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이슬람 혁명’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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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이슬람 혁명’이 주는 교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3. 14.

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2011년은 아랍 및 이슬람 세계의 민주화를 위한 시민혁명으로 시작됐다. 자유와 해방을 향한 민중의 에너지가 거침없이 확산되는 실정이다. 1월에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23년의 독재자 벤 알리를 퇴임시켰고, 2월에는 이집트에서 타흐리르 광장의 힘이 30년의 독재자 무바라크를 물러나게 했다. 이제 아랍세계 주요 도시의 광장은 압제와 빈곤의 종식을 요구하는 시민의 함성으로 가득 차고 있다.

리비아 카다피의 40년 철통 독재도 시위대가 경찰을 공격하며 조금씩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일 달러로 부유한 바레인에서도 왕정을 향한 반발의 파도가 거세다. 알제리와 모로코, 예멘과 이라크 등 북아프리카·중동 전 지역에서 민주화의 열풍이 휘몰아친다. 2009년 대선에서 이미 봉기가 일어났지만 실패했던 이란의 민중도 다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타고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3주간 유럽에 머물면서 바라본 이슬람의 민주혁명은 한반도에서 듣는 것보다 훨씬 가깝고 뜨겁게 느껴졌다. 지중해만 건너면 튀니지나 이집트라는 지리적 근접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럽에는 1500만명에 달하는 북아프리카·중동의 이민자들이 생활하면서 실질적으로 두 대륙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성찰을 중시하는 프랑스의 일간 르몽드는 1848년 유럽의 시민혁명, 1989년 동유럽의 민주혁명, 그리고 2011년 아랍세계의 민주혁명을 비교하는 특별대담을 실었다. 이미 하나의 세계사적 변화의 기미를 보인다는 인식이다. 첫째, 세 혁명은 모두 아주 부조리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던 정치적 상황에서 갑자기 역동적인 전개가 이뤄졌다. 둘째, 시민이 독재의 탄압에 대한 내면의 공포를 극복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요구하는 순간 혁명의 도화선이 형성된다. 셋째, 혁명은 민주화로 연결되어 성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반(反)혁명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혁명도 혁명의 소중한 성과를 완전히 돌이키지는 못한다는 교훈이다.


다른 한편 장기간 아랍세계의 독재체제와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던 유럽 각국의 외교정책은 최근 신랄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중의 삶의 조건이나 인권에는 무관심한 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확장을 막기 위해서는 안정된 정치체제가 필요하다’는 현실주의적 논리는 이제 머쓱해졌다. 특히 서구 정치인과 경제인이 아랍 독재정권으로부터 갖은 특혜와 선물을 누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가가 아닌 개인을 위한 현실적 계산이었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유럽연합이 독재자와 가족, 측근의 재산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아랍 민중의 신뢰’라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다.

이번 민주화 운동이 한반도에 줄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시민을 굶기고 독재집단을 살찌우는 정권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진실이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는다 해도 부당한 지배는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과거 한국의 민주화를 이끄는 정신이었고, 진보를 자임하는 민주세력이라면 남과 북, 한반도와 중동을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흔들어야 할 투쟁의 등불이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할 일은?

하지만 한국의 자칭 진보, 민주 세력은 조로(早老)했다. 투쟁의 등불 대신 선거 정치의 계산기를 들고 2012년의 양대 선거만 준비한다. 그리고 벤 알리와 무바라크와 카다피를 합한 것보다 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북의 체제에 대해 현실주의적 대화와 지원만을 노래한다. 비록 3대 세습과 같은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이지만 그래도 부드럽게 다뤄야지 안그러면 전쟁이 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1989년 동유럽 혁명에서 얻은 ‘북한도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진다’는 교훈은 애써 외면하면서도 사회주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포함하여) 대안이 아니라는 성급하고 왜곡된 결론을 내린 한국의 민주세력이다. 2011년에는 올바른 교훈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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