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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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대국의 두 얼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1. 23.

지난 21일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류 제재에 대해 ‘나’라는 1인칭 주어를 4번 써가며 설명했다.

 

겅 대변인은 “나는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을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중국이 양국 인문 교류에 적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분 모두 이해할 거라 믿는다” “나는 관련 부처가 민간 정서를 주시하고 있다고 본다”며 개인의 시각을 강조했다. 자신의 생각임을 전제로 하면서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한령을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민간이 자발적으로 한류 반대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중국’이 아니라 ‘나’라는 주어를 내세워 은근한 속내를 드러냈다.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이 공식 발표한 적은 없지만 한류 제재는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10월 이후 중국 문화부에서 공연을 승인받은 한국 스타는 한 명도 없었다. 9월 아이유·이준기가 주연한 드라마 <보보경심 려> 이후로 중국 심의를 통과한 한국 드라마도 눈에 띄지 않는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인기를 끈 배우 송중기를 모델로 내세웠던 중국의 한 스마트폰 업체는 이달 초 대만 배우로 모델을 교체했다. 공식 문건이란 물증은 없지만 한류 차단에 나섰다는 심증은 점점 선명해진다.

 

이 같은 중국의 제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대처를 더 어렵게 한다. 한국 문화 콘텐츠를 규제하고 있다는 물증도 찾기 힘들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등에 명백하게 어긋나는 게 아니니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슬그머니 뒤로 빠지고 민간을 주체로 내세워 사드 보복에 나선 것이다.

 

중국 온라인 매체들은 당국의 규제 여부는 확인하지 않은 채 한국의 일부 악성 댓글을 발췌해 악의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한류 제재 보도에 분노한 누리꾼들이 한국에 진출한 중국 연예인 반대에 나섰다거나 일부 중국 비하 댓글만 모아서 전하는 식이다. 이 보도를 본 중국 누리꾼들은 한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한류 반대에 나서고 있다. 매체가 부정적 민심에 불을 지피고 있는 셈이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대처는 대국스럽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중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티베트 독립, 달라이 라마, 인권 문제에 대해서 그렇다. 지난달 동유럽을 방문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슬로바키아 총리와의 양자회담 일정을 갑자기 취소했다. 중국이 반대하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슬로바키아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면담한 데 대한 보복이다. 리 총리는 체코, 루마니아 등 10여개국과 양자회담을 열고 인프라, 금융 등 경제협력 확대를 약속했지만 슬로바키아는 빼놓았다. 지난 9월에는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한 EU 의회에 맞서 EU 의회 대표단의 방중 일정을 갑자기 연기하기도 했다.

 

한류 스타들의 중국 활동이 어려워지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 진출도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한류까지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조종하려는 것은 확실히 대국답지 못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9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비즈니스 서밋에서 “개방은 아시아·태평양 경제의 생명선”이라며 개방과 협력을 강조했다. 미국과 동등하게 세계 경제와 정치의 ‘큰형’ 노릇을 하고 싶은 중국이 포용성을 강조하며 배포를 자랑한 것이다.

 

하지만 한류 제재 움직임에서는 대국으로서의 배포도, 지도자들이 강조해온 포용도, 또 정경분리도 찾기 힘들다. 그저 대국으로서의 체면을 지키고 싶어 하면서도 어떻게든 보복은 해야 하는 상황에서 꼼수만 보일 뿐이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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