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농약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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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무농약 와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2. 25.

1999년 프랑스 남부 미요에서 맥도널드 매장을 트랙터로 밀어버린 조제 보베 이후, 농부가 일간지 르몽드의 1면에 등장하는 건 좀처럼 드문 일이다. 


2월24일자 르몽드 인터넷판 1면에 검은 수트(양복)를 입고, 지지자들을 향해 멋지게 손을 흔들며 등장한 남자는 부르고뉴 지방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지불로 에마뉘엘이다. 


그는 자신의 포도밭에 농약을 살포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날 법정에 섰다. 


프랑스 샤블리의 바이용 포도밭에서 직접 포도를 선별하고 있다.(출처 :경향DB)


1985년부터 구축해온 유기농법으로 포도농사를 지어오던 그가 갑자기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 건 지난해 6월쯤. 부르고뉴 행정당국이 포도나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염병 예방을 위해 이 지역 포도농가 전체에 농약 살포를 강제로 명령하면서부터다. 


유기농산물 라벨(표시)을 유지하면서도 쓸 수 있는 농약은 단 하나, 천연재료로 만든 것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에마뉘엘은 그 농약마저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없었다. 그 농약은 해당 병해충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곤충들도 한꺼번에 죽여버리는 바람에 그가 구축해온 유기농 환경이 일거에 파괴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기농 농가에서 농약 사용을 거부한 것은 상식을 넘어, 바람직한 일이라 믿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 이 아연한 죄목으로 법정에 서는 에마뉘엘을 지지하는 위원회를 결성했다. 녹색당을 비롯해 그린피스, 반자본주의 신당, 아탁, 그리고 많은 유기농 농가와 생태주의자들이 그의 선택과 저항을 지지하고 행정당국의 횡포를 고발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 40만명 이상의 서명과 언론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여론의 매서운 바람이 법정에 스민 걸까. 검사는 이날 재판에서 에마뉘엘에게 최소 형량을 구형했다. 벌금 1000유로, 그나마도 절반은 집행유예다. 


에마뉘엘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많은 포도농가들이 농약이 아닌 방법으로 병충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들이 있음을 깨닫고, 그 길에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유럽 최대의 의약품 소비국인 프랑스는 동시에 유럽 최대의 농약 소비국이기도 하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로 내려주었다는 포도주. 그러나 포도농장 사람들은 대부분 암으로 죽는다. 이들이 가장 흔하게 걸리는 병은 방광암이다. 그것은 농약 사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농장주들은 얘기한다. 포도 재배가 그들을 먹여살리지만, 결국 그것으로 인해 그들은 죽음에 이른다. 이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농부들이 유기농으로 전향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유기농 전환에는 수많은 행정절차, 더 많은 실험이 따른다. 따라서 더 많은 인내와 비용이 요구된다. 그리고 에마뉘엘이 마주했던 것처럼, 집요한 시스템의 방해가 그들의 전향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다. 프랑스의 사회보장금고를 털고 싶어 하는 제약 마피아가 프랑스인들의 의약품 소비를 부추기는 가장 큰 동력이라면, 프랑스의 농약 사용을 부추기는 동력은 몬산토 등 다국적기업과 결탁한 유럽 위원회, 그리고 그들의 명령에 순종하는 프랑스 행정당국이다.


벌레를 죽이기 위해 땅을 죽이고, 농민을 죽이고, 소비자들까지 서서히 죽여가는 동안 다국적기업만 홀로 배를 불리게 하는 법. 불행하게도 오늘의 세상에는 그러한 법들이 난무하며 범인(凡人)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법이 모두의 상식을 배반할 때, 우린 이렇게 말해야 한다. ‘법은, 그것이 존중받을 만할 때만 지킨다.’ 에마뉘엘의 한 지지자가 결연히 외쳤던 것처럼.


목수정 | 작가·파리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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