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투표일인 6일, 대세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에게로 기우는 분위기다. 


이날 오전 9시. 찌뿌둥한 날씨 속에 파리 남부 콩방숑 지하철역 부근에 차로를 따라 늘어선 전통시장에서 파리 시민들을 만났다. 상인들과 장보러 나온 주민들은 “결과를 장담하기 힘든 선거”라고 말했지만,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긴축재정에 대한 불만 속에 ‘갈아보자’는 목소리가 조금 두드러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샤를 드골이 프랑스 여성에게 참정권을 준 이래 나는 여태까지 한 번도 투표에 빠져본 적이 없다. 벌써 투표하고 나왔다.” 양말묶음을 고르던 올해 80세 조제트 할머니가 말했다. 한국 재즈가수 나윤선씨를 좋아하는 올랑드 지지자인 서점 주인 알랭(47)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지지자인 친구가 서른 부쯤의 신문과 잡지를 배급하러 가게로 들어오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옥신각신 중이었다. “사르코지가 이번 선거에서 이길 거다.” “이봐, 보는 안목이 그렇게 형편없나!” 좌대 위에 갖가지 채소를 올려놓은 프레드(32)는 많은 유권자들처럼 “누가 더 나아서 찍는 투표가 아니라 덜 나쁜 후보를 찍는 투표”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르코지 지지자들도 적지 않았다. 계란을 진열하던 상인 마르셀(61)은 “좌파(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영 미덥지 못해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표를 던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계란 꾸러미를 건네받던 돌스(66)는 “나도 투표권만 있으면 투표장에 갔을 것”이라며 투덜거렸다. 포르투갈 출신이라는 그는 “45년째 프랑스에서 일하느라 손이 곱았지만, 낼 세금 다 냈어도 투표권이 없다”고 서운한 듯 말했다. 그가 장바구니를 들고 자리를 뜨자 가게 주인 마르셀은 “내가 이래서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된다는 사르코지를 지지한다”고 조용하게 말했다. 


휴일 아침 시내 중심가 샹젤리제에서 젊은이들도 만나봤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사르코지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는 나디아(37)는 “이번에는 올랑드가 프랑스 경제를 살릴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그에게 표를 줬다”고 말했다. 맥도널드 직원 알리(21)는 “아직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해 망설이고 있다”면서 “사르코지는 대통령으로서 지금까지의 실적이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플로랑스라는 시민은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수 확대 같은 올랑드의 공약은 공공부채규모가 상당한 프랑스로서는 ‘자살’에 가까운 정책이지만, 사르코지에 반대하기 때문에 올랑드에게 표를 던졌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이번 선거가 ‘사르코지 응징’의 성격이 강함을 보여주는 얘기다. 


재선에 도전하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카를라 브루니가 6일 파리 16구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오고 있다. 파리 _ AP연합뉴스



유권자들이 전국 6만5000개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한 이날, 두 대선후보도 투표소로 향했다. 사르코지는 파리 부유층 거주지구인 16구 투표소에 부인 카를라 브루니와 함께 나타나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회색봉투로 감싼 투표용지를 투명한 투표함 안에 넣었다. 올랑드는 자신의 지역구인 프랑스 중부 튈시에서 사실혼 관계이자 정치부 기자 출신인 여자친구 발레리 트리에베일레르와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율은 이날 정오 기준 30.66%로, 지난달 22일 1차 투표 때보다는 높았지만 34.11%를 보인 2007년 대선 결선투표에 비해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프랑스 내무부는 밝혔다.


이날 선거를 앞두고 막판 여론조사에서 올랑드와 사르코지의 지지율 격차가 일주일 전 10%포인트에서 4%포인트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날 저녁 8시에 발표되는 출구조사 결과에서 막판 이변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일간 리베라시옹은 선거를 앞둔 주말판에서 “일요일에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뽑았다. 


