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 이방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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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빵점’ 이방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6. 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큰딸 이방카의 장기는 ‘사라지기’다. 트럼프가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발표하는 순간 이방카는 현장에 없었다. 트럼프가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기 위해 트럼프케어의 하원 표결을 시도한 지난 3월에도 이방카는 콜로라도주의 스키리조트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즐겼다.

 

‘퍼스트도터’ 이방카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 없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그녀를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으로 묘사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성소수자(LGBTQ), 여성,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와 환경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미국 언론의 평가다. 직함도 없이 백악관 웨스트윙에 버젓이 사무실도 냈다. 실제 지난 2월 트럼프는 전임 행정부의 성소수자 권리 보호 행정명령을 폐기하려다 포기했다. 당시 뉴욕타임스 등은 이방카 부부의 설득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방카는 파리협정 탈퇴도 끝까지 반대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은 전했다.

 

트럼프의 극단적인 정책들을 얼마나 견제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얼마나 견인했느냐를 기준으로 이방카의 성적을 한번 매겨보자. 이방카가 반대했다고 하지만 트럼프는 결국 ‘종교의 자유’ 행정명령을 통해 성소수자 보호막을 걷어내버렸다. 2400만명이 건강보험을 잃게 될 것으로 추정되는 트럼프케어에 이방카가 반대하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일하는 여성: 성공의 법칙 다시 쓰기>란 책도 냈으나 오바마케어에서 의무화했던 산아제한 지원을 없애는 데 저항하고 있다는 전언은 들려오지 않는다. 기후변화 대응을 옹호한다지만 결국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를 막지 못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빵점’이다. 이방카는 공식 직함도, 직무도 없으니 책임질 일도 없다. 하지만 정식 직책을 맡았다면 그녀는 백악관 대변인 션 스파이서와 함께 해고 후보에 올라야 한다.

 

이쯤 되면 이방카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실제 이방카의 정치적 성향이 잘못 알려졌거나, 아니면 언론이 평가하는 것보다 트럼프에 대한 영향력이 미약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의 크리스티 골드퍼스는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는 아버지를 움직일 수 있는 이방카의 능력을 둘러싼 이야기들과 그녀의 명성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방카는 트럼프의 정치적 자산이다. ‘야수’ 아버지의 부정적 이미지를 보완해줄 ‘미녀’ 딸이다. 트럼프가 세 번 결혼한 방탕한 부동산 갑부라면 이방카는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는 세 아이의 엄마다. 트럼프가 부인 멜라니아의 손을 잡으려다 퇴짜 맞는 영상이 화제가 될 때 이방카는 꽃미남 남편, 아이들과 함께한 행복한 일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트럼프가 피츠버그의 블루칼라 노동자 이미지라면 이방카는 세련된 뉴요커다. 미국 사회에서 이방카와 그녀의 가족은 동경의 대상이다. 코미디 프로그램 <SNL>은 그녀를 상징하는 정서에 ‘공모(complicit)’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방카는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 같은 빛나는 자리에는 배석해도, 파리협정 탈퇴처럼 이미지 구길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를 두고 마치 ‘환경보호광고(greenwashing)’ 같다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오염의 주범 기업들이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적은 돈으로 환경을 소중히 하는 듯한 광고를 하는 것과 같은 역할이란 것이다. 심지어 이방카는 그런 최소한의 희생조차 하지 않고, 이해충돌 논란 속에 상업적 이득만 취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반성소수자, 반여성, 반이민, 반환경으로 가는 게 이방카 탓은 아니다. 그를 비판할 이유도 없다. 다만 이제 이방카가 트럼프의 독주를 견제해줄 것이란 기대는 접는 게 어떨까. 이방카는 실재가 아니라 이미지와 브랜드로만 존재하는지 모른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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