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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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55

입양아 현수의 쓸쓸한 무덤 미국 메릴랜드 다마스쿠스의 공동묘지에는 이름 없는 무덤이 하나 있다. 자세히 보면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장의사가 매장 후 꽂아둔 작은 식별 명찰이 풀에 둘러싸여 있다. “이름: 매덕 현수 오캘러핸, 출생: 2010년 5월17일, 사망: 2014년 2월14일, 나이: 3세.” 한국인 입양아 김현수군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입양부모의 결정에 따라 장기를 기증하고 가벼운 몸을 이곳에 뉘었다. 장례식은 없었다. 현수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뒤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겨졌고 위탁모 손에서 자랐다. 한국인 위탁모는 현수가 장애 때문에 국내에서 입양되지 못한다면 자신이라도 입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홀트아동복지회는 해외입양을 택했다. 2013년 10월 그를 입양한 부모는 미 국가안보국(NSA) 한국과장 브라이언 .. 2016. 7. 6.
스톤월에서 올랜도까지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의 펄스 클럽 총격 사건에 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성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총격범이 겨냥한 곳은 단순한 나이트클럽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생각을 나누며 시민적 권리를 주장하는 연대와 주체화의 장소였다.” 어둠 속에서 밤새 마시고 떠들고 춤추는 나이트클럽은 어떻게 “연대와 주체화의 장소”가 될 수 있었을까? 주간지 ‘더네이션’ 편집국장 리처드 김은 “부디 음악을 멈추지 말아주오”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게이바는 치료를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치료이고, 종교를 잃어버리거나 종교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는 성소이며, 가족 없는 사람들에게는 집이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 극단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아프가니스탄계 이민자 집안의 한 젊은이가 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 2016. 6. 15.
[특파원칼럼]샌더스와 역사의 큰 흐름 “샌더스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정부가 되려는 것인가?” 미국 대선의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며칠 앞두고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CNN 방송 진행자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물었다. 샌더스의 복지, 교육 공약들을 실현하려면 많은 재원이 필요하고, 정책 집행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 확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그렇다’고 답하는 대신 맥락을 설명했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대공황기인 1928년 이래 가장 심각한 상황에서 중산층, 노동계급 복지 강화를 위해 월가와 거대 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행자는 ‘예, 아니요’의 대답을 요구하며 집요하게 ‘큰 정부’란 말을 끌어내려고 했다. 샌더스는 넘어가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게 나에 대한 비판이.. 2016. 4. 12.
[특파원칼럼]트럼프의 ‘좋았던 옛 시절’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인기를 얻는 요인 중 하나는 ‘좋았던 옛 시절(good old days)’에 대한 향수이다. 트럼프 스스로 그 좋았던 옛 시절을 자주 언급한다. 그는 최근 한 유세에서 흑인 시위대가 경찰에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좋았던 옛 시절에는 법 집행이 이보다 더 신속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요즘은 모두가 정치적 올바름을 중시한다. 우리나라는 완전 지옥이 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 때문이다.” 또 다른 유세에서도 그는 시위대가 끌려나가자 “옛날에는 저런 사람들은 걸어나가지 못하고 들것에 실려갔다. 그냥 얼굴에 펀치를 한 방 먹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백인인 청중들에게는 이런 얘기가 그렇게 통쾌한 모양이다. 무엇이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을 기괴하게 만들어 버렸을.. 2016. 3. 22.
미국의 흙수저들 지난 1월 어느날 미국 버지니아의 버니 샌더스 선거사무실 안내데스크에 앉아있던 자원봉사자는 한국계였다. 30대 중반인 그는 연방수사국(FBI) 직원이라는 신분상 제약 때문에 자세한 신원 정보를 명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돈을 모금하지는 못하지만 자기 집에서 전화로 샌더스에 대한 투표를 독려하는 ‘폰뱅크’ 행사를 열기도 하고, 비번인 날 선거사무실에 나와 몸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의 부모는 19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다른 한인 이민자들처럼 어렵게 살았다. 그는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해병대에 입대했고 이라크 전장에 배치됐다. 뒤늦게 동부의 유명 사립대를 졸업했다. 서른 살이 넘어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을 얻었지만 20만달러의 등록금 빚을 갚느라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 2016. 3. 1.
