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칼럼]일본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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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칼럼]일본은 어디로 가는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11. 19.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결정됐고 중국에서는 새 공산당 집행부가 탄생했고, 일본에서는 총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전이 대단원을 맞이하고 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일본 총선의 움직임이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 집권 3년에 대한 평가를 넘어 정계재편이라는 격진(激震)의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년 전의 정권교체는 자민당의 ‘55년체제’에 종지부를 찍었고, 낡은 정치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본이 시작되리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그 상징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민주당은 항쟁과 대립이 반복되면서 통치능력을 상실한 채 해산·총선거로 몰리게 된 것이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반중시위 (경향신문DB)



민주당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사어(死語)’가 됐고, 노다 정권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협정(TPP) 참가를 앞당기려는 태도만이 눈에 띌 뿐이다. 노다 정권은 외견상 TPP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병행해 추진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협정에 쏠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특히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일·중간 대립이 이런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내 주요 언론 중에서는 중국을 잠재적 위협이나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이런 중국관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반중’ 움직임을 배경으로 중국 봉쇄에 가까운 전략을 취하려는 것이 현재 자민당 주류파벌이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재는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무라야마 담화’ 및 ‘고노 담화’ 취소를 시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중·일관계는 물론 한·일관계도 회복불가능한 대립에 빠질 것이다. 게다가 중국과의 적대관계를 부추기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지사와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 등 제3세력이 총선 후 캐스팅보트를 쥘 경우 한·일관계는 해방 이후 가장 심각한 대립에 직면할지 모른다.


일본의 ‘우경화’라 불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사견으로는 전후 보수세력 중 기시 노부스케(安信介) 전 총리 중심의 ‘한국·대만 로비스트’ 인맥에서 발원한 것으로 보인다. 구만주국에서 ‘그림자 총리’로 통했고, 전후 A급 전범으로 스가모 형무소에 수용됐다가 냉전격화로 정계에 복귀, 55년체제 구축의 일원이 된 기시의 파벌은 중·일 국교회복을 달성한 다나카(田中)파와 항쟁을 거듭하면서도 주류파가 되지 못했다. 사정이 바뀐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의 탄생부터였다. 고이즈미 정권 이래 기시파는 자민당의 주류가 됐고, 그로부터 아베 정권이 탄생하게 됐다.


아베 정권은 기시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중국과 북한에 강경태도를 관철하려 했다. 영토문제를 계기로 중·일관계가 옴짝달싹 못할 정도의 대립에 빠진 현재 제2차 아베정권이 출범할 경우 대만 로비스트의 ‘중국봉쇄’라는 오랜 꿈을 향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될지 모른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시하라가 과거 세이란카이(靑嵐會)를 중심으로 한 대만 로비스트 집단의 유력 멤버였으며 정치신조도 기시를 이어받았다는 점이다. 아베 총재는 혈연상 기시의 후손이고, 이시하라는 기시파의 인맥과 사상을 이어받았다. 또 하시모토 시장은 인맥상으론 기시파와 무관하되 정치이념과 정서는 기시파를 격세유전해 물려받았다. 일본 우경화 리더들이 과거 한국·대만 로비스트와 깊이 연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일 안보의 존재이유는 한반도와 대만해협의 유사시에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 이후 남북관계는 교류가 깊어졌고,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일·대만 관계 악화로, 중국과 대만간의 협력관계는 보다 깊어졌다. 즉 현재 한국과 대만은 과거 로비스트들이 그려오던 한국과 대만이 더이상 아닌 것이다. 한국·대만과의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을 봉쇄하려는 냉전적 정책으로는 미국의존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잃어가는 일본이 미국에도 매력적인 파트너가 아닐 것임은 틀림없다. 미국과의 교섭력을 상실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점차 지반침하 상태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애국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대만 로비스트의 영향력은 커져가고, 일본은 ‘아시아의 고아’가 될지 모를 난관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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