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혁 공존형 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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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혁 공존형 정치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6. 4.

세월호 침몰사고의 후유증은, 마치 권투에서의 ‘보디 블로(상대의 배나 가슴을 때리는 것)’처럼 한국 사회 구석구석까지 여러 가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뛰어넘을 만큼 심각하다.

이미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한국은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젊은이를 중심으로 급속히 저하돼 있었으며, 동시에 젊은 층에 있어서는 격차, 빈곤, 극심한 경쟁, 비정규노동 문제 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사회가 돼 있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선진국 또는 경제대국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한국은 젊은이, 노인, 여성, 어린이,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결코 따스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극히 냉혹한 사회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가 났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미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이었다. 천진난만한 청춘들이, 탐욕스러운 선박회사와 그 실질적인 오너, 더욱이 무책임한 선원, 해상경비 관련 담당자, 무능함을 드러낸 당국과 청와대, 한층 더 선정적인 상업주의로 내달리는 언론 등 요컨대 한국 사회를 유지해온 유형무형의 크고 작은 시스템과 그것을 떠받쳐온 권력자와 엘리트들의 태만과 부정에 희생된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이런 생각이, 영상매체를 통해 전해진 구출극을 지켜본 수많은 국민들의 머리에 남아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미 국민들 속에 오래 남아있을 허탈감이, 사고를 계기로 한꺼번에 밀려오고 그것은 동시에 자책과 분노의 감정으로 변해 겉으로 드러나기에 이른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스스로에게 자문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피눈물 날 정도로 억척스러운 노력을 통해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많은 것을 잃은 것은 아닌가’라고. 달성감과 상실감의 이율배반적인 감정의 흔들림 속에서 사고의 비극은 눈앞에 닥친 지방선거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비극의 원인규명이나 조사, 시스템과 의식의 발본적인 점검의 기회를 잃은 채로 여야 사이의 정치적 줄다리기의 재료가 돼버린 것 같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이번 사고를 전후로 해서 한국 및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격렬하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안보와 무역이라는 측면에서 각각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중요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미묘하게 변화하고, ‘중·러의 접근’과 ‘미·일동맹’의 대립, 일본의 군사대국화로의 변화 등 미·중·러·일이라는 4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의 ‘키잡이’는 더욱더 어려워지는 국제정세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리스크’는 여전히 한국을 무겁게 누르고 있고, 한국은 ‘존속’이라는 면에서 극히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난감한 외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세월호 사고에 따른 국내문제 해결을 위해 향후에도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소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분명히 지금까지의 정치시스템과 관행으로는 한국이 안고 있는 안팎의 난국을 극복하기 어렵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 행진


한국은 지금 여야의 격돌형 정치로부터 권력의 핵심에 보수와 혁신이 동시에 존재하는 보혁공존형 정치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86년 3월 프랑스의 총선거 이후 당시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은 선거로 승리한 공화국연합의 자크 시라크 대표를 총리로 지명해 행정권의 이중상태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난국을 극복했다. 역사적인 배경이나 정황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같은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한국에서 그러한 보혁공존형 정권의 탄생은 결코 꿈만은 아닐 것이다.

하물며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도 맡고 있는 대국이다. 그 대국이 국내의 분열이나 정치적 자원의 소진을 피하고 프랑스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의 격변에 대응하기 위해 보혁공존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4개의 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분단국가 한국이라면 더욱더 보혁공존형 정치로의 전환을 도모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및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안전보장의 환경이 격변해 미·소 냉전과는 다른 형태의 4대국 간 격렬한 헤게모니 분쟁이 동북아시아, 특히 한반도를 무대로 전개되고 있는 현재, 여야가 서로 양보하고 상호 기본적인 정책강령의 일치점을 보다 넓혀 한국과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의 확보를 향해서 새로운 정치적 결정과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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