하지만 사르코지의 뒷심이 역전극으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 쪽에 무게가 실린다. 프랑스는 이날 저녁 8시 투표 종료에 앞서 예상결과 발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7만5000유로(약 1억1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간에 위기의 프랑스 경제를 개혁하고 유로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넉넉한 과반수의 득표를 얻어야 개혁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빙의 승리보다는 큰 표차 승리가 요구되고 있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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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실시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율은 79.47%. 10명 중 8명이 투표소를 찾았다. 프랑스 유권자들의 강한 정치참여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 같은 참여의식은 제도교육이 아닌, 부모세대의 높은 정치참여 태도가 자연스럽게 자녀세대에게로 전해지는 것이라고 지난 3일(현지시간) 파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해야 한다’는 당위를 넘어서 정치를 ‘즐긴다’는 인상마저 줬다.


이날 오후 파리 4대학(소르본) 앞에서 만난 신디아(24·학생)는 “정치는 삶”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 부모가 투표소에 갈 때 함께 가고, 다녀온 뒤 선거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정치를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보니 각종 사회문제에 학생들이 단결해 항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6년 프랑스 대학생 수십만명은 정부가 청년층의 고용과 해고를 유연하게 만들려는 ‘최초고용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두 달간 노동조합들과 함께 이어가면서 결국 정책을 폐기시킨 경험이 있다. 신디아는 “프랑스에 비하면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서로 연대하는 힘이 약했다. 프랑스와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최초고용계약(CPE)'의 철회를 요구하는 프랑스 청년들이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향DB)


대학생 마테오(22)는 “어릴 때 부모님이 친구들과 정치문제로 토론할 때 무관심한 척 옆에서 놀면서도 어떤 이야기인지 듣곤 했다”면서 “프랑스 중등교육 과정에는 정치참여를 교육하는 과정은 없지만 각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시민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오레이아(20)는 “15살 때 부모님들이 ‘선거는 꼭 해야 하는 거다. 투표소까지 가서 기권표를 행사하더라도 꼭 참여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참여정치를 몸에 익힌 프랑스 파리의 거리에서는 ‘투표참여’ 독려 포스터는 찾아볼 수 없다. 길에 붙은 각 정당의 선거포스터도 요란하지 않다. 다양한 색깔의 커다란 플래카드도 보이지 않는다. 눈썰미가 나쁘다면 프랑스가 대선기간이라는 것조차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삶 속에 이미 들어온 정치를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투표장으로 향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두 명의 후보를 비교평가하는 대선후보 TV토론은 유권자의 절반인 2000만명이 시청했다.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은 날카로운 정책 비교평가로 이어진다. 대학생 엘레오노(21)는 “TV토론은 후보 각자가 자신의 공약을 지지자들뿐만 아닌 모든 국민 앞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라며 “후보 간 상호 비방이 격렬했던 이번 토론은 기대 이하였다”고 말했다. 대학생 브루노(25)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는 프랑스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지만, 니콜라 사르코지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 모두 민감사안인 탓에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차 투표율이 높았던 이유 중의 하나로 극우의 부상에 대한 경계심리가 꼽히기도 한다. 2002년 극우파인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한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던 프랑스 유권자들이 그의 딸 마린 르펜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껴 투표소로 향했다는 것이다. 한 남학생은 “르펜이 그럼에도 이번에 18%나 되는 지지율을 얻은 것은 상당히 충격이었다”면서 “이번 대선은 올랑드나 사르코지 둘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보다 ‘최악은 피하기 위해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라는 얘기를 친구들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경제위기에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주류 정치인들에게 실망하면서도 프랑스 유권자들은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변화 가능성을 굳게 믿는 셈이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대통령 후보인 마린 르펜 (경향DB)


이 같은 프랑스의 높은 정치참여는 불안했던 정치역사에서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1789년 혁명을 시작으로 프랑스는 여러 차례의 체제변화를 거쳤고 1960년대에는 알제리전쟁의 여파로 체제불안을 겪었다. 보통사람들은 사회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정보를 공유했고, 이것이 유럽 내에서도 정치성향이 두드러진다는 프랑스 사회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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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올랑드 “부유층만 보호 경제 나빠져”

