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이름으로’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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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인민의 이름으로’ 열풍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4. 19.

지금 중국 누리꾼들이 가장 뜨겁게 지지하는 공무원은 다캉(達康) 서기다. 한둥(漢東)성 징저우(京州)시 서기인 그의 머릿속은 온통 GDP(국내총생산)로 가득 차 있다. 원리원칙주의자인 데다 다혈질이라 뜻대로 일이 처리되지 않으면 “법에 따라 처리해라” “이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냐”며 목에 핏대를 세운다. 누리꾼들은 그의 이런 모습이 귀엽고 인간적이라며 열광한다.

 

다캉 서기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한둥성 징저우시도 가상의 도시다. 지난달 말부터 방송 중인 반부패 드라마 <인민의 이름으로(人民的名義)>가 창조한 인물이다. 이 드라마는 방송 일주일 만에 온라인 조회수가 10억뷰를 넘었고, 전국 시청률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2%를 넘었다. 1%만 넘어도 국민드라마급 인기로 치는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다캉 서기가 수시로 차를 마시는 컵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다캉 서기 물컵’이라는 이름으로 팔려 나가고, ‘다캉 서기의 GDP는 우리가 지킨다’는 팬들의 구호까지 등장했다. 엄숙한 지도자가 아니라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정치드라마를 보지 않던 1980~1990년대생 젊은층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2004년 미디어산업을 총괄하는 광전총국은 반부패를 소재로 한 드라마 방송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비슷한 소재가 우후죽순 쏟아지면서 함량 미달작이 많아 공산당에 대한 인민의 신뢰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이후 10여년 동안 사라졌던 반부패 드라마가 다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반부패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후다. <인민의 이름으로>는 공직자의 뇌물수수를 중점 조사하는 최고인민감찰원 반부패총국을 배경으로 중국의 정치세계를 다룬다. 시 주석 집권 2기에 접어드는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를 앞두고 방송돼, 시 주석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한 고도의 선전술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중국 공산당이 선전에 TV 같은 매체를 동원한 건 오랜 전통이다. 최근 관영 CCTV는 문화대혁명 당시 시 주석의 하방(下放) 생활을 다룬 3부작 다큐멘터리 <초심(初心)>을 방송하며 시 주석 선전에 나섰다. CCTV는 지난해 6중전회 개막에 맞춰서는 황금시간대에 반부패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원히 길 위에서>를 내보냈다. 이 프로그램들은 젊은층까지 끌어당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민의 이름으로>는 트렌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후난위성TV에서 만들면서 젊은 시청자들을 흡인했다. “중국 젊은이들은 후난TV에서 만든 것은 뭐든지 본다”는 말까지 나온다.

 

공산당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청바지 차림 영국인이 출연한 4분 남짓한 홍보 동영상을 공개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랩을 가미한 ‘나의 양회’라는 동영상을 내놓았다. 인민해방군도 힙합스타일의 랩을 넣은 모병 동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이런 동영상에는 공산당의 정책이나 구체적 성과는 없고 공허한 이미지만 맴돈다. 가장 절박한 스모그 문제, 부동산 가격 상승, 취업 정책 중 주효한 정책은 찾기 힘들다. 성과가 변변치 않으니 이미지 같은 허상 만들기에만 몰두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중국 공산당 창당 95주년 기념식에서 표창을 받은 모범 당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창당 후 가장 큰 성과를 묻는 질문에 “잘살게 됐다”는 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공산당 지지율이 몇 퍼센트냐는 질문에는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다캉 서기가 <인민의 이름으로>에서 연기한 장면을 캡처한 이모티콘과 대사를 편집한 랩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인기다. 앞뒤 맥락은 알 수 없고 ‘말해봐’ ‘해결해라’ 같은 단문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반복된다. 보고 나면 재미있는 표정만 머릿속에 남는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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