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중국 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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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도 넘은 중국 때리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9. 29.

미국 대선주자들의 ‘중국 때리기’ 레이스가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인사들의 막말 퍼레이드에 이어 민주당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중국 때리기에 가세했다. 굴기(堀起·우뚝 일어섬)하는 중국이 내년 미 대선에서 중요한 대외정책의 화두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지만 상궤를 벗어난 일부의 중국 때리기는 볼썽사납다.

힐러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7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여성에 관한 글로벌 서밋에 참석해 유엔과 공동으로 회의를 주관하자 “창피한 줄 모른다(shameless)”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여성 인권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중국의 지도자가 여성권리를 위한 회담을 주관할 자격이 있느냐는 얘기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힐러리의 예의에서 크게 벗어난 표현은 막말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를 떠올리게 한다”고 비난했다. 힐러리는 2012년 국무장관 시절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이 미국으로 망명하는 과정에 적극 개입했다. 중국의 인권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그가 선택한 시점이다. 집권 후 처음으로 유엔 외교무대에 나선 시 주석에게 ‘고약한 선물’을 안긴 것이다.

공화당 경선의 선두 주자인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도 도를 넘고 있다. 그가 민주당 유력 후보인 힐러리와의 양자 대결에서 지지율이 앞선 것으로 최근 조사됐다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만약 대통령에 당선돼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미·중관계는 파국으로 갈 게 뻔하다. 그가 “미국 경제가 너무 늦기 전에 중국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빼앗긴 일자리 200만개를 되찾아 오겠다고도 했다. 미·중 양국이 경제적으로 깊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지난해 양국 간 교역규모는 5551억달러에 달하며 상호 투자규모는 1200억달러에 이른다. 스콧 워커 미국 위스콘신 주지사는 시 주석의 방미 일정을 아예 취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했다. 공화당에서 급부상하는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패커드 최고경영자는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대해 더 공격적인 군사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리 피오리나 휴렛패커드 전 CEO_경향DB



대선주자들의 중국 때리기는 중국을 외부의 적으로 설정해 애국주의를 불러일으키고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하려는 의도다. 양국 관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적 중국 때리기가 가져올 부정적 효과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하다. 중국 정치에 대한 미국인들의 실망 못지않게 미국 정치에 대한 중국인들의 실망감도 커지고 있다. 양국 국민들의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물론 미국 대선주자들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중국을 비판했지만 당선 이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달라진 사례도 적지 않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08년 대선 때 중국의 환율조작 행태를 강력히 비난했지만 여전히 환율조작 문제로 중국을 제재하진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란 시각도 없진 않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중국의 해킹 논란과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 경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과도한 개입, 종교 및 인권 탄압 등으로 미·중 갈등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중국과의 평화공존을 얘기하면 미국 일부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팔아넘긴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한다. 미국에서 민주당이 8년 집권했기 때문에 역사적 전례로 보면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공화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공화당 주자들의 중국 때리기가 더 심각하다는 점에서 양국 관계가 갈수록 어려워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공생관계이며 미국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면 글로벌 경제에 미칠 파장을 숙고해야 한다. 중국만 탓하고 무작정 중국에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자국을 먼저 돌아봐야 할 때다.


베이징 오관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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