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공적개발원조 사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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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박근혜 정부의 공적개발원조 사유화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6. 9.

정부가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와 관련된 사안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는 단어가 ‘원조선진국’이다. 한국이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의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이 원조선진국다운 ODA 정책을 갖고 있었던 적은 없다.

ODA는 빈곤국의 사회·경제 발전을 위해 지원하는 공적자금이다. ODA는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에서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내려면 현지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시작됐다. 착취의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착취가 됐든, 교역이 됐든 상대국이 발전하고 규모가 커져야 이익이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식민지 독립 이후에도 개발원조는 필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서유럽 재건을 위해 실시한 ‘마셜 플랜’은 현대적 개발협력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한 전략적 정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ODA는 달라졌다. 이제는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세계를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기술과 자본만을 제공하던 단계를 넘어 효율성과 자립, 교육, 거버넌스 등이 중요해졌다. 현대의 ODA는 빈곤퇴치, 평등, 인권, 인도주의 등 인류 공동번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00년 유엔은 빈곤감소·보건·교육·환경 등의 분야에서 2015년까지 달성할 8개의 목표를 설정해 ‘새천년개발목표(MDGs)’로 채택했고, 지난해부터는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 17가지를 제시했다. SDGs는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도전과제와 이행방안을 담고 있다. 이젠 개발협력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세계 전체의 의무가 됐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국 ODA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초창기 한국 ODA는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 무상원조가 아니라 장기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는 유상원조가 절대적으로 많았고, ODA 사업도 한국 기업만이 수주할 수 있는 구속성 원조가 대부분이었다. 사업 발굴부터 시공까지 한국 기업이 맡았고 자재도 한국 것만 쓰도록 돼 있는 구조여서 해당국가에 제공한 차관은 고스란히 한국 기업의 주머니로 되돌아왔다. ODA는 재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도구였던 셈이다. 반기문 외교장관이 유엔사무총장 선거에 나섰을 때는 각국의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ODA를 남발하기도 했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뫼 및 GNI 대비 비율_경향DB

2009년 DAC 회원국이 되면서 한국 ODA는 양적·질적 개선을 요구받게 됐다. 하지만 정부는 원조 선진국이 됐다는 홍보에만 열을 올렸을 뿐 ODA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ODA를 빈곤국이 아닌 자원 보유국에 집중 투입해 ‘자원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벌인 전쟁 뒤치다꺼리에도 ODA가 투입됐다.

이명박 정부는 DAC 가입 당시 ODA 규모를 국민총소득(GNI) 대비 0.25%까지 늘리고 구속성 원조를 25% 이하로, 무상원조 비율을 90% 이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이 계획의 이행을 전제로 가입 심사를 통과했으니 ‘원조 선진국’ 칭호는 사실상 가불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2016년 현재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ODA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 맞춰 내놓은 ‘코리아에이드’라는 원조 프로그램은 순방 효과를 포장하기 위해 급조한 ‘날림 공사’임이 한눈에 드러난다. 경제·사회·교육·환경이 균형적으로 통합된 지속가능한 미래를 목표로 전 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마당에 의약품과 비빔밥을 싣고 다니면서 K팝 영상이나 틀어주는 게 새로운 개발협력 모델이라고 주장하니 할 말이 없다.

박근혜 정부의 ODA 정책에서 특히 심각한 것은 ‘새마을운동 세계화’다. 군사독재정부가 주도한 강제동원형 의식개조 운동이 SDGs의 취지와 부합할 리도, 실행 가능할 리도 없다. 하지만 정부는 모든 빈곤국 농촌지원사업에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새마을운동과 아무 관련이 없다. 타당성 조사를 거쳐 해당국가의 형편에 맞도록 설계한 평범한 농촌개발 사업이다. 결국 새마을운동의 부정적 이미지를 세탁해 미화·홍보하는 작업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ODA가 해외시장 개척과 대외정책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단계를 넘어 대통령 개인과 가문의 치적을 포장하는 데 이용되는 ‘ODA 사유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게 원조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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