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을 “대안 사실”로 포장…트럼프 정부, ‘탈진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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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거짓을 “대안 사실”로 포장…트럼프 정부, ‘탈진실’의 민낯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1. 24.

도널드 트럼프 미국 신임 대통령의 선임고문 켈리앤 콘웨이가 ‘대안 사실(alternative fact)’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인원에 대한 백악관 대변인의 거짓말 브리핑을 포장하기 위해 동원한 용어다. 대선 캠페인 기간 내내 사실을 무시하거나 왜곡, ‘탈진실(post truth)’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트럼프 측이 집권 뒤에도 비슷한 행태를 이어갈 것임을 보여준다.

 

콘웨이는 22일(현지시간) NBC 방송에 출연해, 전날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의 발언을 옹호했다. 스파이서는 트럼프 취임식 관람객이 “역대 가장 많았다”고 브리핑을 했다. 이 말이 거짓말 아니냐고 사회자가 지적하자 콘웨이는 “대변인은 대안 사실을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안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이다”라고 비판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는 이 사건을 꼬집는 ‘대안 사실’ 항목이 생겼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온라인에 “‘사실’은 통상 실제로 존재하거나 객관적 현실로 여겨지는 것을 가리킨다”는 설명을 게시했다.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 중인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마알레아두밈 정착촌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건축자재를 옮기고 있다. 친이스라엘 성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인 동예루살렘에 600가구 규모의 새 정착촌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마알레아두밈 _ AP연합뉴스

 

논란의 출발점은 트럼프였다. 그는 취임 이틀째인 21일 중앙정보국(CIA)을 방문, 자신의 취임식 인파가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취임 때보다 적었다는 언론 보도를 비판하며 “100만명이나 150만명은 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시간 후 스파이서가 백악관 브리핑룸 첫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주장을 편든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 전철 승객 통계나 텔레비전 시청자 집계 등을 종합해보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항공사진과 각종 영상을 분석한 학자들의 추산치를 보면 20일 취임식 인파는 16만명이었고, 이튿날 트럼프에 반대하는 여성행진 참여자는 47만명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콘웨이는 거짓말을 ‘대안 사실’이라는 궤변으로 포장했다. 인종주의 극우파들이 스스로를 ‘알트라이트(대안 우파)’라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CBS뉴스 앵커 출신인 댄 래더는 페이스북에서 “미국 대통령 대변인이 ‘대안 팩트’란 오웰적 표현으로 거짓말을 덮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명백한 거짓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브리핑해 세계를 웃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대변인 ‘바그다드 밥(무하마드 사에드 알샤하프)’을 연상시킨다는 말도 나온다. 공화당 전략가 스티브 스미트는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서 “정부의 의도적인 속임수와 거짓말은 전체주의, 권위주의 체제의 상징이며 민주주의에는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켈리앤 콘웨이 선임고문

 

검증 사이트 ‘폴리팩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선 때 200개가 넘는 명백한 거짓말을 했다. 트럼프 정부 4년 내내 거짓말과 자의적 주장이 이어지고 언론 담당들은 이를 ‘대안 사실’이라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억지 용어로 포장한들, 거짓말은 결국 정부의 신뢰를 추락시킬 수밖에 없다. 경제통계나 안보협상에 대한 정부의 주장조차 ‘대안 사실’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언론과 전쟁 중”이라고 했으나, 정부 주장을 검증하고 대중에 알리는 언론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 언론 브리핑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보도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진단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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