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트럼프적 혐오사회에 저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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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미국 대선 일기

[기고]트럼프적 혐오사회에 저항하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1. 17.

지난 11월8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미국의 지성잡지라고 일컬어지는 ‘뉴요커’는 트럼프의 당선을 ‘미국의 비극’이라고 표현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분석을 실었다. 각기 다른 전문가들의 분석이 얼마만큼 정확하고 포괄적인지에 대한 논의는 제쳐놓고라도, 내가 보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트럼프가 지닌 ‘가치관’이다.

 

그의 삶이나 선거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연설과 행동에서 드러난 그의 가치관은 여성혐오, 인종혐오, 성소수자혐오, 이슬람혐오, 외국인혐오 등 갖가지 ‘혐오주의’를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결점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트럼프가 지닌 이러한 지독한 문제점 때문에 적어도 트럼프의 당선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가 지속적으로 표출해 온 남성 중심주의, 백인 중심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기독교 중심주의, 자국민 중심주의가 인종, 피부색, 젠더, 국적, 종교, 성정체성 등에서 유래하는 ‘다름’에 대한 적대감을 제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도화된 적대감’은 다양한 방식으로 타자에 대한 혐오를 자연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합법화’시키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항의하는 시위가 12일(현지시간) 뉴욕, 캘리포니아, 필라델피아, 오리건 등 미국 곳곳에서 계속됐다. 1만명이 시위에 나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이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_ UPI

 

미국은 21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신제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국은 단순히 모든 나라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한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막강하다. 물론 트럼프는 전통적 의미의 파시즘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치관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현대판 파시즘을 국내외의 다양한 소수자들에게 행사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여성, 이주민, 이슬람교도, 성소수자, 유색인종 등 많은 이들을 제도적으로 ‘주변화’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범죄화’함으로서, 미국은 환대사회가 아닌 적대사회로, 포용사회가 아닌 배제사회로의 이행을 정치적으로 제도화할 위험이 있다. 미국이 이렇게 타자에 대한 혐오사회로 이행하면 이 세계 곳곳에 다층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과연 누가 이러한 혐오적 가치를 노골화하고 있는 트럼프를 지지했는가를 조명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도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트럼프의 당선을 가능하게 한 막강한 세력은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하층 백인’, 특히 남성들이었다. 트럼프가 여자였다면 또는 그가 엄청난 부를 소유한 백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당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 남성’들이 적대와 혐오를 노골화한 남성 트럼프를 지지하고, 그의 경제적 부와 성공을 자신들의 판타지로 삼았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인종, 계층, 성별이 작동한 이 지점에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한 학력주의가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비판적 사유하기’를 주요 목적으로 삼는 교육을 통해서, 평등과 정의, 그리고 포용과 관용을 배우는 것의 중요성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류의 보편가치인 정의, 평등, 포용의 관점에서 볼 때 언제나 진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경제적인 ‘보이는 발전’이 언제나 인간됨을 의미하는 가치들의 확산인 ‘보이지 않는 발전’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특정한 그룹에 대한 인권 유린과 탄압이 자연적인 것으로 제도화될 때 이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비판적 사유’와 그 사유에 근거한 연대적 실천이다. 그래서 ‘사유-판단-행동’은 우리가 이 세계와 연계되는 매우 중요한 세 가지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이 세계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 장-뤽 낭시의 말이다. 그런데 이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생태위기, 기아, 전쟁 등 ‘보이는 파괴’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권리 확장, 평등과 정의와 같이 ‘보이지 않는 가치들’의 붕괴도 심각하게 이 세계의 파괴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배우고, 그 사유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시민으로 스스로 성숙하는 것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적대와 혐오사회로의 이행에 다층적으로 저항하고 실천하기 위한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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