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라시옹 몰락 혹은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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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리베라시옹 몰락 혹은 부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2. 11.

‘우리는 신문입니다.’


이것은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지난 토요일 1면에서 외친 절규다. 리베라시옹은 르몽드, 피가로와 함께 프랑스 3대 언론인 동시에 종이 신문이 갖는 난.망한 운명을 고스란히 지고,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또 한마리의 길 잃은 양이기도 하다.


4년 전, 르몽드지에 닥쳤던 시련은 리베라시옹의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중이다. 지난해 15%의 판매부수 급감은 100만유로의 적자를 남겼고, 사측과 주주, 노조는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논의되어 오던 내용과 무관한 주주들의 일방적 ‘미래 플랜’이 협박장처럼 날아든다. 그 구상은, ‘리베라시옹’이란 상표를 내건, 새로운 사업 프로젝트이다. 파리 중심에 있는 사옥은 레스토랑, 바, 소셜네트워크용 콘텐츠 제작, 크리에이터, 방송 스튜디오, 문화이벤트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키고, 전체 콘셉트는 사르트르가 자주 드나들던 카페를 본떠, 21세기의 카페 플로르를 만든다는 것. 그럼 신문사는? 파리 외곽으로 규모를 줄여 이전한다. 당연히 직원들의 급여도 줄이고.


사측에 날아든 주주들의 구상이 직원 총회에서 발표되는 자리에서는 비명과 야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주들은 미래의 비전에서 ‘오로지 전략적, 경제적 원칙만이 유일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못 박으며, 언론의 사명감 따위를 품고 있는 기자들을 구시대적이라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예기치 못한 주주들의 테러에, 기자들은 하루 동안 파업을, 그리고 다음 날엔 발행 중단을 감행한 후,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펜과 매체를 사용하여, 주주들의 몰지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리베라시옹은 1968년 5월혁명의 선전지에서 출발했다. 이후 사르트르가 발행인이 되어 언론으로 정식 출발한 것이 1973년. 선명한 좌파성향이면서, 소수자들의 삶을 지면에 끌어들이는데 또렷한 족적을 남기고, 시적인 사진들, 구어와 문어가 세련되게 조합된 특유의 리베라시옹 필체를 만들어내면서 학생과 좌파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는 신문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첫 경영난 이후, 새 주주들과 함께 재탄생한 1981년 이후의 리베라시옹은 확연히 본연의 색을 누그러뜨렸고, 그들의 문체에는 현란한 허무의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르트르, 히피적 자유로움이 달아주었던 깃털을 하나 둘 잃어갔고, 그것은 바로 디지털 환경의 급부상만큼이나 리베라시옹 몰락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프랑스 신문들에는 놀랄 만큼 광고가 없지만, 바로 그 광고 비중이 작은 매체들을 지원하는 정부의 언론보조금이 있고, 이들의 인터넷판 신문은 유료화되어 있다. 무가 신문이 지하철입구에서 열심히 뿌려지는 건 우리와 같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동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조간신문을 뒤적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파리지앵들의 일과는 여전하다.


(출처 :AP연합)


리베라시옹 기자들은 이제 막 칼을 빼들었지만, 그들이 가진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프랑스의 그 어떤 언론도 리베라시옹이 맞은 운명과 무관하지 않기에, 그들의 탈출 혹은 몰락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다.


더욱이, 선동적이리만큼 거칠게 자본의 논리를 신문사 한복판에 폭탄처럼 투척한 주주들의 태도는 말랑말랑하던 리베라시옹 기자들의 팔뚝에 급히 투사의 근육을 장전시킨 탓에 볼만한 싸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인의 적이 된 주주들의 폭력적 요구가 그들의 문턱에 밀려오기까지, 이들이 협력해 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기에, 사태를 바라보는 심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목수정 | 작가·파리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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