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제칼럼/기자메모, 기자칼럼'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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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기자메모, 기자칼럼46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1968년은 다사다난한 해였다. 그해 4월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사망했고, 반전·평화를 외쳤던 5월 혁명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었다. ‘그 후 50년이 흐르는 동안 전쟁은 끝났고 차별은 옳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달 1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은 우리 안의 차별 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고 완고한 것인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23세 동갑내기 사업가인 레이션 넬슨과 돈테 로빈슨은 이날 필라델피아의 한 스타벅스에서 또 다른 사업 파트너 앤드루 야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넬슨과 로빈슨은 스타벅스 직원에게 “음료를 아직 주문하지 않았지만 화장실을 사용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야멸차게도 “안.. 2018. 5. 8.
해시태그의 힘 미국인은 전 세계 인구의 4.3%지만 전 세계 민간인이 가진 총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 1968년 이후 미국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남북전쟁과 수많은 해외 참전에서 죽은 사람보다 많다. 비극적인 총기 난사 사고가 반복돼도 미국은 총기 규제로 좀체 나아가지 못했다. 총은 자기방어라는 미국적 신념의 결정체인 전미총기협회(NRA)는 너무도 거대했다. 그런 미국에 요즘 균열이 보인다. 지난달 14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로 17명이 숨진 후 일어난 총기 규제 여론은 종전과 좀 다르다. 총기를 규제하자고 외치다 거듭 좌절된 절박함이 임계점을 넘은 것일까. 총기를 규제하자고 하는 이들은 이제 ‘행동’하고 있다. 그 중심에 해시태그가 있다. 해시태그는 이제 ‘총기규제(#guncont.. 2018. 3. 6.
정치권 ‘미투’, 남의 일일까 문화·종교계 남성 인사들의 성폭력 전력을 폭로하는 증언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누가 더 충격적인지 경중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명제는 만고불변의 진리였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시기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이 권력을 행사해 여성에게 성적 관계를 강제하는 일은 지역과 문화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이 시작된 미국을 포함해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도 일부 남성의 성의식 수준은 한국보다 나을 게 없다. 가장 최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 유력 인사는 바너비 조이스 전 호주 부총리다. 조이스는 그의 공보 비서였던 여성과 내연 관계임이 보도된 데 이어 별도의 성폭력 의혹까지 받고 있다. 2주간 비판 여론이 들끓자 결국 그는 소속.. 2018. 2. 27.
막말의 비용 정치 신인이라던 대통령은 알고 보니 외교의 달인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세련된 외교 매너로 서구 언론의 혼을 쏙 빼놓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마크롱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고 썼고, 영국 가디언은 마크롱에게 ‘외교적 제스처의 장인(master)’이라는 수식어를 선사했다. 최근 마크롱은 독일·영국 등 다른 유럽 주요국 정상들보다 더 빈번히 뉴스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마크롱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상징을 적절히 활용해 정치와 외교에 서사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상징 활용은 정상 외교의 각종 이벤트에서 두드러진다. 마크롱은 지난해 9월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해 유럽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유럽연합(EU)의 미래상을 제시할 곳으로 민주주의가 태동한 아테네보다 .. 2018. 1. 23.
목욕을 생수로 해야 하는 도시 “엄마가 오늘 추수감사절 요리에 쓸 야채를 씻는데 한 번 씻을 때마다 생수 4병을 썼다. 그렇게 3번을 씻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미국의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을 앞둔 지난 21일,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의 탈리아 부퍼드 기자는 이런 트윗을 올렸다. 부퍼드의 고향은 미시간주의 작은 도시 플린트다. 지난해 이맘때 플린트 주민 멜리사 메이스도 트위터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식구들이 모여 앉은 식탁을 배경으로 작은 화이트보드에 추수감사절 요리를 하면서 쓴 생수 58병의 내역이 적혀 있다. 칠면조 해동하고 소금물에 담그기: 생수 33병, 칠면조 헹구기: 3병, 야채 씻기: 6병, 으깬 감자 요리: 6병…. 메이스는 지난 22일 온라인 매체 쿼츠에 “올해도 생수병을 따다 손에 물집이 잡혔다”고 말했다... 2017. 11. 30.
가미카제와 쿠데타 스페인의 ‘반역자’로 몰린 카를레스 푸지데몬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의 처지가 궁색하다. 지난달 27일 독립 선언 후 자치정부가 해산되고 검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자 그는 벨기에 브뤼셀로 몸을 피했다. 그가 여기서 정치적 망명을 하려 한다는 설이 돌았다. 지난달 31일 그는 “망명을 신청하러 온 게 아니라 자유롭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이곳에 왔다”며 “스페인 정부가 (신변 등) 보장을 해준다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벨기에 정부에는 네덜란드어권 지역 플랑드르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신플랑드르연대’가 참여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인 이들이 우호적으로 대해 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의회 최대 정당으로 정치권의 ‘주류’가 된 신플랑드르연대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푸지데몬을.. 2017. 11. 2.
노동자 잃은 사민당 24일(현지시간) 독일 총선 결과가 나온 후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SPD) 대표는 ‘씁쓸한 승리’를 거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향해 “이번 총선의 최대 패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슐츠가 메르켈 총리를 비웃을 처지는 아니다. 이번 총선의 최대 패자는 다름 아닌 슐츠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민당은 지금 존폐 기로에 놓였다. 사민당은 한때 굳건한 ‘노동자의 정당’이었다. 진보적 성향의 청년층과 중산층의 지지까지 더해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가 이끌던 1960~1980년대는 40%가 넘는 지지율을 자랑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신승한 2002년에도 38.5%로 연정을 끌고 나가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20.5%로 주저앉아 1933년 이래 최악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사민당의 텃밭이던 구.. 2017. 9. 28.
러시아 제재 계산표 미국 의회가 지난달 27일 러시아를 제재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 러시아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한데 유럽도 화가 났다. 독일 지그마어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미국이 관할을 넘어 유럽 기업을 제재하는 건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지난주 “우리의 우려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으면 법 시행 후 EU는 수일내 적정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제재에 같이 동참하고 있는 유럽이 왜 미국에 화를 내는 걸까. 가스관 때문이다. 미국은 이번 제재 법안에서 기존 러시아 제재에 “러시아 가스관 수출의 건설·복구 사업에 투자하거나 물자 및 기술,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업을 제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더했다. 법안은 러시아에서 독일로 오는 .. 2017. 8. 3.
헬무트 콜의 씁쓸한 장례식 지난달 16일 오후 5시17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 위해 바티칸에 도착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헬무트 콜 전 총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뉴스 보도를 통해서였다. 메르켈은 급히 조용한 장소를 찾아 콜의 부인 마이케 리히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도를 표하고 장례 절차를 논의해야 했다. ‘독일 통일의 설계자’ 콜에게는 국장이 마땅했다. 리히터는 유럽장(葬)을 말했다. 리히터는 이미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얘기를 끝낸 뒤였다. 다음날 융커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장을 거론하며 운을 띄웠다. 콜이 유럽통합에 기여했고, 세 명뿐인 EU명예시민이기에 자격은 충분했다. 그렇게 콜은 지난 1일 치러진 사상 첫 유럽장의 주인공이 됐다. 콜의 영결식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 2017.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