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김정일’ 북한과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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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김정일’ 북한과 대북정책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1. 13.

냉전 붕괴로부터 20년. 새해를 맞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미국 일극체제를 뒷받침해온 선진국 주도형 세계경제 시스템의 종언과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 등 신흥국의 급속한 대두다. 하지만 유럽의 경제위기로 신흥국들도 탄력을 잃을 우려가 있어 세계는 다극화라기보다 무극화(無極化)로 향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 한국과 대만에서는 국정 최고책임자를 뽑는 선거가 있고, 중국에서는 공산당 지도부의 교체, 일본에서는 해산총선거가 거론되고 있다. 올해는 동북아시아의 정치적인 변동으로 기대와 불안, 낙관과 위기가 교차하면서 불안정한 시기에 접어들 수 있다. 
 

단둥에서 바라본 북한 주민들 l 출처 : 경향DB



지역적인 유동화를 더 불투명하게 하는 것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후계체제의 향방이다. 붕괴인가 폭발인가, 아니면 내분인가. 다양한 예측과 시뮬레이션이 어지러이 교차했지만 권력승계는 담담히 진행됐고 체제에 이변은 보이지 않는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와 마찬가지로 김정은 체제도 당분간 내부를 다잡는 등 새 체제의 안정에 에너지를 쏟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일 체제의 붕괴가 탈북자 급증과 아사자 속출, 물자와 에너지 부족 등으로 머지않았다는 예측이 반복돼 왔다. 그렇지만 북한은 탄도미사일 실험과 핵실험을 강행하고 우라늄 농축을 진행했다. 가까운 장래에는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왜 무너지지 않는가. 한·미·일 등의 거듭된 제재에도 왜 양보하지 않는 걸까.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대외정책은 강경해질 것인가, 유연해질 것인가. ‘선군정치’ 강화로 대남도발이 반복되고 개혁·개방과도 점점 멀어지게 될까. 아니면 대외 융화정책에 나서며 소리나지 않게 개혁·개방 쪽으로 궤도수정을 할 것인가. 어떻게 되든 신체제의 향방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북한은 변화해야 하고 독재는 종식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생각을 투영하면 북한은 붕괴 직전의 파탄국가로 보일 것이다. 내전(한국전쟁)과 이산가족, 그 후의 긴장과 대립, 포격사건 등으로 한국의 대북감정은 증오와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편으로 급속한 경제성장과 세대교체로 젊은층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엷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듯 북한에 대한 과도한 감정과 옅어지는 관심이 실상과 동떨어진 북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북한은 현존하고 있고, 포스트 김정일 체제도 존속하리라는 점이다. 물론 얼마나 갈 것인가는 국제환경과 국내요인에 의해 결정되겠지만 당분간 붕괴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북한은 유럽연합(EU) 주요국을 비롯해 세계 160개 가까운 나라와 외교·통상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미·일과의 외교두절 상태가 두드러져 보일 정도다. 두번째, 북한 무역총액의 80% 이상을 점하는 중국이 앞으로도 북한을 지원할 것이 틀림없다. 중국에 북한 문제는 대만 문제 이상으로 중요한, 국가 안전보장과 관련이 있다. 세번째, 북한 경제는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시기를 지나 미미하지만 성장을 유지하고 있고, 인프라의 복구도 시작되려는 참이다. 네번째, 도시부와 그 주변에 시장경제가 확대되고 있다. 결정적으로는 군부 내에서 김정은 체제를 놓고 균열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궁정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그렇다면 북한이 당분간 존속할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 낫고, 이를 전제로 ‘북한 리스크’와 마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적당한 시기에 6자회담을 재개해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구체화해 나갈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하는 사태는 어떤 주변국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를 저지하고 북한을 소리나지 않게 개혁·개방 쪽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것 외에는 남은 길이 없다. 안전보장 문제의 해결에 숨통이 트이게 되면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와 함께, 납치문제 등 북·일 현안이 해결돼 관계 정상화로 향하게 되지 않을까. 북한을 둘러싼 환경 변화와 개혁·개방이 진행되면 그때 비로소 세습 독재체제에 본격 위기가 발생할지 모른다. 어쨌든 ‘북한 리스크’에 대한 장기적이고 일관된 대응이 요구되는 것은 틀림없다. 

동방정책과 대 동독 외교를 맡았던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서독 외무장관이 내게 한 말이 떠오른다. 

“내 꿈은 자나깨나 동독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독은 현존하고 있다. 현존하고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치는 것은 픽션에 불과하다. 존재하고 있다면 교섭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동독에 갔다. 이것이 외교라는 것이다.” 리얼리즘에 철저했던 정치가의 말을 이 시기에 한번쯤 음미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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