 합의와 구상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진정성이다. 과거 북·미 간에 여러 차례 비핵화 합의를 하고도 번번이 깨진 것은 불신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중 정상회담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 상황에서 끼어드는 형국으로 갑작스럽게 열렸다. 이것이 새로운 변수가 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북·중관계 정상화는 일차적으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역시 비핵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영향력이 약화되는 이른바 ‘차이나 패싱’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중국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자국의 역할 확대를 미·중 패권 경쟁에 활용하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북·중관계 회복이 대북 제재의 끈을 헐겁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 나라가 관계 발전의 일환으로 경협 활성화를 논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대북 제재 강화가 아니라 정밀한 비핵화 로드맵 마련과 착실한 이행으로 풀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당사국인 중국이 남·북·미 간 관계개선과 비핵화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시점의 문제였을 뿐 불가피한 일이다. 일본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주변국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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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남북 간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던 시절 장관급회담을 포함한 각종 남북 간 교류현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경험은 핵 문제 관련 북한 대남사업 관계자들의 질문이었다. “1994년 제네바합의에서 2002년까지 지어주기로 약속한 경수로건설이 2002년 합의 파기까지 공정률이 얼마인지 아십네까?”(실제 공정률은 40%가 안된다), “2005년 9·19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날 미국이 취한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네까?” 자신들이 핵개발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입장, 즉 미국은 절대 신뢰 못할 존재라는 것이다.

 

지난해 핵미사일 실험에 ‘올인’하면서 한반도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키더니 금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신년사를 시작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김여정 특사의 방남, 우리 측 특사 방북 이후 4월 정상회담과 5월 북·미회담이 개최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강화된 유엔과 미국의 제재 때문에 결국 북한이 굴복하고 나섰다는 설명은 북한을 너무나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다. 제재압박이 전혀 무용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본질은 북한이 이젠 자신감을 갖고 대화모드로 전환해도 되겠다는 전략적 판단, 나아가 남쪽 문재인 정부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런 판단을 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아마도 2차례 정상회담의 대화내용을 숙독했을 것이다. 두 정상의 정치철학과 문재인 대통령의 삶의 족적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자신들 정권체제안보를 남쪽과 함께 논의해도 좋겠다는 판단이 섰으리라 생각된다. 역지사지 관점에서 북한이 핵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한 공감 표시, 나아가 우리의 책임도(사실은 미국이지만) 크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생각된다.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핵 없는 한반도 나아가 신뢰와 평화를 회복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자는 뜻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우리 측이 10·4선언과 2005년 정동영 특사가 북측에 약속했던 내용 등 그간 남북 간 합의된 사항들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제안하다면 북의 핵포기와 경제협력을 포함한 남북교류협력의 재개와 확대,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한 인도적 사안들도 어렵지 않게 합의에 이를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문제는 5월의 북·미대화에서 북이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임할 것인가가 관건이라 생각된다. 미국은 동맹관계인 한국의 입장과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란 점에서 북의 정상회담 제의를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심 선 비핵화 조건을 포기한 것이 아님은 여러 가지 징후에서 알 수 있다. 미국 주요 언론의 한반도전문가 기고문의 논점이나 신임 국무장관과 안보보좌관의 인물 면면을 들여다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 간 만남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핵포기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직접 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굴복은 죽음이라는 북의 핵정책과 대립될 것은 분명한 사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북·미대화에서 인내가 필요함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북이 원하는 평화체제 전환과 북·미수교를 위해 한국 정부는 각별히 노력할 것임을 약속할 필요도 있다. 물론 외교파트의 혼신의 노력으로 미국을 설득함도 필요하다. 이번 북·미회담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원칙적 선언과 구체적 프로세스는 6자회담에서 논의한다는 선에서 합의하면 어떨까. 사실 9·19공동성명 내용이 지켜졌다면 한반도는 비핵화, 나아가 진전된 남북교류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성원 한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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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모두 속전속결로 성사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 전에라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트럼프 특유의 쾌도난마다. 정 실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한 뒤 북·미가 만나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를 수용했다.

