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미연구소 논란과 폐쇄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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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한·미연구소 논란과 폐쇄가 남긴 것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4. 12.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지난 12년 동안 운영되던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대학원(SAIS) 내 한·미연구소가 한국 정부의 예산 지원 중단 조치에 따라 다음달 문을 닫는다고 대학 측이 밝혔다. 한·미연구소 논란은 당초 국내 보수언론들이 한국 정부가 연구비 지원을 앞세워 보수성향의 구재회 한·미연구소장을 교체하려 한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재인 코드에 맞추려 소장 교체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은 연구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됐는지의 문제로 초점이 이동했다.

 

우선 이 연구소가 한국 정부로부터 연간 약 20억원씩 모두 200억여원을 지원받았지만 연구 실적이 미미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장 중요한 연구 실적인 연구보고서가 2015년 이후부터 나오지 않았고, 특별보고서도 2016년 8월 이후 없었다는 것이다. 순수 연구비와 한국학 학자 양성 등 핵심사업에는 예산의 4분의 1도 쓰지 않으면서 인건비가 56%나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국내 유력 정치인들을 연구원으로 초빙하거나 한국인들의 미국 방문 시 행사를 주최하는 데 치우쳤다고 하니 공공외교를 강화한다는 당초 목적에 부합했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 연구소는 결산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정부의 요청에도 한두장짜리 결산보고서만 제출하는 등 무성의하게 대응했다. 지난해에는 국회가 예산 투명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요구하는 부대의견을 달고서야 지원 예산이 통과됐는데 이마저 거부했다.

 

이런 연구소의 기능과 역할의 문제는 외면한 채 연구소장 교체만 주목한 언론들의 문제 제기는 도를 지나쳤다. 이들은 대학 측 인사들의 일방적인 주장에만 귀기울이면서 ‘문재인 정권판 블랙리스트’라는 말까지 썼다. 한국을 잘 아는 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 이사장이 문제제기를 했으니 의심은 할 수 있었겠지만 정부 비판을 위해 일부러 사실관계를 도외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정부의 세련되지 못한 대응도 아쉽다.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11일 한·미연구소 측이 정부 보조금과 기부금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게 논란의 핵심이라고 했지만 이것으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청와대 행정관의 석연찮은 역할과 국책 연구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규명해야 한다. 효과적이고 투명한 해외 연구지원과 공공외교 강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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