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도시] 강을 살리니 사람이 몰렸다- 스페인 빌바오 도시재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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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도시] 강을 살리니 사람이 몰렸다- 스페인 빌바오 도시재생의 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3. 3.

(3) 스페인 빌바오 도시재생의 힘


도시의 환경은 삶의 질을 결정한다. 더럽고 냄새나고 다듬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깨끗이 정비되고 여가를 즐길 곳이 충분한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다. 공간이 곧 복지다. 스페인 북부의 옛 공업도시 빌바오는 도시 공간의 변화가 어떻게 시민들의 삶을 바꾸는지 보여준다.

버려진 공업도시가 관광명소로… 강을 살리니 사람이 몰렸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지방에 있는 비스카야주의 주도 빌바오는 비스케이만과 10㎞ 떨어진 곳에 자리한 인구 35만명의 작은 도시다. 지난달 3일 찾은 빌바오는 깨끗하고 활기찼다. 시내 중심부를 관통하는 네르비온 강가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조깅을 하거나 산책 나온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연일 계속된 비에 강물이 불어 있었지만 그래도 깨끗해보였다. 그런데도 시청 홍보과장 이자스쿤 일로나는 “평소에는 맑고 투명한데 비가 와서 흙탕물이다”라며 겸연쩍어 했다. 잘 포장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옆에는 잔디밭이 조성돼 있고, 가끔씩 트램(노면열차)도 지나갔다.

스페인 빌바오 시민들이 지난달 2일 네르비온 강가를 따라 산책하고 있다. 빌바오시와 바스크 자치정부, 스페인 중앙정부는 네르비온강의 정화 및 주변 환경 개선을 위해 8억유로(약 9800억원)를 투자했다. 빌바오 | 남지원 기자


빌바오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범선 모양의 구겐하임 미술관 앞은 개관시간인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부터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미국인 한나(26)는 왜 빌바오에 왔느냐고 묻자 “여기 구겐하임이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여기는 여느 유럽 도시들과 다르게 현대적이면서도 독특하고 예술적인 건물들이 많다”고 말했다.


 ‘죽은 강’을 10년 넘게 정화... 구겐하임 미술관 등 강변엔 문화시설 유치

빌바오가 관광 명소가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구겐하임 근처를 산책하던 루이스(61)는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저 다리 너머에 조선소가 있었고, 저 건너는 철로가 지나는 곳이었다”며 열심히 설명했다. 시 경계를 조금만 벗어나면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바다 쪽으로 1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리니 아직 정비되지 않은 공장지대가 나왔다. 풀숲 사이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유리창이 떨어져나간 공장들이 방치돼 있었다. 강변에는 길조차 없었다. 30년 전에는 빌바오 시내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관 콜도 갈란(46)은 장난스럽게 “빌바오는 한국 때문에 파탄이 났었다”고 말했다. 한국 등 신흥국들이 조선업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빌바오가 쇠락했다는 얘기다. 빌바오는 산업혁명 이후 조선업과 제철산업이 발달했다. 해상교통 요충지인 데다 철광석 매장량도 풍부했기 때문이다. 덕택에 빌바오는 바르셀로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중공업 도시가 됐고, 20세기 중반까지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공업도시 중 하나였다.

철광석이 고갈되고 조선업이 무너지자 빌바오는 1970년대 말부터 급격히 쇠락했다. 갈란은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던 조선소들이 차례로 문을 닫기 시작했던 1980년대 초반을 ‘회색도시’였다고 회상했다. 실업률은 30%에 육박했고 실업수당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배에 페인트칠을 하는 일을 했던 갈란의 아버지도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몰렸다고 했다. 버려진 공장에는 노숙인들과 범죄자들이 몰렸고 마약이 창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공해였다. 공장이 멈췄어도 한번 오염된 공기와 물은 계속 사람들을 괴롭혔다. 사람들은 일자리도 없는 더러운 도시를 떠나갔다.

인구감소 줄고 경제 회복… 가족과 산책 등 삶도 변화

1980년대 후반 도시를 살리기 위해 빌바오시와 바스크 자치정부, 스페인 중앙정부가 머리를 맞댔다. 일자리를 만들려면 산업구조를 3차산업 위주로 완전히 바꿔야 했다. 그러기엔 공해에 찌든 도시는 적절하지 않았다. 시는 먼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새 산업을 키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네르비온강에 눈을 돌렸다. 당시 강 주변은 버려진 공장과 크레인들로 채워져 있었고 악취로 가득했다. 