 

동석했던 트럼프 외교·국방 참모들 중 일부는 ‘괴짜 트럼프’의 도발적 결정에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보도가 됐다. 하지만 이런저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홍해바다를 가르듯 정상회담이라는 수로(水路)를 틀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용의주도하게 ‘거사’를 도모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트럼프 행정부와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조용히 북한 비핵화의 태엽을 감기 시작했다. 작년 4월 한반도 위기설의 여진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여기에는 북핵 문제를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념이 있었다. 미국의 고질적 대북 불신과 무관심 구조 속에서 김정은의 진의가 트럼프에게 전달되는 데 왜곡이 있을 수 있음을 간파,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자임했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워싱턴을 자극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관심을 끌어당기려면 핵 비확산체제를 흔듦과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완성’이 어쨌거나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위협을 느낀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는 군사적 방법을 통해 ‘체제변화 또는 붕괴’가 긴요하다고 판단했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정책’은 따라서 시간의 문제로 점차 인식되기 시작했다. 체제생존의 위협을 느낀 김정은은 발 빠르게 남한을 통한 적극적인 평화 공세(또는 ‘갈등적 편승 전략’)로 선회했다.

 

셋째, 국제사회의 계속되는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의 체제 내구성이 상당히 약화됐다. 한때 ‘사회주의 진영의 동방초소’로 불리기도 했던 북한으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때마침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체면도 구기지 않고 대화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셈이다. 한국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김여정이 올라섰다. 매파의 시각으로 보면 ‘불량국가’의 일시적 신분 세탁이다. 하지만 “기적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다”는 일본 외무상의 평가처럼 정상회담 개최는 분명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업적이다.

 

넷째, 문재인 정부의 영리한 대미외교가 주효했다. 한국의 공(功)은 최대한 낮추고, 대신에 잘 다듬어진 언어로 트럼프의 지도력을 한껏 치켜세운 외교술이 빛을 발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꼭 여기에 해당됐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사실상 설계자인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정의용 안보실장과 함께 미국으로 보낸 것은 동맹국에 대해 최대의 예우를 표한다는 의미 이외에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데 생길 수 있는 ‘해석의 구멍’을 메우는 한 수였다.

 

그렇다고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이 꽃으로만 장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교전·적대국 관계인 북·미, 남북 사이에 지뢰도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회의에서 “앞으로 두 달 사이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결과도 낙관하기가 어렵고 과정도 조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화로 포장된 길이 낭떠러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문 대통령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변이 없는 한 북·미 정상은 역사적 회담을 하게 된다. 김일성-김정일 때부터 자주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떡하든 미국에 접근하려고 했던 북한이었다. 궁핍한 자원 동원을 극대화하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해 온 김정은으로서는 트럼프를 마주하는 일이 대미외교의 백미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못다 한 꿈을 김정은이 이루는 셈이다. 결국은 미국이 일련의 정상회담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다. 자강(自强)과 균세(均勢)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협상가’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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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미국 대중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의 한 명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끝부분이다. 번역 오류라든가 프로스트가 매우 싫어했다던 평론가들의 해석논쟁은 접어두고 가장 광범하게 받아들여지는 의미를 새겨본다. 지정학의 저주로 불리는 한반도를 살아가는 한국은 외교에 있어 운명적 결정이 유난히 많다. 그래서 역사적 변곡의 시점이라고 느낄 때마다 자주 이 시가 떠오른다.

 

지금도 우리는 그런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하더라도 전쟁위기를 말했었는데 지금 대화와 화해를 말하고 있다. 황태덕장이 있었던 세찬 언덕바람의 혹한을 고스란히 받아냈던 평창 동계올림픽은 어렵게 평화의 온기를 만들어냈다. 아무도 감히 예상치 못했던 일이며, 트럼프의 당선만큼이나 정치학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온갖 조롱을 받던 ‘한반도 운전자론’이나 북한을 포함한 모든 관련국들의 외면을 받던 ‘베를린선언’은 불과 1년도 안된 일이다. 의심과 냉소 가운데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견지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이니셔티브는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기적처럼 다가온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기회 앞에서 우리는 다시 두 갈래 길 앞에 선 것처럼 분열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미국, 중국, 유럽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은 ‘이미 가본 길’이라는 말이었다. 이면에는 가봤던 길은 실패의 길이며, 북한에 늘 속고 마는 맹목과 오판이라는 비판이 내재되어있다. 군사옵션을 언급하는 강경파는 물론이고, 상당수 대화론자들도 두 개의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결정되기 이전에는 전적 불신, 이후에도 반신반의에 머무른다.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긍정의 차원에서 강조하는 조심성이라면 희망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현실감각이 되겠지만, 실패한 역사의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섣부른 냉소와 비판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하거나 심지어 뒷걸음질하게 만들 수 있다.

