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일본’과 ‘일본의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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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본’과 ‘일본의 일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7. 25.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kan@iii.u-tokyo.ac.jp


 

지난해 3월11일 동일본에 몰아친 대지진과 원전사고로부터 1년 몇 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일본 민주당 정권은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에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으로 교체되었고, 여러 변화가 잇따르면서 일본 정치의 일탈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자민·공명당과 3당 합의에 의한 소비세 증세법안 타결과 오이(大飯) 원전 재가동 결정 움직임 등 노다 정권은 ‘결단하는 정치’를 내걸며 막무가내로 질주하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집권 여당인 민주당 안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를 중심으로 하는 파벌이 탈당했고, 민주당에 잔류한 하토야마(鳩山)파 등으로부터 공공연히 노다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경향신문DB)


이제는 정권교체 당시의 기대와 고양감은 시들었고, 민주당은 분열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민은 급속히 민주당 정권으로부터 떠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과 유권자가 제1야당인 자민당 지지로 돌아갔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일본의 국민 다수는 전후(戰後) 구체제의 중심이던 자민당에도, 정권 교체를 실현한 민주당에도 옐로카드를 들이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은 여당에도 야당에도 자신의 한 표를 의탁할 수 없게 됐다. 요컨대 일본의 유권자들은 얼터너티브(대안세력)를 잃었고, 정당정치 자체에 대한 실망감과 혐오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다 정권은 야당의 주장과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으로 정권 연명을 꾀하고 있다. 탈당사태로 참의원 내 제1당의 지위가 위태롭게 된 민주당에 있어 자민당과의 협력은 정권의 생명줄이 되려 하고 있다. 


이렇듯 일본 정치에서는 어포지션(야당·반대세력)이 기껏해야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사실상 민주·자민·공명 3당 합의에 의한 익찬(翼贊·보수연합)적인 정치 운영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총선거 시기를 늦추고 9월 예정인 민주당 대표선거에서 재선돼 임기 만료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싶은 노다 정권은 자민당에 환영받을 만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중국·대만과 갈등 중인 센카쿠(尖閣)열도의 국유화,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 발언 등이 그것이다. 


또 원전사고를 계기로 개정된 원자력기본법 부칙에 민주·자민·공명 3당 합의로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문구가 추가돼 국내외의 강한 우려와 반발도 불러일으켰다. 한국 언론에서도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을 것이다. 


이 같은 노다 정권의 움직임은 한국 언론과 여론으로서는 일본 ‘우경화’의 진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일본 내셔널리즘의 대두’라는 쪽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단선적이다. 


왜냐하면 ‘우경화’가 전후 장기간에 걸친 자민당 중심의 ‘55년 체제’하에서 봉인되어 온, ‘일본의 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소 욕망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면, 이 욕망은 일본 국내에서만으로는 완결될 수 없고, 미국과의 일체화를 통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의 일본’은 ‘미국의 일본’과 병행해 진전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여기에 전후 일본의 보수 내셔널리즘의 ‘패러사이트(기생)적 성격’이 담겨 있다.


실제 한국에서 보자면 우경화로 간주되기 쉬운 노다 정권의 발언과 움직임은 미국과 보다 긴밀한 일체화를 추진하는 움직임과 연동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발언과 ‘미망인 제조기’로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군 신형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의 오키나와 배치 강행 등은 ‘미국의 일본’을 추진하는 정지작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은 명백히 베이징의 정책적인 판단 착오, 실수에 기인한 것이다. 중국은 주변 해역의 영토문제에 강경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미국과 호주, 아세안(ASEAN) 국가들을 끌어들인 대중 대항체제 형성을 자초했다. 


노다 정권도 표면적으로는 대중국 포위망 형성을 부정하긴 하지만 ‘미국의 일본’을 심화시키고, 미·중 이극지배를 견제하면서 일본의 안전보장·국제 정치상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대외적인 ‘미국의 일본’화의 진전과 대내적인 ‘일본의 일본’화의 진전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으며, 그렇게 되는 한 전전(戰前)의 역사처럼 일본 단독으로 ‘일본의 아시아’를 추구하는 팽창적인 정책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일본’과 ‘일본의 일본’의 동시진행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일본 정치에서 새로운 움직임은 없는 것일까. 분명히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 총리 관저를 포위하는 대규모의 반원전 시위와 오스프리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 시위,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반대 시위 등 정당정치에서 갈 곳 잃은 시민과 주민들의 의사는 직접적인 시위행동이라는 형태로 일본 이곳저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반원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일본인들 (경향신문DB)


이 움직임은 종래의 좌익과 노조, 활동가들의 운동과는 질이 다르고, 오히려 그들과 결별한 형태로 참여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가두시위에 참가하는 시민이 적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이런 일본의 복잡한 움직임을 똑똑히 지켜보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심화할 것인가는 연말 대통령 선거로 등장할 새로운 한국의 지도자에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이다.


왜냐하면 일본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때 지금까지의 역사가 시사하는 것처럼,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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