ㆍ사르코지 “거짓, 협잡꾼” 원색 대응


2일 저녁 9시. 프랑스 대선 결선을 앞두고 두 후보를 한자리에서 평가할 단 한번의 기회인 TV토론 중계가 TF1과 프랑스2 채널을 통해 시작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57)은 오른쪽에,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58)는 왼편에 앉아 6일 결선투표를 나흘 앞둔 마지막 승부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설전을 벌였다. 커다란 전자시계가 두 후보자의 발언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무던한 인상의 올랑드는 예상밖으로 ‘토론 달인’ 사르코지에게 밀리지 않고 팽팽한 대결을 폈다. 올랑드는 “보수적인 사르코지 대통령은 부유층만 보호한 결과 프랑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와 경기둔화 영향을 크게 받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결과가 있든 당신은 (책임을 지지 않고) 항상 만족하는 사람”이라며 사르코지의 현실인식을 꼬집었다. 불같은 토론매너의 사르코지는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즉각 받아쳤지만 토론 내내 올랑드의 공세는 계속됐다. 올랑드는 사르코지가 정부와 공기업, 언론사 주요 직책을 자신의 정치적 패거리로 채우고 있다고 지적했고, 사르코지는 “조그만 협잡꾼”이라며 원색적으로 반응했다. 


사르코지는 토론 내내 올랑드의 경제정책이 유럽의 성공모델인 독일과 정반대이며, 자칫 프랑스를 스페인처럼 경제위기로 몰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랑드는 “나는 대통령으로서”라는 표현을 여러차례 쓰면서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자신의 약점을 감췄다. 그는 또 사르코지가 유럽 재정위기 해결과정에서 독일에 지나치게 굴종적인 모습을 보였다면서 “만약 내가 당선되면 독일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겠다”고 말했다. 대선 레이스 반 년 동안 단 한번도 결선투표 예상지지율 면에서 올랑드를 이겨보지 못한 사르코지는 자신의 장기인 토론에서조차 올랑드에 압도적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토크쇼 녹화 현장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경향DB)


3일 아침 현지 언론들의 판정은 ‘무승부’가 대세인 가운데 ‘올랑드가 승기를 굳혔다’는 평가가 섞였다. 결선투표를 앞두고 사르코지가 뒤집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은 두 후보가 그간 주장해온 경제·교육·핵·주거·이민 등의 여러 공약들을 간명하게 유권자들에게 설명하는 기회였다. 유권자의 절반인 2000만명이 2일 밤 12시까지 진행된 토론을 시청했으며 시청률은 TV토론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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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높은 임대료 앞세워 기존 가게들 내몰아” 상인들 비판 목소리



파리 중심가 개선문부터 시원하게 뻗은 가로수길인 샹젤리제는 프랑스인들이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길이라고 손꼽는 프랑스의 자존심 같은 곳이다. 하지만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전 세계 다국적 브랜드들의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갭, 자라, H&M처럼 세계 여느 대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중저가 의류브랜드 간판들이 즐비하다. 대형 음반매장 버진 메가스토어가 철수한 노른자위 자리에 애플이 진출할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1978년부터 샹젤리제 현재 자리를 34년째 지켜온 간이매점 주인 모하메드(50)는 가게 앞 매장들의 변천사를 쭉 읊었다. “디즈니 매장이 들어선 저 자리는 원래 사우디아라비아 은행이 있었다. 바로 옆 자라 매장은 전에는 맥도널드, 그 전엔 프랑스 구두가게였다. 저기 모퉁이를 돌아가면 레바논식 캬바레가 있었고….” 그는 “옛날엔 산책할 때도 안전했지만 요즘은 동냥꾼에 소매치기가 극성”이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1914년부터 샹젤리제에 자리해온 프랑스 화장품업체 겔랑의 매장직원 나디아(63)는 평생 본 거리가 변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1960년대만 해도 샹젤리제에는 고급매장 사이를 마치 오페라 극장에 가듯 차려입은 사람들이 거닐었죠. 하지만 20년 전쯤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널드가 들어오고, 10년 전부터는 다국적 브랜드들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관광객들이 몰리고, 치솟는 세를 못견딘 기존 가게들이 떠났거든요.” 겔랑 매장 인근의 중저가 화장품 매장 ‘세포라’는 개당 13유로(약 1만9000원)쯤 하는 파운데이션 등을 사려는 여성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샹젤리제는 프랑스의 오늘을 집약하는 곳이다. 일자리 부족과 빈부격차가 지난 10년간 심화되면서 사람들의 구매력은 줄어들었고, 그에 맞춰 저가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했다. 



