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반군 본부 수도로 옮긴 날 ‘순교자 광장’선 축포·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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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리비아 서바이벌

리비아 반군 본부 수도로 옮긴 날 ‘순교자 광장’선 축포·환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8. 29.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위치한 ‘순교자의 광장’은 혁명의 해방구였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42년 독재를 자신들의 손으로 끝낸 시민들은 축포의 의미로 총과 자동화기를 하늘로 쏘아댔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총소리는 트리폴리 사람들에게 이미 공포가 아니라 ‘영광과 자유의 소리’였다.


28일 오후 6시(현지시간). 도착 첫날 기사를 송고하자마자 시내 중심부 순교자의 광장으로 향했다. 이탈리아 식민지배 당시 지어진 광장은 카다피 집권 시기인 1951~1969년 그의 사상과 이념을 강조하는 의미로 ‘녹색광장’이라고 불렸다. 카다피는 자신의 통치 철학을 담은 책을 그린북이라고 부르고 단색의 녹색기를 리비아 국기로 채택하는 등 녹색을 선호해왔다. 지난 22일 트리폴리를 장악한 반정부군은 녹색광장을 약 6개월간 친카다피군과의 충돌 과정에서 사망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순교자의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카다피가 반군에 대한 결사항전을 연설했고 친정부 시위가 벌어지던 순교자의 광장은 이미 180도 변한 모습이었다. 무대 조명을 위해 설치된 대규모의 구조물은 반군의 삼색기로 뒤덮여 있었다. 구조물 상단에는 카다피를 본뜬 사람 크기의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이지선 기자(뒷줄 가운데)가 29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시내의 알 와단 호텔 앞에서 반군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15~26세의 학생 또는 청년인 이들은 카다피군과의 교전을 위해 미스라타에서 온 반군이다. <트리폴리에서>



반군이 순교자의 광장에 진입한 지난 22일 이후 계속 축제 분위기였지만 이날은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바로 반군 대표인 과도국가위원회가 동부도시 벵가지에서 수도 트리폴리로 본부를 옮긴 첫날이기 때문이다. 광장의 시민들은 하늘에 총을 발사하는 의식은 반군의 자신감이 극대화됐을 때 자주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2세 아이부터 노인까지 광장으로 쏟아져나와 42년 독재에서 해방된 기쁨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소총을 하늘로 쏘아대고 자동화기를 하늘로 뿜는 축포로 광장 인근 도로는 탄창과 탄피가 가득 깔려 있었다. 자동차 경적소리가 광장 주변 도로를 가득 메웠다. 가족,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나온 사람들은 경적을 울려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몸을 차 밖으로 내밀고 반군 깃발을 흔들며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를 외쳐댔다. 


광장 한편에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자리잡고 있던 앰뷸런스에서도 옛 국가가 흘러나왔다. 1951년 이탈리아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카다피가 42년 철권통치를 시작하기 전인 1969년까지 사용됐던 국가다. 


차량을 운전하던 사람이 기자 일행을 보고 손을 흔들면서 V자를 그리기에 함께 손을 흔들어 보였더니 곧바로 자동화기를 하늘로 뿜는 것으로 답례했다. 바로 옆에서 쏘아대는 자동화기 소리와 일행을 향해 날아오는 탄피, 매캐한 화약 냄새에 혼비백산했다. 귀청이 떠나갈 듯한 크기의 총성과 포성이 들릴 때마다 움찔움찔하게 됐다. 혹시 사고로 잘못 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런 기자 일행을 보며 안내를 맡은 리비아인은 ‘뭐 이 정도에 그렇게 놀라느냐’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외국인의 귀에는 총성이 신변을 위협하는 무기 소리일 뿐이지만 이들에게는 독재정치를 마감한 자랑스러운 소리이자 축제의 소리일 터. 그의 웃음에 괜히 멋쩍어졌다.



리비아 서부 지역에서 카다피군과 전투를 치르고 있는 반군들이 28일 라그달린 검문소 주변에 차량을 몰고 와 집결해 있다. 라그달린 _ AFP연합뉴스



실제 이미 이곳 사람들은 총성에 익숙한 듯했다. 친구, 자녀들과 함께 광장에 나온 여성을 만나봤다. 옴 오웨스(40)는 트리폴리 자위에른 다메니 구역에서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부르카를 입고 승용차를 운전해 광장까지 나온 그는 “여기서 들리는 발포소리가 음악소리와 같다”고 말했다. “이 총소리는 영광의 소리, 자유의 소리이고 총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오히려 화가 난다”고 말했다. 부르카 사이로 흰머리가 흘끗 보이긴 했지만 그의 표정은 매우 밝았고 기분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광장으로 나온 아이들도 무서워하기는커녕 커다란 총소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웨스는 “2살난 딸이 ‘엄마, 나에게 총이 있다면 카다피를 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총소리가 기쁨의 축포였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아이들이 무기소리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을 짓눌렀다.


