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한 김여정과 북·미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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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한 김여정과 북·미 협상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5. 31.

벌써 8년 전이지만 생생한 TV 화면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연평도는 그렇게 화염에 휩싸이고 있었다. 개인적 기준으로 남북 사이에 가장 섬뜩했던 사건은 2010년 11월23일 북한의 ‘느닷없는’ 연평도 포격이었다. 한국전 휴전 후 처음 영토가 포격당한 일대 사변이다. 언제든 이 땅에 다시 포성이 울릴 수 있다는 일촉즉발의 위험을 보여준 신호다. 연평도 사건은 김일성군사종합대 포병과 출신으로 핵을 가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담함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그런 김정은의 최측근인 여동생 김여정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지난 2월 서울과 강원 평창에 나타나자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었다.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를 비롯해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언행은 당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서도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백두혈통의 자신감 같은 게 묻어나 원래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 그가 지난달 김 위원장의 전격적인 2차 중국 방문에 동행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하는 장면에서 사뭇 다른 모습이 포착됐다. 악수하며 머리를 크게 숙였다. 의외였다. 이 모습이 상당히 낯설었다. 그리고 얼마 뒤 북·미 간 정상회담을 놓고 불협화음이 커진 것은 수순 같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난 뒤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일단 드러난 이유는 한·미 군사훈련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북한 핵무기 반출 발언이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일 뿐,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럼 남은 문제는 뭘까. 아마 돈 문제가 아닐까 싶다. 트럼프에게 양보를 더 끌어내기 위해 친중 정책을 편 결과로 보인다.

 

북한이 핵을 진짜로 폐기할지를 두고는 전문가들 평가가 엇갈린다. 무엇보다 검증 문제가 남는다. 그럼에도 필자는 북한이 폐기로 나아갈 것이란 데 좀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이유는 역시 먹고사는 문제이며, 이번에는 확실히 한몫 두둑이 받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서다.

 

지난 수년간 김 위원장의 행보에는 경제문제가 들어 있다. 2012년 최고권력자가 된 김정은은 그동안 백성을 배불리 먹이지 못했다는 ‘반성문’까지 썼다. 이른바 ‘6·28 방침’ 등이 나왔다. 결국 김정은이 북·미 회담에 나선 것도 ‘인민생활 향상은 빗장을 풀지 않고는 사실상 불가하다’는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내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은 일단은 성공적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잡음이 들린다면 원인은 따로 있을 것이다. 검증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우라늄 원심분리 기술 등은 원천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건 미국이 더 잘 안다. 결국 얼마나 적극 경제지원을 하느냐가 열쇠다. 과거 9·19 공동성명 때처럼 ‘중유 20만t 지원’ 따위로는 성에 찰 김정은이 아니다. 미국, 남한은 물론 중국, 일본 등도 북한에 훨씬 두툼한 지갑을 열어줄 준비가 됐느냐 문제다. 빼어난 장사꾼이자 협상가인 트럼프가 미국 정부 돈을 쓰기보다 민간기업 투자로 ‘퉁치려고’ 하면 이번 판은 깨질 수 있다.

 

김정은은 수차례 닫히기를 반복한 개성공단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북한은 언제든 보따리를 싸들고 튀어야 할 곳’이란 걱정이 앞서면 한계가 뚜렷하다. 남한 사회는 장밋빛 기대에 빠지기보다 담담히 준비해야 한다. 경제학자인 한 대학교수는 “통일은 대박이라던 누구 말처럼 남북 교류협력이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신기루를 만들기보다는 평화협력 자체의 의미를 더 되새겨야 한다.

 

이번 회담 국면은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보상 차원이어서 우리로선 불편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막다른 골목까지 와버려서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연평도 포격전보다 더 험악한 상태로 돌아가느냐 마느냐,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역사를 잊어선 안되겠지만, 거기에만 집착하는 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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