 

어찌 협상만 가본 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반도에서 북한 핵 문제가 시작된 지 30년을 향하고 있다. 대화, 협상, 경제지원 등의 온건한 방법은 물론이고, 압박이나 제재 등의 강경한 방법까지 동원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느 방법이든 충분하게 추진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본 길이라고 하더라도 못 갈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걸려 넘어졌던 자리를 알기에 피해갈 수 있으니 성공의 확률은 높아진다.

 

또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못 갈 이유는 없다. 어느 길이든 완전히 다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스트가 노래한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결론은 길이 달라서라기보다 선택한 자의 의지 때문이라고 믿는다.

 

지난한 협상과 검증, 그리고 폐기의 과정은 살얼음이며 유리그릇 같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확실히 다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어질 두 개의 정상회담에서 해결의 시한과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맞교환하는 빅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모든 과정이 완벽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백지화되어버렸지만, 이번에는 목적지점을 정할 경우 과정은 축약될 수 있다. 지뢰를 제거할 때 조심스럽게 하나씩 제거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꺼번에 폭발시켜 제거할 때도 있는데 지금이 그런 때다. 다른 하나는 지난 수년간 절체절명의 막다른 골목 같은 상황을 겪은 후 혼신을 다해 붙잡은 마지막 기회라는 절실함을 거의 모든 당사국이 절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하겠다.

 

9년간 철저하게 끊어버렸던 대화의 연결고리와 막아버렸던 입구들이 운전자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과 미국도 놀라고 있을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루어진 것은 아직 없으며, 한국 정부가 물꼬를 트고 나니 주변국들은 벌써 저마다의 주판알을 튕기며 숟가락을 얹으려 하고, 훼방꾼도 등장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선택을 앞에 둔 망설임이 아니라 과감한 선택의 결과로서의 운명을 개척해야 할 때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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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연달아 알려지면서 한반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불과 1년 전 한국 내 사드 기습배치 문제로 어지럽기 그지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사태 반전이 놀랍다. 남북경협의 가장 큰 장애물인 정치적 긴장이 해소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남북경협으로 눈길이 쏠린다. 더구나 올해는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이 발표되면서 북방정책이 본격 추진되고 남북경협이 첫발을 뗀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 정세의 해빙무드는 한국경제가 지긋지긋한 ‘안보절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임과 동시에 남북경협 복원을 위해 무척 다행스럽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풀려야 한다는 현실적 제약조건이 있지만 남북경협 재개 문제는 앞으로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랐던 남북경협의 싹을 다시 틔우고, 가꿔나가기 위해서는 ‘줄탁동시’의 지혜가 요구된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안에서 병아리가 두드리는 동시에 어미가 밖에서 알을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 줄(), 어미가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 하며 동시(同時)에 이뤄져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남북경협에 적용한다면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북한의 노력과 한국의 대북지원 및 협력이 잘 맞아 돌아가야 남북경협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북한이 폐쇄적 경제체제임은 분명하나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에서 시장화가 진척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결과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를 보면 북한의 시장화는 ‘돈주’라 불리는 거대자본이 공장, 무역회사, 상점 등 여러 분야에 개입하면서 시장을 확대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외국자본유치를 추진했고, 나진·선봉 등 기존 5개 중앙급 경제특구 개발과 별개로 19개의 지방급 경제개발구도 신설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커티스 멜빈 연구원은 위성사진 판독을 통해 지난 2월 현재 북한의 공식적인 시장 숫자가 1년 동안 46개가 증가하면서 482개에 달한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화의 바람은 북한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이 내부에서 형성될 여지가 없는 북한으로서는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이나 한국의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다. 북한 지도부는 시장경제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외부로 보내야 한다. 이것이 북한의 줄이다.

 

한국의 탁은 무엇이어야 하나. 북한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협애한 시각에서 벗어나 개혁·개방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경제적 교류확대에 나서야 한다. 밖에서 두드려주지 않는다고 하면 북한 경제가 자생적으로 활로를 찾긴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보수정부가 북한의 변화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고 남북경협의 소중한 싹을 밟아버린 것은 잘못된 일이다. 2003년 개성공단 착공으로 남북경협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지만 박근혜 정부가 2016년 개성공단 가동중단을 선택한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문재인 정부는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원칙하에 교류협력을 이끌어 온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를 본보기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서로의 가치와 삶의 방식은 존중돼야 한다는 양안의 안목은 한반도에도 유효하다. 양안관계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처음 열렸을 때 얼어붙어 있었다.