프랑스 파리 중심가 샹젤리제에서 파리 시민들이 2일 세계적으로 각광받은 스페인 의류 브랜드 자라와 미국 월트디즈니 기념품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파리 _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프랑스 통계청(INSEE)은 프랑스의 실업률이 11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1999년 이후 최고치인 10%를 기록하고, 구매력도 2007년 이후 약화됐다고 최근 집계했다. 


파리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예전에 일요일에 문을 여는 가게는 아랍인 상점 정도였지만, 요즘은 프랑스인들이 운영하는 식료품점 등도 문을 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마스터 셰프> 같은 요리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사람들이 돈을 아끼려 외식 대신 재료를 구입해 직접 요리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국내 정책 가운데 하나가 ‘구매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구매력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을 사르코지 대통령이 집권한 뒤 신자유주의 기조가 상당히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프랑스 민주단일노조 쉬드(SUD) 소속 체신노조(PTT)의 파트릭 아케르망 중앙지부장은 2일 인터뷰에서 “사르코지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대기업 일자리를 잡겠다면서 기업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간접세인 소비세는 올려서 결국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책임이 있다”며 “1960년대 말 프랑스가 도입한 최저임금제(SMIC)도 일자리를 만들려면 고용 유연화가 필요하다며 폐지를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신자유주의가 유럽연합의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강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프랑스 좌·우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파업 횟수를 사안에 따라 지정하는 유럽연합의 새 정책 추진 내용은 영락없이 기업가 편의적이다. 니콜라 갈레피드 쉬드 체신노조연맹 대표는 “만약 프랑스 경제가 더 악화된다면 유럽연합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극우파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에 대한 지지도가 더욱 증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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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집권 후 첫 노동절 집회

ㆍ올랑드 “사르코지 노조 공격, 프랑스 분열시켜”


지난 1일 오후. 보름 만에 비가 갠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는 시민들이 전통적으로 노동절을 기념하는 작은 은방울꽃 다발과 화분을 주고받으며 간만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의 노동절 행사는 정치색이 강하다. 오는 6일 대선 결선투표를 닷새 앞두고 열린 노동절 행사는 ‘3당 3색’으로 진행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57)이 이끄는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은 에펠탑 건너편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17년 만에 정권교체를 노리는 사회당과 노동조합은 바스티유 광장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극우 국민전선은 오페라 광장에서 각각 행사를 열었다. 이 가운데 논란을 부른 집회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진짜 노동(le vrai travail)’이라는 주제로 연 대안 노동절이었다. 


사르코지가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것은 집권 5년 만에 처음이었다. 청·백·홍 삼색 국기를 흔드는 수만명(주최 측 추산 20만명, 경찰 추산 3만명)의 인파가 모인 자리에서 사르코지는 “우리는 사회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규제를 완화해 프랑스 고유의 사회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좌파가 노동을 옹호하는 척하면서 되레 악화시켰다”고 지적한 뒤 노동조합들을 겨냥해 “(혁명의) 붉은 깃발을 내려놓고 프랑스를 위해 헌신하라! 우리는 삼색 깃발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중국도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데 프랑스가 우리의 가치, 정체성과 국경을 못 지킬 이유가 없다”며 극우파적인 수사를 얹었다. 