■ 밤새 총소리… 옆방엔 무장군인


사실 반군이라고 해서 애초부터 총에 익숙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학생이었던 15세 청소년,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총을 든 ‘반군’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달이 되지 않은 일이다. 투숙하는 호텔 인근에서 만난 반군들은 트리폴리와 벵가지에 이어 리비아 제3의 도시인 미스라타에서 왔다고 했다. 모하메드 주발리(21)는 기자를 보자 “중국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자신이 중국 기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신분증을 꺼내 보여줬다. 미스라타에 있는 중국건축공정총공사(China State Construction Engineering Corp)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는 증명서였다. 미스라타에는 대우건설을 포함해 대규모 건설 사업을 진행하는 외국 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6일 전에 미스라타에서 트리폴리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왜 수도로 들어왔느냐고 묻자 말 없이 호텔 앞에 서 있는 자동화기를 장착한 트럭을 가리켰다. 아직 남은 트리폴리의 교전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이 호텔이 반군의 기숙사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호텔을 잡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간신히 방을 얻게 된 터라 호텔의 이런저런 상황에 대해서 알아볼 틈이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호텔 로비와 엘리베이터에서도 모두 AK소총을 한 자루씩 든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텔 앞에는 자동화기를 실은 트럭이 놓여 있고 창문 밖에서 축포 총성이 자주 들렸던 이유도 설명이 됐다.


기자 일행이 묵은 알 와단 호텔이 반군들의 근거지가 된 사연은 이랬다. 호텔은 카다피의 한 여성 측근의 소유였는데 반군에게 ‘전리품’처럼 떨어졌고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됐다. 호텔에는 지난주 초부터 미스라타에서 온 반군들이 머물고 있다. 반군들과 한 호텔을 쓰고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순교자의 광장에서 가까운 지역이고 반군이 장악한 지역이니 이곳만큼 안전한 곳도 없겠다 싶다가도, 이러다가 카다피군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교차했다. 트리폴리에서 반군이 장악하지 못한 아부 살림 지역에서만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저격수가 총을 쏘지나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건물 위를 쳐다보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 맨발·반바지 차림의 혁명가들


하지만 이 반군들은 군인이라고 하기에도 어딘가 모자란다. 총만 내려놓는다면 맨발에 슬리퍼, 면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인 평범한 이들이다.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지도 못했을 터다. 쉬는 시간에 호텔 앞 나무 그늘에 앉아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어쭙잖게 말을 걸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얼굴을 익히자 총을 한번 들어보라고 건네기도 한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며 포즈를 취하는 천진난만함도 있다.


이들에게 무기는 이미 일상용품이 됐다. 여차하면 무기를 들고 사선으로 달려갈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지난 22일부터 지금까지 카다피의 관저가 있는 요새 바브 알 아지지야 공격 등에서 130명의 반군이 죽었고 2000명가량이 부상을 입었다고 반군들은 전했다.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 변화에 대한 갈망이 평범한 청년들을 전사로 바꾸어놓은 셈이었다.


트리폴리에서의 첫날 밤. 호텔 창문 밖에서 간헐적으로 총성이 들려왔다. 총과 무기로 무장한 사람들이 옆방에 묵고 있다. 정상화 과정이지만 아직 불안한 모습의 트리폴리. 하지만 시민들은 미래를 밝게 점치고 있었다. 오웨스는 “충돌을 피해 도시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도 일주일이면 돌아오고 상점도 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카다피의 압제에서 벗어난 리비아에 대해 훨씬 자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혁명은 모든 리비아인을 하나로 만들어줬다”며 “세계는 ‘리비아는 곧 카다피’라고 알고 있었지만, 카다피는 리비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군의 깃발색은 빨강, 검정, 녹색의 3가지로 이뤄져 있다. 날루트 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청년들은 빨강은 리비아 사람들이 흘린 피를, 검정은 이탈리아 식민지배로부터의 독립을, 녹색은 천연자원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리비아가 바로 이런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지만 결국 식민지배에서 독립했고 이제 42년간의 독재를 극복했다. 많은 과제가 있겠지만 석유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췄고, 이제 국민의 손으로 이뤄낸 민주주의 힘까지 더해졌으니 미래에는 한번 해볼 만한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늘로 쏘는 축포의 배경인 자신감은 바로 그런 희망과 기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리폴리에서>


이지선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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