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대중국 외교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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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경향의 눈]대중국 외교의 반성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1. 30.
이승철 논설위원


한·중 수교를 앞둔 1992년 초다. 대만정부 초청으로 타이베이를 방문한 외교부 출입기자단은 현지 고위 관리들과 정치인들을 잇달아 만났다. 

이들에게 했던 질문이다. “대만은 중국 본토에 엄청난 투자와 교역을 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국이 미래의 거대시장인 중국 본토와 수교를 하지 않고 경제발전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대만이 막대한 투자로 조만간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일할 것”이라며 “그때 한국이 본격적으로 투자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이제 그들의 야무졌던 꿈은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중국은 대만을 한낱 1개 ‘성(省)’ 정도로 간주하는 반면 대만은 제발 ‘성’이라는 호칭만은 붙이지 말아달라고 애소하는 형편이다. 

기자의 눈에 비친 한·중관계도 마찬가지다. 수교 초기인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두 나라의 관계는 좋기만 했다. 2대 황병태 주중대사가 96년 2월 이임할 때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환송연까지 열어주었을 정도로 중국은 한국을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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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한·중관계는 중국이 헛기침이라도 할라치면 한국이 경기(驚氣)를 일으킬 만큼 많이 바뀌었다. 지난 주말 긴급 수석대표 6자회담 개최 제의가 중국이 생각하는 한국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방한한 다이빙궈 부총리에게 부정적 의사를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외교부는 자신들의 중대발표 예고대로 수석대표회동 개최를 제의했다. 다이빙궈의 대통령 면담은 중국에 요식행위였던 셈이다. 이 대통령-다이빙궈 부총리 대화에 비공개 내용이 없다면 중국의 외교적 모욕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이빙궈 방한 ‘외교적 모욕’

왜 이렇게 됐을까. 두말할 것 없이 중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이 커진 것이 근본적 이유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중국의 발전에 따라 응당 우리의 대중 외교도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어야 할 텐데 우리는 여전히 단선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 

우선 우리는 한·중관계를 한·미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 즉 미국과 중국을 저울의 양 끝에 놓고 어느 쪽이 무거운지를 버릇처럼 계산해왔다. 노무현 정부의 균형자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 좋은 예다. 친미(親美)면 반중(反中), 반중이면 친미라는 단순 논리에 따라 미국이나 중국이 한마디 할 때마다 깜짝 놀랐다. 

우리는 남북관계의 시각에서 중국을 인식한다. 그런데 다분히 2중적이다.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또 한편으로 중국의 긍정적 역할을 주문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이용해 외교적 지렛대로 마음껏 활용해왔다. 6자회담에서 중국이 의장국이라는 감투를 쓰고 한 역할을 되짚어보면 실상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경제측면에서 중국을 바라본다.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다. 중국의 경제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절대적 관심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우리에게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으로 표면화한 한·중 간의 불편한 관계는 수교 18년을 지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성장통일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우리가 미국, 북한, 경제라는 안경을 통해서 중국을 바라본다면 바람직한 한·중관계를 세울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다른 나라와 다른 외교행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새로운 한·중관계 구축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전 지구적 시야에서 볼 필요

정답을 찾지 못할 경우 최선의 해결책은 역시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중국을 미국, 북한, 경제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 시야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인도를 예로 들 수 있다. 미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중국을 의식해 인도를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 관계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도를 수출시장이나 요가의 나라 정도로밖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 전문가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시민단체 등 중국 내부의 다양한 세력들과 접촉면을 넓히는 것은 중요하다.

인권과 인류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세다. 당장은 중국과 불편할 수 있지만 장기적 시각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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