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비확산체제를 위태롭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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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누가 비확산체제를 위태롭게 만드는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7. 7.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은 핵강국 인도를 국제적 핵통제 제도에 편입시키는 것은 핵비확산체제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NPT 체제를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까. 요즘 국제 비확산계에서는 인도의 원자력공급그룹(NSG) 회원국 가입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문제는 북핵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NSG는 핵 관련 물품·장비의 수출에 대한 모든 것을 규율하는 통제체제다. NPT 규약만으로는 핵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78년 미국과 캐나다 등이 주도해 NSG를 설립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48개국이 회원국이다.

 

NPT에 가입하지 않은 핵보유국 인도의 NSG 가입을 허용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1974년 인도의 핵실험이 NSG를 탄생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20~24일 서울에서 열린 제26NSG 총회에서도 이 문제는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찬반 양론이 격돌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의 가입을 강력히 지지하는 미국의 논리는 현실론이다. NPT 장외에서 코끼리처럼 덩치 큰 핵보유국으로 남아 있는 인도를 그대로 두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국제 비확산체제에 끌어들여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도가 핵확산 전력이 없는 신뢰할 만한 모범국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중국은 인도를 NSG에 받아들이면 다른 나라의 핵개발을 막을 명분이 없어지고 NPT 체제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인도를 NSG에 가입시킬 경우 역시 NPT 비가입국이면서 사실상의핵보유국인 파키스탄 같은 나라도 동등하게 대우해줘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들의 주장에는 전략적·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미국은 인도의 원자력시장을 선점하고 인도와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 중국은 이에 맞서기 위해 파키스탄을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하는 중이다.

 

논란의 시발점은 2005년 미국과 인도의 원자력협정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NPT 비가입국과 핵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기존 정책을 깨고 이 협정을 강행해 인도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로 인해 핵통제 국제규범이 약화되고 남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핵기술 발전에 따라 원칙도 변해야 하며 NSG의 문호를 넓히는 것이 확산 방지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미국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NPT 비가입국이 NSG 회원국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합법적 핵보유국인 프랑스도 NPT보다 NSG에 먼저 가입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인도의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파키스탄·이스라엘·북한에도 할 말이 생긴다. 인도를 받아들임으로써 NPT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세계 안보는 더욱 불안해질 수 있다는 중국의 주장에 명료하게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북한은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인도처럼 군수용과 민수용 핵시설을 구분하고 핵무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민간 분야 핵협력의 길을 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경제 병진노선의 성공이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우리와 친해지려면 핵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북한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지켜보면서 미국과 친해지려면 핵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굳힐 것이다.

 

인도의 NSG 가입이 비확산체제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이 문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미··인도·파키스탄 등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비준하지 않음으로써 20년째 이 조약이 발효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책임이 있는 나라들이다. 핵확산 방지의 기초가 되어야 할 핵분열물질생산금지조약(FMCT)도 이들의 이해관계 싸움에 말려 20년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NPT 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체제가 공정하고 흠결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이 권리를 인정받는 대신 핵실험금지·핵감축·비보유국의 안전 및 평화적 핵이용 보장 등을 약속했기 때문에 NPT 체제는 무기연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핵강국들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들이 진정으로 비확산체제 강화를 원한다면, 지금 인도의 NSG 가입 문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부과된 의무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먼저 자문해 봐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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