샌더스의 외교 ‘철학’ 1983년 3월 컬럼비아대 졸업을 앞둔 한 국제정치학도는 학내 잡지 기고에서 “대부분 학생들은 전쟁에 대한 직접적 지식이 없다”며 “군대의 폭력은 언제나 TV, 영화, 인쇄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이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내의 반핵 논의가 ‘최초공격’ ‘반격’ 같은 협소한 기술적 논의에 머물러 있다고 질타했다. 이는 “질병 자체보다 증상에 더 치중하는 것”이라며 핵문제는 결국 “미국의 경제와 정치, 나아가 군사주의라는 더 큰 문제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이 학생은 버락 오바마이다. 젊은 오바마는 문제의 본질이 미국의 군사주의에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취임 첫 해 ‘핵 없는 세계’ 선언에는 그런 연원이 있다. 20대 때 꿈에 비해 중년의 오바마가 재임기간 이뤄낸 성취는 실망스럽다고 .. 2016. 2. 16.
눈폭풍 잘 대처한 미국 미국 동부에 ‘역사적인’ 눈폭풍이 상륙하기 몇시간 전인 22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버지니아 페어팩스의 한 상점은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의 표정에서 근심을 읽기는 어려웠다. 카트마다 물과 빵, 스낵 같은 비상식량 외에도 술이 빠지지 않았다. 대자연의 힘에 의해 강제로 집에서 쉬어야 할 향후 수십시간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겠다는 태도로 보였다. 주유소에는 차량뿐만 아니라 드럼통에 기름을 담아 가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취학연령 이하 아이를 셋이나 둔 나는 전기가 끊어질 것이 가장 걱정됐다. 물과 라면, 땔감용 나무를 장만했다. 기상 캐스터들이 사흘 전부터 반복해서 ‘역사적인 눈폭풍이 온다’고 경고하며 대비하라고 할 때 ‘너무 겁을 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막상 대단치 않.. 2016. 1. 26.
‘위안부’ 합의 연출자, 미국 ‘윤병세-기시다 합의’ 직후 미국 국무부 당국자는 익명을 전제로 미국 정부 입장을 전화회의 방식으로 언론에 설명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기뻐하는 미국 정부의 표정은 전화 너머로도 느낄 수 있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데 시민단체나 피해자 본인들이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영향을 받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나는 국무부 당국자가 ‘양국 정부와 시민들이 결정할 문제’라 대답하고 그칠 줄 알았다. 의외로 답변이 계속 이어졌다. “민주적인 두 정부가 합의한 어떠한 것도 표현·집회의 자유라는 보편적 인권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 기념비적인 합의의 중요성을 양국 시민들이 놓쳐서는 안되고, 양국 화해를 독려하고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자극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줘야 .. 2016. 1. 5.
샌더스는 끝났는가 “주류 언론들이 버니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것이 느껴져요.” 버니 샌더스 지지자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는 간호사 레슬리 크레이거를 다시 마주친 것은 열흘쯤 전 크리스마스트리를 사기 위해 들른 동네 벼룩시장에서였다. 크레이거는 비싼 의료비와 간호사들의 노동조건을 비판하며 샌더스를 지지한다. 지난 10월 중순 민주당 첫 TV토론회가 펼쳐지던 날 밤 자신의 집에서 ‘하우스파티’를 열 당시의 그는 들뜬 열의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제는 좀 화가 나 있는 듯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의 불만에 근거가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나왔다. 미국 3대 방송사(ABC, CBS, NBC)의 황금시간대 뉴스를 모니터하는 블로그 ‘틴달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 3사가 지난 1년간 메인뉴스에서 트럼프를 별도 꼭지로 다룬 시간은 모두.. 2015.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