 

남북관계 개선에 자극을 받은 양안은 지속적으로 소통, 교류했고 결국 2010년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을 맺기에 이르렀다. 2016년 초 대만 독립파인 차이잉원(蔡英文)이 집권한 후에도 양안관계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런 노력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통일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통일이 한국경제가 대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은 분명하나 성급한 통일 대박론을 거론해선 득이 될 게 없다. 꾸준히 북한 경제의 시장화를 촉진시키고, 북한 주민들에게 마음을 얻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정치·안보 문제는 지도자의 결단에 따라 어느 날 거대한 진전을 이룰 수 있지만 경제는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긴 어렵다. 앞으로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가 돌출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 모두 정치상황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경협을 위한 의제발굴과 치밀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오관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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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12일부터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 파견해 방북 및 방미 결과를 설명한다. 정 실장은 12~13일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차례로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면담할 계획이다. 서훈 국정원장도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회담 성사 경과를 설명한다. 정 실장이 중·러 두 정상을 면담하지 못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들과 전화 통화한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한반도 정세 진전에는 주변국의 지지가 필수적인 만큼 이들 국가에 정상회담 성사 경위와 취지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과제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관저 소회의실에서 대미특사 자격으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고 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중국의 입장이 특히 중요하다. 중국은 남북 및 북·미 간 정상회담 성사에 환영을 표시했으나 내심 불만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북한과의 관계에 손상을 입으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제재에 동참했는데도 북한을 충분히 압박하지 않았다고 비판받아왔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미국이 중국을 건너뛰어 직접 북한을 상대하겠다고 나섰으니 한반도 문제에서 주변화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법하다. 이런 중국의 우려가 불식되지 않으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경쟁하면서 북한을 완충지대로 여기는 중국이 북·미 간 접근에 불안해한다면 양측 간 실질적인 관계 진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중 두 나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는 해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북한이 비핵화 조건으로 내건 체제 안전보장 및 경제적 보상도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일본 또한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되는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사정권에 있는 자신을 배제하고 북·미가 정치적 타협을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남북 및 북·미 관계개선 움직임이 궁극적으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 일본이 동참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의 당사국인 러시아 역시 한반도 정세 진전에 소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로 한반도 상황이 급진전하고 있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어떤 돌발변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단단한 국제적 협력의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북·미 및 남북 관계개선에 대한 주변 강국의 협력은 향후 북한의 정상국가화 작업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작업에도 필수적이다. 정 실장과 서 원장 등 특사는 지난 5일부터 숨가쁘게 이어진 강행군에 피로가 누적됐겠지만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쌓는다는 각오로 주변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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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3제국’ 시절인 1933년 아돌프 히틀러 총리와 폴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베를린 부근 포츠담에서 역사적인 악수를 했다. 이들의 의기투합으로 독일 군대와 나치즘이 손을 잡았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다. 독일은 참담하게 패했다. 1945년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정상들은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포츠담에 모였다. 나치가 깃발을 올린 곳이 퇴출 결정의 장소가 된 것이다. 또 이 회담의 결정 사항인 무조건 항복을 거부하는 일본에는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일본은 두 손을 들었다. 항복 조인식이 열린 곳은 도쿄만 요코하마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 미주리호 선상이었다.

 

제주도. 경향신문 자료사진

 

동서냉전의 전환기인 1972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은 중국 베이징에서 만났다.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과 덩샤오핑 주석은 미국 워싱턴에서 만났다. 정권을 이어가며 양국 수도에서 만났다. 핵군축의 주역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서기장 간 회담 장소는 3국인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였다. 서로에게 부담되는 곳은 피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장소에 관심이 쏠린다. 국내에서는 비무장지대(DMZ)와 판문점, 제주도 등이 거론된다. 비무장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방한 때 가려 했으나 기상이 나빠져 포기했다. 판문점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장소로서의 상징성이 있다.

