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경제 병진노선’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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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핵·경제 병진노선’의 미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5. 11.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이 지향하고 있는 ‘핵·경제 병진노선’은 이제 북한의 국가 브랜드가 됐다. 외국 언론들도 별다른 용어 설명 없이 ‘병진(Byungjin)’이라고 표기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고유명사다. 지난 6~9일 북한이 36년 만에 처음으로 개최한 제7차 조선노동당대회는 핵·경제 병진노선이 북한의 ‘국시(國是)’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병진노선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처음 제시한 개념은 아니다. 병진노선은 김 위원장이 통치 스타일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조부 김일성 주석 시절의 정책이었다. 북한은 1962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 손에는 총을, 다른 한 손에는 낫과 망치를”이라는 구호와 함께 ‘경제건설과 국방건설 병진노선’을 제시했다.

북한이 1980년대까지 성공적인 공업국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군수산업과 중화학공업을 연계시킨 이 같은 병진 정책노선에 힘입은 것이었다.

북한이 병진노선을 다시 들고나온 것은 김정은 정권 출범 1년 뒤인 2013년 3월 역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서였다. 당시 북한은 전쟁 억지력을 포기했다가 침략을 초래한 발칸반도와 중동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경제와 핵무력 건설의 병진은 조성된 정세와 혁명발전의 합법칙적 요구에 맞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라고 소개했다.

북한은 병진노선 성공을 통해 과거 중국이 1970년대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폭탄·수소폭탄·인공위성의 성공을 의미하는 말)’ 국가가 된 직후 미국과 대화를 시작해 국교수립까지 이어진 전례를 재현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또 김일성 주석 시절 병진노선의 성공적 이행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국제적 환경이 달라진 지금 과거와 같은 방식이 통하기는 어렵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26일 서울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열린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30주년 기자회견에서 핵발전의 위험성과 탈핵을 주장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_정지윤기자

병진노선의 성공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핵개발로 인해 강력한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대외무역을 늘리고 외자를 유치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핵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는 것은 각국의 독자제재, 유엔결의를 통한 각종 제재가 모두 해제돼야 한다. 이는 곧 국제사회가 북한 핵을 용인하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르지만 애초부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 있었던 인도·파키스탄과 NPT에 가입했다가 탈퇴해 핵개발을 한 북한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북한은 이번 당대회에서 자신들이 핵보유국임을 강조하면서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전파방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확산을 하지 않을 테니 핵보유국 지위를 예외적으로 인정해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이 아니라 그 어느 나라도 예외를 인정받을 수는 없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하지 않고 있는 나라가 수십개국에 달한다. 핵비확산의 비중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만일 국제사회가 북한 핵문제를 용인한다면 다른 나라의 핵무장도 막을 수 없다. NPT 체제가 무너지고 세계는 핵무장국으로 가득 차게 된다. 북핵 문제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공멸이라는 위험한 폭탄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다. 국제적 시각으로 보면 북한이 핵물질을 생산하고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심각한 핵확산 행위이기 때문에 “핵전파방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북한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북한은 이번 당대회에서 병진노선을 일시적 대응책이 아닌 항구적 전략노선으로 규정하고 당 규약에도 자신들이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앞으로 북한에서 비핵화를 언급하는 것은 반당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핵문제에 대한 퇴로를 스스로 차단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북한이 병진노선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다. 헌법과 당 규약에 핵보유국을 명시했다고 해서 핵포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고지도자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는 ‘1인 영도체제’이기 때문이다.

병진노선에 국가의 명운을 건 북한의 무모한 시도는 실패가 자명해질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 기간에 가장 고통받는 것은 북한의 무고한 국민들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병진노선을 포기할 수 있도록 압박과 설득을 병행하는 작업을 멈춰서는 안된다. 또한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안보환경을 조성하는 일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유신모 |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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