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도 리비아도 못 가지만… 난민캠프엔 새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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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리비아 서바이벌

고국도 리비아도 못 가지만… 난민캠프엔 새 삶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9. 3.

태어난 지 40일 된 베로니카는 살을 태우는 듯한 뙤약볕 아래서도 새근새근 참 잘 잤다. 부모의 어려운 상황을 알기라도 한 걸까. 3일 오전 11시30분. 유엔난민기구가 운영하는 튀니지 라스아지르의 슈샤 리비아 캠프를 찾았다. 


■ 카다피 용병으로 의심 받아


이곳은 튀니지와 리비아의 해안 국경에서 8㎞ 남짓 떨어진 사막에 위치해 있다. 지난 2월 리비아 상황이 악화된 이래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 가운데 제3국 국민들이 머무는 캠프다. 특히 고국의 내전, 테러, 빈곤, 기근 등으로 인해 리비아로도, 고국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난민이나 난민 지위 신청자들이 모여 있다.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인 아담 로울리(26·가명)가 지난 3월31일 리비아 국경을 넘어 튀니지의 난민캠프로 옮겨온 뒤 태어난 딸 베로니카를 돌보고 있다. 아기 엄마(22)는 사진 촬영을 한사코 꺼렸다. _ 이지선 기자

 


베로니카는 바로 이곳 슈샤 캠프에서 태어났다. 아빠 아담 로울리(26·가명)와 엄마 리븐스 돌(22·가명)은 에리트레아 출신 불법이민자이다. 리비아에서 3년가량 일하다 리비아 상황이 혼란에 빠지자 지난 3월31일 어렵사리 국경을 넘어 튀니지로 왔다.


임신한 돌이 국경을 건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리비아에 머무는 것은 더 위험했다. 반군에게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 측의 용병으로 의심받았고 카다피군도 그들을 차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자리도 없었고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수도 트리폴리에서 리비아인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튀니지로 오는 데 든 경비는 1인당 600리비아디나르(약 64만원). 기름값이 4~5배 오른 상황에서 트리폴리에서 4명이 리비아인 기사가 운전하는 리비아 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데 우리 일행이 850리비아디나르를 지불한 것에 비하면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다. 그만큼 당시의 다급했던 상황을 말해준다. 


로울리는 2008년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이나 에리트레아 내전으로 인한 징병을 피해 일단 수단으로 탈출했다가 일거리를 찾아 리비아로 넘어갔다. 그 여정이 어땠는지 묻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시무시했다”고 말했다. 정부군에 색출돼 고국으로 보내지면 어떤 고초를 겪을지 모르고 운이 좋게 수단쪽 국경을 넘는다고 해도 약 5000㎞의 사막을 건너야 했다. 모두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것이다. 


로울리는 “적어도 리비아에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갓난아기가 더운 날씨를 이겨낼지 은근히 걱정이다. 이날 기온은 42도. 캠프에 설치된 수도를 틀자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돌은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피했지만 로울리는 다정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로울리와 돌 부부는 지난달 11일부터 난민지위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난민 지위를 받으면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제3국으로 갈 생각이다. 부부는 “세상의 모든 돈을 다 준다고 해도 위험한 리비아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어린 친구야, 두려워 말아라


슈샤 캠프에는 로울리와 돌과 같은 사연을 간직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소말리아인이 가장 많고 에리트레아, 수단, 에티오피아 등 인구가 많은 순으로 구역이 구분돼 있다. 나머지 국가 출신들은 한 구역에 모여 있다. 모두 22개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세워진 지 6개월이 넘었기 때문에 캠프는 그나마 안정궤도에 진입했다. 생수병 대신 수도관이 들어왔고 밤에도 불빛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전기가 공급된다. 


공동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고 음식 배급장소도 구역별로 나뉘어 있다. 유니세프나 세이브더칠드런 등은 글자를 배운 적 없는 사람들에게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를 가르치는 간이학교를 세웠다.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한 구호단체들은 의료를 담당한다. 


난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구멍가게도 있다. 인근 도시인 빈 가르데인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데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은 담배와 국제전화카드라고 한다. 하지만 이날도 캠프는 잠잠하지 않았다. 캠프 관계자는 소말리아 구역의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남자직원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구역 전체가 들썩였다고 브리핑했다. 또 7명의 카다피군 용병이 사막을 넘어 캠프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반군이 장악한 국경 검문소를 피해 용케도 튀니지로 넘어온 것이다.


얼마 전 캠프에서는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이 끝난 뒤 5일간의 이드 연휴를 맞아 다함께 즐길 수 있는 조촐한 파티를 마련했다. 파티라고 해봐야 풍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안으로 밀어두었던 아픔을 해소하는 자리였다. 학생 2명이 파티 때 불렀던 노래를 다시 들려주었다. 바로 자신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어린 친구여, 두려워하지 말아요.”


<리비아 접경 라스아지르에서>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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