 

제주도.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주도는 김 위원장의 외가 쪽 고향이다. 북한에 감귤 보내기 운동으로 ‘평화의 섬’이란 이미지도 갖고 있다. 제주도는 도민들이 회담장 유치홍보에 나섰다. 국외의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꼽히는 스웨덴은 남북 수교국으로, 북한에서 미국의 영사업무를 대행해왔다. 방북했다가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송환을 위한 북·미 교섭도 스웨덴에서 열렸다. 스위스 제네바는 김 위원장이 유학한 곳이자 북·미 제네바합의가 성사된 장소다. 중국 베이징도 거론된다. 모두 북·미 양국과 역사적 인연이 있거나 평화의 상징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역사적 장소가 된다. 세계 각국이 유치경쟁에 나선 이유다. 하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가급적 한국에서 열렸으면 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p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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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핵 관련 발언이 부쩍 줄었다. 최근 20일 동안의 북핵 언급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추가조치가 필요하다”는 지난 1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 발언이 전부다. 끊임없이 설화에 휘말리면서도 입놀림을 쉬지 않던 그의 갑작스러운 신중한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 큰 틀의 정책 변화를 앞두고 입조심한다는 인상이 든다.

 

김정은이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남한에 파견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승부수다. 북한판 북핵 출구 전략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남한과 미국의 보수층은 위장 평화공세에 속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김정은의 카드가 너무 크고 무겁다. 지금 북한이 핵무기 대신 언어와 외교를 대외 정책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은 명백한 대화 신호다. 트럼프의 선택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이 북한 삼지연 악단의 공연에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에게 북핵은 숙명이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미국 본토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핵문제를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핵은 또한 그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한민족의 생존과 미국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위기이지만 해결한다면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트럼프에게 북핵이 제공하는 또 다른 기회를 잡으라고 권하고 싶다. 바로 노벨 평화상이다.

 

북핵이 왜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수상 기회가 되는가. 그것은 북핵이 노벨 평화상의 ‘메달밭’이기 때문이다. 45명의 미국 대통령 가운데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지미 카터, 버락 오바마 등 4명이 노벨 평화상을 탔는데 이 중 북핵과 관련해 상을 탄 사람이 카터와 오바마 등 2명이나 된다. 북핵 문제가 심각할수록 미국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은 노벨상과 인연이 없었다. 평화에 대한 열망이 절실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기회가 주어진 탓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운이 좋다. 북핵은 전 세계적인 평화 이슈로 부각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평화파괴자’ 이미지의 트럼프에게 노벨 평화상이라니 가당치 않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이해한다. 이란 핵합의 파기, 인종차별적 이민정책 등 반평화적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패권국으로서 제공해야 할 국제 안보와 자유경제질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패권국 지위는 유지하려는 대외정책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의 일탈적 대외정책을 트럼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측면도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시작된 미국의 쇠퇴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수상 자격 문제에도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루스벨트부터 보자.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아기곰을 살려준 ‘테디 베어’ 일화의 그 루스벨트가 맞지만 대외정책에서는 철저히 약육강식 논리를 신봉했다. 그의 수상 이유는 러일전쟁 뒷마무리 중재였지만 이는 사실상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묵인해준 것이었다. 만약 한국인들이 노벨상 심사에 관여할 수 있었다면 목숨 걸고 그의 수상을 반대했을 것이다.

 

윌슨 역시 노벨 평화상 취지에 부합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패전국의 식민지를 가로채는 수단이 되었을 뿐이다. 언젠가는 국제사회가 지원해 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안고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우다 스러진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면 그의 노벨상 수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노력을 평가받은 오바마 역시 ‘전략적 인내’ 대북정책으로 북핵을 사실상 방치했다. 사실 노벨 자신도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던 세계 최대의 무기상으로, 인류 평화를 거론할 자격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더구나 트럼프는 임기가 3년 남은 현직 대통령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고쳐나갈 수 있다.

 

트럼프가 노벨 평화상을 받으려면 대전제가 필요하다. 반드시 평화적인 북핵 해결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적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평화상의 취지에 반한다. 그러자면 ‘힘을 통한 평화’ 같은 대외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갑작스러운 노선 전환이 쉽지 않겠지만 이는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대외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트럼프의 정치적 지지기반이나 성향을 고려할 때 그의 노벨 평화상 도전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 성취나 업적은 망상적 도전에서 비롯된 경우가 적지 않다. 나라면 트럼프의 유독 강한 인정욕구와 명예욕에 걸겠다. 트럼프라고 노벨 평화상을 못 탈 이유가 없다. 마침 평창 올림픽 덕에 그 기회의 문도 열려 있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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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날, 외신은 문재인 대통령,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문 대통령과 김 부부장의 악수 장면은 긴급뉴스로 타전됐고, 개회식장 안팎에서 펜스 부통령과 김 부부장이 서로 외면하는 장면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남북선수단 동시입장을 포함한 이날의 풍경은 “한 달 전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거기에는 엄중한 한반도 상황이 있다.

