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전술과 광인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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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벼랑 끝 전술과 광인 전략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4. 26.

북한의 핵 문제 대응 방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소위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다. 한성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14일 평양에서 외국 언론들을 불러모아 “미국이 군사작전을 한다면 우리는 선제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오히려 미국을 위협했다. 그러면서 “최고 지도부가 결심하는 때, 결심하는 장소에서 핵 실험이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면 미국이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나온 대응이다. 노동신문은 지난 19일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한반도 배치에 맞서 ‘절대병기’ 수소폭탄까지 거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실 벼랑 끝 전술의 특허권은 미국에 있다. 냉전시대 미국이 소련과의 협상에서 주로 동원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대표적 사례다. 1956년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은 이 전술을 예술에 비유하기도 했다. “전쟁에 이르지 않고 벼랑에 이르는 능력은 필요한 예술이다. 이 예술을 정복하지 못하면 불가피하게 전쟁에 이르고 말 것이다. 전쟁을 피하려고 하거나 벼랑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전쟁에 지게 된다.” 냉전 이후에도 이 협상 기술을 발전시킨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벼랑 끝 전술은 이제 북한의 협상 전술의 전형을 일컫는 용어가 됐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협상을 막다른 상황까지 몰고가는 초강수로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협상 전술이다.

 

 

 

그런데 북한의 ‘치킨게임’ 전술을 무색하게 하는 상대가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특유의 대응 덕분에 ‘광인전략(madman strategy)’이란 용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북베트남과의 평화회담을 위해 핵전쟁 경계령을 내린 데서 유래한 용어다. 미국 대통령이 비이성적이고 ‘미친 X’여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관측을 의도적으로 퍼트려 상대방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려는 전술이다.

 

실제 트럼프식 대응은 두려움을 확산시키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다. 한·미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실제 북한 핵·미사일 시설을 선제타격하는 등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연일 떠들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정세 불안정을 우려하며 유례없는 북한 경제 조이기에 나섰다.

 

트럼프 정부 들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진 이유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과 미군의 막강한 군사력 때문이다. 트럼프는 하루아침에 시리아 정책을 뒤집어 미사일 공격을 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재래식 폭탄 중 최대 폭발력을 가진 ‘폭탄의 어머니’를 투하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근해로는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급파했다. 트럼프는 북한에 단호하게 대응하겠지만 그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겠다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군사적 타격 가능성을 두고 백악관 대변인과 국가안보보좌관이 다른 말을 한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가 트럼프 정부의 이 같은 행태를 두고 ‘북한보다 더 북한스럽다’고 지적할 정도다.

 

하지만 트럼프의 광인전략은 북핵 해법이 될 수 없다. 북핵 문제에 대한 예측불가능하고 무계획적인 대응은 관련 국가들의 정책 혼란을 야기하고, 자칫 화약고 같은 한반도에서 북한의 ‘오판’에 의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 시민 수백만명의 목숨이 걸린 선제타격 같은 군사적 대응 이슈를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동맹국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더불어 김정은이 ‘미친 뚱보 아이’(존 매케인 상원의원)라서 똑같이 대응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오판이다. 트럼프 정부가 지금 같은 대외 정책을 고수한다면 국제무대에서 신뢰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벼랑 끝 전술은 북한처럼 정권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나라들이나 최후의 수단으로 동원할 만한 전술이다. 말 한마디, 정책 하나가 전 세계 정치·경제 질서에 영향력을 미치는 초강대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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