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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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남중국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1. 9.

지난달 미 해군 구축함 라센호가 중국이 인공섬을 조성 중인 남중국해 난사 군도의 수비 환초 12해리 이내로 진입하는 무력 시위를 한 이후 미·중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 중시 정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고 나선 이래 이처럼 군사적 긴장이 높았던 적은 없다.

남중국해에서 미·중의 대치가 첨예화되면 아시아 각국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미·중의 강경한 언사는 아시아 각국에 ‘줄서기’를 강요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공식입장은 ‘외교적 해결’ ‘국제법 준수’ ‘남중국해당사국행동선언(DOC) 이행 및 행동규칙(COC) 체결’ 등이다. 내용 면에서 미국에 약간 기울고 있지만 중국을 직접 겨냥하지 않음으로써 표면적 중립을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카운터파트를 앞에 놓고 “남중국해의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미국 쪽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국제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압박한 결과다. 중국도 ‘세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대만과의 정상회담을 거부해오던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임기를 7개월 남긴 마잉주(馬英九) 총통과 전격 정상회담을 하고 최근 아세안 국가들을 잇달아 국빈 방문하고 있는 것도 남중국해 문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영토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중국해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미국도 포기할 수 없다. 여기서 물러서면 미국의 리더십은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고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물거품이 된다. 이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남중국해에서 미·중의 군사적 충돌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미·중관계의 성격과 양측의 국내적 상황 등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금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미·중 갈등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형성된 미·중관계의 한 단면일 뿐 전체가 아니다.

미·중관계에는 경쟁과 협력의 요소가 공존한다. 지난 9월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양측은 양국 간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협력을 통한 공동이익’이 훨씬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현황_경향DB



국내 상황을 보더라도 미·중은 서로 충돌할 여력이 없다. 중국은 경제 문제 등 시급한 국내적 현안을 안고 있고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무리한 방법으로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미국의 개입 명분을 강화시키는 행동을 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물리력을 동원해 영토분쟁 지역을 강제 점령한 적이 없다. 중국도 이제는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2차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질서하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나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은 현재의 국제질서를 뒤바꾸려는 시도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 일전을 벌여 패권을 뺏어오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현상 변경’이다. 현재의 구도에서 중국의 위상에 걸맞은 지분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 갈등의 본질은 군사적 힘겨루기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미·중은 결국 충돌을 피하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한국이 지금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향후 어떤 타협이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선명한 입장 표명을 하는 위험을 택할 필요가 없다.

영토 분쟁에서 제3자가 분명하게 어느 한편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미국이 독도 문제에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한국이 남중국해 문제에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더욱이 남중국해처럼 수많은 당사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분쟁성격이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기존의 입장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 새로운 ‘레퍼토리’를 내놓아야 할 처지라면 어느 한쪽의 입장으로 다가서는 것을 피하고 이 문제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다. 남중국해 분쟁은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커다란 해를 끼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대화를 통한 해결에 역할을 담당할 의지가 있음을 피력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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