 

펜스 부통령과 김 부부장이 모두 돌아갔다. ‘평창 외교전’의 1라운드는 끝났다. 북한의 문 대통령 방북 요청은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상황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주일 전 “평창 올림픽은 아주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후는 누가 알겠느냐”고 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전개될지는 안갯속이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쇼트트랙 경기에서 펜스 미국 부통령과 쇼트트랙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강릉 _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요즘 미국의 대북 메시지가 ‘북핵 문제’보다 ‘북한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북한 문제는 북한 정권과 체제, 인권 등을 말하는데 북한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이를 주도하고 나섰다. 특히 올림픽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 잇따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잔혹한 독재정권”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탈북자 지성호씨를 국정연설에 초대해 소개했고, 이튿날 백악관으로 탈북자들을 초청해 북한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의 올림픽 납치(hijacking)를 막겠다”며 한국에 와선 평택 해군 2함대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해 북한을 “감옥 국가”라고 맹비난했다. 펜스 부통령의 2박3일 언행은 그가 강경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북 강경론자인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달 북한 핵개발이 미국으로부터의 체제보전용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남한을 통일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를 구분하지 못할 리는 없다. 그러면 북핵이 아닌 북한 문제 해결로 방향을 잡았는지, ‘인류 평화의 제전’에 ‘불량국가’ 북한이 끼어드는 게 못마땅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현 상황에서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에 올리면 북핵 논의의 초점을 흐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여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공동 제시한 ‘4노(No) 원칙(북한 정권 교체와 붕괴, 한반도 통일 가속화, 38선 이북 공격)’도 북한에 당면 과제는 체제가 아니라 핵·미사일이니 안심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는 의미다.

 

실제 핵·미사일 고도화의 속도로 보면 지금은 북핵에 매달려야 하는 시기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북한 핵·미사일의 본토 또는 미국령 공격 가능 시기를 “곧”이라고 하지 않았나. 북한 문제 해결을 앞세우면 북한의 도발을 만류하는 게 아니라 부추기려는 의도로 읽힐 우려도 있다. 종합적으로 북한과 대화할 생각 자체가 없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평창 올림픽을 북핵 대화의 모멘텀으로 만들겠다는 한국의 ‘평창 구상’도 힘겹게 한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거칠고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반면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만큼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충만하다. “내가 처리하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하지만 상호 불신이 깊어 대화의 계기조차 만들지 못하는 게 현재 상황이다. 어렵게 만나도 다시 불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 게 그동안 북핵 협상의 역사다. 이 과정에서 북한 문제가 부각돼 상황이 꼬인 경우도 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채택하던 날이다. 9·19 공동성명은 포괄적·단계적 접근, 병행적 해결 원칙으로 북핵 논의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미국 수석대표는 마지막 발언에서 돌연 북한 인권문제, 테러리즘, 불법행위 등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미국이 북한의 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목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제재로 북핵 논의는 미국이 ‘30일 내 BDA 문제 해결’을 약속한 2007년 2·13 합의 때까지 겉돌았다.

 

