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천하’의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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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천하’의 한·일관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7. 25.

지난 21일 실시된 일본의 참의원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 여당·자민당의 압승과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대패로 끝났다. 여자정신대(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문제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일본유신회는 부진을 면치 못했고, 반(反)자민당의 목소리를 끌어모은 공산당이 두 자릿수 의석수를 확보하는 약진을 이루면서 정치지형의 분극(分極)화가 선명해졌다. 즉, 민주당과 여타 도시형 정당이 기세를 발휘하지 못하고, 중간층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온건한 리버럴 정당이 몰락하면서 한쪽 끝에 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있고, 다른쪽 끝에 공산당이 포진하는 형세가 됐다. 


(경향DB)


본래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 정치개혁의 슬로건은 무엇보다 양대정당제에 의한 안정된 정권교체와 정치쇄신이었다. 수년 전 민주당 정권의 탄생으로 일본에도 새로운 정치시스템이 정착하고 유럽·미국형의 안정적인 정치교체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자민당이 복권했고, 아베 정권이 탄생해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향후 3년은 선거가 없는 장기정권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양대정당제와 정반대의 결과가 된 것이다. 자민당이 걸리버 같은 거대정당으로 군림하고 그외 정당이 릴리퍼트(소인국)처럼 옹기종기 법석대는 정당지도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민주당 정권의 탄생으로 잠시 하야한 뒤 해체에 가까운 당 개혁을 부르짖던 자민당이었으나, 그 정책과 이념의 알맹이는 과거 보수정당의 유연함마저 팽개치고 극히 복고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이데올로기 정당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자민당이 국민정당으로서 일본 유권자를 끌어당겨온 힘의 원천에는 가급적 우익적인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정당 내부에 균일하지 않은 파벌이 동거하는 파벌연합체 형식을 취하는 것에 의해 안팎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던 유연함이 있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역사 바로잡기’뿐 아니라 헌법개정, 안전보장정책 재검토와 함께 중국에 대한 대결자세를 선명히 하고 있고, 한국에도 식민지 지배의 역사적 평가와 여자정신대 문제 등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수정주의적’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매파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무엇보다 근린 아시아국가들의 반발을 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한 태도를 시사하며 중국·한국의 우려를 일부러 유발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아베 정권의 체질과 정책, 지향하는 바는 단순한 ‘전전(戰前)회귀’는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아베노믹스와 환태평양경제협정(TPP) 참가를 추진하고 있어 과거 ‘아시아판 먼로주의’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네오콘)와는 역사적 배경과 문맥이 상당히 다르다고는 하지만, 아베 정권 내부에 신보수주의적인 면과 신자유주의적인 면이 혼연일체로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개방과 규제완화의 기수라는 점에서 명백히 신자유주의적인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폐쇄적인 내셔널리즘과 애국심의 고무, 군사력에의 쏠림이라는 점에서는 신보수주의적인 성격이 농후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만,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을 거뒀다고 해도 집단적 자위권과 자위대의 국방군 격상, 헌법 개정 등 아베 정권의 신보수주의적인 정책이 지지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가 자민당 지지로 연결됐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 특징적인 것은 투표율이 52%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수 가까운 유권자가 적극적, 소극적인 기권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그중 다수가 아마도 ‘무당파층’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정당정치와 민주주의가 상당히 병들어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유권자 전체의 4분의 1의 득표수를 획득한 정당이 제1당이 되고, 정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중의원과 참의원의 ‘네지레(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기 다른 정당이 다수당인 상태)’를 해소했고, 중·참 양원에서 여당이 제출한 법안의 통과를 꾀할 수 있는 확고한 다수파를 형성하게 됐다. 게다가 향후 3년간은 선거를 치르지 않는 장기정권의 가능성조차 높아졌다. 


그렇다면 향후 아베 정권이 여론의 지지를 배경으로 한국·중국에 매파적인 외교자세로 임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 시금석의 하나가 오는 8월15일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가능성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로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것은 알려진 대로지만 아베 총리가 같은 일을 되풀이할까, 어떨까?


또 아베 총리가 공식·비공식을 불문하고 참배를 피한다고 해도 당 간부와 유력 각료가 집단 참배에 나선다면 한국·중국의 반발은 피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8월 중순까지는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전망할 수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다만, 이런 현안뿐 아니라 향후 수 년간 아베 정권이 본격적인 개헌작업에 착수하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밀어붙일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명백히 전후 일본의 정치, 국가체제와 사회의 존재방식을 크게 바꾸게 될 것임은 틀림없다. 한국이 그러한 일본과 앞으로도 이웃나라로 마주해야 한다면, 일본에 대한 접근을 새삼 근저부터 재검토할 시기가 오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를 위해 한·미 관계 및 한·중 관계의 안정을 꾀하면서 북한과도 튼튼한 안보 위에 시시비비의 관계개선을 추진해 한국이 관계국들과 전방위적으로 안정된 외교관계를 구축하면서 일본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적어도 예전 같은 내밀하고 유착된 한·일관계는 청산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일본의 참의원 선거 결과는 이런 점을 말해주고 있다.


<번역 | 서의동 도쿄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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