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한·중·일 정상회의가 돌파구?… ‘하수’ 한국외교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기자메모, 기자칼럼

[기자메모]한·중·일 정상회의가 돌파구?… ‘하수’ 한국외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8. 19.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가 갑자기 한국 외교의 지상 과제가 됐다. 외교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한국 주재로 3국 정상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관료·전문가·언론까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명분으로 보나, 관례로 보나 3국 정상회의는 복원돼야 하는 것이 맞다. 특히 한국은 이 행사의 의장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기가 꼭 지금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정부 의도는 한·일 정상회담에 있다. 역사인식, 위안부 문제 등에 변화가 없는 일본과 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한·일 양자 정상회담을 만들어 외교적 곤경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다.

이 같은 배경에서 추진되는 3국 정상회의는 한국의 외교적 주도권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3국 정상회의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주도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일본은 한국이 강경자세에서 ‘회군(回軍)’하고 있음을 확인한 상태다. 한·일관계보다 중·일관계 개선에 집중할 것이다. 3국 정상회의는 가뜩이나 한국에 기세등등한 일본에 날개를 달아주는 행사가 될 것이다. 특히 3국 정상회의는 중·일관계 개선을 촉진하는 기능도 한다. 한·일관계가 막힌 상태에서 중·일이 가까워지면 한국의 외교 입지는 줄어든다. 한국은 3국 정상회의로 당장의 곤궁함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원래 3국 정상회의 일정은 2013년 5월이었다. 하지만 당시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산적한 국정과제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어진 한·일 긴장 등으로 손을 대지 못했다. 만일 정부가 그때 3국 정상회의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성사시켰더라면 동북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 이후 벌어진 동북아 갈등의 상당 부분은 일본에 책임이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성사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한국은 동북아 협력과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 박근혜 정부의 외교구호인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 탄력을 받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기회를 놓치고 수순이 뒤바뀐 상태에서 3국 정상회의가 열리면 이 같은 효과를 낼 수 없다. 외교에서 상책은 사태를 예방하는 것이다. 곤경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방법을 찾기 시작하는 외교는 하수의 방책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