북핵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묘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지금 기술적 완성을 눈앞에 둔 북한의 핵 능력을 두고 무조건 협상이 만능일 수는 없다. 제재와 압박이 유일한 해결책일 수도 없다. 대북 군사옵션도 함부로 쓸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북한을 선제 정밀타격하는 ‘코피 전략’은 미국 강경파조차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성을 경고하자 백악관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없다고 한발 빼는 분위기다. 결국 제재와 협상을 병행하면서 국제사회의 힘을 모아야 하는데, 지금 논점은 북핵 문제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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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을 축하하러 왔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한 목적에 어긋나는 언행을 일삼고 있다. 아베 총리는 9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며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그 문제는 우리의 주권 문제이고 내정에 관한 문제”라며 “총리께서 직접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전 강원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적절한 대처로 정상회담이 파행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베의 발언이 부적절한 발언이며 도를 넘은 내정 간섭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북핵 문제가 일본에도 중요한 현안이지만 한·미 군사훈련은 어디까지나 한국과 미국 사이의 일로 일본은 당사자가 될 수 없다. 남북대화의 진정성 역시 전적으로 한국이 판단할 일이다. 일본이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주제넘는 참견에 불과하다. 일본은 10년 만에 재개된 남북대화가 영 반갑지 않은 것 같다.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유사사태 발생 시 한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대피와 안전확보에 대해 연대하자고 말한 것도 불편하다. 한국의 어려움을 돕기는커녕 자국 잇속만 챙긴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베 총리의 외교적 결례는 이뿐 아니다. 지난 9일에는 문 대통령이 주재한 평창 올림픽 리셉션에 30여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그는 올림픽 개회식에도 참석했지만 다른 하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낼 때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평창 올림픽을 축하하러 온 건지, 방해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없다. 한국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다. 한국의 운명이 걸린 북핵 위기 국면에서 아베 총리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한국인들이 똑똑히 지켜보고 기억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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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자신의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에 대해 “(북한을 향한)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러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설명하는 한 연설에서 이같이 말한 뒤 “우리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역시 평창 개회식에 참석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올림픽 폐회 후 조속한 한·미 연합군사훈련 실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청할 것이라고 산케이신문이 4일 보도했다. 우방국을 대표해 올림픽 개막을 축하하러 온다면서 한국민들의 평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의 발언에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AP연합뉴스

 

한국 정부와 시민들은 지금 평창 올림픽을 통해 평화로 가는 문을 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펜스 부통령의 발언에는 이를 고려한 기미가 전혀 없다. 그저 과거 미 행정부처럼 거짓 대화 제스처에 속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으로 북한을 비판했을 뿐이다. 북한을 끌어낼 유인책이나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언급은 없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만을 요구했다. 지금처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순간에 대안 없이 북한을 압박하는 발언처럼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이 없다.

 

아베 총리가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 언급하는 것 역시 적절치 않다. 아무리 한·미·일 3국 공조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일본은 이 문제에 관한한 당사자가 아니다. 올림픽 후 한·미 훈련을 재연기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라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묵과할 수 없는 도발적 행태이다. 올림픽 후 평화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만 있다면, 군사훈련 연기가 아니라 중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북 공조를 명분으로 이런 강경 입장을 내세워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 해결에서 이득을 보려는 것이라면 더더욱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하는 한·미·일 3국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을 선전의 장으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인정한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미 유엔에서 결의한 최고 수준의 강력한 대북 제재를 가동하고 있다. 평창 올림픽 개막을 닷새 앞둔 시점에서까지 북한을 압박해 굴복시키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그 자체로 올림픽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이자 한국인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아베 총리와 펜스 부통령은 한국 정부가 자신들을 초청한 취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두 사람이 7일 도쿄 회담에서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똑똑히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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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의 주한 미국대사 내정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아그레망(임명동의) 요청을 한국 정부가 승인까지 한 상태에서 내정 철회가 이뤄졌다면 극히 이례적이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의 30일(현지시간) 보도를 보면 차 내정자는 대북정책과 한·미 통상 이슈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견해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차 내정자는 지난해 12월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 북한에 대한 제한적 정밀타격인 ‘코피 전략’을 검토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파기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전략에 대해서도 반대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DC에있는 하원 회의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빅터 차를 그런 이유로 내정 철회한 것이 맞다면 대북 군사공격에 찬성하는 인사만 대사로 보내겠다는 것인지 우려스럽다. 1년 공석 중인 주한 미국대사 자리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채워지지 못하게 되는 것도 걱정이다. 서울과 워싱턴을 잇는 핵심 소통채널이 장기공백 상태에 빠진 것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 북핵 문제가 시급한 당면과제라며 연일 대북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이 문제의 당사국이자 동맹국인 한국과는 소통창구도 완비하지 못한 트럼프 행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트럼프는 이날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란, 쿠바 등과 함께 적으로 규정하면서 최고의 대북압박을 통한 비핵화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북한의 무모한 핵무기 추구가 우리의 본토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우리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과거 행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연설에는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고강도의 대북 표현이 새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양보 없는 대북 강경기조를 재확인했다. 국정연설만 보면 트럼프의 대북인식은 북한이 ‘화성-15형’을 발사했던 지난해 11월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올 들어 2년 만에 재개되고 있는 남북대화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를 통해 북·미대화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동맹국의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인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이래서는 비핵화를 위한 한·미 공조가 원활히 이뤄질지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한국을 동맹국으로서 존중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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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9일자 지면기사-

 

