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소프. 열흘 전까지만 해도 그를 잘 알지 못했다. 언젠가 미국 언론에서 그의 이름을 언뜻 본 것 같지만 관심 밖이었다. 어느 누가 남의 나라의 보궐선거와 이름 없는 정치인에게 관심을 가질까. 그런데 알고 보니 무시해도 될 보궐선거가 아니었다. 두 후보 진영에는 사활이 걸린 선거였다. 투입된 선거자금만 5500만달러가 넘었다. 보궐선거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투표율도 역대 최고였다. 이제껏 이런 선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박진감도 있었다. 그 중심에 오소프가 있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끝난 미국 조지아주 6선거구 보궐선거 이야기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 후 하원의원들의 정부직 진출로 보궐선거를 치른 4곳 중 한 곳이었다. 트럼프 심판이 쟁점이었지만 네 곳 모두 공화당 아성인 탓에 민주당은 전패했다. 그럼에도 유독 조지아주 선거에 관심이 집중됐다. 유일하게 민주당의 승리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애틀랜타 북부 외곽지역을 아우르는 조지아주 6선거구는 민주당에 결코 만만한 지역구가 아니다. 1979년부터 공화당의 텃밭이었다. 지난해 하원선거에서도 현역이던 공화당의 톰 프라이스(현 보건장관)는 23%포인트 차 승리를 거뒀다. 2000년 이후 대선에서도 지난해를 제외하고는 공화당 후보가 압승했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을 1%포인트 남짓한 표차로 힘겹게 이겼다.

 

존 오소프 민주당 후보가 미국 조지아주 6구역 보궐선거 후 열린 자축연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소프는 민주당 후보였다. 앳된 외모를 지닌 만 서른 살 새내기 정치인이다. 정치 경험은 의원 보좌관 5년이 전부다. 풋풋함과 참신성이 그의 최대 무기였다. 상대는 주 국무장관을 지낸 뒤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 도전 경험이 있는 여성 정치인 캐런 핸들(55)이었다. 오소프는 출마 선언 이후 돌풍을 일으켰다. 버락 오바마식 풀뿌리 소액 선거자금 모금전략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결과 4월18일 1차 투표에서는 48.1%를 득표해 2위 핸들(19.8%)을 압도했다. 결선투표 승리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언론 평판도 좋았다. 창당 1년 만에 대선과 총선에서 압승하는 선거혁명을 일으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비유됐다.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었다. 민주당은 1만명이 넘는 자원봉사대를 모아 유권자 50만명의 집을 직접 찾아가 표를 호소했다. 광고 홍보비로만 1100만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미국판 마크롱’ 바람은 불지 않았다. 득표율도 1차 때와 비슷한 48.2%에 그쳤다. 오소프는 왜 졌을까.

 

우선 민주당의 선거전략 실패에 있다. 지역구민 문제보다 러시아 게이트와 탄핵을 앞세운 트럼프 심판론에 집중했다. 이는 공화당의 결집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공화당은 지지자들의 투표심리를 파고든 전략으로 판을 뒤집었다. 이들의 동력이 상대 후보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오소프는 ‘낸시 펠로시(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의 아바타’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호소가 먹혀들었다. 오소프도 스스로 한계를 드러냈다. 기성 정치판을 뒤엎을 만한 자생력이 없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오소프는 26일자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지역 발전과 기회에 중심을 둔 경제 우선주의 선거전략을 썼다고 밝혔다. 동시에 여성의 (임신중절) 선택권이나 이민 개혁, 성소수자 권리, 기후변화에 대한 미국의 지도력 등에 대해 확고한 지지를 표명했다고도 했다. 중앙당과 차별된 전략을 썼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도 그가 중앙당과 거리를 둔 선거운동을 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인들이 마크롱을 선택한 것은 기성 정치와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프랑스가 아니었다. 양당 정치의 벽은 오소프가 넘기에는 높고 견고했다. 실제로 민주당 선거전략이 오소프를 망쳤을지도 모른다. 이 점은 민주당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보궐선거는 내년 중간선거의 가늠자로 여겨졌다. 현재로서는 반트럼프 카드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고무된 트럼프는 오바마를 끌어들여 러시아 게이트 수렁에서 탈출을 시도 중이다. 28일 저녁에는 2020년 재선을 위한 첫 번째 모금활동을 할 예정이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던 오바마가 백악관 입성의 발판을 마련한 계기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이었다. “진보 미국도, 보수 미국도 없다. 미합중국만 있다.” 이 연설로 그는 통합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오소프에게 그런 기회가 올까.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민주당의 운명이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기회를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오소프의 몫이다. 오소프는 선거판에서 명멸하는 많은 정치인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오소프라는 이름을 기억하련다. 언젠가 미국의 마크롱, 제2의 오바마가 되길 기대하면서.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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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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