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밀양, 성주, 다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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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강정, 밀양, 성주, 다코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9. 21.

5~6년쯤 전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한 대학교수와 사석에서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주도적으로 입안한 전문가다. 그의 논리는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 해군의 투사력을 확보하는 전략적 차원에서 제주에 군항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 일변도로 가는 바람에 이 군항이 미국의 중국 견제의 최전선으로 인식되면서 당초 의도가 왜곡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기지가 필요하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안보 프레임 안에서 그의 주장을 논박할 능력이 없었다. 다만 이런 얘기를 했다. 세상을 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기지 건설이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지 않으냐. 당신 스스로 말하듯이 “진보적 지식인”이라면 안보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오래 터 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 자연의 보전, 나아가 평화라는 가치도 중요하지 않으냐. 그 대화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하며 끝났다.

 

미국인 수천명이 2013년 2월 17일 워싱턴에 모여 캐나다에서 미 본토를 거쳐 멕시코만까지 연결하는 키스톤 XL 송유관 건설계획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그 후의 일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지역 주민들, 종교·시민단체의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시작됐다.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에는 이제 되돌리기 어렵다는 이유도 동원됐다. 해군은 공사를 강행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공사가 지연돼 손해를 입었다며 주민들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소송까지 벌이고 있다.

 

그 교수와의 대화가 이따금 떠오르는 것은 밀양 송전탑 건설,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포대 배치 등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안보 논리로 정당화하고, 어떨 때는 경제 논리를 내세우는 것만 다를 뿐이다. 주민 의사를 수렴하는 절차를 경시하고 보상 문제로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나, 그 현장이 서울이 아니라 지방인 점도 비슷하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다. 하지만 전개 방식이 늘 같지는 않다. 최근 노스다코타에서 일리노이까지 이어지는 1900㎞ 길이의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이 60%가량 진행됐음에도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송유관이 지나는 지역에 사는 원주민 ‘스탠딩록 수’ 부족은 조그마한 기름 유출사고에도 식수원이 오염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원주민 성지들이 파괴된다며 송유관 건설에 반대한다. 환경단체들은 온실가스 배출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도 거론한다. 반면 개발업자들은 경제 논리를 내세운다. 외국산 원유 의존을 줄이는 데다, 철로에 다른 농산품과 공산품을 실을 여유가 생기며, 토목사업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경제 논리가 단연 압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법원이 공사중단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날 정부 소유 부지 내의 공사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영향평가가 이뤄질 때까지 잠정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수 부족의 외로운 싸움에 힘을 불어넣었다. 지난 4월 부족민 수십명이 시작한 싸움은 워싱턴, 뉴욕, 필라델피아 등 전국적 연대 시위로 확대되고 있다. 어쩌면 이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이 많고, 앵글로색슨 국가가 원주민에게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는 오바마 정부하에서 예외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비슷한 성격의 노무현 정부하에서는 그것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분명한 것은 정부 정책의 문제를 제기하며 끈질기게 저항하는 당사자들이 결국 어느 시점에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생각보다 많이 있으며, 자신들의 싸움이 외롭지 않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거대 토목사업인 키스톤 송유관 건설에 반대하기 위해 워싱턴 연방의회 앞에 온 수 부족의 한 여성이 말했다. 다코타(Dakota)는 부족어로 ‘동맹(ally)’이라는 의미라고. 동맹은 워싱턴과 서울의 관계에만 쓰는 말이 아니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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