2018년 벽두부터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해빙의 조짐이 일고 있다. 25개월 만에 남북대화가 복구되었다. 아직은 설익은 희망사고라고 할 수 있지만, 만화처럼 비현실적이고 삼류영화의 막장대화처럼 북·미 간의 말폭탄이 난무했던 지난해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기대와 들뜸은 허용될 만하다. 물론 해결된 것 하나 없고, 장애물은 끝도 없이 많아 보인다. 평창 올림픽까지는 어떻게든 갈 수 있겠지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아득하다. 북한이 지금까지는 놀라울 정도로 협조적이지만 여차하면 무산될 수 있는 위태함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 외에도 안팎의 훼방자들이 걱정을 더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나라를 걱정하고 실패를 우려하는 듯하지만, 속내는 성공을 향한 국면전환을 두려워한다.

 

먼저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내부의 훼방자다.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시점부터 한·미관계 이간질을 위한 통남봉미 전술이라고 비판하더니, 평창을 인질로 금품을 요구할 것이며, 위장평화공세로 이미지 세탁과 비핵화압력을 비껴가려는 북한을 문재인 정부가 도와주며 호구인증에 나섰다면서 공세를 늦추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예단이기는 하나 고려할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비판의 동기가 성공을 위한 우려가 아니라 판 뒤엎기의 예열이라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이미 거짓으로 판명난 개성공단의 핵개발 자금 유용이라는 프레임의 부활, 남북관계 개선은 곧 한·미동맹의 붕괴라는 근거 없는 흑백논리가 어김없이 뒤따른다.

 

분단고착세력들은 평창 올림픽과 남북대화의 성공보다 미국의 심기가 중요하며, 한반도의 해빙보다는 전쟁위기의 한파를 오히려 편안해한다. 왜냐하면 얼음이 녹으면 이들의 기득권은 수장되기 때문이다.

 

협상국면이 달갑지 않은 외부의 훼방자는 미국의 강경파들이다. 그들의 사고체계로는 북한이 변할 수 없고, 또 변해서도 안된다. 수용할 수 있는 변화는 북한의 항복 또는 붕괴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대화국면을 북한의 계략이거나 한국 종북진보의 반동으로 인식한다.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을 방해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으나, 내심 ‘탈선’을 기다리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사드 조기 배치로 압박했었던 그들이 이번에는 샴페인에 취한 탓이라고 매도했다. 다행히 트럼프가 평창 올림픽 기간에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데 동의했고 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고 말함으로써 일단 이들의 입은 닫혔다. 물론 지난해 전쟁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던 당사자인 트럼프의 변화조차도 신뢰하기는 어렵다. 무력시위를 통한 위협전략에 피로감이 생길 즈음에 협상이라는 다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 정도일 수 있다.

 

이렇듯 주어진 기회는 제한적이며 시한부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이 부여하는 외교 지렛대의 위력을 경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외교농단의 결과로 코리아 패싱을 말하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미국은 한국이 과연 북한을 끌어낼 능력이 있는가를 시험하고, 북한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상대인 미국을 한국이 견인할 수 있는지 주시한다. 중국 역시 북·중관계가 최악인 동시에 북한의 전략적 유용성은 도리어 커지는 딜레마 상황에서 한국이 과연 북·미를 설득해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외교력을 최대치로 발휘해 시한부 국면을 지속가능한 체제로 만들기 위해 양다리가 아닌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훼방자들에게 더 이상의 여지를 줘서는 안되며 당황할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대화국면의 비가역을 확보해야 한다. 지뢰밭을 제거하려면 하나씩 조심스럽게 제거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은 폭발을 통해 한꺼번에 제거하는 방법이 필요한 때다. 미국을 너무 의식해서 길목마다 비핵화의 단호함을 언급함으로써 스스로 장애물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 해빙무드를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에 갇히고,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연명을 위한 이야기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차피 훼방자들은 약간의 파행만 있어도 한·미동맹 위기를 들먹이고 주한미군 철수카드로 위협할 것이다. 현재 배후에서 단일팀 구성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본질을 흔드는 선동은 앞으로 비핵화를 전제조건화하면서 북한을 자극하는 동시에 미국 강경파의 동조를 얻어 문재인 정부를 코너로 몰아붙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비핵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비핵화의 단일 테이블만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테이블을 동시 추진함으로써 완충시켜야 한다. 치밀하게 준비하되 굴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평화의 담대한 ‘문’을 여는 ‘문’재인 정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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