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칼럼]한·일 집권세력과 언론, 내셔널리즘 유혹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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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칼럼]한·일 집권세력과 언론, 내셔널리즘 유혹 벗어나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8. 22.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이명박 대통령의 돌연한 독도방문이 국내외에 파문을 키우고 있다.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의 독단적인 ‘정치적 쇼’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여서, 외교통상부와 외교관료, 주일 한국대사관은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은 물론 해외 어느 나라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특히 일본은 소비세 증세법안을 둘러싼 정국혼란 와중에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이 전혀 뜻밖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한국 내에서도 독도방문은 대통령 개인의 결단으로 강행되면서 국민이 허를 찔렸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대해 중장기적인 전략적 고려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일본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출처: 경향DB)



취임 때부터 일본에 대해 ‘햇볕정책’을 취해온 이 대통령은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편한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으로 일본의 대한 직접투자가 늘어나고 대일 무역역조도 개선의 조짐이 나타났다. 북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태도는 일본에서는 오히려 좋게 평가되어 북한에 대한 대응에 한·일 간 협력이 보다 강고해질 것으로 여겨져왔다. 


게다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대립격화와 함께 대중국 견제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서 자리잡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일 밀월도 상호간 전략적인 의도가 어긋나면서 점차 불화로 변질되었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역사인식과 ‘일본군 위안부’ 등의 문제에 대한 국내의 대일 요구를 억눌러가면서 대일 접근을 꾀했던 만큼 일본의 양보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허사였다. 그런 점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이 교토(京都) 한·일 정상회담이었다. 회담에서 일본의 외무성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은 위안부 문제에 인도적인 퍼포먼스조차 실행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명백히 했다. 일본에 유화적이었던 대통령으로서는 ‘저자세 외교’라는 평가만이 남게 되었다. 


본래 구(舊)체제 중심에 있는 자민당과의 협력없이 소비세 증세를 비롯한 여러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노다 정권에게 위안부 문제를 놓고 한국과 타협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영토와 역사 문제에 강경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파벌그룹을 안고 있는 데다 냉전시대 한·일 유착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자민당의 반발을 생각하면 노다 정권은 한·일협약 재검토로 이어질지 모를 타협에 나설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전략적 결단을 기대해온 이명박 정부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다 정권도 이명박 정부의 대중외교를 잘못 읽었다. 중국의 군사적 대두와 해군력 증강, 영토대립 등에서 일본은 한국이 보다 일본의 입장에 접근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일 간 군사정보의 포괄적인 보호협정을 체결하는 움직임에도 속도를 냈다. 하지만 협정이 체결 직전 취소되었다. 


경제적인 연계와 안전보장 관점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의 연계를 심화시켜 중국 견제로 나서려고는 하지 않았다. 대중 견제 차원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에 착안한 일본은 미·일 안보를 기축으로 하면서도 한국을 대중 견제의 유력한 수단으로 위치짓고, 안전보장 전략에 한국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좌절되고만 것이다. 


이 같은 한·일 간 전략적인 구상의 엇갈림이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이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진 정권을 지탱해 보려고 독도방문을 강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충격으로 원전사고 문제를 안고 있는 데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대립, 북방영토(쿠릴열도)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와 오스프리 배치 문제에서 미국과의 불협화음으로 고심하는 노다 정권에 독도문제로 한국과 균열이 깊어진다면 일본의 외교, 안전보장은 꽉 막힌 상태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9월 중 대표 및 총재선거를 앞두고 있는 민주당과 자민당의 당내 사정과 연내 총선거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한국에 강경 수단을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이 독도방문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이상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독도방문이라는 ‘후미에’(踏繪·사상검열 수단)가 부과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한·일관계가 험악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사태를 보다 복잡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은 일본 국내에서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에 ‘총리가 방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다. 그럴 경우 중·일관계는 험악해지지 않을 수 없고, 한·중·일 3개국의 협력이 흐트러질 뿐 아니라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의 기운이 높아지면서 예측불허의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사태까지 감안하면서 독도방문 카드를 꺼낸 것인가. 한국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고, 이 이상 풍파를 몰고 오는 것은 오히려 한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바람직한 것은 한·일 양국이 영토문제를 수단으로 삼아 국내 정국을 유리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정치역학을 되도록 약하게 만들어, 동아시아라는 광역권의 형성을 향한 한·일 협력의 구체적인 여정을 세우고 착실히 실행해 가는 것이다. 양국의 집권세력과 언론들은 영토 내셔널리즘의 유혹에 지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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