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는 돈, 넘지 못하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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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김민정의 '삶과 상상력'

국경을 넘는 돈, 넘지 못하는 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2. 7.

국경과 돈

돈이 국경을 넘기는 사람보다 쉽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세계 체제에 기반을 두니 그럴 것이다. 돈이 다국적 기업의 자본으로, 국제기관의 보조금이나 대부금으로, 전쟁을 막으려고 또는 도우려고, 자연재해의 피해를 덜어주려고, 이주 노동자들의 송금으로, 국경을 넘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오늘날 세계의 구성단위인 국가의 주권은 자국의 통화를 정하고 그 유통에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세계화의 딜레마는 금융의 자유화 추세와 국가의 금융주권 사이에서 심각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는 국경을 넘기 시작한 돈이 어떻게 전 세계를 금융위기의 연쇄 작용으로 몰아넣는지 여실히 증명하였다. 2011년과 2012년 연이어 한국사회를 놀래 킨 저축은행의 부실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가 뒤늦게 터진 결과였다.

저축은행들의 무분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문제의 시작이었지만, 정치권 로비로 사태를 무마하려 하고 임원과 특권층 고객에게만 은행 퇴출 정보를 흘린 비리와 부정부패가 문제를 키웠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금융기관 파산시 예금자보호제도에 의해 최대 5천만 원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는 법규를 온 국민이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저축은행 사태에 외국인 예금주가 포함되어 있었다면 국가의 보상책임은 어떻게 될까?

 

사진: 아이슬란드 통화 크로나, 동전은 모두 해산물로 디자인되었다. 필자촬영

 

아이스세이브(Icesave) 사례

아이슬란드는 최근 ‘아이스세이브’ 사건에 대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법원의 승소 판결로 국내 해외뉴스를 탔다. 아이스세이브는 아이슬란드 은행인 란스방키(Landsbanki)가 2006년에 영국과 네덜란드를 상대로 판매한 인터넷 예금상품이다. 연7%의 고금리를 제시한 탓에 35만 명의 고객이 몰렸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슬란드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첫 희생 국가였다. 2008년 10월 6일, 아이슬란드 민영 은행 세 곳이 파산하여 국영화되는데, 란스방키도 이중 하나였다. 당시 세 대형은행의 해외차입 규모는 620억 달러로 아이슬란드 전체 외채의 90%를 차지하였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국가 파산상태를 선고하여 외환 거래를 동결하고, 국내 통화인 크로나의 가치를 절반으로 격하시켰다.

 

사진: 아이스세이브 로고

 

영국과 네덜란드는 53억에 달하는 자국민의 예금을 우선 지급하고 아이슬란드에게 상환 압박을 가하였다. 영국은 란즈방키를 알카에다와 같은 반테러법 적용 조직으로 지정하기까지 하였다. 국가 간의 힘든 협상 끝에 2009년 6월 5일, 아이슬란드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자국 예금주에게 지급한 금액 중 38억을 15년 동안 5.55% 이자로 빌려 갚고, 나머지는 란스방키 부동산을 처분하여 빚을 갚는 것에 합의하였다. 아이슬란드 정치권은 이 문제로 갑론을박을 벌였고 약간 수정된 법안이 가까스로 의회를 통과하였으나 6만 명의 청원을 접수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2010년 3월 6일에 시행된 국민투표에서 93%가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아이슬란드 정부는 빚을 지면서까지 외국인 예금주 보호를 시행하지는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이스세이브에 묶인 돈은 인구 32만 명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 국내총생산의 8배에 달하는 규모였던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영국과 네덜란드와 이자율이 3.2%로 떨어진 새로운 합의에 도달하였고 새 법안은 의회에서 다수의 지지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5만 명의 서명을 받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였고 2011년 4월 10일 시행된 국민투표에서 60%가 반대하였다. 결국 영국과 네덜란드는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산하 감독청(ESA)에 아이슬란드를 제소하였다. 재판 중에 리히텐슈타인과 노르웨이는 아이슬란드를 지지하였고, 유럽연합 중 영국과 네덜란드만이 끝까지 아이슬란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1월 28일, 유럽자유무역연합은 아이슬란드가 영국과 네덜란드가 예금주들에게 돌려 준 돈을 갚을 필요가 없고 란스방키 자산 매각만으로 예금액을 상환해도 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드디어 5년에 걸친 지난한 논쟁과 대결 국면 속에서 국경을 넘는 돈에 대한 새로운 역사가 기록되었다.

 

사진: 아이슬란드 국민들의 시위, 2008년. Copyright: Icelandic Photo Agency

개방은 하되, 국경의 턱을 낮출 수는 없는: 아이슬란드와 유럽연합

북극권 바로 아래 위치한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이차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어업을 통해 잘사는 북구권 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금융시장을 적극적으로 개방하면서 경제를 키워나갔다. 하지만 금융 산업이 지나치게 성장하는 것에 발맞추어 정부와 금융당국의 감독과 통제는 강화되지 못하였고 결국 국가 파산 상태를 맞았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슬란드의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사실이 금융위기와 관련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논해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아이슬란드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국민 수는 내가 사는 춘천 인구보다 약간 많은 32만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국민들은 일찍이 874년에 이주해 온 바이킹 선조와의 친척관계를 오늘날까지 추적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공유한다. 게다가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아 온 국민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아이슬란드같이 동질적이고 국민 정체성이 강한 작은 나라로서는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도 가입하지 않는 것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 밖에 남아 있으면 별도의 정책과 규제를 받아들여야 하고, 유럽연합 안으로 들어가면 목소리크고 영향력 있는 유럽 강국들에게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위험이 크다. 

아이스세이브 사건 등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아이슬란드 내부에서는 유럽연합으로 들어가자는 목소리가 높아졌었다. 당시 화가 난 영국과 네덜란드는 빚진 돈 갚는 것을 유럽연합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기도 했었다. 2009년도만 해도 아이슬란드가 자국 통화를 포기하고 유럽연합에 들어갔었더라면 유럽 중앙은행의 지원으로 위기를 쉽게 극복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도 유럽연합 가입 신청 안은 당시 아이슬란드 의회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여 유럽연합과의 공식협상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제 3%의 경제성장률을 회복한 아이슬란드의 위기 극복과정을 돌아보면서, 자국 통화와 중앙은행을 지켰기 때문에 나름의 방식으로 금융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긴축을 미루고 빈곤층에 대한 복지 지출을 더 늘려서 국내 소비를 유지하였다. 또한 통화를 평가 절하하여 수출을 늘리고 자국민의 해외 지출을 줄였다. 결국 아이슬란드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적인 통화 정책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스세이브 사건이 아이슬란드의 승리로 종료되면서, 이제 아이슬란드의 유럽연합 가입은 공동수산정책을 취하는 유럽연합과의 어업권 쿼터와 아이슬란드의 고래잡이 허용 등이 주요 문제로 남았다. 하지만 가입협상이 성공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에 부쳐지게 될 텐데 그 결과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작은 나라이기에 적극적으로 개방하여 살아나가야 하는 아이슬란드. 하지만 국경을 낮추는 지역연합체로 들어간다면 국가 주권을 지킬 방책을 다 잃게 될까 걱정되는 것이다. 전번 글에서 소개하였듯이, 아이슬란드 정부가 언어와 이름체계 등 역사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며 개방과 수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국경이 낮아지는 시대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처한 공동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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