시는 강물을 정화하고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개편했다. 항만시설은 모두 하구로 옮기고 공장지대는 철거했다. 강변에 공원과 문화시설이 들어섰고 넓은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조성됐다. 배가 다니지 않는 강 위에는 보행자 다리를 만들었다. 강 환경 개선에 쓴 돈은 지금까지 8억유로(약 9800억원)에 달한다. 관광객들은 빌바오라고 하면 구겐하임을 떠올리지만, 강 살리기에 들인 돈이 미술관 유치에 쓴 돈의 6배가 넘는다. 죽음의 강을 시민들의 쉼터로 바꾸는 데 10년 넘게 걸렸다. 시는 네르비온 강물을 식수로 쓸 수 있을 때까지 수질을 높일 계획이다.

조선업이 번창했던 1970년대 네르비온 강가 모습. | 빌바오 시청 제공



강을 살리자 인구감소가 멈췄다. 산업구조는 건축·상업·관광 등 3차산업 위주로 바뀌었다. 실업률은 13%대로, 전국 평균 25%에 훨씬 못 미친다. 빌바오는 스페인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이다.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해마다 100만명 이상이 찾는다. 매력적인 건축물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을 가리키는 ‘빌바오 이펙트(효과)’라는 말까지 생겼다.

갈란은 거의 날마다 강가에 산책하러 간다. 주말이면 세 아이와 네르비온강에서 열리는 낚시대회에 참가한다. 강에서는 숭어와 도라다(도미의 일종)가 잡힌다. “내가 어릴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내 아이들은 강가에서 뛰어논다. 빌바오는 회색도시에서 녹색도시로 바뀌었다”고 그는 말했다.

“강·바다·호수 잘 가꾸면 도시는 아름다워져”

ㆍ이본 아레소 빌바오 시장

“왜 강이 중요하냐고요? 사람들이 강을 좋아하니까요.”

지난달 2일 스페인 빌바오 시청에서 만난 이본 아레소 시장(70·사진)은 도시에서 수변 공간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한참 동안 강조했다. 건축가 출신인 그는 1991년 시의원이 된 뒤 도시계획본부장으로 임명돼 도시재생 사업을 이끌었다. 지난해 3월 전임 시장이 암으로 사망하자 부시장이었던 그가 시장직을 이어받았다. 집무실에서는 공장지대에서 공원으로 바뀐 네르비온 강가의 녹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아레소 시장은 “3차산업 중심의 도시는 중공업 도시와 달라야 한다. 더러운 도시를 방치했다면 아무도 이곳에 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를 아름답게 가꿔야 했다. 그래서 강이 중요했다. 사람들은 강과 바다를 좋아하고, 대부분의 축제는 물가에서 열린다. 강과 바다, 호수를 잘 가꾸면 도시는 아름다워진다.” 그는 “서울시가 청계천을 정비했듯 빌바오도 시민들을 위해 네르비온강을 정비한 것”이라며 “빌바오는 강을 등진 도시에서 강을 끼고 사는 도시로 변했다”고 말했다.

아레소 시장은 “우리는 그리스나 로마와 달리 오래된 건축물이나 유적이 없다. 바닷가는 멀고 날씨도 나쁘다. 우리만의 색다른 모습을 세계에 보여줘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했고,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불러들여 건축을 맡겼다. 그 결과 빌바오는 현대건축의 거장들이 꾸민 거대한 전시장이 됐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지난달 28일 86회 생일을 맞았다. 그는 구겐하임이 성공적인 도시 랜드마크의 상징이 된 것에 대해 “행정당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건축가의 독립성을 보장받았던 것이 비결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빌바오 지하철역사는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빌바오 공항과 네르비온강을 가로지르는 주비주리 보행교는 스페인의 대표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했다.

빌바오는 이제 관광도시를 넘어 지식·과학 도시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비디오게임 산업 등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라고 아레소 시장은 말했다. “빌바오는 지난 20년간의 실험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우리의 두 번째 계획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빌바오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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