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칼럼]스몰 이즈 뷰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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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칼럼]스몰 이즈 뷰티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2. 9.

강상중 |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

그리스 위기가 유럽 금융위기의 방아쇠가 되고, 이것이 중국 경제성장 둔화로 연결되고, 또 한국과 일본의 불황을 유발하고, 또…. 이런 부(負)의 사슬이 세계 동시 불황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임금 및 연금 삭감, 공공요금 인상과 의료비 삭감 등 초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으며 국가파탄의 고비를 맞고 있다.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질 경우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디폴트의 연쇄반응이 멈추지 않으면서 유로화의 파탄과 유럽연합(EU) 소멸로 최악의 경우 ‘보스니아식 내전’과 같은 상황이 초래되지 않으리라 단언하기도 어렵다. 나는 그리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지켜보며 일종의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 악재로 주가지수 50포인트가 빠진 2일 오후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주가와 외환 지수를 주시하고 있다. I 출처:경향DB


2002년 가을 NHK TV 프로그램의 자문역으로 국가파탄에 빠진 아르헨티나를 취재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한 달가량 머물 때였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들른 미국 공항은 2001년 9월11일 발생한 동시다발 테러로 사실상 임전태세를 방불케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대테러전쟁은 아랑곳없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연명할 것인가로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아르헨티나의 파탄 원인은 1991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이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1달러=1페소의 달러 페그 고정환율제에 합의한 데 있었다. 1980년대의 만성 인플레이션 상태를 벗어나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결과는 페소화 급등에 따른 버블 경제였다. 허구의 풍요함은 10년 만에 끝났고, 국가파탄에 빠지게 됐다. 예금 봉쇄, 외자 철수, 생필품의 품귀, 맹렬한 인플레이션 등 파탄의 영향은 사회를 뿌리째 붕괴시킬 기세였다. 게다가 가스, 수도, 전기, 통신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라이프라인 상당 부분이 ‘민영화’돼 요금을 낼 수 없는 가구가 속출했다. 물과 몇 줌 안되는 밀가루로 허기를 견디던 중산계급 가정주부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건 완만히 진행되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이다.”

확실히 ‘완만한 제노사이드’는 글로벌 경제의 희생자에게 닥친 비참한 상황을 표현해주고 있다. 앞으로 그리스에서도 ‘완만한 제노사이드’ 참상이 조용히 번져갈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런 참상에 넋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고, 자기방어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유력한 움직임은 지역통화에 의한 물자교환 네트워크를 전국적으로 펼치고, 생활필수품과 서비스를 나누고, 라이프라인을 보충하려는 시도였다. 그 주도세력들은 에른스트 슈마허의 ‘스몰 이즈 뷰티풀’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화석연료 및 자연의 허용치, 그리고 인간성을 우선시하는 지속가능한 경제. 슈마허가 제창한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중간기술의 개발로 지역경제가 네트워크 형태로 연결돼 가는 사회였다. ‘작은 것이 훌륭하다. 거대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파괴로 이어진다.’ 이것이 슈마허의 좌우명이었다. 슈마허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 오늘날을 예측했는지, 다음의 말을 보면 일종의 감동마저 느껴질 정도다. “원자로를 부수는 것도 가동하는 것도 안돼, 그냥 그대로 몇 백년간 혹은 몇 천년간 방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것은 소리없이 공기와 물과 토양에 방사능을 계속 흘려보내고, 모든 생물에 위협을 가한다. 이런 ‘악마의 공장’이 어디에서 얼마나 생겨나는지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지진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상정한다. 가동이 끝난 원자력발전소는 추악한 기념비로 남는다. 인류의 미래에 위협이 전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조금이라도 경제적 이익이 있는 이상 미래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의 미련함을 되새길 것이다.”

지진과 쓰나미가 계기가 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와 글로벌 금융 경제 파탄으로 초래된 유럽 위기를 보고 있으면 슈마허가 40년이나 앞서 오늘날을 들여다본 듯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대 위협은 결코 테러나 이슬람 원리주의, ‘문명의 충돌’ 등이 아니라 성장과 번영을 떠받쳐온 것으로 간주된 대규모 기술과 ‘자유화=규제 완화’라는 단순한 만능약이었던 것이다.

일본을 추월하라. 이 일념으로 앞뒤 안 재고 달린 한국. 그 성공 이야기는 세계의 상찬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성공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시기가 됐다. ‘크고 최신이며, 빠르고 글로벌한 자유화된 것’이 풍요함의 기준이고 선진국 여부를 재는 척도이던 시대는 종막을 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뒤쫓는 데 급급한다면 국민과 그 자손이 행복할 수 있을까. 일본은 이제 모범이라고 할 수 없고, 미국식 스타일의 레세페르(자유방임주의)도 서양 스타일의 ‘중국적’ 자본주의화의 길도 모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지금, 스스로의 창의력과 궁리로 21세기에 적합한 사회모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좌우명이 ‘스몰 이즈 뷰티풀’이 돼야 할 것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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