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페스트·탄저균 반입과 실험에 사과 않는 미군, 말 없는 정부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페스트·탄저균 반입과 실험에 사과 않는 미군, 말 없는 정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2. 18.


주한미군의 국내 탄저균 배달과 실험이 16차례나 이뤄졌다고 한다. “탄저균 실험은 처음”이라던 사고 당시 주한미군의 해명은 거짓이었다. 탄저균 외에 페스트균까지 반입된 사실도 밝혀졌다. 살아있는 탄저균을 경기 오산기지로 배달한 사건에 대한 한·미 합동실무단의 조사 결과는 이처럼 하나같이 섬뜩하다. 한국 정부는 모두 까마득히 몰랐다고 한다. 이러고서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군은 서울 용산기지에서 15차례나 탄저균 성능 실험을 했다. 미국에서는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사막 한가운데 지하특수터널에서나 하는 실험을 한국에서는 인구가 밀집한 도심 한복판에서 시행한 것이다. 사고 발생 시 대형 인명피해가 불가피한데도 미군이 도대체 뭘 믿고 실험했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미군은 안전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미군이 직접 배달하고 실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있는 탄저균 배달의 원인도 책임질 주체도 없다”는 미국 국방부의 지난 7월 발표는 탄저균 배달과 실험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한미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거짓말한 것만도 가슴을 칠 일인데 유감 표명은커녕 “오산기지에서는 처음 실험했다는 얘기였다”고 말을 바꾼 것은 한국인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이러니 생물학 검사용 샘플 반입은 더 없다는 미군의 말이 곧이들리지 않는다. 실험 후 폐기물 소각과 멸균처리를 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렇잖아도 한·미 양국의 조사는 미국 측이 제공한 자료에만 의존한 것으로 의혹을 떨치기 어렵다. 미군이 보안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 자료가 많았다고 한다. 조사단의 현장 평가는 단 한 차례에 그쳤고, 반입 샘플의 양이나 배달 시점에 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실험의 뒤처리 여부도 미군의 진술 말고는 알 수 없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주한미군은 그 어떤 군사적 대비책보다 한국인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미합동실무단이 평택 주한미군 오산기지에서 탄저균 배송사건을 공동조사 하고 있다._경향DB


한·미 양국이 마련한 개선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미군이 검사용 샘플 반입 시 종류와 양, 용도, 배달 방법을 한국에 통보하고, 필요하다면 공동 평가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는 독일이 자국 주둔 미군의 생화학물질 수입과 검사, 방제 시 반드시 독일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한 것과 너무나 다르다. 그럼에도 한·미 합동조사단은 이런 정도의 개선책을 두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조치”라고 치켜세웠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려보려는 행태이다. 생화학물질은 단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한다.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면 그 어떤 물질도 반입과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미군의 거짓말은 한국인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한 오만한 행태로 당연히 항의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는 항의 논평 하나 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면 주권국가 자격이 없는 일이다. 국민에게 사태의 진상을 설명하고 불안을 해소하는 기본적 책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향후 위험물질의 국내 반입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을 게 분명한데도 팔짱 낀 채 방관하는 모습은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납득하기 어려운 한·미 합동조사로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 건가. 국민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정부를 지켜보며 서글픔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