햇볕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인파 사이로 ‘투표 불참은 투표권을 외국인들에게 주는 것’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된다’ 같은 손팻말들도 보였다. 결선투표를 앞두고 세를 과시하기 위한 이날 집회에는 지방에 있는 대중운동연합 소속 당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사르코지가 강조한 ‘진짜 노동’의 정의는 뭘까. 행사 주최 측 소속인 마티유 마렌(30·공무원)은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속한 사회당은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일 뿐 노동자를 위하는 정당은 아니다”라면서 “진짜 노동자를 위한 지도자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하며, 그건 바로 사르코지다”라고 말했다. 사르코지가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정당으로 대중운동연합을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지중해 휴양도시 코트다쥐르에서 기차를 타고 온 마리 삼포프랑소(27)는 “책임 있는 노동이 무엇인지 모르는 ‘진짜’ 노동자가 많다는 사르코지 말에 동의한다”면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안 노동절’에 프랑스 지식인들은 사르코지를 1940년대 나치 협력자인 프랑스 총리 앙리 페탱에 비유할 정도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노동을 ‘진짜’와 ‘가짜’로 갈라 사회대립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왔다. 작가 아니 에르노는 “사르코지는 집권한 이래 줄곧 ‘분리통치’를 꾀해왔다. 프랑스인과 이민자, 노동자와 수급자, 선량한 시민과 범죄자로 나누는 방식”이라며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르몽드 기고문에서 지적했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 장 바티스트(33)는 “사르코지의 말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는 부자들의 대통령이다. 그가 언제 노동자들을 위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르코지가 난데없이 노동자 집회까지 연 것은 결선투표를 앞두고 극우표심에 호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달 22일 1차 투표에서 약 18%를 득표하며 돌풍을 일으킨 국민전선 마린 르펜(44)의 지지층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사르코지는 승산이 없다. 르펜의 지지층에는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살림이 어려워진 노동계층이 상당히 포진해 있다. 하지만 르펜은 사르코지의 몰락을 그냥 지켜볼 참이다. 르펜은 오페라 광장에서 열린 국민전선 노동절 집회에서 해마다 그랬듯이 프랑스의 구국영웅 잔 다르크의 청동빛 모형에 경의를 표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사르코지와 올랑드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희망은 오는 일요일(결선투표)에 있지 않다. 우리의 진짜 전투는 총선에 있다”면서 의회 진출을 통해 국민전선을 주류 정치세력으로 발돋움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사회당의 올랑드 후보(58)는 이날 바스티유 광장에서 열린 사회당 및 노조 주최의 노동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프랑스 중부 느베르에서 열린 피에르 베레고보이 전 사회당 총리 사망 19주기에 참석한 그는 사회당의 마지막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의 계승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사르코지의 노동 분열책을 비판했다. 그는 “실업자가 400만명이나 되고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100만명이 넘는 이때 누가 노동의 가치를 수호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사르코지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올랑드(54%)에게 8%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2일 밤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올랑드의 미숙함과 경험부족을 집중 노출시키려는 전략으로 막판 뒤집기를 노리고 있다. 프랑스 우파는 과거 TV토론을 통해 전세를 역전시킨 바 있다. 1974년 당시 우파의 지스카르 데스탱 후보는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의 미테랑 후보에게 뒤졌지만 TV토론에서 “미테랑은 과거 인물”이라고 몰아붙인 끝에 당선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양자 대결에서 ‘토론의 달인’인 사르코지가 올랑드보다 우위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전세를 역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언론은 이날 TV토론에서 사르코지는 올랑드의 세금정책과 지출정책이 사회주의로 복귀하는 위험한 정책이라는 점과 노조 단체교섭권 폐지 등 노사관계의 새로운 프랑스 모델을 주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과거 동거녀이자 2007년 대선 때 사회당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로부터 조언을 받고 있는 올랑드는 “사르코지가 노조를 공격해 프랑스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최저임금 인상, 교사 6만명 신규 채용, 정년 62세로 2년 연장 등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르코지 지지자들은 그의 재선을 확신하고 있다. 사르코지가 연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파리1대학생 막심(19)은 “사회당은 행정경험이 부족하다”면서 17년 만의 사회당 재집권을 눈앞에 둔 “올랑드 후보가 장관직을 단 한 차례도 지내본 적 없는 인물이라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 발레리 댕빌(64)도 “사르코지가 경제정책에 실패했다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2007년 이후 경제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겠느냐. 사르코지는 위기에 강하니 마지막에 역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럽 각국의 정권교체 도미노로 이어지고 있는 긴축재정의 여파를 사르코지가 이겨낼 수 있을까. 유럽연합의 경제적 통합과 신자유주의에 따른 시민들의 피로도가 긴축정책으로 극에 달하면서 유럽연합의 방향과 통합속도도 갈림길에 선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 대선의 결과는 그 풍향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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